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괴테의 세계문학론과 서구적 근대의 모험

 

임홍배 林洪培

서울대 독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다시, 세상속으로」 등이 있음.

 

 

1. ‘세계화’의 도전

 

이 시대의 구호로 통하는 ‘세계화’의 문제는 무엇보다 근대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관철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꼴롬보(C. Colombo,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래 서유럽의 경계를 넘어 팽창을 거듭해온 근대 자본주의는 오늘날 명실상부하게 세계체제로 실현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중심부 지위를 차지한 국가들의 공세는 지금처럼 주변부와의 시공간적 거리가 좁혀질수록 전면적인 양상을 띠게 마련이다. 세계화는 서구적 근대의 전지구적 보편화에 최적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다.1 그런 관점에서 서구적 모형에 따른 근대성의 한계를 지적하는 두쎌(E. Dussel)은 서구 근대문화가 애초에 계몽의 시대부터 자본주의적 합리성의 잣대로 서구 안팎의 ‘타자’를 배제하는 ‘단순화’로 치달았다고 본다.2 따라서 ‘자본주의적 합리성’ 자체를 문제삼지 않는 한 ‘미완의 계몽’을 운위하는 것도 결국 서구적 근대의 기원으로 회귀하는 꼴이 되기 쉽다. 그런가 하면 계몽적 기획의 해체를 주장하는 ‘포스트모던’의 입장 역시 다국적 문화산업으로 대변되는 첨단테크놀로지의 위세를 등에 업고 있는 점에서는 온전한 뜻의 ‘탈’근대를 지향하기는커녕 더욱 고도화된 서구중심적 근대주의의 변종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주변부 위치를 강요당하는 지역들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적 차원의 노동분업에 의한 풍요와 빈곤의 양극화 현상은 직접적인 식민지 지배의 시기에 못지않게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3 전반적인 빈곤에서는 벗어났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사회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른바 ‘구조조정’과 결부된 산업질서의 재편은 더이상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를 정당화하고, 세계화에의 맹목적인 순응은 고스란히 민중의 고통으로 전가되면서 풍요와 빈곤의 양극화를 부추기는 것이다. 그런 순응주의에 맞서 근래에 제기되는 ‘동북아 중심론’도 일방의 중심성을 내세우는 면에서는 지배의 논리를 이식하고 답습하는 데 그치기 쉽다. 세계화의 도전이 지역주의적 저항을 넘어 전지구적 시야에서의 대응을 요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오늘날 전지구적 현실과 가치로 군림하는 서구적 근대는 좀더 냉철히 인식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대체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괴테(J.W. von Goethe)의 세계문학론과 『파우스트』(Faust) 2부를 살펴보고자 한다. 괴테의 세계문학론이 ‘지구화시대의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이라는 문제의식을 선취한 핵심은 국내에서도 이미 적절히 소개된 바 있지만,4 기왕에 논의가 나온 김에 괴테의 세계문학론에서 서구적 근대의 보편성과 독일상황의 특수성이 얽혀 있는 대목들을 괴테 자신의 발언에 충실하게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괴테의 세계문학 구상이 서구적 근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이어지면서 작품의 성과로 결실된 『파우스트』 2부는 오늘의 관점에서도 서구적 근대의 비판적 인식에 풍부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2. 괴테의 세계문학론

 

아우어바흐의 견해를 빌리면, 서구 여러 나라가 중세 라틴문학의 그늘에서 벗어나 나름의 민족적 자각에 기초한 국민문학을 낳기 시작한 것은 5백년 전의 일이다.5 그러나 이 기준은 독일문학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대략 르네쌍스 무렵부터 영국ㆍ프랑스ㆍ스페인ㆍ이딸리아 등지에서는 세계문학의 고전에 드는 걸작들이 나온 반면, 독일문학은 18세기 후반의 괴테 당대에 와서야 그런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괴테 자신의 기여가 결정적이었지만 중년의 괴테만 해도 독일의 ‘민족’문학이 세계문학의 ‘고전’에 진입할 가능성에는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괴테가 그 주된 근거로 드는 것은 무엇보다 독일 역사 및 문화적 전통의 척박함이다. 알다시피 영국과 프랑스가 진작부터 근대적인 민족국가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하고 산업혁명과 프랑스대혁명을 겪은 싯점에서도 독일은 여전히 군소국가들이 난립하는 봉건사회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으며, 독일 특유의 그러한 낙후성은 괴테가 살아 있는 동안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만년의 괴테가 구상하는 세계문학은 단지 독일의 민족문학이 세계적 고전의 수준에 드느냐 마느냐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문제가 된다. 문학이 ‘인류 공동의 자산’임을 전제하는 괴테는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갈수록 여러 민족과 작가들의 문학에서 그 자산이 더욱 풍성하게 꽃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그렇지만 물론 우리 독일인들 자신이 처해 있는 편협한 환경에서 벗어나 넓은 시야를 갖지 못한다면 설익은 자만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민족들의 경우를 찾아보기를 즐겨하며, 누구에게나 그렇게 하라고 충고한다. 이제 민족문학이라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고 세계문학의 시대가 임박했으니 누구나 이 시대를 앞당기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6

 

여기서 괴테는 서구문학의 늦깎이 신세를 갓 면한 독일문학이 봉건적 낙후성에 갇혀 있는 ‘편협한’ 현실상황을 극복하려는 ‘넓은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설령 서구문학의 고전에 버금가는 작가나 작품이 나오더라도 여전히 ‘설익은 자만에 빠지기 십상’임을 경고한다. 여기에는 자국의 문학이 다른 민족의

  1. U. Beck (ed.), Die Politik der Globalisierung (Frankfurt a.M. 1998), 60면 참조.
  2. E. Dussel, Beyond Eurocentrism: The World-System and the Limits of Modernity, F. Jameson & M. Miyoshi (ed.), The Cultures of Globalization (Duke University Press 1998), 18면 이하 참조.
  3. 이에 관한 역사적 설명은 S. Amin, Die Zukunft des Weltsystems (Hamburg 1997), 17〜23면 참조
  4. 백낙청, 「지구화시대의 민족과 문학」(『내일을 여는 작가』 1997년 1-2월호); 최원식, 「문학의 귀환」(『창작과비평』 1999년 여름호); 한기욱, 「지구화시대의 세계문학」(『창작과비평』 1999년 가을호) 참조.
  5. E. Auerbach, Philologie der Weltliteratur (Frankfurt a.M. 1992), 84면 참조.
  6. J.P. Eckermann, Gespräche mit Goethe (Frankfurt a.M. 1981), 21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