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주혜 李柱惠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자두』 등이 있음.

leestori@hanmail.net

 

 

 

장편연재 2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폭폭해.

시옷은 이 말을 여자 어른들의 언어로 기억한다. 이 말이 깃든 장면은 등장인물만 바꿔가며 비슷하게 재생된다. 시간은 주로 오후, 소리도 공기도 나지막이 가라앉는 때다. 어린 시옷으로서는 정확한 촌수와 관계를 헤아릴 수 없는 친척 여자들이 비스듬히 열린 대문을 쓱 밀고 들어와, 마당에서 혼자 놀고 있는 시옷의 머리통을 무심히 쓰다듬고 마루에 걸터앉는다. 손님의 기척을 느낀 할머니나 엄마가 방에서 나와 여자(들)를 맞는다. 손님은 신발을 벗지도 집 안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저 마루에 엉덩이를 걸친 채 안과 밖의 경계에 모로 앉아 할머니나 엄마가 내온 시원한 보리차나 식혜 따위를 받아 든다. 유리컵에 든 마실 것을 반쯤 들이켜고 탁 소리가 나게 컵을 내려놓은 다음에는 다만 마당에 고인 오후 햇빛을 보러 왔다는 듯 잠시 그쪽을 넌지시 볼 뿐이다. 그 시선은 철 따라 화단에 핀 모란이나 장미, 봉숭아, 샐비어, 맨드라미 쪽으로 미끄러지기도 하지만, 꽃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는다. 할머니나 엄마도 손님의 용건을 서둘러 캐묻지 않는다. 고요가 오후 공기보다 더 낮게 가라앉아 마당을 스멀스멀 채우기 시작할 때 손님의 입에서 혼잣말인 듯 한숨인 듯 한마디가 터져 나온다.

폭폭해.

아짐, 나 폭폭해 죽겠어.

그 말은 목구멍 언저리가 아닌, 한층 더 깊숙한 가슴팍 안쪽을 찢고 바로 터져 나오는 것만 같다. 그 말을 신호로 할머니나 엄마는 폭폭한 그 사람과 이마를 기울이고 나직한 음성으로 대화를 나눈다. 폭폭함의 사연일랑 시옷은 모른다. 폭폭한 사람이 눈물을 보인 적이 있던가. 그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폭폭함이 슬픔의 영역이라는 것쯤은 어린 시옷도 감지한다. 또한 어른들의 영역이라는 것도 영민한 시옷은 안다. 폭폭한 사람의 사연이 폭폭한 사람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시옷은 뒷마당으로 돌아가거나 아예 대문 밖 골목으로 나가 논다. 늦은 오후, 시옷의 집 마루는 폭폭한 여자 어른들이 잠시 앉았다 가는 간이역 같은 곳이다.

어른이 된 시옷은 어느날 문득 폭폭하다는 말이 아니고선 표현할 길 없는 어떤 감정과 맞닥뜨린다. 이 마음을 정확히 폭폭함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의문이 든 시옷은 인터넷에 ‘폭폭하다’라는 단어를 검색해본다.

 

폭폭하다

몹시 상하거나 불끈불끈 화가 치미는 듯하다. 전북 지방의 방언이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어쩐지 이 풀이는 어린 시옷이 목격했던 폭폭함과는 거리가 있다. 뿌연 아지랑이 같은 음색으로 ‘폭폭해’ 하고 내뱉었던 여자들은 ‘몹시 상하거나 불끈불끈 화가 치미는 듯’ 보이지는 않았다. 시옷은 내처 다른 사전을 검색해본다.

 

폭폭하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애가 타고 갑갑하다. (전라북도 방언사전)

 

이쪽이 한결 낫다. 폭폭함을 호소하는 여자들은 ‘애가 타고 갑갑해’ 보였다. 가슴팍 바로 안쪽에 묵직한 어떤 것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차가운 음료를 단숨에 들이켰고 가끔은 주먹으로 제 가슴을 툭툭 치기도 했으니까. 수십년 만에 자신의 폭폭함을 마주한 시옷은 기억 속에서 (거기 묻혀 있는 줄도 몰랐던) 폭폭함의 풍경 하나를 건져 올린다.

시옷은 엄마와 함께 동네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시옷의 걸음으로는 조금 벅찬 경사길을 다 오르면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계단이 나왔고, 그 위는 철길이 지나가는 둑이었다. 시옷의 동네와 건너편 동네를 구분하는 그곳을 사람들은 ‘철둑’이라고 불렀다. (시옷의 동네 사람들은 건너편 동네를 ‘철둑 너머’라고 불렀는데, 거기선 시옷의 동네를 뭐라고 불렀을까? 그들도 이쪽을 ‘철둑 너머’라고 불렀을까? 그렇게 공평하게 헛갈렸을까?) 철둑 너머에는 ‘철둑 너머 할머니’와 ‘철둑 너머 할아버지’가 살았다. 철둑 너머 할아버지는 시옷 할머니의 남동생, 철둑 너머 할머니는 그 부인이었다. 그러니까 시옷 아빠의 외삼촌, 외숙모였다. 기차가 지나가지 않을 때 조심조심 철둑을 건너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가면 철둑 너머 동네가 시작되었다. 거기서부터 좁고 긴 골목이 둥근 언덕을 가르마처럼 누비며 지나갔고 골목마다 작은 집들이 따개비처럼 붙어 있었다. 그 작고 낮은 집 하나에 철둑 너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았다. 시옷의 할머니보다는 한참 어리고 시옷의 엄마보다는 한참 나이가 많은 철둑 너머 할머니는 시옷을 볼 때마다 머리통을 힘껏 쓰다듬어주고 주머니에서 눅눅해진 과자나 사탕을 찾아 쥐여주는, 몸집이 작고 마른 사람이다.

철둑 너머 할머니는 고기를 먹지 않아.

그를 설명하는 여러 말 중 가장 자주 들었던 말. 철둑 너머 할머니는 언제나 부처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며 사는 사람이고 살생으로 얻은 것은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그래서 보살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몸이 영 부실하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철둑 너머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사람들은 철둑 너머 할머니가 부처님 말씀을 깊이 새기고 산다는 사실과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자식이 없다는 사실을 한줄의 인과관계에 꿰어 맞추기를 즐겼다.

철둑 너머 할아버지는 약주를 참 좋아하지.

그래서 호인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여태 철부지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고기를 먹지 않는 할머니와 약주를 좋아하는 할아버지는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났다. 할아버지는 수레를 끌고 할머니는 수레를 밀며 철둑 너머 동네를 벗어나 도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으로 갔다. 부부의 수레에는 계절마다 다른 것이 실렸다. 배추나 무 같은 푸성귀는 물론 마른 고추나 대파, 쪽파, 생강, 마늘 같은 양념 재료들이 실리기도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수레 가득 실은 그것들을 동네에서 가까운 작은 시장에 가져와 팔았다. 작은 시장 상인들이 부탁한 것을 사다 나르기도 하면서 남은 것은 시장 한쪽 노점에서 팔았다.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시옷의 집에 들러 팔다 남은 배추 한두포기나 무 한단을 내려놓고 가기도 했다. 그러면 엄마와 할머니는 서둘러 마실 것을 내오고 만들어둔 김치나 밑반찬을 덜어주었다. 철둑 너머 할머니가 마루에 앉아 엄마와 함께 배추나 무를 다듬고 있으면 철둑 너머 할아버지가 이따금 빈 수레에 시옷을 태워주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시옷을 태우고 마당을 몇바퀴나 돌아주었다. 할아버지의 수레에서 비릿한 풀냄새가 풍겼다. 시옷은 수레 양옆을 꼭 잡고 까르르 웃으며 속도감을 즐겼다. 한바퀴 더요! 한바퀴 더! 약주를 좋아해서 호인이고 철부지인 철둑 너머 할아버지는 시옷의 ‘한번 더!’를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결국 엄마가 마당으로 내려와 시옷을 나무라며 그만하라고 말릴 때까지 할아버지는 시옷을 수레에 태우고 마당을 돌고 또 돌았다. 할머니가 마침 매실주가 잘 익었다고 술상을 봐주면 철둑 너머 할아버지는 이 또한 사양하지 않고 기꺼이 마루 위로 올라왔다. 그런 날은 철둑 너머 할머니와 시옷의 할머니, 엄마와 시옷이 한 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할머니는 술상에 제사를 지내고 남은 육전이나 조기구이를 올렸지만, 철둑 너머 할머니와 함께 먹는 밥상에는 고기도 비린 것도 올리지 않았다. 시옷은 옆의 술상을 곁눈질하며 나물 반찬과 된장국만으로 밥을 먹어야 했지만 철둑 너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저녁은 언제나 즐거웠다. 저녁상을 물리고 어느새 불콰해진 철둑 너머 할아버지와 철둑 너머 할머니가 빈 수레를 끌고 시옷의 집을 나서면, 할머니와 엄마와 시옷은 골목 밖까지 나가 부부의 수레가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흔들리며 멀어지는 것을 배웅했다. 할아버지가 끄는 수레는 평소보다 버겁게 오르막길을 오르겠지만 말짱하고 야무진 철둑 너머 할머니가 수레 뒤를 단단히 밀고 갈 것이므로 걱정할 것 없다고 할머니는 말하곤 했다. 시옷은 부부의 수레가 철둑을 건널 때 마침 기차가 지나가지 않기를, 근처에 사는 개들이 짖어 순한 그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없기를 조용히 기원했다.

기억 깊은 곳에서 떠오른 그날, 시옷은 엄마와 함께 철둑 너머 할머니의 집으로 향했다. 남색 철문을 열고 좁은 마당에 들어섰을 때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호미로 흙을 일구던 철둑 너머 할머니가 시옷을 보고 가수가 되었담서? 장하다, 장해, 하고 말한 걸 보면 시옷이 방송국 어린이합창단에 들어간 다음의 일이 분명했다. 가수가 되지도 않았고 장한 일을 하지도 않았지만, 시옷은 할머니의 칭찬에 조금 의기양양해졌다. 그러나 가볍게 들떴던 시옷의 기분은 엄마의 한마디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늦은 오후 시옷의 집에 찾아왔던 여자 어른들처럼 엄마가 철둑 너머 할머니의 집 마루에 엉덩이를 걸치자마자 한숨인 듯 토로인 듯 이렇게 말했다.

외숙모, 나 폭폭해 죽겠어요.

그날 엄마는 폭폭했다. 늘 폭폭한 여자들을 맞이하던 엄마가 철둑 너머 할머니의 집에서 폭폭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시옷은 엄마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깜짝 놀라 폭폭함의 영역 밖으로 벗어날 생각도 못하고 철둑 너머 할머니의 좁은 마당에 서서 멍하니 엄마 쪽을 쳐다보았다. 엄마는 기어이 할머니 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가 작고 야윈 손으로 엄마의 너른 등을 쓸어주었다. 푹 푹 푹 푹. 때리듯이 쓸어주었다. 엄마의 가슴속에 똬리를 튼 묵직한 것을 당신 손으로 쑥 내려가게 할 수 있다는 듯, 엄마의 폭폭함 따위 맨손으로 쓸어버릴 수 있다는 듯, 할머니의 손길은 집요하고 일정했다. 어깨가 넓고 키가 큰 엄마가 몸집이 작고 마른 할머니에게 안겨 있었다. 할머니가 먼저 일어나 엄마의 손을 잡더니 방 안으로 이끌었다. 두 사람은 시옷을 마당에 그대로 세워두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천장이 낮아 언제나 그늘의 냄새가 풍기는 할머니의 안방에서 엄마와 할머니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드문드문 새어 나왔지만, 시옷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시옷은 마당에 서서 할머니가 내팽개치고 간 호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초봄의 화단에는 아직 검은 흙만 있었다. 할머니는 올봄 어떤 식물을 심고 키우려는 걸까. 철둑 너머 할머니의 화단에는 채송화며 봉숭아, 샐비어, 맨드라미, 과꽃 같은 일년생 꽃들이 여름까지 자라고 피었다. 늘 응달인 축축한 화단에서 식물들은 오직 할머니의 정성을 먹고 자랐다. 고기를 먹지 않아 보살이고 몸이 영 부실한 할머니가 조막만 한 손으로 꽃을 피우고 꽃씨를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또 꽃을 피우길 반복했다. 땅이 모자란 할머니는 시장에서 플라스틱 화분이나 스티로폼 상자를 주워다가 거기에도 꽃씨를 심었다. 화분에 꽃이 피면 할머니는 집 밖 담장 아래 그것들을 나란히 세워두었다.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동안 할머니의 담장 아래에서는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인 꽃들이 사람보다 먼저 손님을 맞았다. 언젠가 엄마가 알뜰살뜰 키운 것들을 왜 집 밖에 내놓느냐고 물었을 때,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웃으라고.

지나가는 사람들, 이쁜 꽃 보고 한번씩 웃고 가라고.

 

철둑 너머 할머니와 함께 마당으로 나온 엄마의 눈자위가 빨갰다. 할머니는 시옷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챈 사람처럼 놀란 얼굴을 하더니 허리춤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천원짜리 지폐를 허둥지둥 꺼내 시옷의 손에 꼭 쥐여주었다.

우리 강아지, 가수 돼서 장하고 터 팔아서 장하다.

그러곤 엄마의 등을 또다시 힘껏 쓸어내리며 말했다.

질부는 암시랑 걱정 말고 잘 먹고 잘 자기만 하소. 이번 애기도 내가 잘 받아줄랑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는 시옷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지도 않았다. 시옷은 종종걸음으로 엄마 뒤를 따라 골목을 빠져나오고 철둑을 건넜다. 시옷은 철둑 너머 할머니의 말을 정확히 이해했다. 시옷이 가수가 되었다는 할머니의 말은 틀렸지만, 터를 팔았다는 말은 옳을 것이다. 시옷의 집에 찾아온 친척들은 시옷을 볼 때마다 이렇게 묻곤 했다.

너는 언제나 터를 팔 생각이냐?

어른들은 엄마의 배 속 ‘터’에 아기가 생기는 일이 오직 시옷의 소관인 것처럼 말했다. 시옷은 기억에도 없는 그 터를 아기 동생에게, 이왕이면 남자 아기에게 팔아야 했다. 시옷이 열살이 되도록 엄마에게 아기가 생기지 않는 것은 시옷이 아직 터를 팔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옷이 언니나 누나가 되지 못하는 건 오직 시옷의 탓이었다. 시옷의 머리통을 함부로 쓰다듬으며 놀림인지 타박인지 모를 질문을 던지는 어른들의 논리에 따르면 그랬다. 언제 터를 팔 거냐는 어른들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시옷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 터라는 것을 팔 수 있는지 몰라 답답했다. 철둑 너머 할머니와 할아버지처럼 수레를 끌고 시장에 나가 팔아야 하는지 성냥팔이 소녀처럼 눈밭에 서서 가련한 목소리로 터 사세요! 터 사세요! 외쳐야 하는지. 그런데 지금 철둑 너머 할머니가 터를 팔아 장하다고 시옷을 칭찬한 것이다. 어떤 노력도 시도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터를 팔았다! 칭찬도 받고 천원짜리 지폐도 받았다. 시옷에게 드디어 아기 동생이 생겼다. 그런데 왜 신나지 않을까? 어른들이 종용했던 숙제를 끝냈는데 왜 하나도 가뿐하지 않을까? 시옷은 저만치 앞서가는 엄마의 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열살에 언니나 누나가 되는 일을 시옷은 기다렸던가? 아니, 그보다 난데없이 폭폭함을 토로한 엄마가 바랐던 일인가?

시옷은 애니처럼 병원에서가 아니라 집에서 태어났다. 지금 사는 집 안방에서. 엄마의 산실에는 할머니와 철둑 너머 할머니가 있었고, 엄마의 몸 밖으로 밀려나온 시옷을 제일 먼저 받아준 사람이 철둑 너머 할머니였다. 그는 시옷의 탯줄을 끊고 얼룩덜룩하게 태지가 묻은 몸을 더운물에 씻긴 뒤 미리 준비한 강보에 폭 싸서 녹초가 된 엄마 옆에 눕혀주었다. 시옷의 첫울음이 터진 후 문밖에서 기다리던 남자들의 헛기침이 잦아졌다. 철둑 너머 할머니는 산실을 잘 갈무리하고 나서야 미닫이 방문을 아주 조금 열었다.

뭐여?

시옷의 할아버지가 성급하게 물었고, 철둑 너머 할머니는

아무것도 아니고만요.

작게 대답하고 방문을 다시 닫았다고, 언젠가 어른들의 수다를 엿들은 적이 있다. 어른들의 부주의함에 시옷은 단단히 상처를 받았지만, 누구에게도 그 일을 털어놓은 적은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게 태어난 시옷은 그후로도 여러번 비슷한 문제로 마음을 다쳤다. 상처는 잔잔했고 일상적이었다.

너는 언제나 터를 팔 생각이냐?

그 무수하고 일관된 질문에 마음을 찔릴 때만 해도 시옷은 훨씬 더 큰 상처가 기습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 강아지, 터 팔아서 장하다.

상처가 때론 칭찬의 형태로 올 수도 있음을 시옷은 몰랐다. 시옷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터를 팔아버렸고, 이제 시옷에게서 터를 샀다는 아기 동생이 철둑 너머 할머니의 손을 거쳐 세상에 태어날 것이다.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며 문밖에서 초조하게 서성일 남자 어른은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시옷이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세상을 떠났고 아빠는 얼마 전 사라졌으니까. 아기 동생은 무엇으로 태어날까? 시옷처럼 아무것도 아니게 태어나 시옷의 잔잔한 상처를 고스란히 물려받을까? 아니면 시옷은 되지 못했던 어떤 것으로 태어나 집안 어른들의 기쁨이 될까? 어느 쪽이든 아기 동생은 철둑 너머 할머니의 손으로 세상에 나올 것이고, 철둑 너머 할아버지의 수레를 차지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시옷의 가슴 안쪽에 묵직한 어떤 것이 똬리를 틀고 내려가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엄마의 것이었던 그것이 어느새 시옷에게로 옮겨왔는지 몰랐다. 폭폭해. 폭폭해 죽겠어. 그러나 시옷에겐 폭폭함을 호소할 사람도,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갈 마루도 없었다.

 

*

 

아, 폭폭해.

내 과제물 일기를 읽고 난 고슴이 불쑥 말했다.

고슴님은 ‘폭폭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

림자의 질문에 고슴과 도치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시옷님 일기를 읽고 나니 그 마음이 뭔지 알 것도 같아요. 정말 뾰족한 것이 마음을 폭 폭 찌르는 것 같지 않아요?

고슴은 폭 폭 하고 말할 때마다 집게손가락으로 허공을 한번씩 찔렀다.

나는 경북 출신인데,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마웨는 그날 과제에서 열일곱살에 완행열차를 타고 고향 산골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을 때의 장면을 자세히 묘사했다. 그는 기차 맨 끝 칸에 기대서서 하염없이 멀어지는 고향을 바라보며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오리라, ‘주먹을 부르쥐고’ 다짐했지만 ‘모종의 사건’ 때문에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그래도 성공하셨잖아요.

도치의 말에

그렇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서울 한복판에 이층집 짓고 사니 대단히 성공한 셈이지.

대답했다.

아이씨, 개부럽다.

고슴의 어린애 같은 말투에 다들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마웨는 성공한 연장자로서 한턱내겠다고 제안했고, 수강생들과의 뒤풀이는 원칙적으로 불가하다는 림자를 제외하고 수강생 넷이서 전직 대통령도 즐겨 먹었다는 연희동의 유명 칼국숫집에 갔다. 도치는 마웨가 사준 수육에 소주를 마시며 어떻게 해야 개처럼 벌 수 있냐고 자꾸 물었고, 마웨는 큰 소리로 소주를 추가 주문한 뒤 자신의 성공담을 전부 일기로 써서 발표할 예정이니 기다려달라고 대꾸했다. 그러곤 기다려라, 개봉박두! 하고 외쳤는데, ‘개봉박두’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고슴은 안주도 없이 자꾸만 소주를 들이켜며 우린 언제쯤 반지하 아니면 옥탑방, 옥탑방 아니면 반지하를 벗어나냐! 아, 더럽게 폭폭하네! 말해 또다시 모두를 웃겼다.

일행과 헤어져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조금 전 고슴의 탄식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던 순간을 자꾸 곱씹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청년의 딱한 현실을 마냥 귀엽고 재미난 에피소드로 소비해버리고 만 것은 아닌지, 과거로 돌아가 내 웃음을 박박 지워버리고 싶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다른 수강생보다 고슴에게 눈길이 가는 건 어쩌면 해준의 또래라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주를 두잔이나 마셔서일까? 나는 어느새 해준에게 문자메시지를 적고 있었다. 어떻게 지내? 새 학기는 잘 준비하고 있어? 독립한 원룸은 괜찮아? 불편한 데는 없어? 난방은 잘 되고 온수도 잘 나와? 그러나 쏟아지는 질문은 어떤 것도 문자메시지가 되지 못했다. 이 모든 질문을 한마디로 요약해줄 문장을 찾아야 했다. 보고 싶다. 폭폭하진 않니? 아직도 엄마가 미워?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겨우 한 문장을 찍어 보냈다.

밥 잘 먹고 있어?

버스를 타고 집 앞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에서 내려 오피스텔까지 천천히 걸어가는 동안에도, 집에 들어가 곧장 욕실에서 샤워하고 나올 때까지도 해준은 내가 보낸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았다. 나는 창 너머 언론사 건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떤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고층 건물의 모든 창에 불이 훤히 밝혀져 있었지만, 안쪽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들 집으로 돌아갔나? 무사히?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들이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 다녀왔어,라고 말하는 풍경을 상상했다. 문득 내겐 다녀왔어,라고 말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해준도 석구도 마찬가지겠지. 해준이 빈집에 들어가 불도 켜지 않고 어두운 방에 오도카니 서 있는 장면을 떠올렸다. 해준의 얼굴은 석구의 얼굴로 바뀌었고 어느새 내 얼굴로 변했다. 불안이 목덜미를 싸늘하게 훑고 내려갔다. 해준은 어릴 때부터 밥 먹어라, 밥 먹었니?같이 밥에 관한 잔소리를 유난히 싫어했다. 나는 뒤늦게 그 사실을 떠올리고 언론사 건물이 보이는 창의 암막커튼을 소리 나게 닫았다.

 

*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단다.

이 사실을 알려준 사람은 시옷의 할머니였다. 할머니 오른쪽에 바짝 붙어 시장이나 방앗간에 갈 때 간혹 검고 흰 제비가 시옷의 무릎 높이까지 낮게 스쳐 날았다. 시옷이 소스라치게 놀라면 할머니는 세상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제비가 낮게 나니 비가 오려는가보다. 제비는 좁은 골목길에서도 사람들 몸에 충돌하지 않고 용케 낮게 날았다. 제비가 바짝 다가올 때 얼른 주먹을 폈다 쥐면 따뜻한 그 몸을 만져볼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제비는 시옷의 작은 주먹에 잡히는 일 따위 없다는 듯 매끄럽게 호를 그리며 시옷의 무릎 사이를 빠져나가곤 했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고 알려준 사람이 할머니였다면, 비가 오려고 할 때 왜 제비가 낮게 나는지 알려준 사람은 제비다방 남자였다. 제비가 뭘 먹고 사는지 아냐? (절레절레) 제비는 파리나 벌 같은 날벌레를 먹고 살아. 그런데 제비는 웬만하면 땅에 내려앉는 법이 없어서 먹이도 날아가면서 잡아채 먹지. 비가 오려면 기압이 낮아지는데, 아, 기압이 뭔지는 아냐? (절레절레) 비가 오기 전 공기에 물기가 가득 차서 무거워진다는 뜻이야. 빨래한 옷이 물기를 먹어 무거워지는 것처럼. 아무튼, 공기가 무거워지면 작은 날벌레들은 높이 날기 버거워. 날벌레가 낮게 날면 그것들을 먹어야 하는 제비도 낮게 날 수밖에 없겠지? (끄덕끄덕) 먹고사는 일이 그렇다. 먹이가 낮게 날면 나도 같이 낮아질밖에. 먹이가 곧 나야. 높이 살고 싶으면 높은 것을 먹어. 알겠냐, 꼬맹아?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 응접실 창밖으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