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교란과 위반, 이야기의 그 무궁한 원천

은희경 『마이너리그』, 창작과비평사 2001

전경린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1·2, 생각의나무 2001

한창훈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 문학동네 2001

 

 

김은하 金銀河

문학평론가. 중앙대 강사. 주요 평론으로 「90년대 여성소설의 세 가지 유형」 등이 있음. zohar@netsgo.com

 

 

1. 삶이 상실하고 결여한 것을 인지하게 함으로써 더 나은 현실에 대한 갈망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소설은 불만의 장르이다.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갈망은 더 큰 고독을 안겨주고 현실과의 불화를 유발할 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통해 미로 같은 현실이 숨긴 길과 억압받고 황폐해진 마음의 연원을 보게 된다면 고독과 불화는 지혜가 될 수도 있다.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해서든 위로에 대한 기대 때문이든 우리가 소설을 읽는 것은 실상 의미를 얻고 그로 인해 자아의 파편성과 왜소성이라는 일상을 짓누르는 공포를 밀쳐내기 위해서인 것이다. 성찰성이 증가한 후기근대에서 개인이 다차원적인 삶과의 협상을 통해 자아를 기획하고, 세계를 재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과 달리 삶의 전통적 규준이 사라짐에 따라 혼란은 그만큼 더 격심해진 게 현실이다. 그래서 주체의 반성은 주체의 분열이 되기도 한다. 또한 후기근대의 유동하는 삶은 수많은 위험과 불안 속에서 정주를 이룰 수 없는 피로와 고통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나름의 나침반에 의지해 관찰과 사색을 통해 세계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게 아닌, 분열증과 왜소증을 앓는 후기근대적 삶속에서 분명하게 인지되는 것은 지속적으로 영혼을 잠식해 들어오는 불안이다. 은희경·전경린·한창훈은 교란과 위반의 상상력을 통해 이렇듯 현실 속에 미만해 있는 불안과 혼란을 요동하는 에너지로 역전시킨다. 과일 속에 박힌 씨앗처럼 고독 속에 틀어박혀 붕괴된 세계의 복원을 꾀하는 이들의 글쓰기는 불안과 혼돈이 새로운 지도를 짜나가는 역동적 원천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은 이야기의 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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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약속이나 한 듯 동네 사진관마다 사내아이들의 돌사진이 내걸리던 시절이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혹은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벌거벗은 사내아이들은 지금 무엇이 되어 있을까? 그들 중 누군가는 영웅이나 재력가가 되어 ‘성공시대’ 출연을 목전에 두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위계화 혹은 구별짓기라는 철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수다한 인생들은 주류가 아닌 비주류이기 쉽다. 생 혹은 인간의 급수가 사회적 지위나 재력으로 결정될 수 없다는 것은 온당하나 무기력한 항변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은희경(殷熙耕)의 『마이너리그』는 서열화의 법칙이 굳건한 사회에서 주변부에 속한 남자들에 대한 코믹하면서도 서글픈 보고서이다. 그 시작은 장대했을지 모르나, 열등생에서 별볼일 없는 중년으로 그리고 앞으로 한층 더 보잘것없는 말년을 향해 곤두박질치게 될 이 인생들은 저항적 마이너리티도 되지 못하는 오갈데없는 삼류들이다. 그들은 배수아의 주인공이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라고 외치는 대상인 메이저들, 즉 일류대 졸업장과 건강하고 늘씬한 외모, 높은 연봉과 전문직 그리고 적당한 시민의식을 두루 갖춘 부르주아 남성이 아니어서 안쓰럽기도 하지만 연민의 힘으로 끌어안기에는 꺼림칙한 대상이다.

보잘것없는 사건을 계기로 형준·조국·승주·두환은 오랜 시간 동안 마이너리그의 동료로 관계맺는다. 자신들의 인연을 악연이라 부르며 각자 자신만은 마이너가 아님을 주장하는 이들의 관계는 얕지만, 나름의 주기와 사건을 가진다. 미모의 명문여고생 소희를 향한 욕망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두환이 소희와 도주해버린 후의 열패감을 암묵적으로 공유하며 유지되던 이들의 관계는 한심하고 울적한 중년의 술친구로 시들해지다가 두환의 재등장이 계기가 되어, 마이너 탈출과 메이저로의 화려한 입성을 꿈꾸는 ‘평산 엔터테인먼트’의 동업자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들의 인연을 칡넝쿨처럼 얽어대는 것이 주류에 속하지 못한 열외집단이라는 점은 두환의 어이없는 죽음과 주류들의 합법적 사기에 의해 셋이 결국 패자부활전에서 패잔병으로 남게 된 현실에서 드러난다. 이들의 인생 여정은 결국 “삶의 여정이란 것이 사실로도 칡처럼 하잘것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17면)이라는 비애스러운 결론을 확인시켜준다. 비록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