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문학이라는 커먼즈

 

공-동적 사건의 비평을 위하여

문학이라는 커먼즈와 비평의 문제

 

 

최진석 崔眞碩

문학평론가. 저서 『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 역서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는가?』 등이 있음. vizario@gmail.com

 

 

1. ‘커먼즈’라는 문제설정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문학이 소수 엘리트의 손에 독점된 대상이 아니라 대중 전체를 향해 열려 있는 공적 자원이라는 주장에, 곧 문학은 공공의 것(the public)이자 공통의 것(the commons)이라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이 진술은 선언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으며 의제화된 당위로서 우리의 동의를 요청할 뿐이다. 긴 역사를 통해 문학이 온전히 대중의 것으로서, 대중의 말과 의식을 경유하여, 대중을 위해 창작되고 읽혔던 시대는 드물다. 문학이 소수 지배층의 유흥거리였던 고대·중세 사회는 물론이고, 대중의 등장으로 표지되는 근대사회에서도 문학은 대개 ‘고급문학’이자 ‘엘리트문학’의 범주로써 정의되어왔던 까닭이다.1 19세기 무렵에는 광범위한 독자층의 대두와 인쇄매체의 확대 및 출판시장의 형성에도 불구하고, ‘상상의 공동체’라는 개념이 나타내듯 근대문학은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국민문학’으로서 규정되어왔으며, 이는 문학이 대중적 향유보다는 근대성의 특정한 지향을 통해 조형되어왔음을 보여준다.2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대중을 향해 열려 있는 공적 자원’이라는 명제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조건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추상적 구호에 그치고 말 듯하다. 그것은 마땅히 쟁취되고 지켜져야 할 언명이지만, 언제나 불이행되고 지연되기만 하는 의심스러운 약속이었다.

왜 지금 새삼스레 이 구태의연한 명제를 들추어내는가? 사회적 지식이자 상징적 서사형식으로서 문학은 항상 사회적 조건과 의제설정에 민감하게 조응해왔다. 이 점에서 우리 시대에 생겨난 문학장의 변화 역시 이 시대의 사회변동과 긴밀히 맞물려 있음은 물론이다. 가령 최근 십여년 동안 ‘헬조선’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소외와 빈곤, 계급적 대립이 심화되었고, 세월호참사나 문화계 블랙리스트, 여성 및 소수자를 향한 혐오의 정념 등이 벌어지면서 ‘배제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공론장에 육박해 들어오는 사태가 일어났다. 우리 시대의 대중은 전통적 매체에 기대지 않은 채 직접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자 욕망한다. 마침 문단 내에서도 이러한 변동과 짝을 이루는 사건들이 터져 나왔다. 표절과 권력논쟁은 문단체제를 격렬히 진동시켜놓았고, 음성적으로 만연했던 성폭력의 가시화는 페미니즘을 비롯한 소수자의 목소리가 문학장에 적극적으로 진입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3 이 모든 과정은 아직 진행형이어서 힘겨운 토론과 협의, 투쟁의 시간들을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같은 사회적 급변에 문학장이 무감각하게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식으로든 현재 문학은 사회와 함께 급진적인 변전을 겪고 있다.

이런 조류 속에서 문학과 대중의 접속과 상호 촉발에 관한 사유 및 공적인 것으로서 문학에 관한 발화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이유는 충분하다. 곧이어 살펴보겠지만, 이는 문학과 대중, 공적인 것의 오래된 관계가 최근의 시대적 변곡에 힘입어 급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무엇보다도, ‘커먼즈’로서 문학의 위상이 새로이 정립되고 있는 이 시대에 과연 비평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응답의 요구가 제기되는 것이다. 이 글은 우리 시대 문학장의 변전을 공공성과 공통성의 의제를 통해 살펴보고, 비평의 과제를 ‘공-동성의 사건화’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는 시론적 성격을 갖는다.

 

 

2. 근대성과 문학규범: 공공성이라는 ‘탁자’의 발명

 

공적인 것, 공공의 자원으로서의 문학이란 어떤 것인가? 앞서 문학의 공공성이라는 주제가 19세기 이래 대중사회의 성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대중적’이라는 요소를 가변항으로 둘 때, 실상 문학과 공공성은 근대문학의 초기부터 지식담론의 주요 상수로 다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서양에서 근대문학의 출발점으로 간주되는 17세기 고전주의의 경우,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고대적 전범을 모방하는 것은 작품의 예술성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작가의 개성이 부각되지 않던 시기였기에, 유일무이한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목표였다. ‘미메시스’의 의미 그대로, 작품은 선행하는 모범에 대한 ‘다시 쓰기’를 가리켰던 것이다. 예컨대 장 라신(Jean Racine)이 희곡 『페드르』(Phèdre, 1677)를 썼을 때, 그는 무로부터 유를 만들어내는, 말 그대로 ‘창조’를 행한 게 아니었다. 동시대의 관객들은 페드르가 남편의 의붓아들인 이폴리트에 대한 금지된 정념에 휩싸일 것이란 줄거리를 미리 알고 있었고, 이를 극화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 또한 모르지 않았다. 라신은 이 공통의 주제를 자신의 스타일로 각색하여 선보인 것이고, 그의 작품이 현대의 고전으로 남게 된 것은 다시 쓰기의 스타일이 후대의 미적 감각을 사로잡는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4 하지만 라신 시대의 문학적 규범이 미메시스였던 한, 그의 창작은 원본적 진리의 충실한 재현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었다. 고전주의는 사적 개인의 창조성보다 공적 규범의 준수를 통한 재현의 충실성에 더 값어치를 두었던 까닭이다. 당연하게도 그 규범은 공공적(公共的)인 성격을 지녔으며, 창작과 비평의 주요한 척도로 기능했다. 고전주의적 공공성은 예술을 향유하는 소수 지배층에 국한된 당대 문화의 산물이었다.

‘창조적 예술가’라는 작가 신화의 진원지인 낭만주의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일반적으로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적 미메시스를 거부하고 창의적 개성을 미학의 근거로 제시해왔다. 독창성(originality)은 작가가 갖추어야 할 재능이자 능력의 최고 심급을 표시했다. 이는 공유되지 않는 예술작품의 특이성이며, 그래서 흔히 사회와 불화하는 고독한 작가의 이미지를 조성하는 데 기여해왔다. 하지만 낭만주의는 무엇보다도 세계관이자 세계에 대한 태도로서 폭넓게 공유되는 사회적 감정과 다름없다. 여기에는 실증 불가능한 예술의 신비에 대한 작가와 독자, 비평가의 공감이 내포되어 있으며, 이것이 낭만주의 이후 세계에 대한 근대인의 공통감각을 형성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낭만주의는 사회적·문화적 공론장이라는 지성사적 문맥에서 거론되었고, 사상사의 반열에도 올라설 수 있게 되었다.5 소수 지배층으로부터 대중 일반으로, 심미적 안목으로부터 생활감정으로 기준이 이전됨에 따라 낭만주의적 감수성이 공공성의 비평적 도마 위에 오른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그렇다면 근대 문학장에서 공공성이란 무엇을 가리켰고, 어떤 역할을 맡았는가?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에서 커피하우스나 쌀롱을 통해 나타난 공론장의 특색은 문해력(literacy)에 기반한 공동체

  1. 레이먼드 윌리엄스 『키워드』, 김성기 외 옮김, 민음사 2010, 280~82면.
  2. Benedict Anderson, Imagined Communities: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 Verso 2006, 9~38면; 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언』,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06, 43~86면. 서구의 상황을 보편화할 수는 없으나 한국이 식민지 시대에 일본을 통해 근대문학을 처음으로 경험했고, 이후의 역사에서 그것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밟았다는 점에서 일반성을 가정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문학제도론이 이를 잘 보여주는바, 1970~80년대의 민중·민족문학이 남긴 깊은 족적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이 제도권력과 엘리트주의의 문제설정을 늘 껴안은 채 성장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3. ‘정통’ 문예지의 쇠퇴와 쇄신, ‘비평 없는 문학잡지’의 창간, 비등단작가로 구성된 매체들의 탄생 등이 전자의 경우라면(장은정 「설계-비평」, 『창작과비평』 2018년 봄호), 활발하게 발표되고 있는 페미니즘 문학비평들이 후자의 사례이다(『문학과사회 하이픈』 2016년 겨울호 ‘페미니즘-비평적’, 『문학동네』 2016년 겨울호 특집 ‘페미니즘, 새로운 시작’, 『문예중앙』 2016년 겨울호 특집 ‘#여성혐오_창작’, 『창작과비평』 2017년 여름호 특집 ‘페미니즘으로 문학을 읽는다는 것’ 등등).
  4. 장 루이 아케트 『유럽 문학을 읽다』, 정장진 옮김, 고려대학교출판부 2010, 84~85면.
  5. 이사야 벌린 『낭만주의의 뿌리』, 강유원 외 옮김, 이제이북스 2005, 19~23면; 버트런드 러셀 『러셀 서양철학사』, 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2009, 제18~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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