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공선옥 문학은 어느만큼 와 있는가

장편소설 『수수밭으로 오세요』

 

 

임규찬 林奎燦

문학평론가, 성공회대 교수. 평론집으로 『왔던 길, 가는 길 사이에서』 『작품과 시간』 등이 있음. kclim@mail.s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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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시대의 바람직한 문학을 이야기하라면 여전히 ‘리얼리즘’이나 ‘민족문학’을 내밀며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내파를 되뇌일 수밖에 없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것도 자꾸 속내로만 안다짐하는 식이다. 그 증상은 비교적 젊은 작가들을 만날 때면 더 심해진다. 그래서인지 한 사람의 평론가로서 뭔가 아귀가 맞는 듯한 작가를 만나면 왠지 힘이 솟는다. 내게 있어 공선옥(孔善玉)은 그렇게 ‘귀한’ 작가이다. 무엇보다 80년대와 90년대의 문학적 간극을 상기할 때 9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펼쳐보인 그녀의 활약은 자못 놀라웠다.80년대 민중문학에서 보여지는 자연주의적 도식성이나 과도한 관념성의 이런저런 폐단을 시원스레 돌파했을 뿐더러 90년대 이후의 진부한 후일담이나 민중의 생활현실과 담을 쌓는 유행적 경향과도 명백히 궤를 달리했다.

‘예외적일 만큼 귀한 존재’이기에 특별하게 감싸안으려는 우호적인 평가 또한 많았다. 가령 “세련의 포즈와 인위적인 기교의 문학이 우세한 현시점에서 공선옥의 문학은 진짜배기문학의 당당함을 증거하고 있다. 그 당당함은 오로지 삶과 맞장뜨는 문학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당당함이며 솔직과 정직의 태도로 작품을 쓰려는 작가가 보여줄 수 있는 당당함이다. 공선옥 문학의 거친 활력과 활기는 참으로 아름다운 매력이다”1와 같은 파악이나,“7,80년대 민중문학의 가장 높은 성취인 ‘날것 그대로의’ 생생함, 그것을 90년대 문학에서는 오직 공선옥의 문학에서밖에 맛볼 수 없다”2는 인식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깔려 있기 쉬운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성은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사실 현대로 올수록 작가의 직접적 체험보다는 체험에 대한 사변적 성찰이나 내면화 또는 추상화의 경향이 전반적으로 강해지고 실제로 주도적인 것이 되는 터라 직접체험이 가져다주는 선명성은 생각하기에 따라 굉장히 큰 몫을 차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문학과 현실의 창조적 긴장관계’에 주목하여 작품 됨됨이를 차분히 따지는 일이야말로 평범하지만 가장 날카로운 비평임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것이 작가에 대한 제대로 된 대접일 것이다. 결국 공선옥이 산출해낸 작품들, 그 작품들의 진전과 변화, 그 성공과 실패에 대한 동시적 탐색을 통해 우리 문학 속에 숨쉬는 ‘리얼리즘의 한 현장’을 실감해보고 싶고, 그렇게 공선옥과 새로이 만나보고 싶은 것이다.

공선옥도 등단한 지 어느덧 십수년이 흐른지라 그 세월만큼 그녀가 산출해놓은 작품량도 만만찮다. 첫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창작과비평사 1994)와 이후 『내 생의 알리바이』(창작과비평사 1998) 『멋진 한세상』(창작과비평사 2002)에 쌓여진 중·단편만도 30편이 넘고, 또 장편으로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삼신각 1993) 『시절들』(문예마당 1996) 『수수밭으로 오세요』(여성신문사 2001) 『붉은 포대기』(삼신각 2003)가, 산문집으로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창작과비평사 2000) 『마흔에 길을 나서다』(월간말 2003) 등이 있어 공선옥의 문학도 이제 하나의 숲을 이룬 듯 자못 울창하다.

그런데 이렇게 펼쳐놓은 공선옥의 작품들에서 우리는 몇가지 주목할 사항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에도 재차 체험한 바이지만 등단 초에 발표한 「목마른 계절」(『피어라 수선화』)은 지금의 어떤 작품과 견줘도 여전히 손색없으며, 그 이후의 좋은 단편들, 예컨대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타관 사람」(『내 생의 알리바이』) 「홀로어멈」 「한데서 울다」(『멋진 한세상』)까지 함께 묶어놓고 보면 공선옥의 문학적 역량에 깊은 신뢰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긴장이 덜한 작품들을 계속 내는”3 우려스러운 일이 지속되고 있음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또한 지금까지 공선옥 문학의 성과는 단편에서 나왔지 아직 장편에까지 이른 것은 아니다. 아울러 공선옥 문학의 한 특색이라 할 수 있는 자전(自傳)의 문학적 변용이 실제 그 성취도에서는 편차가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재나 주제 등을 고려하여 문학적 진전과 변화를 중심에 놓고 보았을 때, 우선 첫 작품집 『피어라 수선화』 이후 광주 이야기에서 서서히 벗어났다는 점이 눈에 띈다. 대신 첫 작품집에서 『내 생의 알리바이』 『멋진 한세상』으로 이어지는 시기의 주된 경향은 한마디로 ‘억척어멈’ ‘홀로어멈’ 씨리즈라 할 수 있다. 이들 소설집에서는 광주 이야기를 서서히 접고 모성에 관한 이야기로 집중되면서, 새로이 생태주의적 사유가 깊어지고 있음이 포착된다. 가장 근래의 모습은 『멋진 한세상』에서 일부(「그것은 인생」 「정처 없는 이 발길」) 등장하여 장편 『붉은 포대기』를 거쳐 연작소설 『유랑가족』4에서 전면화되는 뿌리뽑힌 극빈층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의 공선옥 문학이 어디에 자리해 있고 또 무엇을 겨냥하고 있느냐는 두 산문집이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가 모성 이야기와 생태주의적 사유를 짙게 드러내고 있는 반면, 『마흔에 길을 나서다』는 빈곤층의 삶과 세상살이에 대한 훌륭한 취재보고서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하면 하나의 분기점을 이루고 있는 장편 『수수밭으로 오세요』에 자연 눈길이 머문다. 그것은 이 작품이 “광주 이야기에서 거둔 성취를 바탕으로 생태주의적 사유와 실천, 계급간의 입장 차이, 남성/여성 그리고 여성/모성의 미묘한 차이와 갈등 등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결합”5한 작품이라 공선옥 문학의 성취를 작품 자체로 가늠해볼 수 있고, 또다른 작품과 관련해서도 이모저모 따져볼 수 있는 좋은 비교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장편에 대한 아쉬움까지 생각하면 단편의 성취와 맞먹을 만한 수준을 이 장편이 과연 보여준 것인가도 흥밋거리다. 아울러 가장 최근에 작가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빈곤층과 관련해서도 이 작품은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해주고 있어서 공선옥의 현단계를 진단할

  1. 양진오 「억척어미의 여성성, 가난과 마주하는 문학」, 공선옥 소설집 『멋진 한세상』, 창작과비평사 2002,297면.
  2. 신승엽 「벗어날 수 없는 일탈, 머무를 수 없는 定住」, 『창작과비평』 1999년 여름호 65면.
  3. 김영희 「근대체험과 여성」, 『창작과비평』 1995년 가을호 91면.
  4. 『실천문학』 2002년 봄호부터 2003년 봄호까지 연재.
  5. 한기욱 「우리 시대의 사랑·성·환경 이야기」, 『창작과비평』 2003년 봄호 92면. 나아가 한기욱은 이 작품이 ‘공선옥 문학의 한 획을 긋는 역작’이며, ‘우리 시대 소설 가운데서 최상급의 성취를 이뤄낸’작품으로 고평했는데, 과연 그에 걸맞은 작품인가도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