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장욱

이장욱 李章旭

1968년 서울 출생. 1994년 『현대문학』 시 부문으로 등단.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 『정오의 희망곡』 등이 있음. oblako@hanmail.net

 

 

고백의 제왕

 

 

고백의 제왕을 부르자.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술자리는 파장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모두들 흥이 나지 않는 표정이었다. 한 해가 지나가고 있었지만 송년회라기보다는 망년회에 가까웠다.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여기저기서 구조조정이 진행중이었다. 언제나 선량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어주던 3기 회장 K는 암에 걸려서 모임에 나오지 못했다. 4기 회장 S는 시의원에 출마한다고 동분서주하느라 나오지 않았다. 대학시절부터 뭇 동료들을 설레게 만들었던 홍일점J와 그녀의 남편 H는 필리핀으로 아예 이민을 떠났다. 아이 교육을 위해서라고 했다.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밤이었고 제법 소담한 눈송이였다. 하지만 아무도 감상을 표하지 않았다. 대학시절 소설을 써서 교내 문학상까지 받은 적이 있는 김(金)만이 턱에 손을 괴고 창밖에 시선을 두고 있을 뿐이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강(姜)과 박(朴)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상사 품평에서 내년의 부동산 전망, 애들 교육문제에 이르기까지 맥락없는 화제가 이어졌다. 나머지는 맥주잔을 홀짝거리며 둘의 얘기를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창밖 골목에서 복사집 주인이 셔터를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살집이 만만치 않은데다 우락부락한 얼굴이어서 겨우 두어평이나 될 만한 공간에 서서 복사를 하는 모습이 어울리지 않던 사람이었다. 스모선수라고 해도 믿을 만한 외모를 갖고 있었지만 그는 좁디좁은 곳에 서서 하루종일 복사만 해댔다. 허리를 펼 때 보니 몸이 더 비대해진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누군가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젠 대학가도 옛날 대학가가 아니야, 애들이 학점밖에 모른다잖아.

요즘엔 교수들 평가까지 한다니 말 다했지.

뭘, 그래도 평가는 해야지. 교수들이 철밥통이야?

에이, 그래도 그렇지. 어이, 강사 선생, 어때? 요즘 애들이 강사 나부랭이 얘기를 듣긴 듣나?

시간강사 생활을 접고 최근에 고깃집을 연 김의 얼굴을 바라보며 누군가 물었다. 듣긴 멀. 김이 짧게 대꾸하자 다른 누군가가 덧붙였다. 하긴, 넌 고깃집 분위기가 더 어울려.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맥없이 흩어졌다.

그리고 또 침묵이 시작되었다. 연말이면 송년회를 해온 우리는 대학시절 서양사 동아리의 멤버들이었다. 곧 회사를 때려치울 거라는 강(姜)이 잠시 호기로운 목소리를 냈을 뿐 나머지는 하나마나한 얘기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변두리 대학가의 호프집에는 손님이 없었다. 벽에 걸린 텔레비전에서는 연말 가요제가 열리고 있었다. 가수왕은 누가 되나. 누군가 중얼거렸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임에 나오는 머릿수는 서른줄 후반에 접어들면서 점점 줄어들었다. 올해는 나를 포함해서 겨우 여섯만이 출석했다.

약속시간에 맞춰 출석한 녀석들도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마지막 날에 송년회를 하는 모임이 세상에 어딨나? 보험회사에 다니는 권(權)이 피곤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하며 추임새를 넣은 것은 출판사를 전전하는 최(崔)였다. 몇몇이 따라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차피 오래지 않아 파장일 모임이었다. 누군가 이민 간 H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아니, 그 새끼는 이민을 가려면 회비를 내놓고 가야지, 그걸 갖고 날라?

H는 모임의 총무였고, 우리는 매년 그의 통장으로 회비를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H는 환송회도 없이 나에게만 전화로 이민 사실을 통보했다. 나, 이민 간다. 이민? 어디로? 응, 필리핀. 그거 은퇴이민 아니냐? 뭐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H는 얼버무렸다. 요즘엔 마흔도 되기 전에 소위 은퇴이민을 가는 사람이 있다더니 H가 바로 그랬다. H의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때는 H가 관리하던 회비에 대해서는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백만원이 조금 넘을 정도의 소액이긴 했지만 어쨌든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 새끼, 백만원 갖고 잘도 살겠다.

백만원이면 새꺄, 필리핀 운전수랑 식모 서너달 월급은 되겠다.

이민자들 유치한다고 제도 잘 만들어놨지, 영어 쓰지, 물가 싸지, 뭘 바래?

웬만하면 백평짜리 집에 산다면서?

얼만데?

H에 대한 화제는 곧 아파트 시세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아마도 정치 얘기로 넘어간 후 마지막에는 건강 얘기가 시작될 것이다. 눈 내리는 연말이었고, 망년회였고,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고, 또 한 해가 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그렇게 말한 것이다.

고백의 제왕을 부르자,라고.

 

고백의 제왕?

아…… 그, 고백의 제왕?

그렇지. 녀석이 있었지. 언제부터 모임에 안 나온 거지?

이봐, 고백의 제왕은 우리 모임에 나온 적이 없다구.

아, 아, 그렇지. 나올 리가 없지, 왕따가. 하하.

모두들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불콰해진 얼굴들에 어쩐지 활기가 돌았다. 이제야 뭔가 흥미로운 얘기가 나올 것 같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래…… 나한테 번호가 있던가?

권이 주섬주섬 휴대전화를 꺼내 엄지손가락으로 자판을 누르기 시작했다. 삑삑 소리가 흘러나오자 몇몇도 기계적으로 제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없는데? 누구, 아는 사람 없나?

권이 고개를 휘휘 돌리며 좌중을 살폈지만 아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J가 고백의 제왕하고 친하지 않았나?

나 참,J는 필리핀으로 떴다니까.

아아, 그렇지.

권이 이마를 쳤다.

아, 있다. 고백의 제왕.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순간 정적이 찾아들었다. 모두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스쳐가고 있을 것이었다. 고백의 제왕을 호출하면 고백의 제왕은 곧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왜냐하면, 고백의 제왕은 그답게 또 무언가 고백을 해야만 할 테니까. 그것이 제왕의 본모습이니까. 하지만 정말? 한 해의 마지막 날, 모교 앞의 술집으로, 고백의 제왕을? 우리는 자못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고백의 제왕이라는 것은 곽(郭)의 별명이었다. 동아리의 신입생 엠티 때부터 그런 별명이 붙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녀석은 그리 눈에 뜨이는 인상이 아니었지만 자세히 보면 특이한 데가 있었다. 남방 계통의 둥근 두상에 눈이 컸으나 두 눈의 균형이 좀 어긋나 보였다. 키는 평균치였지만 어깨가 좁았고, 말이 많지는 않았어도 목소리는 뭔가에 긁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딘지 친근감이 들지 않는 인상이라고 할까. 하지만 우리는 대학생활을 갓 시작한 새내기들이었고, 무엇보다도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관대했다.

서양사연구회답게 엠티 첫날의 저녁답까지는 근세 유럽사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중세 연금술에서 르네쌍스에 이르기까지 선배들의 현학적인 논쟁에 신입생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두어달 뒤부터는 산업혁명에서 프랑스혁명까지를, 그 뒤로는 20세기 전쟁사를 공부할 예정이었다. 토론을 마친 후 우리는 대학생답게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강변에 나가 소주를 마시고, 밤이 늦어서야 다시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넓고 휑한 방에 모두가 둘러앉았을 때 누군가 진실게임을 제안했다. 몇몇이 찬동을 표하자 곧바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간단한 놀이였다. 소주병을 휙 돌려 술래를 정하고, 술래는 질문에 따라 진실하게 고백을 해야 했다. 질문은 은밀한 것일수록 좋았지만 질문도 대답도 신입생들답게 아기자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 키스는 언제? 남자친구는 몇명이나 있었나? 가장 괴로웠을 때는? 지금까지 한 일 중 가장 나쁜 일은?

모두들 얼굴을 붉히며 고백을 시작했다. 중학교 때 선생님을 짝사랑했다거나, 현재 남자친구가 없지만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만들 예정이라거나, 고등학교 때 보충수업을 빠지고 아버지 주머니에서 슬쩍한 돈으로 오락실을 드나들었다거나, 그런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얼마 전 미팅에서 만난 여학생과 키스를 할 예정이라고 고백한 동료는 좌중의 웃음과 함께 가벼운 야유를 받았다. 자정을 넘기자 모두들 흥겨워졌다.

그때 소주병이 빙글빙글 돌다가 정지했다. 소주병은 곽을 가리켰다. 곽은 저녁 내내 별로 말이 없던 동기 중 하나였다. 곽이 일어나자마자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첫경험은 있나요? 있다면 언제? 까르르 웃음이 흩어졌다. 짓궂긴 했지만 상투적인 질문이었다. 에이, 그건 아까도 나왔던 질문인데? 누군가 질문자에게 가볍게 항의했지만 이미 모두의 시선이 곽에게 쏠린 뒤였다. 곽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곽에 대한 우리 모두의 기억이 시작되던 순간이었다.

아, 아, 처, 첫경험이라면, 주, 중학교 3학년 때입니다.

환성이 터졌다. 와, 누구랑? 어디서? 곽이 더듬더듬 고백을 계속했다.

주, 중학교 때 집에서 식당을 했어요. 하, 함바집이었는데, 근처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 밥 대주는 일이었습니다. 삼치구이가 인기였고요. 두툼하고 신선한 생선을 썼기 때문에 맛이 최고였는데……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중에 곱상한 분이 있었어요.

모두들 숨을 죽였다. 더듬더듬 말을 시작했지만 곽은 뜻밖에 달변이었다. 모두들 이야기에 몰입했다. 세세한 데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곽의 고백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어느날 밤 곽은 식당에 남아 혼자 일하고 있는 아주머니를 돕게 되었다고 한다. 밀린 설거지를 하고 내일 쓸 식재료들을 다듬어두는 일이었다. 무와 대파 등속을 썰어놓고 털 뽑힌 닭을 솥에 넣어 고느라 주방은 무덥고 어지러웠다. 초복이었다. 곽은 후끈 달아오른 주방에서 아주머니를 도와 일하다가 아주머니의 투실투실한 허벅지를 보게 된다. 땀을 닦는 아주머니의 젖가슴이 흔들리는 걸 곁눈질한 것은 물론이다. 솥 안에서는 중닭 여남은마리가 펄펄 끓고 있었다. 주방의 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 어느 결에 곽의 손은 곽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였다. 곽의 손이 아주머니의 허벅지에 닿은 것이 먼저였는지 아주머니의 손이 곽의 사타구니에 닿은 것이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곽과 아주머니는 어느새 엉켜 있었다…… 그런 내용이었다.

생각해보면 화장실 낙서에서나 볼 만한 내용이었지만, 그때 우리는 전혀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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