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권지예
1960년 경북 경주 출생. 1997년 『라쁠륨』으로 등단. 발표작품으로 「두 개의 꼭두각시 인형」 「상자 속의 푸른 칼」 「사라진 마녀」 「투우」 등이 있음. kjiye@hanmir.com
고요한 나날
삐용삐용삐용……
눈뜨자마자부터 벌써 세번째 듣는 소리입니다.
오늘은 석가탄신일입니다. 오늘같이 이렇게 비가 살풋 오는 휴일이면 앰뷸런스 소리가 더욱 극성을 떱니다.
사고 후 앰뷸런스에 실려 이곳 응급쎈터로 온 지 한달이란 시간이 흘러버렸군요. 아침을 꿈꾸지 않는 서른 번의 밤들이 흐른 거죠. 새날을 여는 아침은 내게 끔찍했거든요. 척추를 관통하며 사지로 뻗어나가는 저린 통증. 뒷목과 머리통을 짓누르는 무거운 압통. 눈을 뜨면 내 몸의 아픔은 나를 일깨워주었죠. 넌 나와 함께 여전히 살아 있어. 내 몸 구석구석을 점령한 악령 같은 고통이 잠들기 전까지 하루종일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붙을 걸 생각하면 아침에 눈뜨기가 싫었어요.
아침이면 휠체어를 타고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가 용변을 보고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곤 했죠. 그러고는 익숙하지 않은 내 얼굴에 잠시 치를 떨었어요. 사고 당시에 찢어져 응급실에서 급히 꿰맨 왼쪽 뺨의 Z 모양의 깊은 상흔과 살점이 떨어져나간 콧마루. 주홍글자 A도 아닌 이 Z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곰곰 생각해보곤 합니다. 그리곤 양치컵에 가득 물을 받아 주머니 속의 동전지갑을 엽니다. 그 안엔 간호사가 아침마다 놓고 가는 하루치의 투약봉지에서 날마다 빼낸 입원일수만큼의 푸른색 잘덴이 들어 있죠. 그때 어김없이 바깥에서 병간을 맡은 어머니나 언니가 문을 두드립니다. 뭐 도와줄 거 없니? 난 그만 동전지갑을 닫아버립니다. 그러곤 다리의 깁스라도 풀어서 내 스스로 화장실 거동이라도 할 수 있을 때까지 잠시 고통과의 결별을 유보하자고 마음먹곤 했습니다.
오늘이 바로 오른쪽 다리의 깁스를 푸는 날입니다.
“조루야. 그래, 오늘 공구리한 거 내뻔지는겨? 어이구 션하겄네.”
용자씨가 나를 돌아보며 느려터지게 말문을 엽니다. 용자씨는 내 옆침대의 뇌수술을 받은 사십대 후반의 육덕 좋은 충청도 여인입니다. 이 여인의 별명은 ‘미륵부처’. 언젠가 그녀의 계모임 친구들인지 한떼의 여인네들이 고향에서 단체로 문병 와서 “머리 깎구 그러구 앉았으니 뚜껑 깨진 미륵부처가 따루 웂네!” 해서 병실 식구들이 한바탕 웃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이고 참, 조로래니까! 쾌걸 조로도 몰러? 조루는 뭔 조루. 조루는 거시기 뭐이냐, 사내들 물총이 말 안 들을 때가 조루지. 그라고 공구린 뭔 공구리. 기부스!”
옥선씨가 톡 나서서 한마디 합니다. 그 소리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립니다. 하지만 웃고 있는 옥선씨의 부푼 눈자위가 붉습니다. 어젯밤 막내딸 때문에 또 속을 끓이며 몰래 울다 잠든 게 분명합니다. 여걸 조로(Zorro). 언젠가 병실의 누군가가 내게 붙여준 별명입니다. 내 얼굴의 Z 모양의 흉터를 보고 말이죠.
옥선씨 역시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올라온 올해 마흔세살 된 여인입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통에 의치인 앞니 두 개가 빠지긴 했지만 병실을 나설 때는 립스틱을 바른다든가 삭발을 가리기 위해 장밋빛 베레모를 쓰는 등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죠. 그래서 그이를 ‘장밋빛 베레모’라 부르고 있지요. 비슷한 시기에 ‘미륵부처’와 함께 중환자실에서 올라왔지만 ‘장밋빛 베레모’는 머리회전이 빠르고 기억력이나 순발력에서 단연 뛰어나요. 재바른 성격 탓으로 우리 병실의 감초 격이죠. ‘미륵부처’는 중환자실에서 올라온 지 열흘이 넘어도 스스로 대소변도 못 가리는 처지였지만 말이죠. ‘장밋빛 베레모’는 깁스한 내가 화장실에라도 갈 것 같으면 재빠르게 휠체어를 대령해 내 보호자 역할까지도 톡톡히 하곤 했답니다.
그리고 조간테스트에서도 늘 만점을 맞곤 했지요. 조간테스트란 아침 회진 때 신경외과 과장이 뇌수술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는 간단한 구두시험 같은 건데, 늘 문제의 유형이 똑같아요.
“아줌마, 100에서 7을 빼면 얼마죠?” “지금 대통령이 누군지 말해봐요” 또는 “오늘이 며칠이에요?” “지금이 아침이에요, 밤이에요?” “오늘 아침 식사에 반찬이 뭐가 나왔어요?” 항상 이런 식이에요. 그래서 그녀들의 보호자들은 눈뜨자마자 예상문제로 훈련시키는데, ‘미륵부처’는 평균 40점을 상회하는 정도거든요. 기껏 연습을 시켜도 93인 정답을 91이나 87로 대답하거나 굳이 대통령을 김영삼으로 우긴다거나 지금이 아침이 아니라 밤이라고 우겨서 모두를 김빠지게 한답니다.
그러나 ‘장밋빛 베레모’는 요지부동의 어떤 기억을 우기고 있답니다. 그럴 때마다 의사와 간호사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나갑니다. 병원 밑에 저승으로 떠나는 흰 배가 있는데 흰 옷 입은 남자들이 사람들을 꽁꽁 묶어 저승으로 팔아서 넘긴다고 우깁니다. 자신도 그만 막내딸을 돈 백팔십을 받고는 배에 실어버렸다고 괴로워합니다. 어느날엔가는 무슨 일인가로 병실에 들어온 중환자실의 남자간호사를 보고는 사시나무 떨듯이 떨면서 그러더군요, “바로 저이여.”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웃고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자 그 며칠 후엔 휠체어에 탄 저를 데리고 기어이 흰 배를 찾아내서 보여주고야 말겠다고 온 병원을 미친 듯 돌아다니곤 했답니다. “나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참다 못해 말했어요. 그런데 어제 아침 의사가 물었어요. “아줌마, 병원 밑에 흰 배가 와 있죠?” 그러니까 “으미, 제가 꿈을 꿨던 모양여요.” 그러며 결국 고개를 숙여버리더군요. 의사가 나가고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며 “이제 됐어요. 이제 퇴원하게 됐네.” 그러자 그녀는, “그럼 으쪄. 그렇게라도 생각혀야지. 그렇게라도 질끈 속고 살어야지. 쎄 빠지게 병원비 대는 애들 아부지를 봐서락도…… 그려, 그런 기억이 뭔 대수여. 난 이렇게 숨쉬고 살아 있는데…… 그러면 디?지.” 그러나 그 말을 하는 그녀의 얼굴은 참 망연해 보였습니다.
“그 사고에 병신 안되기 만분 다행이라. 처음보다사 얼굴도 마이 좋아졌다. 그캐도 처음 볼 때사 처자가 얼굴이 저래 우얄꼬 싶던데……”
안동 할머니가 한마디 거듭니다.
‘장밋빛 베레모’ 옆침대에 계시는 당뇨합병증으로 오른쪽 발목을 절단한 칠순 할머니입니다. 안동에서 올라왔다는 살빛이 희고 기골이 장대한 이 할머니는 양반가의 종갓집 마나님의 풍모를 가졌습니다. 한동안 주무실 때 발이 아프다고 신음하셨어요. 발은 없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이 할머니의 별명이 뭔지 아세요? ‘각선미’랍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붕대를 요리조리 살펴보고는 보호자침대에서 아침잠을 즐기는 며느리를 깨워 붕대를 새로 감게 하는 것입니다. 너무 바짝 맸다, 어째 이리 맵시가 없냐, 끝이 동그스름해야지 너무 뭉툭하지 않냐, 하며 타박을 하십니다. 절구공이처럼 뭉툭하게 잘린 살덩이를 놓고 아침부터 실랑이를 벌이지요. 그러면 며느리는 옛날 교련시간에 선생님 앞에서 붕대 감는 연습하듯 시어머니의 다리를 이리 싸매고 저리 싸매느라 진땀깨나 흘리지요. 그러면 할머니는 장갑에 손가락이 제대로 들어갔나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확인하듯, 금방 붕대로 친친 싸맨 다리를 살살 돌려보거나, 힘차게 꺼떡꺼떡 들며 아침체조를 하십니다. 붕대 감은 그 뭉툭한 다리는 마치 거대한 누에 한마리가 고개를 들어 뽕잎을 따려는 포즈와 닮아 있답니다.
이 병실엔 나를 포함해 여섯명의 환자들이 있어요. 나머진 두명의 중풍환자입니다.
내 맞은편 침상엔 간병인이 딸린 중증의 중풍환자 할머니가 계신데, 말도 못하고 똥오줌까지 받아내는, 식물처럼 시들어가는 할머니죠. 분뇨냄새를 병실 가득 풍기는 통에 처음 한동안은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은 코가 많이 무뎌진 것 같아요. 이불을 걷어내고 기저귀를 갈아줄 때 어쩌다 세운 무릎 사이로 노인네의 치모 빠진 어두운 구멍이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