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금희 金錦姬

1979년 부산 출생.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등이 있음. novelist79@hanmail.net

 

 

장편연재 2

경애(敬愛)의 마음

 

 

3. 너와 나의 안녕

 

경애는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여는 편은 아니었지만 상수와는 예상보다 빨리 가까워졌다. 그것은 시련 때문이었다. 일단 옆방의 이사가 프로젝터를 설치해 자기 방에서 회의를 진행하겠다고 결심하는 바람에 이들의 사무실이 반토막 났다. 이틀 동안 그렇게 반으로 줄어든 공간에 사무실을 새로 꾸미는 이사 아닌 이사를 해야 했다. 첫날에는 책장을 버렸다. 그 무거운 책장을 옮기면서도 상수는 이상하게도 다른 직원의 도움은 거절하고 경애와 둘이서만 해결하려고 했다. 그런 고집은 경애에게는 무척 피곤한 일이었다. 더구나 상수는 책장을 들고 그 넓은 영업부를 통과해야 하는 일이 신경 쓰였는지 책장을 이고 나오자마자 들으라는 듯, “거, 인도에서 연락 왔어요? 성사되겠죠?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그렇겠죠?” 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 인도 건은 경애와 상수가 팀이 생기고 처음으로 접촉한 해외 바이어였다. 회사의 영문 카탈로그에 일일이 의견을 덧붙여 상수만의 고유한 카탈로그를 만들었고 그걸 페덱스로 보내겠다는 상수를 말리며 경애가 PPT 작업을 했다. 바이어는 제로베이스에서 가격을 흥정하길 원했다. 그러니까 이미 반도미싱에서 미싱을 제작하면서 설정해놓은 얼마간의 이윤까지 다 깎아서 정말 미싱 한대의 원가를 놓고 협상하는 방식이었다. 밑지고 하는 장사란 없으니까 밑지지 않는 마지노선을 공개하라는 식이었다.

그렇게 해서 빈번하게 이메일이 오가는 동안 상수가 즐겨 사용했던 구글 번역기 대신 경애가 영어 번역을 했다. 대학에서 무역영어를 전공하기는 했지만 다년간 총무부에서 물품 대장을 작성하느라 딱히 영어를 쓸 일이 없었던 경애는 그 작업을 위해 창고에서 전공서적을 꺼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곰팡이 하나 슬지 않아 있었다. 가격 흥정이 되고 나서는 미싱 대금의 신용 상환기간이 문제였다. 바이어는 아라비아숫자를 발명한 민족답게 수십개의 경우의수를 바탕으로 제안서를 작성해달라고 요구했고 그걸 하자면 회계팀과의 협업이 중요했는데 거기서 일이 진척되지 않았다. 회계팀은 그냥 정해진 아우트라인에 따라서 하시면 돼요,라고 했다. 아니면 이사님이랑 얘기해보시든가요.

그렇게 해서 상수가 답을 못하니까 바이어와는 2주째 연락이 끊겨 있었지만 상수가 그 넓은 영업부 사무실과 복도에 프로젝트가 활기를 띠고 있음을 떠들어대니까 경애는 “괜찮겠죠, 연락을 곧 할 것도 같고요” 하는 식의 돕는 말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상수의 떠들썩한 열의와 연극적인 액션은 누군가의 입김—이를테면 공상수씨 거 좀 조용히 하라고, 통화 중인데, 하는 부장의 목소리만 들려와도 시무룩하게 꺼져버릴 것이었다.

경애에게는 46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인도의 바이어가 아니라 지금 들고 있는 이 책장의 무게가 문제였다. 너무 무거워서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라도 삶의 회의를 느낄 만했다. 경애는 그 무게를 감당하면서 대체 영업하는 사람에게 이런 책장이 필요한가, 애초에 왜 가져다놓았는가 생각했다. 사실 상수와 함께 사무실 생활을 하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알림을 보내는 상수의 휴대전화가 특히 그랬다. 영업일로 쓰는 휴대전화는 얼음 상태에 가까운데, 상수가 개인적으로 쓰는 건 너무나 자주 울려댔다. 정작 실제로 통화를 원하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오는 일은 없는데, 어디에 그렇게 수많은 인맥이 있어 온라인으로 신호를 보내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마치 매미가 일정한 간격으로 울듯 진동은 쉴 새가 없었다.

그것이 페이스북의 알림이라는 것은 상수가 없는 사이 문서를 책상에 놓으러 갔다가 알게 되었다. 친구 요청과 친구 확인, 게시물 업데이트, 메시지, 쪽지, 누군가의 생일과 태그, 친구 추천 같은 페이스북과 관련한 갖가지 소식들이었다. 보려고 본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서 상수는 “언니”라고 불리고 있었다. 언니님의 페이지를 좋아합니다. 언니님이 게시물에 태그되었습니다. 언니는 죄가 없다 페이지 활동: 453회. 닉네임이야 대개 현실의 존재를 배반하는 재미니까 이상할 건 없었다. 뭔가 어울리는 이름이라고도 생각했다. 경애에게 ‘언니’란 따뜻하고 챙기고 돌봐준다기보다는 어떤 감정적 사건에 충분히 함께 동요해주는 사람이라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냉소적이다, 정이 없다, 이기적이다 혹은 속물이다, 고문관이다 하는 상수에 대한 평가에는 그런 풍부한 감정 동요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런 비난들은 상수가 무언가를 하지 않는 데서 비롯했는데, 자기 나름으로는 또 그 모든 것에 표준전과식의 이유들이 다 있었다. 상수의 그 하지 않음은 촛불처럼 쉽게 일렁이는 자신의 마음 상태 때문이었다. 경애가 보기에 상수의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았지만 정작 상수 자신마저 그런 감정변화를 두려워한다는 건 모르는 듯했다. 상수는 뜨거운 감자를 쥔 소년처럼 그 마음이라는 것을 어쩌지 못해 쩔쩔맸다.

어쨌든 한 팀이 되었으니까 경애와는 좀 다르게 지내고 싶은지 상수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연속되는 타일의 무늬를 보면 긴장한다거나 수박 겉껍질의 무늬가 뱀을 떠올리게 해 잘 먹지 못한다거나 시침 소리를 견딜 수 없어 무소음 시계여야 한다거나 하는 사소한 생활습관에서, 직원들의 경조사에 전혀 가지 않는 삶의 원칙까지 다양했다. 상수가 회사 내에서 인심을 잃어가는 이유가 바로 그 후자의 원칙 때문이었는데, 자기가 싫다는데 어쩌랴 싶었다. 상수에게는 결혼이 사랑의 불운한 결말처럼 느껴져 축하할 수가 없다는데, 막 돌을 맞은 아이에게는 인생사 고행인데 어쩌나 싶은 안쓰러움만이 든다는데, 타인의 죽음은 어떻게 보면 인간이 맞을 수 있는 최상의 안식처럼 느껴진다는데.

그런 설명은 누군가에게는 씨도 안 먹히는 변명일 수도 있었지만 경애는 딴은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그런 인생의 특별한 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고통이기도 하니까. 이른바 ‘편모슬하’에서 살다보면 그런 일은 부지기수였다. 엄마에게만 안겨 실이나 공책 따위가 아니라 엄마의 머리띠를 벗겨서 들었던 돌잡이에서, 카네이션을 만들어보라는 선생의 주문에 하나만 뚝딱 만들고 남은 시간을 블록 쌓기 같은 것을 하면서 보냈던 유치원 시절을 지나, 엄마가 쉴 수 없는 날에는 혼자서 졸업장을 받아—친구가 없으니까—비디오나 빌려서 돌아와야 했던 졸업식까지. 경애는 그런 건 사실 고통이라기보다는 부당한 불편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상수는 그렇게까지 쿨해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런 번뇌의 굴레는요, 그냥 5만원짜리 한장으로 해결하면 돼요. 10만원도 필요없고 5만원이면요.”

경애는 상수에게 그렇게 충고했는데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그주 주말에 있던 누군가의 결혼식에 공상수 이름으로 적힌 3만원이 경애 편으로 전달되기도 했다. 그게 3만원이라는 건 물론 경애가 봉투를 열어본 것이 아니라 공상수씨가 웬일이냐며 사람들 입에 회자되었기 때문이었다.

 

책장을 옮긴 다음날 상수는 오랜만에 육체노동 비슷한 걸 해서 온몸이 쑤시고 결리는 불운한 아침을 맞았다. 그래서 문득 이제 막 시작하려는 팀에 이런 조치는 너무 가혹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아침에 부장을 마주친 김에 항의해보았다.

“그러면 어쩌나? 이사가 그러겠다는데.”

부장은 심드렁했다.

“저희를 다른 곳으로 옮겨주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있지 않네.”

“네?”

“그런 방법이 있지 않다고. 어쩌겠어, 뭐 어디 강당 가서 있으려나? 둘이 쓰기에 좁은 공간도 아니잖아. 오붓하고 좋지 뭘.”

그렇게 말하고 부장은 문득 자기가 이런 사항까지 일일이 신경 써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해져서 내가 동네북이네, 북, 여기서 쳐, 저기서 쳐, 하고 혼잣말했다.

그날 운수가 나쁜 사람은 부장만이 아니었다. 그간 상수를 달달 볶던 인도 바이어가 그가 아니라 유정과 계약해버렸던 것이다. 그런 인터셉트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유정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대구에서의 그 맞선 난입 사건 이후로 독대는 처음이라서 긴장이 되었다. 긴장이 되자 호흡이 가빠왔고 안면이 굳어가는 것 같아서 상수는 화장실에 가서 왜!라고 묻는 걸 연습해보았다. 볼 안에 공기를 넣어서 풍선처럼 부풀린 다음, 있는 힘껏 왜!라고 한번 외쳤다. 그리고 몸을 풀 겸 다시 팔다리를 움직이면서 왜! 왜! 왜! 하고 구령을 붙였는데 불운하게도 화장실 어느 칸에 있던 부장이 “공팀장!” 하고 소리 질렀다.

“왜긴 왜야. 사장 다음 이산데 까라면 그냥 까는 거지.”

하지만 그렇게 연습한 상수가 막상 유정 앞에 섰을 때 가장 먼저 한 말은 안녕,이었다. 상수는 그 말을 마치 유치원에 들어간 어린아이가 하듯 쭈뼛거림과 어색함과 불안, 하지만 그것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힘 같은 건 전혀 없는 어떤 유약함을 띤 채로 했다. 그런 상수에 이어 연초에 입사해 아직 인턴딱지도 떼지 않은 신입사원들이 어디를 갔다 왔는지 한무더기 몰려와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패기있게 인사했다. 팀장님, 출장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피곤하지는 않으셨습니까, 몸살은 없이 아침 컨디션 괜찮으셨습니까. 상수가 말문을 떼려고 할 때마다 서른도 되지 않은 그 싱싱한 젊은이들은 계속해서 유정의 안부를 물어댔는데, 나중에는 상수가 나서서 그만해, 그만, 안녕하다고, 안녕하다잖아,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상수는 그러지 않았다. 그런 조무래기들, 미싱의 노루발도 모르는 까마득한 인턴들과는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다만 상수는 마음으로 맹렬히 청년들에 대해 혹평하기 시작했다. 인턴들이 평소에는 그 투가 아니라 적절히 펌한 자기들 헤어스타일처럼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게 말하다가 이렇게 회사에 출근만 하면 그놈의 다나까체를 쓰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야유회나 워크숍에 가서 장기자랑을 해보면 갱스터랩은 물론이고 아이돌 군무까지 소화하면서 직장만 나오면 그것이 자기 몸에 걸쳐야 하는 중요한 유니폼인 양 군대 말투를 썼다. 하기는 상사들이 그러니까 따라하는 것일 터였다.

어쩌면 그들이 생각하는 영업이라는 것이 그럴지도 몰랐다. 그들이 즐겨 바르는 포마드처럼. 사실 그 포마드라는 것이 꼰대 상사들이 젊었던 칠팔십년대에 이미 유행했던 것인데 아무리 복고라도 그런 따위가 왜 또다시 유행하는지 상수는 불만이었다. 그런 것이 표상하는 남성스러움이라는 것에 상수는 격렬한 거부감을 보였다. 원래 상수는 누구의 취향을 존중하는 데는 인색했으므로 어쩌면 그 숱한 혐오 중 하나일 수도 있었지만 때마침 유정 앞에 서서 얼마 넣지 못한 축의금 봉투를 내밀듯 시들시들한 목소리로 안녕,이라고 겨우 한마디 한 뒤라 상수의 마음은 좋지 않았다.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건 아니지. 영업은 포마드처럼 강력하게 무언가를, 이를테면 사람의 마음을 자기 뜻대로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공기 중을 부유하는 먼지나 홀씨, 혹은 햇볕처럼 그냥 슬쩍 내려앉는 것이 아닌가.

상수는 반도미싱에서 외롭고, 친한 사람도 거의 없는 직원이지만 거의 유일하게 가까웠던 사람이 지금은 회사에서 잘리고 없는 조선생이었다.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지금은 발령조차 잘 내지 않는 ‘과장보’라는 애매한 직급을 달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일본 본사에서 생산기술직으로 일하다가 옮겨왔는데 1990년대 활황기에 일본어 능통자가 필요해지면서 영업부 직원이 된 경우였다. 하지만 이후에 오래 병가를 낼 일이 생기고 경기도 안 좋아지면서 승진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다. 부장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과장’이라고 해야 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했고 좋은 세상에서는 기술자를 우대해야 한다며 자기 편한 대로 ‘선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선생이라는 호칭은 존칭이기는 하지만 묘하게 그를 고립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상수는 일정이 맞으면 조선생과 파트너가 되어 지방 출장을 다녔다. 그러면 조선생은 딱히 마케팅이 필요 없을 듯한 영세한 봉제공장들을 돌며 시간을 보냈다. 서너명의 미싱공들이 일하는 그런 곳은 으레 지하에 있었고 누가 사장인지 직원인지 모호하게 동일한 노동과 피로를 겪고 있었다. 그러기에 묘한 결의 안정감 또한 있는 분위기였다.

“아니, 왜 또 오셨어요. 어떻게?”

누군가가 일손을 계속하며 물으면 조선생은 지나가다가요, 하면서 아무 데나 걸터앉았다. 이따금 그건 천을 얼마나 끊은 거예요, 어디 쇼핑몰로 가지요, 하고 확인하고는 또 가만히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 어느새 호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고 직원이 수천에 이르렀던 어느 방직공장에 대한 증언들이 나왔다. 하지만 할 일이 있으니까 그런 얘기들은 다시 끊겼고 그렇게 아무런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아도 조선생은 얼마간 앉아 있었다. 상수는 성격이 급하고 유불리를 맵짜게 따지는 청년이었지만 그런 조선생의 리듬에 영향받은 것이 사실이었다.

조선생은 상수에게 미싱이 ‘머신’(machine)의 일본식 표현에서 온 말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기도 했다. 머신은 기계이고 미싱은 거기서 유래한 단어이기에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본질 같은 것을 알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미싱회사 직원인 우리는 이 일을 하면서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옷을 왜 입냐는 것인데, 우리가 혼자 살면 옷 안 입어도 됩니다. 그런데 옷을 입는다는 건 어딜 나간다는 거고 누굴 만난다는 거고 그렇게 해서 인간이 된다는 거잖습니까. 인간다워지라고 미싱을 돌리는 거라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상수씨, 그거 안 잊어야 합니다.”

다른 사원들은 그러지 않았지만 상수는 그런 말들을 아주 귀담아 들었다. 그것은 정말 말 그대로 듣기 좋은 소리였다. 마음 어딘가에 쌓여 있는 만년설 같은 것을 녹이는 소리였다. 본인은 극구 인정하지 않지만 아버지 덕분에 회사에 들어와 대강 시간을 뭉개며 살아보려 하던 상수를 깨우는 소리였다. 하물며 기계라는 것, 미싱이라는 것,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도 그런 ‘의미’랄까 ‘본질’이랄까 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 그것이 상수에게 삶의 활기를 불어넣었다. 상수가 그토록 좋아하는 영화와 연애소설들에서만 이야기되던 것을 현실에서 말해준 사람이었으니까. 오래된 가죽가방을 들고, 지방에서 1박 할 때는 늘 손수건과 양말을 꼼꼼히 빨아 창가에 널며, 몸이 상한 적이 있다고 음주는 꼭 청하로 세잔만 하는, 그런 실재의 인간에게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외롭지 않은 느낌이었다.

아무튼 봉제공장에 그렇게 앉아 있다보면 어느 틈엔가 신기하게도 그래, 요즘 전자동은 얼마씩이나 해, 하는 질문이 나왔다. 그리고 그뒤로는 먹고 죽을 돈도 없다는 지금까지의 말과는 달리, 앞으로 상황이 더 나아질 기미에 대한 기대의 말들이 나왔다. 모르지, 그 건이 들어오면은, 그쪽에서 미수만 해결해주면은. 조선생은 그때서야 카탈로그를 꺼내, 점심을 먹고 물려놓은 사각의 철제 쟁반 위에 슬쩍 올려놓았다. 기대가 현실이 되면 팔 수 있을 것이고 기대로 그치면 팔 수 없을 것이었다.

 

상수는 처음에는 조선생이 ‘농땡이’를 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그 지하의 공장에서 어떤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차르차르차르 미싱이 돌아가면서 옷을 짓는 소리. 그 얇고 값싼 천으로 만드는 옷들은 몇천원의 가격에 도매로 넘어가 다시 소매로, 지갑을 여는 어느 소비자에게로, 가지를 뻗듯 나가는데 그것은 어떤 정교한 프로그램으로도 다 장악할 수 없고 계량할 수 없는, 어떻게 보면 상상과 미루어 짐작으로만 가능한 순환이었다. 그러니까 고정되지 않는 것이었고 우연히 내려앉게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