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신혜진

신혜진 申惠眞

1973년 충북 충주 출생. 고려대 국문과 석사과정 재학중. 2006년 제5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ich0314@hanmail.net

 

 

 

겨울 유원지

 

 

아침부터 찌무룩하던 하늘이 낮게 내려앉았다. 차창을 내리고 담배를 피워 문 원재가 잔뜩 흐린 하늘을 흘낏 올려보았다. 거대한 진공청소기가 돌아가듯 손가락 두마디만큼 열린 창틈으로 담배연기가 바깥으로 빨려나갔다. 이차선 도로 한쪽에 도로 포장용 골재를 실은 덤프트럭 한대가 서 있었다. 늦가을부터 시작된 공사는 느리게 진행되다 유원지 입구에서 불과 삼백미터도 못 간 지점에서 중지되었다.

유원지로 접어드는 진입로는 큰길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유원지라고 씌어진 팻말을 끼고 급경사 진 길로 올라타서 도로공사 본부와 면한 구불구불한 비포장 흙길을 한참 달려야 한다. 도로 위에 연탄재가 어지럽게 부서져 있었다. 이틀 전 내린 눈과 연탄재가 섞여 지저분해 보이긴 해도 덕분에 길이 미끄럽지는 않다. 원재는 얼음이 얇게 언 갓길 쪽으로 차가 기울어지지 않도록 주의해가면서 운전을 했다. 길에 깔린 잔돌을 튀기며 자동차가 서서히 유원지로 들어섰다. 유원지는 겨울잠에 빠져 있는 듯 인적이 드물었다. 느닷없는 자동차 소리에 놀란 꿩 한마리가 푸드덕거리며 차창 앞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사위는 고요했다.

유원지 제일 안쪽‘사계절 오리탕’이라고 써 붙인 입간판 앞에 차가 멈춰섰다. 붉은 아크릴 입간판은 돌덩이로 아랫부분을 고정해놨으나 금세 쓰러질 듯 삐뚜름했다. 원재는 식당 입구에 김사무장의 자동차가 주차돼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외투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주차장에는 그 차 말고도 일톤 트럭 한대와 자가용 몇대가 더 있었다. 유원지 식당들은 계절을 타는 탓에 겨울철엔 으레 개점휴업인 경우가 많았으나 몇몇 집은‘특별한’장사로 때아닌 대목을 누리기도 하는 것이다.

오리탕집 마당에 나일론 차일이 시무룩하게 처져 있었다. 그 아래 평상이 너덧개, 먼지를 뒤집어쓴 채 포개져 있는 것이 보였다. 쇠락해 보이나마 이곳이 유원지의 식당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이따금 슬레이트 지붕에서 기스락 물을 흘리던 고드름이 툭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양달 쪽으로는 햇살을 이기지 못한 눈이 녹아 감은바닥이 드러났다. 비루먹은 개 한마리가 다가와 원재의 바짓자락에 달라붙어 냄새를 맡다가 흥미가 없는지 이내 집 뒤편으로 달아나버렸다. 계십니까? 노크하는 그의 손에 알루미늄 특유의 기분 나쁜 냉기가 느껴졌다. 은색 쌔시 문에는 검은 썬팅지를 바른 간유리가 끼워져 있었다.

원재가 헛기침을 해가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둑한 실내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현관 앞에서 발을 굴러가며 구두에 묻은 눈을 털었다. 문간에는 분홍색 플라스틱 슬리퍼와 나일론 털신 그리고 남자 구두 여러켤레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인기척이 없는 마당처럼 집 안도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얼마간 서 있으려니 가재도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실내는 협소했고, 살림살이들은 음식점답지 않았다. 마루에 나와 앉은 밤색 장롱이며 씽크대가 한눈에도 무척 낡아 보였다.

“계십니까? 계세요? 김사무장님 심부름 왔습니다.”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주인을 부르자 방문이 열리며 턱이 조붓한 중늙은이 남자가 얼굴만 내밀었다. 그는 잠기가 채 떨어지지 않은 눈을 순하게 끔벅이며 낯선 손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원재는 김사무장이 불러서 심부름 왔다는 식으로 다시 한번 말했다. 김사무장이 이런 음식점을 찾은 이유야 빤한 마당에 괜히 단속 나온 경찰로 오해받아서 좋을 것 없다고 원재는 생각했다. 김사무장은 겨울 들어 사무실에서 말없이 사라지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덕분에 변호사와 사무장 사이를 오가는 일까지 원재가 떠맡게 되었고, 서너차례 ○○유원지를 훑고 난 후에는 사무장이 있을 만한 식당들을 훤히 꿰게 되었다.

문고리를 잡고 있던 남자의 손이 천천히 무릎으로 옮겨지는가 싶더니 방문이 활짝 열렸다. 그러자 검정색 가죽점퍼를 입은 상체가 드러났다. 마르고 푸석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남자의 체격은 의외로 장대했다. 방 안에서 외투를 입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 비로소 원재는 집 안에 온기라곤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발을 벗지도 않은 채 엉거주춤 서 있는 원재를 향해 남자가 왜 그러고 섰느냐, 나무라듯 일어섰다.

좁은 마루를 지나 남자를 따라 들어선 방 안에는 스무살쯤 먹었을 여자가 비대한 어깨를 잔뜩 구부린 채 베개를 안고서 TV를 보고 있었다. 마주 보이는 벽면에 벽지를 바른 문이 두개 더 있었다. 내실인 모양이었다. 남자는 그중 하나의 방문을 가리켰다. 뒷산에 면해 있는 작은 창문 하나뿐이어서 안쪽 방은 퍽 컴컴했다. 방 한가운데 휴대용 버너가 놓인 상이 세개 나란히 붙어 있었고, 한쪽 벽에서 가느다란 금실 같은 빛이 허약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주저하지 않고 빛이 새나오는 벽을 향해 걸어갔다. 그 방에, 수시로 자기 자리를 비우는 김사무장이 능청스레 앉아 있을 것이었다. 괜스레 마음이 급해진 원재가 상 모서리에 정강이를 부딪혔다.

한 손으로 다리를 감싸고 방문을 여는 순간, 원재의 안경에 뿌연 김이 서렸다. 얼른 안경을 닦아 되썼지만 방 안은 여전히 뿌옇게 보였다. 파리한 형광등 아래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방 한가운데 당구대용 초록색 천이 깔린 탁자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 만원짜리 지폐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이 얼른 눈에 들어왔다. 누런 장판이 깔린 방바닥은 미지근했으나 가스난로가 뿜어대는 열기와 담배냄새, 땀내 그리고 버너 위에서 끓고 있는 오리탕이 풍기는 누린내로 방 안 공기는 끈적거렸다. 끈끈한 열기 속에 앉아 있는 대여섯명의 사내들 틈에 김사무장의 투덕한 목덜미가 보였다. 그는 누가 들어오거나 말거나 손에 든 카드패에 코를 박고 있느라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은 나머지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둘은 낯이 익었다.

“사무장니임……”

마침 레이스가 한창이었으므로 원재는 조심스럽게 김사무장의 어깨를 건드리며 말했다. 그제야 김사무장이 두툼한 목덜미에 주름을 잡으며 게으르게 돌아보았다. 넓게 퍼진 콧방울에 기름기가 번들거렸고 M자로 벗겨지기 시작한 이마에 깊은 주름이 그어졌다. 삐딱하게 담배를 씹어 문 사무장의 검푸른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필터 끝까지 타들어가던 담배에서 길게 구부러진 재가 스웨터 위로 떨어졌다. 한 손에 돈다발을 들고 한 손으로 패를 쪼느라 담뱃재 털 손이 없었던 것이다. 벌겋게 충혈된 사무장의 눈이 매운 담배연기에 찌푸려졌다. 누가 됐든 성가셔 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 바둑 둬? 사무장 건너편에서 지청구가 떨어지기 무섭게, 콜이여, 다이여? 재촉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뭔 노무 패가 이러냐아?”

김사무장이 자기 앞에 깔려 있던 트럼프를 엎으며 끗발 안 서는 게 다 네 탓이라는 듯 원재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 서슬에 원재가 주춤 물러섰다. 사무장은 궁둥이로 지그시 누르고 있던 서류봉투를 원재의 발 쪽으로 건성 밀어놓았다.

건네받은 서류봉투를 겨드랑이에 끼고 마당으로 나선 원재가 가래침을 훑어 올렸다. 점액질의 가래를 사무장의 자가용 쪽으로 길게 뱉었다. 승용차 문에 열쇠를 꽂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한참 일할 시간에 한적한 유원지에 모여 있는 남자들이 아무리 봐도 신기했던 것이다. 초록색 상 위에 쌓여 있던 푸릇한 지폐더미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의 발밑에서 녹았다 얼어붙은 눈이 버석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정오의 햇살이 핥고 지나간 곳에선 어김없이 눈석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변호사 사무실에 서류를 가져다주고 원재는 가까운 은행을 찾았다. 365일 자동화기기에 김사무장의 현금카드를 밀어넣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 기계음을 무시하고 얼른 육인치짜리 화면에 손가락을 얹었다. 원재의 입에서 가느다란 한숨이 삐져나왔다. 총알 떨어졌다, 은행 좀 갔다와라. 숫제 명령조로 말하는 김사무장에게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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