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고구려의 ‘역사’와 동북아의 ‘현실’

 

 

이영호 李榮昊

인하대 사학과 교수. 저서로 『한국근대 지세제도와 농민운동』 등이 있음. yholee@inha.ac.kr

 

 

한·중·일 삼국간에 역사논쟁이 비등하고 있다. 한일간의 논쟁은 식민지 지배와 그 피해에 대한 배상 및 역사의식에 관한 것이다. 중일간의 논쟁도 마찬가지다. 한·중은 근대에 자행된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과 가혹한 인권침해에 대하여 비판하고 그에 대한 일본의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 합사된 야스꾸니 신사(靖國神社)에 대한 일본정부 인사들의 참배를 반대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과거사에 대한 비판의 측면에서 한·중은 공동보조를 취해왔다.

한·중은 전통적으로도 우호관계를 맺어왔다. 대륙의 중원을 차지한 중국의 왕조에 대하여 때로는 반발하고 때로는 순응하였지만 한국의 정체성과 독자정권의 수립을 방해받은 적은 없다. 우리가 주로 받는 편이었지만 문화의 교류도 순조로웠다. 따라서 한·일 역사논쟁과 같은 한·중 역사논쟁이 일어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2003년 여름 이후 양국간에 심각한 역사논쟁이 개시되었다. 논쟁은 무려 2천여년을 거슬러올라가 종족과 권력과 국가의 기원으로부터 시작해 오늘의 현실문제에까지 이른다. 중국측이 ‘동북공정’이라는 연구프로젝트를 발주하여 한중관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성격 규정하여 고구려에 대한 모든 역사적 연고를 중국의 것으로 삼으려 한다고 전해진다. 우리의 언론과 시민단체, 네티즌 들은 난리다.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고구려 역사를 지키겠다고 서명운동을 하고 시위도 벌였다. 중국의 패권주의를 비난하는 논설도 줄을 이었다. 국회의원들은 중국의 역사왜곡중단촉구 결의안을 냈다. 학자들도 춤을 춘다. 동북공정이 학문적 목적인가 정치적 목적인가, 중국 변경의 안정을 추구하는 수세적인 것인가 유사시 북한의 영토에 개입하려는 공세적인 것인가 논자마다 무게중심이 다르다. 동북공정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대응책도 다양하다. 만주의 고토를 회복하자는 책임 못 질 국수주의적 견해도 나오고, 민족개념을 버리고 국사를 해체해야 한다는 반대방향으로도 가고, 동아시아사로 포괄하자는 견해도 있다. 정확한 판단 자료를 얻기 위해 먼저 동북공정의 실체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1. ‘동북공정’의 실체

 

‘동북공정’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인 말로서, 중국 동북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실’의 관계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동북공정은 2002년 2월 28일, 약 23억여원(1500만 위안)의 연구비를 중국정부와 사회과학원, 동북 3성(지린성·랴오닝성·헤이륭쟝성)에서 공동부담하는 5년간의 연구프로젝트로 출범했다. 중국측이 ‘역사’문제는 명시하고 있으나 ‘현실’의 전략문제 공개는 꺼려하기 때문에 동북공정의 실체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는 없지만 공개된 자료를 통해서나마 윤곽을 그려볼 수는 있다.1

거슬러올라가 1980년대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의 방향으로 나아갈 때 특히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이 문제로 되었다. 중국정부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多民族國家論)’에 입각하여 한족(漢族)을 비롯한 56개 민족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구축하고 있는데 개혁개방으로 인하여 변경 소수민족의 이탈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1983년 사회과학원 직속 연구기관으로 ‘중국변강사지 연구중심(中國邊疆史地硏究中心,이하 ‘변강중심’으로 약칭함)’이라는 연구소를 설립하여 변경의 역사·지리·영토에 대한 연구를 시행하도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수민족과 변경의 영토문제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고자 하였다.‘변강중심’에서 수행한 초기의 과제는2 ‘중국근대변계연혁사’(1987~94)‘20세기의 중국변강연구’(1990~94)‘중국변강학개론’(1991~94) 등 역사적·현상적 또는 총론적인 것이다.

그런데 1989년 동구권의 붕괴는 사회주의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1991년에는 소련이 해체되면서 소수민족이 분리독립하였다. 소련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은 소련과 경계를 이룬 중국 서북부 변방의 동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은 이러한 사태를 접하고 개혁개방의 속도를 조절하는 한편, 변경의 동요를 막고 국가안전을 꾀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변경에 대한 조사연구를 본격화한다.

1990년 6월 중국사회과학원은 ‘변강중심’이 제출한 ‘당대중국변강계열조사연구(當代中國邊疆系列調査硏究)’를 중점과제로 선정하였다. 이것은 중국 변경에 대한 체계적이고 연차적인 조사연구의 출발점으로서 동북공정의 기원을 이루는 사업이다. 후에 동북공정의 핵심지도자가 되는 중국사회과학원 및 ‘변강중심’의 연구원 마 따졍(馬大正)이 줄곧 이 사업을 추진한다. 먼저 그 제1기 공정으로는3 소련과 국경선을 이루고 있는 신쟝(新疆) 위구르 자치구의 변경과 안정·발전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경제가 낙후되고 불평등이 심각한 신쟝에서 소련해체 후 불만이 표출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제2기 공정은4 서남부의 윈난성(雲南省)을 대상으로 하였다. 윈난은 버마·라오스·베트남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서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국경 삼각지대의 마약제조와 그 유입문제, 다른 하나는 윈난의 26개 소수민족이 결혼이나 가정의 양태를 달리하는 사회문제이다. 그래서 1994년 윈난지역의 사회안정과 경제발전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다. 마약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변강중심’과 지역의 관련기관이 연합하여 1995년 10월 마 따졍을 책임자로 한 ‘중국변강지구 역사와 사회연구 윈난공작참’을 조직하는데, 이것은 후에 동북공정의 성립과정에서 모방된다. 이 윈난공작참에서 마약금지를 위한 대책 및 윈난 소수민족의 가정사회사 연구를 진행하였다. 제1·2기 공정의 연구는 모두 변경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의 형태로 추진된 것이다.‘국가안전’ ‘장치구안(長治久安)’을 목표로 한 이러한 국책연구는 국경문제만이 아니라 경제개발·사회문제·소수민족 관습문제 등도 포함하였다.

한편 1992년 한중수교 이

  1.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의 연구로는 송기호 「중국의 한국고대사 빼앗기 공작」, 『역사비평』 2003년 겨울호; 윤휘탁 「현대중국의 변강·민족 인식과 ‘동북공정’」, 『역사비평』 2003년 겨울호; 신형식 「중국의 동북공정의 허실」, 『백산학보』 67,2003; 이인철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과 한국의 대응전략」, 『백산학보』 67,2003; 최광식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살림 2004; 월간중앙역사탐험팀 『광개토대왕이 중국인이라고?』, 중앙일보시사미디어 2004 참조.
  2. ‘변강중심’ 「1987~2002年度 課題一覽」(www.chinaborderland.com).
  3. ‘변강중심’ 「新疆博爾塔拉蒙古自治州邊界與民族關係調査硏究」(1991) 「海南省海疆管理和南沙海域現狀調査硏究」(1992) 「新疆穩定與發展若干問題的平價與建議」(1993).
  4. ‘변강중심’ 「云南邊疆地區穩定與發展現狀及其對策」(1994) 「云南禁毒工作追踪調査硏究」(1995) 「泰國‘改植工程’與云南‘替代與式’的比較硏究」(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