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대선 이후 촛불의 갈 길

 

경제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성장지상주의를 넘어 정의로운 전환의 길로

 

 

주병기 朱丙起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겸 분배정의연구센터장. 저서 『정의로운 전환』, 공저서 『분배적 정의와 한국사회의 통합』 『지속가능한 공정경제』 『시민정치의 시대』 『기후변화와 사회변동』 등이 있음.

bgju@snu.ac.kr

 

 

1. 서문

 

우끄라이나전쟁의 발발과 함께 물가상승과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큰 위기가 전개될 것인가에 대해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원료 물가상승이 지속되면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이 전개될 수 있다. 한편 미국은 우방국 중심의 전략적 공급망 재편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 실현가능성에는 의문이 제기되지만, 국가 간 무역이 패권경쟁의 전략적 수단이었던 1970~80년대의 질서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미·중·러의 전략경쟁과 우끄라이나전쟁을 둘러싼 국제정세의 불안정은 중국 및 러시아와의 교역 비중이 높은 대한민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렇듯 엄중한 글로벌 환경 속에서 새로 출범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국민과 전문가들의 우려가 크다. 대외적 불확실성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불명확하고, 뚜렷한 방향성과 철학이 없는 임기응변식 대응으로 내적 정합성까지 결여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게다가 대통령과 각료들의 실언이 잇따르고, 통일부·외교부·국가정보원 등 정부 부처들도 합리적 사유나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스스로 내린 과거의 결정이나 공식입장을 번복하는 등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대내외적 신뢰도를 실추시키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현재의 대내외적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경제의 중장기적 대전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경제정책의 방향과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냉철한 진단과 전망이 요구된다. 그런데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부터 윤석열 후보와 그 주변인들은 지난 정부의 정책 실패 때문에 한국경제가 ‘폭망’했다는 인식을 강하게 내비쳤다.1 이는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고 다양한 경제지표들이 보여주는 현실과도 상반된 것이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이어진다.

선진국 수준에 접어든 경제가 성장과 발전을 지속하려면 국가의 기본질서 역시 경제발전 단계에 맞게 성숙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후진적 정실 자본주의와 부패한 권력에 저항했던 촛불혁명이 탄생시킨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을 평가하고, 새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경제정책의 문제점과 앞으로 지향해야 할 과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성장과 중대개혁: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의 이상(理想)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은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이라는 세 영역으로 구성됐다. 이 세 영역이 선순환해야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기본 틀이었다. 셋 모두 수출주도형 경제개발과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한국경제에 오랫동안 누적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중대개혁(grand reform)을 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정실주의, 정경유착과 부패라는 한국 자본주의의 치부를 드러내는 사건이었고,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에 그 치부를 도려내는 개혁이 요구되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개혁의 대상인 재벌, 보수언론과 엘리트 권력카르텔의 강력한 저항을 잠재울 만큼 국민적 의지의 결속이 지속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문재인정부 초기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소득주도성장’이었다. 소득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고 복지·사회안전망을 확충해 대다수 국민의 삶의 질과 역량을 키우며 내수 기반을 강화함으로써 장기적 지속성장 기반을 확보한다는 것이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이다. GDP(국내총생산) 중심의 경제성장을 최우선과제로 강조했던 이전의 경제정책과는 질적으로 차별화된 정책이었다. 특히 이전에는 경제성장을 통한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로 소득분배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리라는 막연한 기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와 정반대로 소득분배 문제가 해결돼야 경제성장도 가능하다고 하니, ‘성장지상주의’ 진영의 반발도 클 수밖에 없었다.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은 복지·사회안전망 확충과 함께 소득주도성장의 중요한 축이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 정규직 확대,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양극화 해소, 근로시간 단축 등이 구체적 내용이었다. 이는 가계소득 증대와 삶의 질 제고라는 소득주도성장의 지향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만, 그 하나하나는 5년 임기 내에 다른 부작용이나 사회적 갈등을 이겨내고 안착하기 어려운 문제들이기도 했다.

‘공정경제’는 한국 자본주의의 불공정한 시장질서를 바로잡고, 중소기업·벤처·소상공인 등 경제적 약자에게도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는 선진적 시장질서를 만드는 개혁을 표방했다. 과거 지속됐던 수출주도 경제개발 전략은 소수의 재벌·대기업 집단에 특권을 몰아주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심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재벌·대기업 집단의 일감 몰아주기와 사익 편취, 협력업체에 대한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와 기술탈취 등 불공정 행위가 만연했음은 물론이고 재벌가의 부당한 경영권 장악, 불투명한 지배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대주주의 횡포와 소액주주 권리침해 행위 등의 문제도 심각했다. 이러한 후진적 자본주의를 청산하고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작동하는 건강한 자유시장경제를 만드는 것은 한국경제가 한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이같은 개혁과제는 박근혜정부에서도 ‘경제민주화’라는 국정과제로 제시되었으나, 친재벌-반개혁의 극우보수정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성과 없이 끝났다. 공정경제와 경제민주화는 시장경제의 기본 질서를 바로 세우는 개혁과제로 정치적 지향과는 독립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진보적’ 개혁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은, 부패한 정실 자본주의의 수혜집단이 장악한 극우정치가 아직도 한국정치의 무게중심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의 세번째 영역인 ‘혁신성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디지털 전환이라는 새로운 기술환경 변화 속에서 한국경제의 혁신 동력을 강화해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혁신성장은 크게 4차 산업혁명 및 디지털 전환에 대한 선제 대응과 혁신적 중소기업 생태계 구축이라는 두가지 정책 방향으로 추진되었다.2 이는 “대·중소기업 간 수평적 관계 형성 및 중소기업 간 협력네트워크 강화를 통해”3 건실한 중소기업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기형적 산업생태계를 개혁해 건강한 구조를 만든다는 중대개혁 과제를 내포한다. 특히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를 통해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는 전략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점에서 과거 다른 정부와 차별성이 있었다. 이런 환경 조성이 없을 때 혁신성장 정책은 중대개혁은 빠지고 재벌·대기업 지원만 남는 것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는 어느 한가지만으로 성공할 수 없고 서로 맞물려 돌아가야 성공하는 관계에 있다.”4 공정경제는 소득불평등 및 양극화를 해소해 소득주도성장의 목표 달성을 돕고, 소득주도성장은 복지·사회안전망 확충을 통해 경제적 약자의 협상력을 제고하는 동시에 경제주체 간 힘의 불균형을 해소해 공정경제의 목표 달성을 돕는다. 혁신성장 역시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

  1. 이런 인식은 국민의힘 대통령후보 경선을 앞둔 시점부터 지금까지 대통령과 보수정당의 주요 인사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표출되어왔다. 가령 2021년 6월 17일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경제 폭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었던 안철수도 비슷한 표현을 사용하며 전 정권의 정책 실패를 비난한 바 있다. 조선·중앙·동아 세 보수일간지는 이런 주장을 지속적으로 확산했는데, 보수정치권 및 언론의 이러한 행보는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으로 부르면서 진보정권의 경제정책을 맹비난했던 것과 같은 패턴이다.
  2. 관계부처 합동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 2017.7.25; 정준호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의 성과와 평가」, 『동향과전망』 113호, 2021 참조.
  3. 정준호, 같은 글.
  4. 조영철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평가」, 『경제와사회』 120호, 2018, 15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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