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천운영

천운영 千雲寧

1971년 서울 출생.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바늘』 『명랑』,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등이 있음. hangomm@nate.com

 

 

그녀의 눈물 사용법

 

 

그 아이 이름은 그애

천도제를 지내야겠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엄숙하다 못해 비장했다. 아무래도 그애가 네 오라비에게 해코지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꿈을 꾸었는데 그애가 오라비 어깨에 올라타 있더라. 귀신이 씐 게 아니라면 순하기만 하던 오라비가 저리 변할 수 있겠니? 분명 그애 짓이야.

그애는 줄곧 내 옆에 있었으니 오라비 근처에도 안 갔을 거라고, 갔어도 해코지 같은 걸 할 애가 아니라고, 나는 말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울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는 비굴해 보였다. 나는 아버지가 짜내는 이기적인 눈물에 염증이 났다. 원하는 것은 기어이 얻어내고야 마는 탐욕스러운 눈물. 알았어요, 제가 알아볼게요. 아버지는 그제야 눈물을 멈추었다.

그애를 보내야겠다니. 줄곧 내 옆에 머물던 그애를,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며 훈훈한 입김을 불어넣던 그애를. 제 손으로 보내놓고 삼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엄마 뱃속에서 칠개월, 세상에 나와 하루를 살다 죽은. 비난과 변명, 억울함과 어쩔 도리 없음, 금기와 은폐, 당한 자와 저지른 자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삼십년 동안 1.1kg의 미숙아 혹은 일곱살 이갈이 무렵으로 남아 있는 그, 아이. 그 아이의 이름은 그냥 그애였다.

 

 

장롱 속에서

버스에서 내렸을 때 엄마 다리 사이로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엄마가 오줌을 싸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수에서부터 일곱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왔으니 어른이 오줌을 싼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엄마는 무언가 중대한 결심을 내리려는 사람처럼 양미간을 모으고 터미널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음식 보따리와 내 손을 나눠 쥔 엄마가 사람들을 헤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엄마 손에서 서늘한 땀이 배어나왔다. 집에 도착한 엄마는 보따리를 풀어 찬장에 집어넣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내 눈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착하게 있어, 엄마는 지금 아기를 낳으러 가야 해, 착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엄마가 동생을 데려올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엄마의 단호한 눈빛에 기가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혼자 남아 시간을 보내고 착하게 구는 거라면 누구보다 자신있었다.

한밤이 되어서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쥐포를 입 안 가득 넣은 채 잠이 들었다. 음식을 입에 넣고 자는 건 착한 게 아닌데, 잠을 자면서도 나는 입 안에 든 불어터진 쥐포가 마음에 걸렸다. 문이 열리고 찬바람이 밀려들어왔다. 나는 눈도 채 못 뜨고 엄마를 끌어안았다. 엄마는 말없이 내 머리만 쓰다듬었다. 뒤따라온 아버지는 포대기를 팔에 안은 채 문지방을 밟고 서 있었다.

포대기는 커다란 고치 같았다. 고치를 풀고 그 속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나를 끌어안고 이부자리로 쓰러지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엄마의 팔 힘이 너무 세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내가 엄마 품에서 버둥거리는 사이 방 안에 불이 꺼졌다. 나는 버둥거리는 걸 멈추고 엄마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박동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장롱문이 가만히 열렸다 닫히는 소리도 들었다. 아버지가 조용히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고 깜깜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만 같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고양이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곤충의 날갯짓 소리 같기도 한 어렴풋한 울음소리만이 어두운 방 안을 부유하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간헐적으로 끊겼다가 이어지곤 했다. 울음소리가 멈출 때마다 아버지의 침 넘어가는 소리도 들렸다. 어느 순간 딸꾹질을 하듯 울음소리가 끊기더니 더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방 안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엄마를 흔들었다. 엄마는 귀찮거나 화가 났을 때 그러는 것처럼 등을 돌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장롱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살며시 눈을 뜨고 아버지가 장롱 안에서 포대기를 꺼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포대기에 싸여 집에 들어온 그애는 그 모습 그대로 집을 나갔다. 고치 모양의 포대기가 조금 작아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가 그애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 궁금했다. 한손에 삽을 든 아버지가 산길을 오르는 모습이 그려졌다. 꽁꽁 언 강물을 깨고 고치를 집어넣는 모습도 그려졌다. 나는 아버지가 그애를 불태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불에 태우세요. 한겨울이잖아요. 강도 땅도 다 얼었을 거예요. 예전에 앵무새가 죽었을 때처럼 땅에 묻지 마세요. 들고양이들이 흙을 파헤치고 구더기들이 들끓을 거예요. 불에 활활 태우세요.

화염에 휩싸인 작은 포대기 고치를 생각하자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그날 나는 불장난을 친 어린아이처럼 요에 오줌을 흠뻑 쌌다. 그애가 죽기만을 기다리며 장롱 속에 내버려둔 그날, 모두가 공범이면서 범인이 아니었던 그날. 내 나이 일곱살, 외벽에 앉은 서리꽃이 유난히 반짝거리던 새벽녘이었다.

 

 

내게로 온 우량아 권투선수

그애는 분유광고에 나오는 우량아 같았다. 뽀얗고 토실토실한 그애는 더이상 1.1kg의 미숙아가 아니었다. 포대기를 두르고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애를 못 알아볼 뻔했다. 그때 나는 홍역을 앓고 있던 중이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불이 뿜어져나오는 것 같았다. 잠도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고깔모자를 쓴 사내 요정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들었고, 눈을 뜨면 천장에서 별똥별들이 떨어져내려 온몸에 붉은 반점들을 만들었다. 내가 홍역을 앓고 있어도 엄마와 아버지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으므로 나는 고열과 고깔모자들과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하늘색 포대기를 어깨에 걸친 그애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천장 모서리에서 나타난 그애는 링에 올라선 권투선수처럼 포대기를 멋지게 집어던졌다. 이빨을 드러냈던 고깔모자들은 우량아 권투선수에게 꼼짝도 못했다. 고깔모자들을 모두 물리친 그애가 내 머리맡에 사뿐히 앉았다. 고치를 벗고 나왔구나, 내가 말했다. 그애가 웃었다. 그리고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차갑지만 보들보들한 그애의 손이 닿자 거짓말처럼 열이 내렸다. 나는 금세 잠이 들었다. 자면서도 그애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안 우는 데 성공했어

아버지가 운다. 아버지는 술에 취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어쩔 수 없었어. 내 잘못이 아니야. 아버지는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면 꼭 그애를 떠올린다. 노끈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깨졌을 때도, 엄마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부도어음 때문에 집을 홀랑 날렸을 때도 아버지는 그애를 떠올렸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모두 제 탓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참회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죄책감의 허울을 쓴 두려움의 눈물이었다. 두렵지 않을 때는 죄책감도 없고 눈물도 없는 법이다. 아버지는 흐느끼다 울부짖기를 반복했다. 아버지가 잘못했다는 건지 그애가 잘못했다는 건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빨리 전화를 끊고 싶어서 아버지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전화를 끊지 않아서 다 잘될 거라고 덧붙였다.

물론 아버지 잘못이 아니다. 누구도 아버지를 비난한 적 없다. 그애를 장롱 속에 넣은 것은 아버지지만, 그건 아버지 말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큐베이터 사용료를 지불할 능력이 없었던 것은 아버지 잘못이 아니다. 숨만 간당간당 붙어 있던 그애를 그냥 낳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라며 돌려보낸 의사 잘못도 아니다. 아무리 그랬어도 젖 한번 물리지 않고 등을 돌린 엄마 잘못도 아니다. 만삭인 엄마에게 온갖 먹을거리들을 들려 보낸 할머니 잘못도 아니다. 왜 살아 있는 애를 장롱에 넣느냐고 묻지 못한 내 잘못도 아니다. 잘못은 그애에게 있다. 너무 성급하게 세상에 나온 그애 잘못이다. 서둘러 나올 생각이었으면 우량아로 나오든가 돈 많은 집에서 나올 것이지. 그애는 죽을 만해서 죽은 것이다. 나는 그애가 죽어 내 옆에만 머무는 것이 좋다. 죽어야만 내 차지가 되는 거라면 내 손으로 그애 숨통을 끊어놨을 것이다.

오라비가 운다. 오라비는 머리가 아프다. 오라비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억울해서 울고, 자꾸만 어긋나는 인생이 두려워서 운다. 오라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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