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사회의 발전전략을 찾아서(21세기의 한반도 구상 3)

 

계층의 불평등과 형평의 원리

 

 

김왕배 金王培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산업사회의 노동과 계급의 재생산: 일상생활의 불평등에 대한 성찰』 등이 있음. wangbae@yonsei.ac.kr

 

 

1. 계층의 불평등과 재생산

 

미증유의 경제성장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던 한국사회에서도 지난 금융위기 이후 실업과 빈곤의 담론이 성행하고 있다. ‘가난의 대물림’ ‘빈곤이 부른 자살’ ‘정리해고’ ‘실업의 칼바람’ ‘청년실업’ 등 사회불안을 상징하는 용어들이 일상적인 것들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연일 부동산투기와 집값 폭등, 황금족과 명품족의 출현, 불황을 모르는 해외여행과 궁전 같은 주거단지의 등장 등 사치와 풍요의 현상들이 대비되고 있다. 이른바 계층의 양극화 혹은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점차 현재화되고 있으며, 계층상승을 위한 사회이동의 기회는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계층간 소득격차의 추이를 보더라도 그 불평등이 깊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1996년 상위 20%의 소득을 100으로 놓았을 경우 그로부터 40%의 중간층은 물론 하위 20%의 소득이 점차 줄어들어, 하위계층의 경우 96년의 30.3에서 99년 17.4로 거의 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는 상위계급 20%와 나머지 계층구성원 간의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득의 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Gini)계수도 점차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소득은 늘었으나, 대신 계층간 소득격차는 커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층간 격차는 단순한 소득수준의 차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식주·교육·의료 등의 써비스는 물론 여가생활 등 총체적인 생활양식과 삶의 질에서의 계층간 차별로 이어지면서 사회도덕과 윤리를 의심케 하는 사회병리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생계 존립의 위협을 받고 있는 최하위 빈곤층이나 차상위 저소득층은 적절한 사회적인 지원이 없어 가난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가난이 대를 이어 세습되는 현상마저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빈곤과 빈곤으로의 추락은 비단 하위계층뿐 아니라 비교적 탄탄한 생활기반을 가지고 있던 중산층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중산층의 몰락과 몰락가능성이 증대하는 현상은 비단 국내뿐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기조로 하는 글로벌 자본주의하에서 일어나는 계층의 극화현상을 반영한다. 즉, 초국적 자본가들과 전문·행정관료들, 금융 경영자들 등으로 구성된 소수의 고소득층과 빈곤의 나락으로 전락한 다수집단으로 계층이 양극화되고 있다는 이른바 ‘이십 대 팔십’의 논리가 그것이다. 중산층의 공간은 빈곤층이나 저소득층의 계층상향의식과 성취동기를 유발하는 정착지 구실을 하지만 세계경제의 급속한 변화와 함께 그 기반이 불안의 기류에 휩싸여 있다. 경기침체에 민감한 소규모 자본가나 자영업자 들의 파산, 기업구조조정으로 인한 신중간층의 몰락 등 중산층 신화는 다시 고려될 싯점에 이른 것이다. 소수의 상위계층을 제외한다면 도시빈민층은 물론이려니와 대부분의 인구집단이 빈곤의 늪으로 빠질 수 있는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화 등을 경험해온 한국사회는 계층구조화 기간이 짧았고, 그 대신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이동이 보장된, 그것도 상향이동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이 주어졌던 유동적 사회였다. 국민소득이 채 100달러도 되지 않던 1960년대경 한국사회의 인구 대부분은 절대빈곤에 허덕이는 ‘빈곤에 의한 평등한 사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시공간적으로 압축적인 산업화기간 동안 급격하게 휘몰아친 사회이동으로 인해 계급의 구조화기간이 짧았고, 계층간 차등은 상대적으로 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은 적어도 한국사회가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돌입하였다고 판단되는 1980년 후반 혹은 1990년 초반에 이르러 급속히 변한다. 즉, 계층의 경계화가 더욱 분명해지고 그 재생산의 과정이 점차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산업화기간 동안 보이던 사회이동의 빈도가 줄어들면서 계층이 정착되어가고, 그에 따른 생활상의 격차가 뚜렷해지면서 삶의 조건들은 세습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경제위기 이후 상류계층과 하위계층 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빈곤의 수렁에 빠지게 된 이른바 ‘언더클래스’(underclass)가 계층의 새 범주로 등장하게 된다. 계층간 생활격차는 교육·의료·여가 등의 소비생활 전영역에 걸쳐 발생하면서, 일부에서는 체화된 특정한 성향 혹은 취향을 의미하는 ‘계급 아비뛰스’(class habitus)의 현상마저 감지되고 있다.

특정한 계층이 유용할 수 있는 ‘자본’의 영역은 더 폭이 넓어지고 있다. 부르디외(P. Bourdieu)가 말한 것처럼 공식적 학력과 고가의 문화재 보유, 그리고 특정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취향, 또 이해관계를 증폭시킬 수 있는 사회관계 모두가 자본으로 가용된다. 최근 몇몇 조사를 살펴보면 한국사회에서 계층간 자본의 분포와 생활양식에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산과 소득으로 나타나는 경제자본의 차이는 두말할 나위가 없고, 의식주나 여가에서도 양과 질을 달리한다. 물론 서구자본주의에 비하면 그 격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지난 산업화기간 동안 더 명백해지고 있는 것이다. 상류층이 성북동·평창동·한남동 일대와 강남지역으로 집적되어가는 공간의 분할현상이 발생하고 있고, 의식과 소비에서는 독특한 매장과 스타일이 지향되고 있다.1

한편 학벌사회로 묘사되는 한국사회에서 교육과 학력은 상향적 사회이동과 계급재생산의 핵심적 요인이다. 한국사회는 영국이나 미국 등과 같이 극소수의 상류계급 자녀들만이 입학할 수 있는 엘리뜨 교육의 산실인 고등학교 등이 존재하지 않고 평준화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제도권에서의 교육불평등은 공식화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사(私)교육에서의 계층간 차이는 현격하다.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상류층들이 밀집되어 있는 강남의 한 지역의 사교육비는 일반 평균지역에 비해 세배 가량 높고, 상위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부모 70% 이상이 대기업가, 고위행정관료, 전문가 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지표들은 이제 중하위층 자녀들의 교육기회가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말해준다. 유학은 또한 계급재생산의 중요한 통로가 되고 있다. 물론 유학의 문이 중산층에게까지 열려 있고 학력인플레로 인해 효과가 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상류계층의 자녀들에게는 계급재생산에 거의 필수요건이 되었다. 더구나 유년 및 초등학교의 학생들의 경우 예체능 엘리뜨 교육마저 성행하고 있어 아직은 계층간 성향과 기질을 나타내는 계급 아비뛰스가 현저히 발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차후세대에 이르면 그 형성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사회자원을 둘러싼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에너지를 생산하거나 증대시켜주는, 다시 말해 사회자원을 동원하여 특정집단의 이해관계를 증폭시킬 수 있는 사회관계를 일반적으로 사회자본이라 부른다. 이러한 사회자본의 대표적 관계망은 결혼망인데 다른 선진자본주의 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방되어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 역시 결혼망은 상류계층의 이해를 보장하고 확장하는 대표적인 ‘폐쇄전략’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상류계층의 결혼은 대자본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대기업가와 고위관료 및 정치인 사이에서 부와 권력을 조합하는 매개역할을 하고, 차세대에 그것을 물려주는 계급세습의 통로가 된다. 이러한 결혼망의 형성은 최상류계층의 현상만이 아니다. 경영자나 전문가 등 이른바 주변상류계층(이를 중상층으로 분류하기도 한다)에서도 배우자들의 집안배경에 의해 결혼의 성사여부가 결정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학교는 비공식 연줄망을 생성하는 사회자본의 공장 역할을 하기도 한다. 상류계층의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유치원 및 초등학교는 단순히 차등적인 교육내용과 조건만을 제공하는 장이 아니라, 학부모·자녀 간의 일정한 사회관계가 형성되는 공간이다.

상류계층의 폐쇄전략과 중산층의 모방 혹은 도전 그리고 하위계층의 좌절 등이 더욱 분명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의 불평등 현상이다. 물론 한국사회의 계층적 생활양식의 질적 차별화와 그 기회의 차이는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덜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그러나 산업화와 성장의 그늘에 가려 있다가 지난 경제위기 이후 더욱 분명하게 가시화되고 있다.2 개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바탕으로 사회이동의 기회가 있던 시대를 묘사하는 ‘개천에서 난 용’의 시대, ‘자수성가’의 시대는 거의 종말을 고하고, 계층적 배경에 의해 삶의 조건들이 규정되는 시대로 들어와 있는 것이다.

 

 

2. 빈곤의 위협

 

한 사회가 요구하는 표준생활에서 탈락된 층을 빈곤층이라 한다. 이 빈곤의 유형은 크게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으로 나뉘는데 전자가 최저생계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소득층을 말한다면 후자는 글자 그대로 상대적 개념으로서 사회적인 평균소득을 누리지 못하는 층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빈곤층은 최하위 극빈층, 즉 최저생계비 이하 소득수준의 생활보호자층과 그 차상위층으로서 저소득층을 포괄하지만, 최근에 상대적 빈곤 개념의 등장과 함께 빈곤은 중산층의 현상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절대빈곤선에 놓여 있는 도시빈곤층은 전체 인구의 10%선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이는 지난 경제위기 전의 5%에서 두배 정도 늘어난 것이어서 빈곤층이 확대재생산되는 경향을 보

  1. 한 조사에 의하면 강남구 주민의 금융자산은 타구에 비해 최고 4배에 달한다(『중앙일보』 2003년 10월 22일자). 각 계급간 소비생활양식의 차이에 대해서는 장미혜 「소비양식에 미치는 문화자본과 경제자본의 상대적 효과」(연세대 사회학과 박사학위논문 2000) 참조. 그리고 계층과 계급의 개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본 글에서는 계급과 계층의 의미를 동일하게 사용할 것이다.
  2. 이러한 계급재생산의 구체적 내용들에 대해선 김왕배 『산업사회의 노동과 계급의 재생산』(한울아카데미 2000)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