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주혜 李柱惠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소설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장편소설 『자두』 등이 있음.

leestori@hanmail.net

 

 

 

장편연재 4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시옷의 옛집에는 이름이 있었다. 온양집. 따뜻할 온(溫)에 볕 양(陽). 시옷은 만난 적도 없는 까마득한 옛날 어느 할머니가 온양이라는 곳에서 시집을 왔고 그때부터 집은 할머니의 호칭과 같은 온양댁 혹은 온양집이 되었다. 시옷은 아빠가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온양집에 짜장면 세그릇하고 탕수육 하나요’ 하고 주문하는 걸 듣고 자랐고 어쩌다 길에서 만난 어른들로부터 ‘네가 온양집 손녀딸이로구나’ 하는 소리를 곧잘 들었다. 온양이라는 지명은 온천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지만 집안 어른들은 문자 그대로 볕이 따사로운 집으로 해석하길 즐겼다. 남쪽을 향해 자리 잡은 집은 과연 볕이 너그러웠다. 시옷의 기억에 엄마는 자주 이불 홑청을 뜯어 빨아 햇볕에 말렸고 시옷은 햇빛이 어른거리는 새하얀 이불보 사이를 넘나들며 놀았다. 애써 빨아놓은 천에 먼지 묻는다고 할머니가 한마디 하면 시옷은 화단에 나와 아끼는 꽃나무를 돌보는 아빠 품에 숨어들어 입술을 삐죽거렸다. 장독대에 올라가 큼직한 항아리 하나하나를 공들여 닦던 할머니의 백발에 햇빛이 쨍하게 되튀던 모습이나 빨랫줄을 가득 널린 이불보가 눈이 부실 만큼 하얗게 펄럭이던 걸 생각하면 빛이 넉넉한 시간이자 공간이었다. 햇볕을 누리는 일이 얼마나 큰 호사인지 시옷은 온양집을 잃고 나서야 알았다.

새로 이사 온 군경묘지 근처의 집은 응달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온양집이라는 이름은 대대로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과 친척들, 동네 사람들까지 합의해서 불렀지만, 응달집은 오직 시옷만 알고 시옷만 (속으로) 부르는 이름이었다. 합의되지 않은 이름은 불리지 않으며 그러므로 이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때의 시옷은 알지 못했다. 응달집에는 시옷네만 사는 게 아니었고 눈이 아름다운 (그러나 시옷의 발치에 침을 뱉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 아이와 그애의 누나, 그리고 시옷과 엄마에게 구정물을 끼얹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그 아이의 엄마까지 함께 살았으므로 그 집의 이름을 정하려면 여럿의 동의가 필요했다. 시옷은 번거로움을 자처할 만큼의 힘도 마음도 없었기에 응달집이라는 이름을 혼자 짓고 혼자 불렀다. 온양집이 따사로운 햇볕의 집이라면 응달집은 말 그대로 그늘이 고인 집이었다. 야산 바로 밑에 자리 잡은 집은 늘 산 그림자에 갇혀 있었고 마당이라고 부르기에도 옹색한 손바닥만 한 공간으로는 집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빨래라도 말리려면 단층집 옥상에 올라가야 했는데 그마저 절반은 야산과 거기서 자라는 나무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그야말로 그늘이 흥건한 집이었다.

시옷은 응달집에 살면서 처음으로 그늘의 색을 어떻게 칠할지 골몰했다. 여름방학 숙제로 방학 동안 한 일을 수채화로 그려가야 했는데 시옷이 한 일이라곤 이사밖에 없었으므로 하얀 도화지에 온양집과 응달집을 나란히 그리기로 했다. 시옷은 새집의 거실에 도화지와 수채물감, 팔레트, 붓, 물통을 늘어놓고 먼저 연필로 밑그림부터 그렸다. 도화지 왼쪽에 시옷이 태어나고 십년을 자란 온양집이, 오른쪽에 시옷이 이사 온 지 보름도 안 되는 응달집이 생겨났다. 시옷은 밑그림을 내려다보며 각 집의 색깔을 고민했다. 햇볕의 색이라면 마당 가득 널려 있던 이불 홑청의 백색이 떠올랐지만, 그늘의 색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시옷이 생각하는 그늘은 검은색에 한없이 가까우면서도, 불투명하지 않고 투명했다. 온양집이 투명한 백색이라면 응달집은 투명한 흑색이었다. 하지만 투명한 백색은 도화지와 같은 색이므로 칠할 필요가 없었고 투명한 흑색은 24색 물감 세트 안에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칠하고 싶어도 칠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가능한 색이 현실에는 왜 존재하지 않는지 시옷은 답답했다. 지금 당장 집 뒤꼍으로만 나가보아도 건너편이 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물 같은 흑색을 볼 수 있는데 말이다. 응달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도 시옷은 꿈속에서 투명한 흑색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린 적이 있었다. 그 이상한 웅덩이는 본 적 없는 우물 속이기도 했고 가본 적 없는 심해이기도 했는데, 한참을 허우적거리다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요란하게 깨어나면 곁에서 함께 잠을 깨버린 어른이(엄마일 때도 할머니일 때도 있었다) ‘크느라 그런 게지’라며 이마의 식은땀을 훔쳐주었다. 아니, 시옷은 꿈 밖에서도 투명한 흑색을 만난 적이 있다.

시옷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때가 있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시옷으로 이루어진 다섯 식구가 어쩌다 한자리에 모여 있게 되면 시옷은 늘 어깨 뒤쪽이 신경 쓰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숫자 세는 법을 배운 이후로(입으로 세는 법은 할아버지에게, 숫자로 쓰는 법은 아빠에게 배웠다) 시옷은 식구들이 한방에 모여 있으면 하나, 둘, 셋 하고 속으로 사람 수를 세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 수는 늘 다섯으로 끝이 났고 시옷의 식구는 모두 다섯명이 맞았는데도 시옷은 어쩐지 있어야 할 사람 하나가 빠져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섯명 사이에 끼지 못한 누군가가 시옷의 어깨너머로 쓸쓸한 얼굴을 쑥 내밀고 있을까봐 갑자기 고개를 돌려 뒤쪽을 확인해보기도 했다. 그러면 아빠는 ‘네 어깨에 귀신이 앉아 있다’ 하고 놀렸다. 시옷이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리면 할머니는 ‘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며 아빠를 나무랐고 엄마는 조용히 한숨을 쉬며 딴청을 피웠다. (시옷을 낳은 후 엄마가 두번이나 유산했다는 사실은 시옷이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어른들 말을 엿듣다가 알게 되었다. 그전에는 행여 들었더라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 혼자 방을 쓰게 되면서 시옷은 할머니와 함께 자게 되었다. 하지만 할머니 방의 모든 것이 낯설고 엄마가 보고 싶어서 걸핏하면 한밤중에 깨어나 안방으로 숨어들었다. 할머니 방에서 안방으로 가려면 중간에 부엌을 지나가야 했다. 어느날 시옷은 부엌에 자기 말고 움직이는 형체가 또 있음을 감지했다. 그것은 분명히 사람의 모습을 하고 부엌문 뒤쪽에 오도카니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시옷은 그것의 몸집이 할머니나 아빠처럼 큰 어른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우선 안도했다. 시옷은 안방으로 가다 말고 그것 앞에 멈춰 섰다. 그것이 미닫이문처럼 옆으로 쓱 움직였다. 그 속도가 빠르지 않은 점도 좋았다.

안녕.

시옷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것은 부엌 벽에 걸어놓은 소쿠리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시옷이 말을 걸자마자 사라져버렸다. 수줍음이 많은 걸까? 아니면 시옷이 싫은 걸까? 시옷은 다시 안방 쪽으로 움직였다. 마루 끝에 그것이 서 있었다. 그것이 다시 나타나 시옷은 기뻤다.

우리, 놀까?

시옷이 다시 말을 건네자 그것이 응접실 문 너머로 사라졌다. 시옷은 안방을 그대로 지나쳐 서둘러 응접실 앞까지 갔다. 그리고 식구들이 깨지 않게 조용히 응접실 문을 열었다. 넓은 공간 특유의 싸늘한 기운이 안으로 들어서는 시옷의 몸을 휘감았다. 카펫에 들러붙은 아빠의 담배 냄새와 책장마다 빼곡히 꽂혀 있는 묵은 책 냄새도 풍겼다. 푹신한 카펫이 시옷의 발소리를 빨아들였다. 시옷은 등 뒤로 가만히 문을 닫았다. 반쯤 걷힌 커튼 틈새로 달빛이 비쳐들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시옷의 눈이 응접실 안의 사물을 또렷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간 안에서 가장 투명한 흑색을 띠고 응접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시옷이 바라보자 그것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밤보다 훨씬 어두웠고 달빛보다 한결 투명했다. 그러나 그것에는 눈 코 입이 없어서 시옷은 그것의 기분을 오직 움직이는 속도로만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시옷은 그것과 눈을 마주쳤다고 확신했다. 신호처럼 그것이 가볍게 떠오르더니 커튼을 붙잡고 매달렸다. 그러곤 덩굴을 타고 날아다니는 정글의 타잔처럼 커튼을 타고 순식간에 샹들리에 위로 올라앉았다. 눈물 모양의 유리 장식이 서로 부딪치며 차르르 소리를 냈다. 시옷은 그 소리를 웃음으로 알아들었다. 시옷은 깃털처럼 가벼운 그것이 부러웠다. 시옷도 그네를 타듯 커튼에 매달리고 싶었다. 샹들리에 위에 올라앉아 응접실 바닥을 내려다보고 싶었다. 그것이 다시 아래로 내려오더니 묵직한 테이블 한쪽 끝을 가볍게 들어 올려 소파 위에 걸쳤다. 순식간에 소파에서 카펫 바닥으로 떨어지는 미끄럼틀이 생겼다. 그것이 먼저 미끄럼을 타고 내려왔다. 시옷은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테이블 미끄럼틀을 타보았다. 경사가 급해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아프기보다는 신이 났다. 자꾸 웃음이 나왔다. 시옷과 그것은 사이좋게 번갈아가며 테이블 미끄럼틀을 탔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얼마쯤 탔을까. 미끄럼틀이 시시해졌는지 그것이 순식간에 붙박이 책장 쪽으로 움직였다. 맨 아래 칸에 꽂힌 묵직한 백과사전 전집을 하나씩 빼서 바닥에 쓰러뜨렸다. 반듯하게 꽂혀 있던 책이 픽픽 쓰러지는 모습은 통쾌함을 안겨주었다. 그것이 날쌔게 책장 맨 위 칸으로 올라가더니 백과사전보다 얇은 책을 하나씩 꺼내 던졌다. 시옷은 머리를 맞을까봐 무서워 반사적으로 두 팔을 들어 막았다. 그러나 그것이 던진 책들은 추락하지 않고 새처럼 날갯짓하며 샹들리에 밑을 떠다녔다. 포르르, 파드득, 책의 날개가 서로 스치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시옷은 머리를 막았던 팔을 내리고 멍하니 책들의 비행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책의 새를 붙잡아보려고 폴짝폴짝 뛰었다. 그것은 어느새 책장에서 샹들리에로 옮아가 거꾸로 매달린 채 그네처럼 온몸을 흔들었다. 시옷의 머리 위로 책들이 날고 그것이 까딱거렸다. 시옷은 점점 신나게 뜀을 뛰었다. 조심성 없이 깔깔댔다.

누구냐?

호통 소리와 함께 응접실 불이 켜졌다. 샹들리에가 무자비한 빛을 소나기처럼 우수수 쏟아냈다. 아빠가 등장하자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던 책들도 감쪽같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카펫 바닥은 책장에서 쏟아진 책들로 어지러웠다. 한쪽 끝만 소파 위에 덜렁 올라앉은 테이블의 모습은 괴이해 보였다. 커튼 일부분이 레일에서 뜯겨 나가 있었다. 아빠는 경악에 찬 얼굴로 엉망이 된 응접실을 둘러보았다.

세상에, 이게 다 무슨 일이냐? 도깨비놀음도 아니고.

어느새 할머니와 엄마도 잠옷 바람으로 아빠 뒤에 서 있었다. 시옷은 꼼짝도 못하고 응접실 한가운데 서서 식구들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았다. 아빠가 시옷 곁으로 걸어왔다. 아빠는 몽땅 비어 있는 책장 맨 위 칸을 올려다보았다.

저 위까지 어떻게 올라갔어?

아빠의 목소리에 힐난과 호기심이 반씩 섞여 있었다. 아빠는 시옷이 디디고 올라섰을 뭔가를 찾아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응접실에는 당연히 사다리 같은 게 없었고 어린 시옷 혼자 힘으로 옮길 수 있는 가벼운 의자도 없었다. 할머니와 엄마가 바닥에 떨어진 책을 두서없이 줍기 시작했다. 책 하나 줍고 놀라고 책 하나 줍고 혀를 차느라 일이 더뎠다. 아빠는 여전히 의문을 풀지 못한 얼굴로 방 안을 샅샅이 돌아보았다. 투명한 흑색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그것이 무사히 몸을 숨겨서 다행인 걸까? 시옷만 놔두고 혼자 도망쳤으니 섭섭해야 할까?

맨 위 칸 책은 어떻게 뺐어?

아빠가 다시 물었다. 시옷은 그것이 한 일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이름이 없는 것은 정확히 가리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시옷은 그때 깨달았다. 시옷은 더럭 겁이 나 울음을 터뜨렸다.

뭘 잘했다고 울어?

내내 입을 다물고 책만 줍던 엄마가 쏘아붙였다. 그 참에 온몸에 힘이 풀렸고 다리 사이로 뜨뜻한 물기가 느껴졌다. 카펫에 천천히 얼룩이 번져갔다.

내가 못 살아!

혹시 백과사전을 쌓아놓고 그 위로 올라갔냐?

엄마와 아빠가 동시에 말했다. 아빠는 제발 정답이라고 말해달라는 듯 간절한 표정으로 시옷을 보았다. 아빠도 뭔가를 겁내고 있었다. 시옷은 아빠를 구해주는 심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가서 자라.

아빠는 마침내 문제를 해결했다는 안도감으로 우쭐해 보이기까지 했다. 할머니는 계속 책을 주워 책장에 꽂았다. 엄마가 시옷의 손을 잡아채고 욕실로 데려갔다. 시옷의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엄마의 손길이 거칠었다. 그날 남은 밤을 시옷은 안방에서 잤다. 다음 날 할머니는 시옷의 기가 허해진 탓이라며 한약을 지어왔다. 한동안 시옷은 엄마와 할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쓰디쓴 한약을 삼켜야 했다. 대접을 다 비우고 쓴맛에 몸서리를 쳐도 엄마는 사탕을 주지 않았다. 그후로 시옷은 한밤중 할머니 방에서 안방으로 가는 길에 가끔 그것이 마루 끝에서 어른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유혹하듯 응접실 문 앞에서 고개를 까딱거렸지만 시옷은 다시는 그것을 따라가지 않았다. 그것과 신나게 노는 것보다 어른들에게 미움받는 아이가 되지 않는 게 훨씬 중요했다.

응달집을 무슨 색으로 칠할지 고민하다 시옷은 오랜만에 그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투명한 흑색을 영영 온양집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옷은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그것의 자세한 형체를 떠올려보았다. 어떻게 해도 그것의 색깔을 도화지에 옮길 수는 없었다. 시옷은 온양집과 응달집 밑그림을 지우개로 박박 지우고 그 자리에 가본 적도 없는 해수욕장을 그렸다. 거짓 그림은 오히려 그리기가 쉬웠다. 본 적 없으므로 오히려 본 것처럼 그릴 수 있었다. 모래밭은 황토색으로, 그 너머 바다는 파란색으로 칠했다. 미술시간에 배운 대로 정중앙을 피해 오른쪽에 알록달록한 파라솔을 그리고 그 아래 엄마와 아빠와 할머니와 시옷이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모습을 그렸다. 식구들 앞에는 빨간색과 초록색과 검은색으로 먹음직스러운 수박을 그려 넣었다. 바다 위쪽에는 원근법에 충실하게 갈매기도 세마리 그렸다. 거짓 그림 속 가족은 마냥 즐거웠다. 엄마는 다정했고 배가 불러 있지도 않았다. 아빠는 어깨가 축 처진 기죽은 모습이 아니었다. 투명한 흑색 따위는 필요 없는 그림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시옷이 과제물로 제출했고 ‘행복한 우리 가족’이라는 빤한 제목을 단 그림은 우수작으로 뽑혀 한동안 교실 뒤쪽 게시판에 붙어 있었다. 같은 응달집에 살게 된 눈이 아름다운 아이는 방학 숙제를 하나도 해오지 않았고 담임에게 불려 나가 손바닥을 열한대나 맞았다.

 

*

 

마웨: 시옷님 일기가 연극으로 치면 2막에 돌입한 느낌입니다.

고슴: 계절도 순식간에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었어요.

도치: 그런데 봄에 비해 여름은 너무 짧게 얘기하고 지나가는 게 아닐까요?

고슴: 뭐, 계절의 속도감이야 개인차가 있지 않아?

마웨: 시옷님에게 그 여름은 별로 기억나는 게 없는 모양이지요.

고슴: 아님, 기억하고 싶지 않든가요.

림자: 문학평론가 로이 파스칼은 자서전이란 연대기가 아니라 삶의 해석이라고 말했어요. 해석에는 선택적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어떤 기억을 선택해 기록하느냐에는 그 기억과 결합한 감정이 중요하게 작용할 테고요. 시옷님의 봄과 여름이 불균형하게 기록되었다면 두 계절에 대한 시옷님의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겠죠. 과거를 돌아보고 떠올린 무수한 기억 조각 가운데 무엇이 유난히 반짝여 여러분의 눈길을 끄는지는 오직 자신만 알 겁니다. 그렇게 선택된 기억의 조각들이 한데 엮여 일기나 자서전이 되겠고요.

도치: 그만큼 자서전이라는 게 왜곡이나 날조로 흐르기 좋다는 말이네요.

림자: 그렇습니다. 자서전만큼 신뢰하기 어려운 글도 없지요.

고슴: 그럼 왜 써요?

마웨: 번듯하니 남에게 보여주기 좋잖아요? 저도 자서전을 한권 완성해서 칠순 잔치 겸 출판기념회를 하는 게 소원입니다.

고슴: (입 모양으로) 구려.

림자: 자서전이 참인지 거짓인지 글쓴이 말고 다른 사람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악명 높은 독재자나 탐욕스러운 부자들이 오히려 자서전에 집착하기도 했죠.

도치: 그 사람들 자서전을 직접 쓰지도 않았잖아요. 죄다 대필이었지.

고슴: 그런 건 자서전이라고 부르지도 말아야 해.

도치: 그러니까. 대필 말고 진짜 자기가 쓴 거라고 해도 왜 자서전에 거짓말을 쓰는지 이해가 안 가요.

림자: 하지만 자서전에 거짓말의 비중이 높을수록 그 글에 다치는 사람은 글쓴이 자신이 아닐까요?

 

*

 

2학기가 시작되면서 엄마의 배는 무섭게 부풀었다. 배만이 아니라 온몸이 풍선처럼 부었다. 두배로 커진 엄마 종아리에 손가락을 대고 꾹 눌렀다가 떼면 붉게 팬 자국이 한참이나 원 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어떻게 해도 자세가 불편하다며 누워 있는 때가 많았고 시옷이 곁에서 얼쩡거리면 성가시다고 쫓아냈다. 시옷은 엄마가 누워 있는 안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할머니 한 사람으로 꽉 차는 부엌에도 가지 못해서 거실에서 혼자 놀다 심심해 죽을 지경이면 옥상에 올라가 집 담벼락 밑으로 흘러가는 개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름이 가을과 포개지는 계절이었다. 날이 저물면 어디선가 밥 짓는 냄새가 풍겨왔고 개울가에 오종종하게 붙은 작은 집마다 여자들이 놀러 나간 제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서쪽 하늘이 온통 붉어지면 까닭 모르게 슬퍼지고 어딘가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온양집에 버리고 온 투명한 흑색이 떠올랐고 옆집 살던 애니가 보고 싶었다. 시옷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제비다방 남자가 두고 간 기타 피크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아래서 할머니가 시옷의 이름을 불렀을 때야 어둑해진 옥상을 내려왔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철계단 밑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눈이 아름다운 아이가 사는 단칸방이 나왔다. 방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문 앞에 놓인 신발은 뒤축이 한껏 꺾인 그 아이의 낡은 운동화뿐이었다.

할머니가 둥근 밥상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빠가 아직 오지 않아서 밥은 세 사람 몫이었다. 그즈음 집안일은 할머니가 도맡아 했다. 아빠는 아침마다 할머니가 다려준 셔츠를 입고 나갔다가 저녁이면 땀에 젖어 후줄근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빠의 양복 바짓단과 구두에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시옷이 못 본 사이에 거실에 책더미가 생겼다. 책이라면 온양집에서 이사 나올 때 고물상에 다 팔고 온 줄 알았는데 응달집에도 새 책이 야금야금 쌓여갔다. 그 책들은 읽으려고 산 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책장에 꽂히지 못하고(응달집에는 책장도 없었다) 포장도 풀지 않은 채 거실 벽을 따라 차곡차곡 쌓였다. 온양집 거실에서 책 읽기를 즐기던 아빠는 이제 책을 읽지 않았다. 시옷에게 책을 사다주지도 않았다. 대신 아빠는 책을 파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아빠의 책 파는 능력은 그리 시원치 않은지 들고 나가는 책보다 들고 돌아오는 책이 더 많았다. 식구들은 거실 구석에 늘어가는 책더미를 모른 척했다. 그중에는 시옷이 좋아할 만한 동화 전집도 있었지만, 아빠는 한번도 책을 꺼내 읽어보라 권하지 않았다. 온양집에 살 때만 해도 다달이 나오는 만화잡지를 사다주고 응접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읽어주던 아빠가 동화 전집은 한사코 그 정체를 감추려는 듯 책등을 벽에 붙여 쌓아두었다.

시옷이 밥상 앞에 앉자마자 할머니가 작은 냄비가 올려진 쟁반을 주며 옆집에 갖다주라고 했다. 시옷이 아랫입술을 비죽이 내밀고 싫은 티를 내자 엄마가 눈을 흘기며 얼른 다녀오라고 했다. 그 무렵 엄마의 얼굴엔 잿빛 기미까지 잔뜩 끼어서 시옷을 노려보는 표정이 몇배나 무서워져 있었다. 애가 맨날 찬밥만 먹어서 옳게 크겠나? 등 뒤에서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모를 할머니의 말이 들려왔다.

야.

시옷은 문밖에서 그 아이를 불렀다. 아무 대답이 없자 한번 더 소리 높여 불렀다.

야.

잠시 후 눈이 아름다운 아이가 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문틈으로 보이는 방 안은 시옷의 집보다 작고 어두웠다. 방 한가운데 작고 둥근 밥상이 보였다. 시옷은 아이의 밥상을 똑바로 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할머니가 보낸 냄비를 내밀었다. 거기 할머니가 밤새 끓인 곰탕이 담겨 있다는 것을 냄새로 알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가 갖다주래.

시옷이 냄비를 내밀자 방문을 붙잡고 있던 아이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 틈에 시옷은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저녁을 먹는 중이었는지 아이의 볼이 불룩했다.

따뜻한 국에 찬밥 말아 먹으래. 그래야 옳게 큰대.

정말로 할머니가 시켜서 하는 말인 듯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그 아이가 큼직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옷을 쳐다보았다. 시옷은 거짓말을 들킨 것 같아 얼른 방문 앞을 떠났다.

야.

뒤에서 아이가 시옷을 불렀다. 처음 듣는 아이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맑았다(그 아이야말로 지휘자 선생님이 찾는 맑은 소년이었다). 시옷은 걸음은 멈추지 않고 고개만 돌려 아이를 보았다.

너, 내 이름 모르냐?

시옷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시옷은 정말로 그 아이의 이름을 몰랐다. 4학년 때 처음 같은 반이 되었고 학년 초에 담임에게 불려 나가 학급 아이들 앞에서 때가 잔뜩 낀 배를 드러내는 모욕을 당했다는 것만 알았지 그애의 이름은 알지 못했다. 1학기 내내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걸핏하면 담임에게 매를 맞는 모습을 보며 은근히 안타까움을 느꼈을 뿐 그애의 이름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나는 네 이름을 아는데 너는 모르냐? 치사하게?

아이가 당당할수록 시옷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시옷은 도망치듯 걸음을 옮기다가 부드럽고 푹신한 어떤 것에 얼굴을 부딪쳤다. 코끝에 비릿한 꽃향기와 바깥바람 냄새가 동시에 풍겼다.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아이구나?

눈이 아름다운 아이의 누나였다. 그 언니는 흰 블라우스와 감색 치마, 조끼로 이루어진 제복을 입고 출퇴근했다. 가슴에는 유명 화장품회사 이름이 적힌 명찰을 찼고 커다란 감색 가방을 들고 다녔다. 언니는 집집이 다니며 얼굴 마사지를 해주고 화장품을 판다고 했다. 언니의 배에서 얼굴을 떼고 위를 보니 둥근 얼굴에 박힌 반달 모양 눈이 시옷을 보고 다정하게 웃고 있었다.

우리 윤수랑 같은 반이라면서? 일요일에 놀러 와. 언니가 과자 사줄게.

등 뒤로 쾅 하고 방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가 눈을 동그랗게 치뜨고는 시옷을 향해 한번 더 씩 웃어주었다. 반달 모양이었던 언니의 눈이 순간 무지개 모양으로 변했다. 그애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보였지만 남매는 남매라서 눈이 서로 꼭 닮아 있었다. 시옷은 언니의 유난히 크고 검은 눈동자와 그 위를 차양처럼 드리운 풍성한 속눈썹을 쳐다보았다. 심장이 반박자 빨리 뛰었다. 늘 놀림을 받고 매를 맞는 윤수라는 아이가 처음으로 부러웠다.

 

윤심 언니는 매일 밤 수돗가에 나와 오래도록 얼굴을 씻었다. 수건으로 긴 머리를 감싸 올리고 치약처럼 생긴 화장품을 손바닥에 짜내어 흰 거품을 낸 다음 그것으로 얼굴을 오래 문질렀다. 세수 한번 하는 데 쓰는 비누만 여러가지였다. 윤심 언니가 플라스틱 대야에 비누와 수건을 담아 수돗가로 나오는 소리가 들리면 시옷은 얼른 밖으로 나가 알은척을 했다. 언니는 옆에 쪼그려 앉아 이것저것 물어보는 시옷을 귀찮아하지 않았다. 기분이 좋은 날엔 시옷의 손바닥에도 하얀 비누 거품을 짜주었다. 그 비누로 얼굴을 씻은 날이면 밤새 코끝에 달보드레한 향기가 어른거렸다. 하지만 언니라고 매번 다정하지는 않았다. 어떤 날엔 시옷을 보고도 그저 희미하게 웃어 보일 뿐 말없이 푸석하게 부은 얼굴을 조용히 씻고 돌아갔다. 그게 운 사람의 얼굴이라는 걸 많이 울어본 시옷은 알 수 있었다. 시옷은 저만치 떨어져 앉아 저토록 순하고 다정한 윤심 언니를 울린 사람은 얼마나 나쁜 놈일까 생각했다.

윤심 언니가 저녁마다 공들여 세수하고 아침이면 다시 곱게 화장을 한 뒤 집을 나섰다면 윤수네 엄마는 언제 집을 나가고 언제 집으로 돌아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꽤 깊은 밤 윤수네 엄마가 한껏 취한 목소리로 철 대문을 두드리며 윤심 언니와 윤수의 이름을 불러 동네 사람들까지 다 깨우는 일이 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