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우리 문학은 지금 무엇과 싸우는가

 

겹쳐진 세계에서 분투하는 시인들

 

 

조대한 趙大韓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낯선 몸으로 속삭이기」 등이 있음.

blackdooly16@naver.com

 

 

1. 현실세계에서 온 침입자들

 

‘전지적 독자 시점’이라는 소설이 있다. 웹소설 분야에서 누적판매 기록을 경신할 만큼 큰 호응을 받은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김독자’라는 이름의 회사원이다. 그는 이름과 어울리게도 작품 속에 등장하는 어떤 소설을 읽는 재미에 기대어 하루하루의 일상을 버텨나간다. ‘멸망하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그 소설은 설정의 과잉과 방대한 세계관 때문에 점차 구독자를 잃어갔고, 김독자가 클릭하는 ‘조회수 1’의 힘에 기대어 겨우 명맥을 이어나간다. 긴 소설의 완결이 다가와 실의와 회환에 잠겨 있을 때쯤, 김독자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익숙한 이야기의 시작과 다시 마주한다. 도깨비가 나타나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비현실적인 그 장면은 김독자가 수없이 읽었던 소설의 첫 장면이었다. 현실과 허구가 겹쳐지는 그 기이한 소설 속에서 김독자는 등장인물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새로이 써나간다.

이 작품에는 독특한 메타적 시선과 함께 웹소설에서 흔히 사용되는 여러 장르적 클리셰들이 공존해 있다. 그 속에서 최근 시인들의 시세계를 독해하는 흥미로운 입각점들을 짚어볼 수도 있다. 첫번째는 현실세계의 침입이다. 주인공에게 소설은 지친 일상과 분리된 위안의 공간이었으나, 현실이 침입하는 순간부터 그곳은 더이상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변한다. 이를 읽는 독자들은 익숙했던 세계의 구분이 흔들리는 데서 불안을 느끼면서도, 중첩되어 탄생한 세계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두번째는 가상세계의 위상 변화이다. 현실에서 무용했던 주인공의 소설은 이후 세계의 운명과 향방을 결정하는 시나리오로 화한다. 먼저 알고 있던 그 가상세계의 정보 우위를 이용하여 주인공은 현실의 세계를 주도해나가고, 그렇게 가상세계에서만 존재했던 영향력이 현실세계로 이어질 때 독자들은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완고하게 구획된 가상과 현실의 구분선 소거이자 익숙했던 리얼리티의 파열일 것이다. 이렇게 겹쳐진 세계의 징후들을 통해 낯선 근미래의 시간을 살아가는 최근 시인들의 시세계를 이야기해볼 수는 없을까.

 

딸 같아서 그랬다 귀여워서 그랬다 기억이 안 난다

고등법원 재판장 참고인으로 증언한 지도교수가 위증했다고

감 씨 고발했지만

혐의 없음 불기소처분

pass****

2018.02.23. 20 : 03

짜식아. 빨 리. 내려오고절간에. 들어가서.

이불덮어쓰고수행해라. 지옥행이다

부당 해고 당했다 억울하다

2008년 감 씨 교육부에 소청심사 의뢰

1심 패소 항소 기각

행정소송

1, 2, 3심 모두 패소

지옥행이다

이렇게 당했다 이야기하다

시인들이 일어나고 있다

시인협회는 감 시인에게 자진 사퇴를 권고했다

협회 관계자가 말했다 감 씨의 과오를 모르고 뽑은 것이다

lit0****

2018.02.23. 17 : 09

—성다영 「좋은 시」 부분1

 

위 시편은 언뜻 일반적인 문학작품이라기보다는 온라인상의 목소리들이 이리저리 조합된 텍스트처럼 읽힌다. 그중 하나는 성범죄로 추정되는 ‘감 씨’의 잘못을 규탄하고 비난하는 원색적인 목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당사자의 변명과도 같은 목소리이다. 이에 더해 불기소처분, 해고, 패소, 자진 사퇴 등 사건과 관련된 듯한 공식적 언어들이 함께 나열되어 있다. 시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해당 작품의 제목은 모 문예지에서 청탁인사 문구로 남긴 ‘좋은 시를 기대하겠습니다’라는 표현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사연인즉슨 신작시의 원고 청탁을 받았는데 그 문예지의 임원이 성추행 문제로 교수직에서 물러난 이였다는 것을 사후에 알게 되었고, 청탁을 거절하는 대신 자신이 고민한 좋은 시를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상된 것처럼 이 작품은 반려되었고, 시인이 본인의 SNS에 발표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 작품에 제기될 비판 중 하나는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시가 현실의 목적의식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것. 이 비판 속엔 시 혹은 문학이 현실의 목적이나 담론을 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입장, 최소한 현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담아내는 문학은 덜 아름답거나 세련되지 못하다는 미학적 태도가 담겨 있다. 시의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질적 내용에 관해서는 저마다 입장 차가 존재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제 어떤 이들에게 시의 ‘좋음’이란 작품 내의 아름다움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현실의 선함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전에 현실의 목소리가 개입되는 시적 경향에 대해 쓴 글이 있다.2 시인과 시의 목소리를 겹치게 하는 작품은 일견 세련되지 못한 미학적 퇴행이거나 현실의 납작한 재현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는 경향이나, 언표행위(énonciation)의 주체와 언표(énoncé)의 주체 사이의 분리가 현대시의 성취로 인정받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조금 달리, 현실의 음성들이 이중적으로 얽혀 있는 어떤 시적 세계에 관한 이야기였다. 가령 이런 작품들이다.

 

아버지는 제기 위에 온 가족의 손바닥을 두고 못을 쿵쿵 박았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헤어질 수 없단다 가족이니까 아빠는 마지막으로 못 머리를 자르고 영원히 뽑지 못하게 두었다

 

이제 너와 나는 우리가 되었다

 

우리는 흰쌀밥을 찬물에 말아 먹었다 한지에 우리 이름을 적고, 서걱서걱 과도로 갈라 먹고 우리는 글이 되었다 꾸깃한 종이로 서로를 감싸 안고 까맣게 까맣게 종이를 채웠다

 

우리는 문장에 머물렀을 때 가장 아름다웠다

—이소호 「경진이네—5월 8일」 부분3

 

2월 27일

동생이 일기를 쓸 때

나는 낯선 우리에 대한 시를 쓴다

지긋지긋하게 우리로 묶이는 그런

시를

—「마이 리틀 다이어리—경진이네」 부분

 

내가 요즘 신인들 시집을 자주 보잖아. 잘 들어 시라는건 말이야 미치는 거야. 지금 네 상태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야지. 독자들을 니 발밑에 무릎 꿇게 만들어야지. 선배들 니들 좆도 아니야 이런 마음으로 나도 뛰어넘어야 하는 거야. 그래 알지 너 시 잘 쓰거든? 시를 못 쓰면 내가 이런 얘기 하지도 않아. 근데 니가 가족 시를 쓴다는 그 행위 자체에 매몰되어 있는 거 같아. 니가 이해를 못하는 거 같으니까 예를 들어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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