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진초 金眞初

1955년 경기 송추 출생. 1997년 『한국소설』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프로스트의 목걸이』가 있음. yoondangk@hanmail.net

 

 

고수 먹는 여인

 

 

왜 갑자기 여길 오고 싶었을까? 까마득히 잊고 있던 이곳이 갑자기 생각난 건 노파의 쪽머리 때문이었을까, 비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간밤의 꿈 때문이었을까. 며칠 동안 녹을 새 없이 쌓인 눈이 다져지면서 길이 얼어붙어 발을 내딛기가 조심스러웠다. 서울 언저리라고는 해도 산세가 깊은 마을엔 행인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 초입으로 꺾어들자 제일 먼저 가겟집이 눈에 들어왔다. 壽福商店. 거기 그 자리에 이름도 바뀌지 않은 채 서 있는 가겟집이 잠시 걸음을 멈추게 했다. 아직 그대로 있구나, 집들도 오솔길도 소나무들도. 삼십년 전 마나님과 엄마의 마을은 옛 모습 그대로 짧은 겨울 햇살이 만드는 설핏한 산그늘 속에 잠겨들고 있었다.

며칠 전, 아침을 굶은 것도 아닌데 왠지 허기가 져 이른 점심을 먹고 난 후였다. 햇살이 설 전과는 사뭇 달라 보여 차 한잔을 들고 베란다에서 해바라기를 하는데, 앞동(棟) 쪽으로 화사한 한복 차림에 조바위까지 쓴 자그마한 노파가 지나갔다. 베란다 문을 열고 좀더 자세히 보았다. 조바위 아래로 드러난 쪽에 눈길이 멈췄다. 숱이 적어 가까스로 튼 작은 쪽을 가로지르는 누르스름한 빛깔. 금비녀.

마을에서 금비녀를 한 사람은 기와집 마나님 딱 한사람이었다. 다른 여자들은 고작해야 은비녀였고 보통은 나무비녀였다. 반듯한 앞가르마에 머리카락 한올 흐트러지지 않게 동백기름을 바르고 빤빤하게 빗어서 쪽을 튼 마나님은 머리숱도 많아서 쪽머리가 아주 잘 어울렸다. 게다가 칠보 장식이 붙은 금비녀까지…… 머리를 빗을 때마다 신세타령을 하던 엄마는 어느날 장에 갔다가 파마를 해버리고 말았다. 무용지물이 된 엄마의 은비녀는 한동안 경대 서랍에 모셔져 있다가 쌍가락지로 변해 손가락으로 자리를 옮겼고.

가게채는 소년 혼자 지키고 있었다. 아마도 이 집 손자가 아닐까 싶다. 난로 위 양푼에선 보일 듯 말 듯 김이 올랐다. 저거 하나 마실까? 나는 캔커피를 가리켰다. 중탕한 것이라서 그런지 마시기 적당하게 따듯했다. 아끼듯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에구머니나!”

누군가 눈길에 미끄러진 것 같았다. 소년이 재빠르게 달려나갔다. 난롯가에 서 있던 나는 돌아서서 유리창 밖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머리에 싸구려 머플러를 단단히 여미고 털신을 신은 노파가 무릎을 잡고 힘겹게 일어서고 있었다. 길도 사나운데 노인네가 왜 외출을 하였을까? 노파를 부축해 일으킨 소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저만치 떨어져 있는 지팡이를 집어다 노파의 손에 쥐여주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소년이 걱정스런 빛으로 물었다.

“괜찮아. 다 와가지고 남우세스럽게…… 걱정 말고 어여 들어가.”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은 듯했다. 노파가 도망치듯 지팡이를 앞세웠다. 불안한 걸음걸이였지만 허리는 꼿꼿했다.

“아 참, 할머니. 잠깐만요.”

뭔가 중요한 게 생각났는지 소년이 노파를 불러세웠다.

“손님이 왔었어요.”

마을을 드나들자면 이 가게 앞을 거쳐야만 한다. 아마 저 노파를 찾아왔던 손님도 이 가게에 들러 수소문을 했나보다.

“손님이라니?”

“어떤 아줌마였는데…… 아, 맞다. 기와집 수양딸 같다고 우리 할머니가 그랬어요.”

“뭐이?”

“할머니가 안 계셔서 그냥 갔대요.”

순간적으로 흔들리던 표정을 감춘 채 노파는 돌아섰다.

그렇담 저분이 기와집 마나님? 그러나 기품있고 우아하던 마나님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세월의 틈, 세월이 만든 까마득한 거리의 낯섦에 나는 잠시 현기증을 느끼며, 멀어져가는 마나님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아니다. 아직 있다. 저 꼿꼿한 허리.

윤주?

길쭉하게 앞으로 빨았던 하관, 아 그래, 합죽이. 윤주의 별명은 합죽이였다. 윤주는 아이들이 뭐라고 놀리든 개의치 않았다. 야, 합죽이. 니네 아버지는 짼 붕알이라며? 붕알 병신, 붕알 병신…… 윤주는 짓궂은 아이들이 아무리 놀려대도 그저 합죽한 입 사이로 유난히 흰 이를 보이며 샐샐 웃고 지나칠 뿐이었다. 윤주는 일곱살 때쯤 우리 마을에 왔다. 그녀가 어떤 경로로 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기와집에 수양딸로 왔다는 사실밖에는. 마을에는 기와집이 오로지 정내시 댁뿐이었다.

정내시에게는 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박꽃처럼 환한 아내가 있었다. 그의 아내는 옷맵시도 좋아서 나들이를 하느라 우리집 앞을 지나칠 때면 나는 대문 밖까지 뛰쳐나가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선망의 눈빛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좇곤 했다.

차암 예쁘다.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윤이 나는 양단 한복에 자잘한 꽃무늬 배자. 배자 가장자리로 하늘거리는 하얀 여우털. 부잣집 마나님이란 저런 것이구나. 나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스르르 눈을 감고 방금 본 마나님의 입성을 내게 입혀보았다. 그러면 눈앞에 검푸른 물감이 확 뿌려졌다. 그러고는 검푸른 천에 구멍을 뚫듯 하얀 별똥이 하르르 쏟아졌다. 눈을 뜨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해가 잠시 구름에 가려진 것을. 햇빛 아래 눈을 감으면 빨간색 물감이 눈시울을 훑어내듯 진해졌다가 그늘이 지면 이내 검푸른색으로 바뀌었다. 나는 툇마루에 앉아 눈감고 있기를 좋아했다. 눈만 감으면 나를 들뜨게 하던 그 오색 빛깔의 환영. 빛깔은 햇빛이나 그늘의 농도에 따라서도 달라지지만 눈을 감는 세기에 따라서도 달라졌다. 눈만 감으면 빛깔이란 빛깔은 모두 내 차지였고 세상이 온통 화려해졌다. 누추한 우리집 살림살이도, 허구한 날 술냄새를 풍기며 눈물을 짜는 엄마도, 내가 걸친 남루한 옷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은 나는 세상 밖으로 둥둥 떠다녔다. 내 눈시울 속의 화려한 세상을 깨는 건 늘 엄마였다.

해 넘어가기 전에 어여 뜨물 거둬와.

우리집은 돼지를 키웠다. 나는 지금도 가끔 돼지우리 앞에 서 있는 꿈을 꾼다. 남들은 돼지꿈을 길몽이라고 좋아하지만 나는 돼지꿈을 꾼 후 유쾌했던 적이 별로 없다. 꿈속의 나는 어쩐 일인지 툭하면 돼지죽 주는 걸 잊어먹었다. 문득 몇끼 혹은 며칠 동안 돼지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부리나케 돼지우리로 달려가곤 했다. 돼지는 죽은 듯 꼼짝도 않고 모로 누워 있고, 나는 그런 돼지보다 엄마에게 두들겨맞을 일이 더 끔찍했다. 이런 돼지꿈을 꾼 날은 번번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도 그 비슷한 꿈을 꾼 듯하다. 돼지꿈 때문에 느닷없이 집을 나섰던 걸까?

엄마는 술만 마시면 울었다. 우는 데 진력이 나면 지나간 내 실수나 잘못을 끄집어냈다. 그 다음은 매질이었다. 부지깽이로 두들겨맞는 건 약과였다. 머리칼을 휘어잡아 엎어놓고 등을 펑펑 내리치기도 하고, 때로는 비틀거리며 닥치는 대로 걷어차다가 아구구 하면서 제풀에 넘어지기도 했다. 엄만 내가 없어지면 좋겠어? 왜 그래, 왜 그래 엄마! 참다 못한 내가 악다구니를 쓰면서 울음을 터뜨리면 엄마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방구석에 모로 쓰러졌다.

돼지 두어 마리를 키우던 우리는 집집마다 다니며 수챗구멍 앞에서 쌀뜨물을 거둬왔다. 허구한 날 술에 절어 있는 엄마 대신 쌀뜨물 거둬오는 건 당연히 내 몫이었다. 집집마다 저녁쌀을 씻고 난 무렵, 나는 뜨물 지게를 지고 마을을 돌았다. 수챗구멍 앞에는 쌀뜨물을 비롯하여 음식물 찌꺼기가 담긴 통이 하나씩 있었다. 기와집은 항상 뜨물통이 푸짐했다. 생선 대가리 따위의 음식물 찌꺼기가 그대로 뜨물통에 부어져 건더기가 퍽이나 많았다. 나는 뜨물통을 가만히 기울여 윗물을 따라 내버리고 진국을 옮겨담으면서 비린 것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기와집에 들어설 때면 왠지 주눅이 들어 나도 모르게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졌다. 요란한 장식이 붙은 우람한 대문을 밀고 들어가서 담장을 끼고 돌면 우물이 있고 그 수채 곁에 뜨물통이 있었다. 양철로 된 빈 초롱은 조금만 부딪쳐도 잔망스런 소리를 냈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어깨를 기울여 초롱 손잡이를 한쪽씩 잡고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부엌문이 벌컥 열려도 모르는 척 뜨물을 옮겨담았다. 꼬마아줌마가 문지방을 넘을 때는 그러는 게 옳았으니까. 기와집에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식모가 있었다. 그 식모를 사람들은 꼬마아줌마라고 불렀다. 그녀는 난쟁이였다. 꼬마아줌마는 다리가 짧아서 부엌 문지방을 넘을 때마다 엉덩이가 심하게 실룩거렸다. 문지방에 가랑이가 빠듯이 걸칠 지경이었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하체가 짧고 안짱다리인 그녀는 넘어지기도 잘했다. 하지만 그녀는 손끝이 맵고 바지런해서 주인 마나님은 물론 드나드는 사람들에게도 늘 칭찬을 들었다.

지게를 지고 일어서는데 꼬마아줌마가 아닌 낯선 여자아이가 불쑥 나타났다. 여자아이의 손에는 노란 양은주전자가 들려 있었다. 못 보던 앤데 누구지, 손님인가?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여자아이의 눈은 초승달이 되었다. 숫기도 좋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눈웃음을 치고. 나는 음식찌꺼기를 거두러 다니는 것이 창피해서 그 아이의 미소를 피하고 말았다.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허둥댈수록 출렁거리는 초롱 때문에 걸음이 더뎌졌다. 대문 문지방을 넘으면서 결국은 뜨물에 옷을 적시고 말았다.

언 밥에 물을 잔뜩 넣고 끓인 멀건 죽과 간장 한 종지. 저녁 밥상 앞의 엄마는 또 술생각이 간절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밀린 외상값 때문에 가게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외풍이 심한 방, 시린 코끝을 죽그릇이 피워내는 더운 김이 얼렀다. 간장 한 숟갈을 떠 멀건 죽에 끼얹으면서 엄마가 말했다.

기와집에 수양딸을 들였다는데 못 봤니? 나이는 어리지만 애가 아주 음전하다고 하던데.

초승달 눈이 음전한 건가? 음전이란 어감이 아무튼 칭찬인 것 같아 기분이 조금 언짢았다.

깨바가지에 짱구 마빡,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애는 웃는 모습이라도 예쁜데 나는 이게 뭐야? 자주 거울 앞에 서서 그애의 눈웃음을 흉내내었다. 기와집 마나님의 사랑을 그애에게 빼앗길 것만 같아 불안하기까지 했다. 기와집 마나님은 뜨물을 가지러 가는 내게 가끔 손짓을 했다. 가까이 다가가면 눈깔사탕이나 유과를 말없이 쥐여줬다. 어쩌면 그 맛 때문에 군소리 없이 뜨물을 거두러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늘 그런 건 아니었다. 때로 마나님은 댓돌에 우두커니 앉아 하염없이 먼산을 바라보기도 했다. 마나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