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경계와 윤리, 그리고 포월(匍越)

『창작과비평』 2006년 여름호 문학특집에 대하여

 

 

홍기돈 洪基敦

문학평론가. 평론집으로 『페르세우스의 방패』 『인공낙원의 뒷골목』 등이 있음. gdhong@chol.com

 

 

1. IMF사태와 6·15선언은 양자택일의 문제인가

 

『창작과비평』은 2006년 여름호 특집을 ‘2000년대 한국문학이 읽은 시대적 징후’로 꾸몄다. 문학을 통해 시대를 파악하려는 노력이야 그동안 많이 접해왔으니 그리 새로운 접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2000년대 한국문학’을 통해 시대를 읽겠다면 상황은 다르게 전개된다. ‘2000년대 한국문학’이라는 시간의 구획은 이전 시기의 문학, 예컨대 ‘1990년대 문학’과 변별되는 측면에서 의미를 가지게 되며, 변별되는 자질은 새로움으로 포장되어 의도적으로 강조될 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0년대 문학’을 특집으로 설정하는 순간 『창작과비평』은 한국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나름대로 설정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기실 ‘2000년대 문학’을 강조하는 문학매체들은 자신들의 입장에 맞게 그 새로움을 강조하는 추세이다. 전면적으로 세대교체를 이룬 『문예중앙』은 세대론 차원의 단절욕망 위에서 2000년대 문학의 새로움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이 강조하는 “새로운 문학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감각’과 ‘즐거움’이다.1 반면 『문학과사회』는 정치적 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진 ‘무중력 공간의 탄생’을 강조하고 있다.2 이러한 논리가 새로운 경향의 대표주자로 내세우는 정이현에게는 들어맞겠지만, 과연 다른 작가들까지 포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새로움을 포장하는 방식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문학과 사회를 대립적으로 설정하면서 현실의 바깥으로 빠져나가려 한다는 점에서 『문예중앙』과 『문학과사회』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창작과비평』의 입장은 어떠할까. 이런 물음은 한기욱(韓基煜)의 「한국문학의 새로운 현실 읽기」에 시선을 집중하게 만든다. 이 평론은 기획의 총론이다. 『창작과비평』의 상임편집위원인만큼, 한기욱은 기획 전반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이 평론을 써내려갔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글을 읽고 있으면,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창작과비평』의 편집인 백낙청의 그림자가 어른어른 느껴진다. 따라서 이 부분부터 짚고 나아갈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한기욱은 “2000년대 문학의 기점에 해당하는 역사상의 계기”를 설정하는 데 필요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2000년대 문학의 기점이 되어야 하는 사건이 무엇인지를 반복하여 묻는다. 1997년 맞닥뜨린 IMF사태인가, 2000년 성취한 6·15공동선언인가. 그러고는 6·15공동선언의 중요성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남녘 사람들(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IMF사태가 6·15선언보다 훨씬 충격적으로 느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두 사건으로 말미암은 중장기적인 변화를 비교하면 6·15선언 쪽이 훨씬 심대할 것이다.”3 한기욱은 왜 ‘IMF사태냐, 6·15선언이냐’를 대립항으로 설정하여 묻고 있는 것일까.

백낙청(白樂晴)은 『흔들리는 분단체제』를 1998년에 상재하였고, 2006년에는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을 묶어 냈다. 그런데 두권의 책 사이에는 논리적 단절이 발견된다. 가령 『흔들리는 분단체제』에는 다음과 같은 관점이 나타난다. “‘한국 모델’이 분단체제에 맞춰 구성되었고 그 경제적 위력이 분단시대의 특정 국면에 한정된 것이라면 IMF사태가 단순히 ‘급전을 꾸어 쓴’, 다시 말해 일시적 유동성의 위기라는 진단은 가당치 않은 것이다.”4 그렇다면 IMF사태는 분단체제와 연동하는 남한경제의 실상에 해당할 터이니, 우리 사회를 이야기할 때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로 놓고 논의를 풀어나가야만 한다. 그런데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을 읽어보면, 6·15공동선언의 의의와 중요성에 대한 강조로 일관하면서도, 상수로 다루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빠져 있다.

만약 백낙청의 주장이 일관성을 획득하려면, 6·15공동선언이 그동안의 분단체제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IMF사태로 야기된 상황이 이러저러하지만, 2000년 성취한 6·15공동선언은 그 비참한 상황을 극복하는 데 이러한 의미가 있다고 밝혀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왜 IMF사태가 아니고 6·15공동선언이어야 하는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지점에서 한기욱은 IMF사태와 6·15공동선언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설정하고, 반복하여 6·15공동선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IMF사태와 6·15공동선언을 통일적으로 파악하려는 모습은 조금도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총론을 통해 한기욱은 2000년대 문학의 기점으로 6·15공동선언을 꼽았지만, 그외 네명의 필자는 6·15공동선언과 무관하게 평론을 써내려갔다. 「거미의 집짓기와 소화법—통일과정의 소설적 표현」을 쓴 황광수가 6·15공동선언을 의식하기는 했다. 하지만 평론의 앞부분에서 “텍스트들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6·15시대의 ‘통일’주제 소설들을 논하는 쪽으로 기억이 굴절되어버렸다”(228면)고 밝히고 있듯이, 청탁자가 요구했던 ‘6·15공동선언’의 의미는 이 글에서도 증발해버린 형국이다. 따라서 전체 기획의 차원에서 파악한다면 2000년대 한국문학의 기점을 둘러싼 한기욱의 견해는 제대로 공유되지 못한 셈이다. 그러니 여기에 대한 분석과 반성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2. 경계 넘어서기의 미덕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기욱의 「한국문학의 새로운 현실 읽기」는 읽을 만하다. 근거로는 두 가지 사실을 꼽을 수 있다. 첫째, 그는 6·15공동선언의 의미를 한반도의 분단극복 과정으로만 한정시키지 않고, “경계 넘기”일반으로 확장시켰다. 이에 따라 최근 소설을 통해 논의할 수 있는 예민한 문제들은 대부분 포섭할 수 있었다. 가령 소설의 공간이 동남아와 유럽으로 넓어지는 현상은 한반도 남쪽의 반국(半國)적 경계를 벗어나 시야를

  1. 「혁신호를 내면서」, 『문예중앙』 2005년 봄호, 2~3면.
  2. 이광호 「혼종적 글쓰기 혹은 무중력 공간의 탄생—2000년대 문학의 다른 이름들」, 『문학과사회』 2005년 여름호.
  3. 한기욱 「한국문학의 새로운 현실 읽기」, 『창작과비평』 2006년 여름호, 210면. (이하 이 책의 인용은 본문에 면수만 표기함)
  4. 백낙청 「IMF시대의 통일사업」, 『흔들리는 분단체제』, 창작과비평사 1998, 6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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