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기준영 奇俊英
1972년 서울 출생. 2009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연애소설』 『이상한 정열』 『사치와 고요』, 장편소설 『와일드 펀치』 『우리가 통과한 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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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속과 끈기
손민우 아우구스티노 신부는 여섯살 때 수십초간의 전신 경련을 세차례 겪었다. 그는 그게 자신이 호랑이로 둔갑하는 과정일 거라는 이상한 확신을 품었기에 한번은 증상이 발현되기를 기다리며 일부러 몸을 떨어본 적도 있다. 그의 부모는 집안에 순환계통 질환의 유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신경 쓰며 근심이 깊어져 한동안 아이를 극진히 과보호했다. 그러다 대학병원의 유명한 전문의로부터 검사 결과 병증은 아니라는 소견을 들었고, 이후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린 아우구스티노는 부모의 기쁨이 되고자 제 몸 상태뿐 아니라 매일 새로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낱낱이 부모와 나누었다. 그는 평균 신장인 부모와는 달리 중고등학교 시기를 거치며 키가 농구선수만큼 자라났다. 그리고 서른두살에는 바라오던 대로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제 서른다섯이 된 그는 서울 소재 한 성당의 보좌 신부로서 사목하며, 신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본당의 신자들 대부분이 그가 산책과 술을 즐기는 사제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느날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고깃집에서 교우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제 부모가 오랫동안 전통시장에서 손두붓집을 하며 만나온 단골들과의 일화 한토막을 흘렸을 때, 옆 테이블에 있던 한 초로의 부인이 그의 얼굴에서 빛을 보았다. 찬 겨울날 윤슬을 바라보고 있을 때처럼 깨끗한 기쁨이 마음에 차올라 그걸 ‘빛’이라고 인식할 수 있었다. 신부가 무슨 말을 했는지가 기억에서 지워지고 난 뒤에도 대화 도중 해사해지던 그의 표정만큼은 부인의 뇌리에 남아 며칠이고 맴돌았다. 부인은 이끌리듯 성당을 찾아가 그저 멍하니 미사를 몇번 경험했다. 제대 앞에 선 신부를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이 성가를 부르는 소리, 기도문 외는 소리를 들었다. 신자들은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친절하며 목소리조차 온화하다고들 말했다. 부인에게는 다른 점이 더 크게 보였다. 그가 보기에 젊은 아우구스티노는 매우 예민한 귀를 가진 사람이었다. 미사 전후에 고해소 앞에서 고해성사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겸허한 태도, 고요히 흔들리는 표정을 바라보고 있으면 알 수 있었다. 예민하게 귀를 기울이는 신부의 감각이 무슨 강렬한 전기 신호처럼 부인의 온몸으로 전달되는 듯했다.
부활절을 나흘 앞둔 봄날이었다. 아우구스티노 신부는 평일 저녁 미사 후 성당 앞뜰에서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고서 사제관으로 돌아가려는 길에 갑자기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신자 셋이 그를 에워싸며 허둥거렸다. “신부님, 신부님, 신부님! 왜 그러세요?”
아우구스티노 신부는 양팔로 몸을 감싸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 처음 보는 풍경을 음미하는 사람처럼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 뒤에 옅은 한숨을 내쉬었고, “괜찮아요” 하고서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는 다음 날 저녁 미사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부인은 신부의 안부가 궁금했다. 그를 다시 보게 되는 날에는 반드시 놓치지 않고 인사를 건네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달이 바뀌어 5월이 되었을 때, 부인은 성당으로 나갔다. 평일 정오 무렵이었는데, 보슬비가 내린 뒤라 날이 약간 흐렸다. 미사는 이미 한시간여 전에 끝난 터라 성당 앞뜰은 조용했다. 마침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뜰 한쪽의 성모상 앞에서 혼자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부인은 신부가 기도를 마치는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신부님,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신부가 뒤를 돌아보았다.
“제가 신부님께 차를 한대 사드리고 싶은데 받아주세요.”
“무슨 말씀이시죠? 절 아세요?”
“받아주세요. 필요하실 거예요.”
“누구시죠?”
“신부님이 모르는 사람이요.”
휭 하니 바람이 불어와 부인의 목에 감긴 하얀 실크 머플러 끝자락이 나풀거렸다. 부인이 가녀린 손가락으로 머플러의 매듭을 매만지다가 그 손을 아래로 미끄러뜨려 가슴께에서 멈추었다. 마치 고음으로 치닫기 전에 어떤 성악가가 그러는 것처럼 그 모습이 묘하게 품위있어 보였다.
“혹시 이 동네로 이사 오셨어요?”
신부가 묻자 부인은 시선을 비껴두며 “헬레나”라고 읊조렸고, 이내 다시 신부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구자영 헬레나. 갓난아기였을 때 세례받았다고 해요. 성당에 다녔던 기억은 흐릿하게만 남았어요. 다른 동네에 살아요. 그럼 전 신부님께 차를 사드릴 수 없나요?”
아우구스티노 신부는 웃었다. 경쾌하게 소리 내어 웃었다. 만약 그에게 날개가 있었다면 한껏 푸드덕거리며 웃었을 것이다. 그 순간 충동감, 그가 잊었으나 그의 세포는 기억하고 있을 기분 좋은 충동감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활랑거렸기 때문이다. 먼 곳으로 쌩쌩 달려나가고 싶다는 갈망은 사춘기 때 불현듯 찾아오곤 했는데, 주로 이런 상상으로 번져가곤 했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대형 덤프트럭의 적재함 상단에 위태롭게 왼손으로 매달려 있다가 한순간에 날쌔게 오른손으로 맞바꾸어 잡고, 또다시 왼손으로 맞바꾸어 잡고, 또다시 오른손으로 맞바꾸어 잡고…… 그러다 그는 트럭에서 손을 완전히 놓아버리는 장면을 그리며 집 밖으로 튀어나가 친구들과 축구를 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찬물로 씻고 난 뒤에 저녁 기도를 하고서 푸른 소용돌이무늬가 있는 차렵이불을 몸에 둘둘 말고 잠들었다.
“농담 아닌데요.”
구자영 헬레나는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지만, 제 말의 참뜻이나 진정성을 성마르게 주장하지는 않았다.
“성당에서 따뜻한 차 한잔 드시겠어요? ‘만남의 홀’이 있어요.”
“실례지만, 그러지 않는 게 좋겠어요.”
“비가 또 올 것 같죠? 우산은 가지고 오셨어요?”
헬레나는 아우구스티노 신부의 상냥한 질문에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며 “예보를 못 봤어요”라고 답했고, “신부님께 고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고 말을 이었다.
신부는 그때 헬레나의 목소리가 특이하다고 느꼈는데, ‘예보’에 섞인 약간의 콧소리 때문일 수도, 좀 망설이다가 내뱉느라 날숨이 섞여든 ‘마음’의 발음 때문일 수도 있었다. 헬레나는 자신의 다음 말을 기다리느라 상체를 약간 기울이고 선 신부의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그의 코끝에 펜으로 톡 찍은 듯한 검푸른 점이 하나 나 있는 걸 발견했다.
“하지만 신부님, 전 어리석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른답니다. 연습이라도 해보면 용기가 나고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지난달에 가벼운 녹음기를 하나 샀어요. 조용한 시간에 여태 해본 적 없는 말들을 녹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곧 깨달았지요. 저는 제 목소리를 흉내 내지는 못하리란 걸.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신부님께 그대로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저를 무례하다거나 올바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