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하재영 河在英
1979년 대구 출생. 2006년 『아시아』에 단편 「달팽이들」을 발표하며 등단. susanna1979@hanmail.net
고도리
1
“고도리나…… 칠까?”
나는 담요를 꺼내고 그는 화투를 꺼낸다. 나는 담요를 펼치고 그는 화투를 섞는다. 패를 돌리는 손놀림이 정확하고 민첩하다. 군더더기없는 몸짓이다. 내 손에는 청단과 홍단이 하나, 광이 세개 들려 있다. 선(先)을 잡은 그가 홍싸리를 먹고 난초까지 가져간다. 시작하자마자 어찌해볼 도리 없이 초단 비상이다. 내가 얼굴을 찡그리자 그가 슬며시 웃는다.
“돈단무심(頓斷無心)해야 잘 쳐지는 거야.”
동거를 시작하고 석달이 지나면서부터 우리는 주야장천 고도리를 쳤다. 거는 내기도 다양했다. 돈이기도, 설거지이기도 했다. 식사당번이나 청소당번을 정할 때도 고도리로 결정했다. 하지만 돈이나 설거지, 식사나 청소가 화투를 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함께 눈뜨고 함께 잠들게 되자, 그러니까 헤어질 필요가 없게 되자, 서로의 존재가치는 빛이 바랬다. 우리가 고도리를 치기 시작한 그 시점은, 상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고 화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게 된 시점과 일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내가 서로에게 질리지 않았던 건 효율적으로 시간을 죽여왔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죽일 수 있었던 건 슈퍼마켓에서 사온 삼천원짜리 하우스용 화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깔려 있던 화투와 내리치는 화투가 정확하게 맞으면서 딱 소리가 난다.
“무심해져야 해.”
그의 말을 흘려들으며 광으로 나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번 판은 저녁 내기다.
2
무심해져야 해.
그녀의 뒷모습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수학시간, 칠판 앞에는 노처녀 수학선생이 문제를 풀고 있었다. 누군가 필통을 떨어뜨려 요란한 소리가 나도, 용변을 참지 못한 아이가 뒷문으로 빠져나가도, 선생은 우리를 향한 등짝을 결코 돌리지 않았다. 와따야 리사의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라는 소설을 읽은 것은 이십대의 일이지만, 열일곱살의 내가 그 책을 알았다면 그녀의 등짝을 그렇게 묘사했을 것이다.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수학선생은 아주 못생겼다. 빈말이라도 예쁘다거나 귀엽다는 칭찬은 못 들어봤을 거라 확신할 수 있다. 서른 중반쯤 되었을까. 어쩌면 마흔이 넘었을지도. 화장기 없는 여드름투성이 얼굴, 그 얼굴을 반쯤 가려버린 돗수 높은 안경, 손질이 안된 숏커트 헤어스타일. 그 모든 게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했다. 풍덩한 월남치마와 박스티셔츠를 입은 그녀는 더 작고 말라 보였다. 티셔츠 하단에는 붉은 얼룩이 점점이 묻어 있었다. 나는 교과서에 낙서를 하며 김칫국물일까, 생각해보았다.
유년, 우리는 괴롭혀도 뒤탈이 없을 아이를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어쩌면 사람들에게는 약자를 알아보는 본능 같은 게 있는 것 아닐까. 십대가 되자 우리는 아무리 말썽을 부려도 야단치지 않을 선생, 마음껏 곯려먹어도 문제가 없는 선생을 찾아냈다. 수학시간이 되면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아무리 떠들어도 수학선생은 혼을 내기는커녕 뒤돌아보는 일조차 없었다.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그녀의 등짝에 냅다 발길질을 날리고 싶다. 그 욕망이 너무 강해 나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쥐가 날 것처럼 발이 찌릿찌릿했지만 힘을 풀지 않았다. 그러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그녀의 등짝을 발로 차버릴 것 같았으므로.
첫 수업을 하던 날, 그녀는 자기 이름을 칠판에 적은 뒤 경상도 억양이 분명한 투박하고 무뚝뚝한 어투로 말했다.
“제 이름입니다.”
그녀는 묵연히 칠판을 바라보더니 이내 이름을 지우고 문제를 적었다. 그리고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공식을 써나갔다. 다른 선생들처럼 학생을 시켜 문제를 풀게 하지도 않고, 질문을 하거나 받지도 않고, 아무 설명도 없이, 그 시간이 끝나도록 줄곧 문제만 풀었다. 그녀가 등을 돌릴 때는 다음 문제를 찾기 위해 교과서를 볼 때뿐이었다. 그때조차 시선은 교탁에 놓인 교과서를 향하느라 아이들을 보지 않았다.
스승의 날, 아이들은 수업을 하러 온 수학선생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앞 수업도 그런 식으로 농땡이친 뒤였다.
“첫사랑? 그런 거 없습니다.”
그녀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평소처럼 칠판 가득 공식을 써나갔다. 나는 궁금했다. 애인은 있을까? 없다면 만들 계획은 있을까?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은 있을까? 누군가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들은 적은? 저렇게 흉한 옷은 어디에서 구입할까? 아니 돈 주고 옷을 사본 적은 있을까? 수학선생의 머릿속은 난해한 수학공식으로 가득 차 다른 생각은 들어갈 틈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가 누군가의 언니고 애인이고 친구라는 건, 부모님이 쎅스를 한다는 것만큼이나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폭력을 휘두르는 선생들은 차고 넘쳤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애정이 없는 것으로 치자면 수학선생을 따를 자가 없으리라. 누군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어쩌면 저 선생, 아이들에게 지독한 상처를 받은 게 아닐까. 그리하여 아이들을 미워하다, 미워하다, 미워하다, 종국엔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게 된 것은 아닐까. 수학시간 내내 나는 두가지 욕망 사이에서 고민했다. 앙다문 입술 같은 저 모진 등짝을 발로 차주고 싶다. 혹은 그녀처럼 완강한, 결코 열리지 않을 문과 같은 등짝을 가지고 싶다.
모두 수학선생을 무시했다. 학교식당에서 그녀는 동료교사들과 떨어져 혼자 밥을 먹었다. 학생들은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았다. 나는 수학선생이 그 모든 냉대와 경멸에도 상처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타인에게 무관심한 그녀가 진정한 승자라는 것도. 나는 사람들이 그녀를 따돌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을 따돌리는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가 홀대받을수록 존경심은 커졌다.
어느날 방송국 사람들이 학교를 방문했다. 고등학교를 찾아다니는 오락프로그램이었다. 연예인과 학생이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는 코너도 있었고, 학교 옥상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야간자율학습을 없애주세요!” 같은 이루어지지 않을 건의를 하는 코너도 있었다. 하이라이트는‘선생님을 바꿔주세요’라는 메이크오버(makeover) 코너였다. 전교생의 투표로 수학선생이 당첨되었다.
무대에 나타난 그녀는 민망할 정도로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검은 피부에 새하얀 파운데이션을 떡칠하고 두꺼운 입술에 시뻘건 립스틱을 바르다니, 메이크업 담당자는 무슨 꿍꿍이였을까.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며 커튼콜을 하는 관객처럼 열렬히 박수를 쳤다. 그러나 그 웃음과 박수에 묻어 있는 게 환호가 아니라 조소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했다. 개그맨 출신의 남자사회자는 “여러분, 선생님 너무너무 예쁘죠?”라는 얼토당토않은 질문으로 그녀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졸지에 전교생의 웃음거리로 전락한 수학선생은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의 한 점만 응시했다. 수치의 시간을 견디는 방법은 그것뿐이라는 듯.
마지막으로 초대가수의 공연이 남아 있었다. 나는 소변이 급해 그 무대를 지켜볼 수 없었다. 강당을 나와 화장실로 향하는데 수돗가에서 요란한 물소리가 들렸다. 수학선생, 가엾은 그녀는 클렌징크림도 없이 물로 화장을 씻어내느라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화장은 지워지지 않고 번지기만 했다. 얼굴은 벌건 립스틱과 시커먼 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