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국민문학의 반어법, 재일문학의 ‘기원’

김달수의 소설을 중심으로

 

 

박광현 朴光賢

안동대 강사. 주요논문으로는 「경성제대 ‘조선어학조선문학’ 강좌 연구」 「식민지 조선에 대한 ‘국문학’의 이식과 高木市之助」 등이 있음. park-kh2000@hanmail.net

 

 

1. 서론: 디아스포라의 ‘귀환’

 

“김 선생” 하고 엄숙하게 나를 불렀다.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게 도대체 뭘까?”

“그런 걸 어찌 알아”라며 나는 화난 듯 걸어갔다.

“알고 있다면 그것 때문에 지금 당신이 울었다는 거야.”1

 

김달수(金達壽)의 소설 「쯔시마까지(對馬まで)」(1975)의 마지막에 나오는 대화 장면이다.‘현해탄’ 너머의 부산으로 ‘귀환’하지 못한 두 ‘재일(在日)’ 조선인(한국인)이 눈물을 흘리며 대마도(쯔시마 섬)에 서 있는데, 이는 바로 망향의 아픔을 안고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 더이상 다가서지 못하는 김달수(문학)의 위치이다.

한 일본 평론가의 지적처럼 일본의 전후(戰後)문학은 ‘귀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2 귀환은 ‘외지〓식민지’에서 일본열도로의 ‘내국인’의 신체적 인양(引揚)뿐만 아니라, 새로운 국민적 장소로의 정신적 귀환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런 일본의 전후문학에는 김달수에서 시작된, ‘귀환’을 성취하지 못한 재일 한국인(조선인)의 일본어 문학 즉 ‘재일문학’이 엄연히 존재한다. 김달수 문학은 귀환할 수 없는, 혹은 귀환하지 못한 데서 시작한다.‘귀환’은 소설 「대한민국에서 온 남자」(1949)나 『밀항자』(1958~63)에서처럼 정신적 도항(渡航)과도 같은 밀항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런 김달수가 역사학 잡지 『삼천리(三千里)』의 편집진과 함께 1981년 3월 20일에 고국땅을 밟는다. 그들의 방한은 ‘재일교포 수형자에 대한 관용을 청원’하기 위해서였다. 국내의 각 신문은 그들의 방문을 ‘재일 좌경 「삼천리」지 편집진 4명, 김달수씨 등 40년 만에 귀국’(『동아일보』 1981년 3월 20일자)이라는 머릿기사로 일제히 보도하였다.8일간의 체류일정 동안 당시 언론들은 그들 ‘재일’ 역사학자가 밝히는 ‘일본 속의 한국·한국문화’라는 주제에 관심을 보였다. 국사편찬위원회와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좌담회에서 강재언은 당시 모국방문의 최대성과로 “고난을 이기는 민족의 슬기에 대한 확신”을 얻은 것으로 꼽았고, 김달수는 자신의 조국에 관한 정보가 일본의 매체들에 의해 편향, 왜곡되었다고 고백(?)했다.3

그리고 몇년의 시간이 흘러 당시 일본에서 9권이나 출간된 『일본 속의 조선문화(日本の中の朝鮮文化)』(이후 전12권까지 출간)를 다이제스트한 『일본 속의 한국문화』가 조선일보사에서 출간되었다.4 1981년의 방한 이후 한국에 처음 소개된 그의 글이 ‘일본 속의 조선문화’라는 점은 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어디서 출발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1980년에 『전집』(전7권)을 출간한 소설가로서보다는, 역사학자 특히 ‘일본 속의 한국문화’ 연구자로 소개된 것이다.1988년에 장편 『태백산맥』 상·하(연구사), 그 이듬해에 소설집 『박달의 재판』(연구사)과 『현해탄』(동광출판사)이 각각 번역된 이후에야 소설가로서의 그를 만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월북작가’의 해금과 함께 그 작가들의 작품이 출판 붐을 이루던 1980년대 말의 문학계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민족·민중문학 진영이 그의 문학을 ‘해금작가’의 문학과 동일한 선상에서 다루기 시작하면서 김달수는 분단조국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형상화한 ‘민중과 민중문학에 대하여 하나의 예술적 모범’5을 제시한 작가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한민족 공동체론’(혹은 네트워크론)이 대두되기 시작한 1990년대 들어서 그의 문학은 ‘해외동포문학’ 혹은 ‘재외한국인문학’의 범주에서 재일문학의 ‘기원’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편 1990년대는 김달수가 생애의 후반부에 진력해온 ‘일본 속의 한국문화’라는 테마가 다시금 한국의 독자에게 다가온 시기이기도 했다. 번역된 그의 소설들은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상황이었던 반면, 오문영·김일행 편역의 『일본열도에 흐르는 한국혼』(동아일보사 1993년)과 배석주 번역의 『일본 속의 한국문화 유적을 찾아서』(전3권, 대원사 1995~1999) 등이 차례로 출간된 것이다.

그렇게 김달수는 한국사회로 ‘귀환’되어 왔다. 그러나 김달수의 일본어 원작과 번역본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차가 존재한다.6 홍기삼(洪起三)은 재일문학을 다루면서 ‘재일’작가들에게서 보이는 “텍스트로서 과거와 그들의 실제적 삶이 선택한 현재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7함을 지적한 바 있다. 특히 김달수의 문학에서 ‘재일’이라는 현재의 장소는 과거라는 시간의 구속과 자유 사이에서 갈등을 되풀이하는 곳이다.

 

 

2. ‘복원〓귀환’으로서의 ‘전후’

 

1980년대 일본의 포스트모던적 실천은 주체와 장소의 동일성보다는 장소의 제약을 넘어서는 것이 인간의 자유라는 기본적인 사고에 충실하였는데, 이는 일본문화의 중심기제로 여겨지던 많은 것들을 동요시켰다.8 그런 움직임에 대한 반작용으로 주체와 장소 사이의 동일성을 강조하는 1990년대 신민족주의의 대두는 주체의 위기를 의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주체의 위기론에 대한 대항담론으로써 재일문학의 성격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일본사회의 다문화주의, 탈식민주의, 크리올(creole, 혼성)주의의 가능성을 진단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더불어 한일 양국 모두가 재일문학의 국적에 관한 오래 묵은 논의를 거두고 그것이 탈근대 경험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중시하며 양국의 국민문학론에 대한 관계를 새롭게 모색하기 시작했다.

카와무라 미나또(川村湊)는,“단순히 민족적 소수자의 ‘특수’한 문학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일본근대문학’이라는 환상의 문학사를 상대화하는 거의 유일한 계기로 재일문학을 상정하였다. 그리고 그는 ‘누가’ ‘어떤 언어로’ ‘무엇을’이라는 세 가지 문제범주에서 재일문학을 규정하고 “재일 조선인의 놓여진 주체적 혹은 사회적 상황과의 관계”를 재일문학 성립의 중요한 요소로 여겼다.9 그러나 그의 논의는 ‘재일’ 자체를 전후(戰後)라는 시간과 일본이라는 장소에 종속시키려는 오류를 보이고 있다. 최근의 저서에서 그는 “그것(장르의 고정화·경직화를 파괴하는 것―인용자)은 이미 ‘재일조선인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모든 ‘재일’하는 자들에 의한 ‘일본어’ 문학 중의 하나라고 보아야”10한다고 주장하는데, 거기에는 ‘전후(문학)’가 끝났다고 일찍이 선언하고 싶은 초조함과 조급함이 배어 있다. ‘재일’이란 말에는 이미 어떤 형태로든 식민주의 기억을 통해 주체와 장소의 긴장관계가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1945년 8월 해방부터 이듬해 ‘10월봉기’까지를 다룬 『태백산맥』에서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의 기자로 취직되어 일본에서 역이민(逆移民)해온 서경태가 자신을 비롯한 식민지 지배하의 조선인을 ‘국경을 잃어버린 사람’(상권 191면)이라고 규정했듯이, 민족해방은 이산의 역사를 접고 ‘국경’을 복원하

  1. 「對馬まで」, 『金達壽小說全集』(이하 『全集』) 3, 筑摩書房1980년,216면. 이후 인용하는 작품의 본문 면수는 번역이 있는 경우 번역서의 면수를 표기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전집』의 면수로 표기한다.
  2. 川村湊 『戰後文學を問う』, 岩波書店 1995,1면.
  3. 좌담회 「일본 속의 한국·한국문화」, 『신동아』 1981년 5월호,119면.
  4. 조선일보사 ‘신서’ 제1권으로 출간된 이 책은 김달수 자신의 번역인지 편집자의 번역인지 알 수 없으나, 그 후속이 간행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신서’의 기획 자체가 이 책의 간행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5. 임규찬 「역자 후기」, 김달수 장편 『태백산맥』 상권, 연구사 1988,300면.
  6. 원작의 집필 또는 출판 순서는 다음과 같다. 『玄海灘』(1953), 「朴達の裁判」(1958), 『太白山脈』(1964~1968).
  7. 홍기삼 「재일한국인문학론」, 홍기삼 엮음 『재일한국인문학』, 솔출판사 2001,24면.
  8. 姜尙中 『反ナショナリズム』, 敎育史料出版社 2003,34~35면 참조.
  9. 川村湊, 앞의 책 199면,201~202면.
  10. 川村湊 『生まれたらそこがふるさと』, 平凡社 1999,301면. 이 책의 ‘태어난 그곳이 고향’이라는 타이틀은, ‘재일’ 문인 이정자(李正子)의 단가(短歌)‘태어난 그곳이 고향, 그 아름다운 어휘에 괴로워 덮어버린 그림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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