특집 | 21세기 과학, 낙관과 비관 사이

 

게놈, 생명의 지도인가 인간 종의 역사인가

 

 

강신익 姜信益

일산백병원 치과 과장. 인제대 의과대학 교수, 의학철학. 주요 논문으로 「앎과 삶으로서의 몸」 「동서 의학의 신체관」 「의학의 문화적 구성」 등이 있음. sikang@ilsanpaik.ac.kr

 

 

1. 들어가는 글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이다” 등의 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형질의 유전(heredity) 현상을 평범하게 표현한 것들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우리는 혈액형이란 걸 배우는데, 이 혈액형은 일정한 유전의 법칙에 따라 후세에 전해지며 이를 근거로 혈연관계를 확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혈액형은 의료현장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도 배운다. 또 동·식물을 선택적으로 교배시키는 육종(育種)을 통해 그 형질을 인간에게 유용한 형태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유전에 대한 상식이다. 여기서 우리는 ‘왜?’라는 막연한 의문을 가질 수는 있지만, ‘무엇이’ 이런 현상을 있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멘델의 법칙’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면서부터는 이 ‘무엇’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멘델(G.J. Mendel)에 따르면 생물체의 어떤 형질은 우성과 열성의 ‘유전자형’(genotype)을 가지며, 이 유전자형은 교배에 의해 후세에 전해진다고 한다. 이 우성과 열성 유전자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어떤 형질이 발현되며, 각 형질이 표현형으로 나타나는 비율을 결정하는 수학적 법칙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는 아주 과학적인 관찰과 설명이 가해지며 그런 현상을 있게 한 ‘무엇’을 상정하고 있다.

1885년 바이스만(August Weismann)은 유전의 모든 정보가 각각의 세포 속에 들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결정자(determinants)라 불렀지만, 그것의 물질적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943년이 되면 DNA라는 물질이 세균에서 형질을 유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한 개의 유전자와 한 가지의 효소가 대응한다는 가설이 제출된다. 1953년에는 그 DNA 분자의 이중나선구조가 밝혀짐으로써 바야흐로 분자생물학적 유전학의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당사자 중 한 사람인 웟슨(James D. Watson)이 “과거에 우리는 우리의 운명이 별들에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운명의 대부분이 유전자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Time 1989.3.20)고 선언함으로써, 이제 유전자는 대를 이어 나타나는 체질적 특성뿐 아니라 개체의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는 물질로 여겨지게 되었다. 바로 이런 사유양식이 인간 게놈, 즉 유전체를 해명하는 인간유전체연구사업(Human Genome Project)의 뼈대가 된다. 다시 말하면 ‘유전’이라는 상식적 담론에서 ‘유전자’(遺傳子, gene)라는 과학적 담론으로 이행하게 된 것이다.

2000년 2월에는 미국에서, 그리고 2001년 6월에는 한국에서 각각 인간유전자 지도의 초안을 완성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인체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인간의 운명을 결정할 설계도를 손에 넣은 셈이다. 이제 적절한 방법으로 그 암호를 풀어내기만 하면 우리는 인간의 생로병사에 관한 모든 것을 미리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도 있게 될 것으로 믿게 되었다.

한편, 유전자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제 논쟁의 핵심은 선천(Nature)이냐 후천(Nurture)이냐의 대립구도가 되며, 우리의 운명이 유전자 속에 ‘있다’고 주장하는 쪽과 ‘없다’고 주장하는 쪽의 대결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질병이나 형질이 ‘유전’에 의해 결정되는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제 진영은 유전자가 핵심이 되는 생물학적 결정론과 후천적 여건과 환경을 강조하는 환경결정론으로 나누어진다. 하지만 이 양 진영은 모두 선행요소가 결과를 좌우한다는 결정론적 시각을 가진다는 면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 글은 이러한 단선적 사유양식에 근거한 인과론적 담론의 문제점을 검토해보고, 좀더 유연한 대안적 담론구조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모색해보기 위한 것이다. 과학적 방법으로 획득된 지식이 어떻게 취사선택되며 그 선택의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펴봄으로써, 유전자가 중심이 되는 담론의 구조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2. 유전자의 지위

 

‘유전자’란 말은 1909년 요한센(Wilhelm L. Johansen)이 처음 만들어 사용했다. 하지만 그 말을 만들어낸 의도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맥락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다윈(C.R. Darwin)의 범생설(汎生說)에 기반을 둔 소아(小芽, gemmules), 바이스만의 결정자, 드 브리스(H. de Vries)의 범생자(汎生子, pangens) 등이 가진 사전결정론의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 이 말을 만든 것이다. “유전자는 다른 것과 쉽게 결합할 뿐 아니라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하나의 작은 낱말(a little word)에 불과하다”1고 함으로써 그는 유전자 속에 미래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결정론을 분명히 거부하고 있다. 그는 그것이 실재하는 구체적 존재인지 아니면 은유적 개념인지도 분명히 구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전자는 점차 실체를 가진 물질적 존재로 자리매김되어갔다. 1953년에 DNA의 이중나선구조가 밝혀짐으로써 유전자는 확실한 물질적 근거를 확보하게 되며, 1970년대 중반에는 제한효소가 발견되어 DNA를 재조합할 수 있는 기술이 확보되고 이를 응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DNA는 생명체의 형질을 전달하는 유전의 물질적 단위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모든 염색체에 들어 있는 DNA의 염기서열을 밝히려는 야심찬 계획이 추진되었고, 이제 우리는 이른바 인간의 유전자지도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30억쌍에 달하는 인간의 염기서열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생명의 설계도’ 또는 ‘신의 암호’라 불리는 이 유전자지도 또는 그 속에 존재하는 유전자는 우리의 운명인가? 신(神)의 메씨지인가? 생명 그 자체인가? 아니면 단순한 물질에 불과한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대 분자생물학이 정의하는 유전자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1943년 비들(George W. Beadle)과 테이텀(Edward L. Tatum)은 ‘일 유전자-일 단백질 설’을 제창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30억쌍에 이르는 DNA의 염기서열 중 mRNA로 전사(轉寫)되어 tRNA에 실려온 아미노산을 연결함으로써 일정한 단백질로 번역되는 DNA의 단위를 하나의 유전자라고 한다. 예컨대 인간 글로빈의 알파 체인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배열을 만들기 위해서는 426개의 염기쌍이 일정한 순서로 배열되어야 하는데, 이 426쌍의 염기서열을 이 단백질에 해당하는 유전자라 한다는 것이다.2 인체에는 약 10만종의 단백질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이 가설에 따르면 인체에는 같은 수의 유전자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유전체(genome) 연구가 진행됨에

  1. Evelyn Fox Keller, The Century of the Genes,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2면에서 재인용.
  2. Ruth Hubbard and Elihah Wald, Exploding the Gene Myth, Boston: Beacon Press 1999, 5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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