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결핍의 열정

고은 시집 『두고 온 시』, 창작과비평사 2002

 

 

김주연 金柱演

문학평론가·숙명여대 독문과 교수 kimjy@sookmyung.ac.kr

 

 

저 바다가

저토록 날이날마다 조상도 없이 물결치고 있는 것은

오래

하늘이 되고 싶기 때문이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소년의 노래」 부분

 

고은(高銀)이 또 시집을 내어놓았다. 몇번째 시집이 되는지 시인 자신은 알까. 시집이 많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는 자랑도 부끄러움도 아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왕성한 시의 힘과 더불어, 무엇인가 쓰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깊고 어두운 욕망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지난 39년여 동안 때로는 가까운 곳에서 때로는 먼 자리에서 그를 지켜보고, 또 그의 작품들을 읽어온 나로서는 운명이 시인일 수밖에 없는 그를 거듭 확인한다. 대체 왜 그처럼 많은 시─어떤 때에는 그 난삽한 문맥들로 이해가 힘들기도 한─를 그는 써내는가. 이 시집에 실린 「소년의 노래」에 의하면 그것은 하늘이 되고 싶어하는 바다의 들끓음에 다름아니다. 물론 그는 이 시에서 하늘과 바다의 자리를 바꾸어놓기도 한다.

 

저 하늘이

저토록 어리석은 듯 밤낮으로

구름을 일으키고

구름을 지워버리고 하는 것은

바다에 내려오고 싶기 때문이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소년의 노래」 부분

 

내가 고은을 만난 것은 60년대 중반 『해변의 운문집』 출간 전후이다. 시로서나 사람으로서나 한꺼번에 만났는데, 그 이후 숱한 작품들과 세월이 지난 다음에 다시 부딪친 그는 여전한 모습이다. 그 모습을 시인 자신은 ‘소년’이라고 부르면서 “사람들이여 소년에게 놀라라 소년의 노래에 놀라라”(「소년의 노래」)고 외친다. 참으로 소년다운 모습이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으나 『해변의 운문집』은 바다의 노래였다. 그리고 40년 가까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그의 노래는 바다를 중심으로 맴돌고 있다. 아니, 그 자신이 그대로 바다임을 고백하고 있다. 나는 끊임없이 세상과 함께 출렁거려온 그의 성질을 바다 이외의 다른 어떤 사물로도 완전히 설명할 수가 없다. 자신의 말대로 그는 “조상도 없이 물결치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늘이 되고 싶기 때문”이라고 분명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그는 이 싯점에서도 예의 천의무봉한 자세로 무소부재 천지간을 드나들다가 급기야 “신이란 궁극에서 있으나마나 합니다”(「가을의 노래」)는, 엄청나다면 엄청난 결론을 문득 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바로 같은 작품에서 적고 있듯, 이것을 도저한 역설로 이해한다. 하늘을 사모하는 자의 도달할 수 없는 꿈의 인식론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누가 지는 잎새를 장사지내겠습니까

역설이 있어야겠습니다

가족도

민족도 필요없습니다

우수수

바람에 날려 지는 잎새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가을의 노래」 부분

 

115-416하늘은, 이러한 인식으로는 열리지 않는다. 그 작은 구석 어느 곳조차 만져지지도 않으리라. 따라서 신이란 있으나마나 하다는 생각 또한 철저한 인식에 의해 그 자리에 도달하고 싶지는 않다는, 차라리 겸손한 자기고백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은의 하늘은 오히려 바다에 내려오고 싶어한다. 구름을 일으키고 지워버리고 하면서 바다가 되고자 한다. 절대와 창조의 공간인 하늘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누구보다 그 자신이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가장 중요한 고은 시의 포인트가 숨어 있다. 하늘이 비록 고은의 바다와 어울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감생심 그 짝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하늘을 바라볼 때 그의 바다는 바다로서의 파도치는 생명력을 싱싱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은 하늘 가를 지나가버린, 하늘의 낌새를 알아버리고, 이제는 그것을 놓쳐버린 바다의 노래이다.

고은에게서 그 하늘은 정치적 정의, 좀더 구체적으로는 독재와 싸우는 민중의 힘이었고, 민족통일에의 염원이었으며, 요컨대 현실의 선(善)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그 하늘은 결핍으로 존재한다. 바다인 그는 쓸쓸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이런, 수음 같은 기이한 열정이 나타난다.

 

아 독재가 있어야겠다

쿠데타가 있어야겠다

 

그래야

우리 무덤 속 백골들

분노의 동정(童貞)으로 뛰쳐나오리라

하루 열두번의 잠 때려치우고 누에집 뛰쳐나오리라

그래야 텅 빈 광장에 밀물의 짐승들 차오르리라

 

지금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아무도 미쳐버리지 않는데

가랑비가 내리고 차들이 가다가 막혀 있다

그러나 옛 친구들이여 기억하라

이 광장이 우리들의 시작이었다 언제나        

─「광장 이후」 부분

 

‘결핍의 열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절규는, 사실 가장 고은다운 표현이다. 바다는 들끓어야 바다답다. 그러나 일부러 격랑을 일으켜 사람 가득 찬 배를 뒤집어엎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바다에게 남은 길은 무엇인가. 나로서는 두 가지의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 하나는 하늘을 올바로 바라보면서 바다의 겸손을 터득해가는 길이다. 그 길은 바다가 바다이기를 포기하는 일조차 포함하는 결단의 길이다. 다른 하나는 바다의 제 모습을 총체적으로 다시 돌아보는 일이다. 노발리스(Novalis)의 말대로 바다는 으르렁거리는 노호의 모습과 부드럽고 잔잔한 투명의 모습을 함께 조화롭게 이루어가면서 그 바다 됨을 완성한다. 시인 고은이 어느 쪽으로 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둘 중 어디로든 가야 한다. 왜냐하면 시인에게 머무름이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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