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국내외 NGO 연구의 현단계

조효제 편역 『NGO의 시대』, 창작과비평사 2000

 

 

김호기 金晧起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에 대한 사회적·학문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초 낙선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NGO는 이미 우리사회의 유력한 사회집단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으며, 이에 부응하듯 지난해 가을에는 NGO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려는 NGO학회 또한 창립되었다. 이른바 NGO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듯하다. NGO를 우리말로 그대로 옮기면 ‘비정부조직’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비정부조직보다 시민단체라는 말이 선호되고 있다. 동일한 의미를 갖는 이 NGO와 시민단체 사이에는 어떤 뉘앙스의 차이가 없지 않은데, 시민단체 하면 주창(advocacy)의 성격이 두드러지고 NGO 하면 주창을 넘어서 써비스 제공(service delivery)까지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조효제(趙孝濟) 교수가 펴낸 『NGO의 시대』는 이런 NGO에 대한 포괄적이면서도 심층적인 연구서라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무엇보다 이 책은 NGO와 관련된 여러 이슈들을 다룬 최근의 외국 논의들을 다채롭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NGO라면 시민단체를, 시민단체라면 시민사회론을 연상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서구의 시민사회론 내지 신사회운동론과는 다른, 현장감이 풍부한 토론들을 제공한다. 최근 NGO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물론 활동가들에게 거대담론보다는 NGO가 직면한 쟁점과 과제를 다룬 논의들에 대한 갈증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이 책은 이런 요구의 상당부분을 충족시켜준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 ‘논쟁: NGO운동이 이룬 것과 못한 것’에서는 NGO운동의 공과를 둘러싼 다양한 토론을 살펴보고, 제2부 ‘흐름: 지구시민사회를 향하여’는 최근 관심을 불러모으는 지구시민사회에 대한 쟁점을 검토한다. 이어 제3부 ‘길찾기: 새로운 NGO운동을 찾아서’는 NGO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탐색하고, 마지막 제4부 ‘목소리: 현장운동의 고민과 모색’은 운동현장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견해들에 귀기울이고 있다. 이 가운데 평자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글은 지구적 공치위원회의 「새 천년과 개혁과제」, 마이클 월저의 「시민사회 구하기」,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지구화와 사회운동」인데, 이 글들은 현재 서구 NGO가 직면한 과제들을 심층적으로 해부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편역자가 현재 NGO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만큼 이 책은 세계적 수준은 물론 한국적 수준에서 NGO운동을 둘러싼 고민들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111-411이 책의 백미 가운데 하나는 편역자 서문 「참여의 예술, 변혁의 과학: 지속가능한 NGO운동의 모색」이다. 이 글은 의례적인 서문의 성격을 넘어서 우리 NGO운동의 쟁점과 과제를 세계적인 보편성 속에서 검토함으로써 NGO와 NGO운동에 대한 기왕의 국내 논의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다. 이제까지 NGO에 대한 국내 연구들은 민주화 과정에서의 시민운동의 역할, 시민단체의 활동과 이념적 성향, 그리고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시민운동론의 시각에서 다루어져왔다. NGO를 독자적인 연구대상으로 간주한다기보다는 사회운동의 하위영역으로 접근하려는 이런 연구경향은 우리 시민운동의 역사적 특수성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NGO에 대한 독자적인 분석과 탐구를 상대적으로 경시해왔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시민사회, 시민운동, 시민단체 개념이 여전히 혼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기존의 연구들이 갖는 엄밀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로 지목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NGO학은 그것이 출발점에 놓인만큼 아직 독자적인 연구방법론이나 이론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현재 NGO가 담당하는 이슈들은 편역자가 지적하듯이 거시적인 정치·경제개혁부터 가족과 ]슈얼리티 등 미시적인 생활세계에 이르기까지 ‘안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방대한 쟁점들을 포괄한다. NGO라고 하면 흔히 경실련이나 참여연대를 연상하지만, 이런 ‘종합적 NGO’는 오히려 소수이며, 지부까지 포함해 2만개가 넘는 크고 작은 ‘전문적 NGO’들이 환경·여성·인권·평화 등 다양한 개별이슈들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이런 NGO들을 경험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방법적 착상과 이론적 접근이 요구되며, 따라서 NGO학은 사회학·정치학·행정학에서의 논의를 활용해 새로운 학제간 방법론과 이론틀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시민운동론을 표방한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NGO학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저작으로 평가할 만하다.

평자가 보기에 한국 NGO운동은 최근 이중적 전환점에 놓여 있다. 그 하나가 ‘영향의 정치’에서 ‘정체성의 정치’로의 전환이라면, 다른 하나는 일국적 차원에서 세계적 차원으로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정치사회의 저발전이라는 한국적 특수성에서 비롯된 종합적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정치사회에 압박을 가하는 영향의 정치는 여전히 유효한 전략이지만, 운동 참여자들의 정체성의 변화에 주력하는 정체성의 정치는 상대적으로 경시되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정보사회의 도래와 함께 가속화되는 지구화의 확산이 세계적 차원에서의 NGO운동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여, 지구시민사회와 지구적 연대활동에 대한 관심 또한 더욱 제고될 필요가 있다. 『NGO의 시대』의 미덕은 이런 과제들의 중요성을 적극 계몽하고 그에 대한 방안들을 탐색한다는 데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NGO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는 물론 활동가들의 필독서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