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그라운드 제로1에서의 단신

두 시기의 권력, 형평, 전후재건

 

 

마크 쎌던 Mark Selden

빙엄튼대학 교수(사회학 및 역사학). Japan Focus(www.japanfocus.org)를 운영함. 저서로 The Yenan Way in Revolutionary China (1971), War and State Terrorism: The United States, Japan and the Asia-Pacific in the Long Twentieth Century (2003, 공저) 등이 있음. 필자는 이 글과 관련해서 허버트 빅스, 유레이딘 블럭, 존 다우어, 로러 헤인, 개번 머코맥, 스티브 샬롬 등의 비판적인 논평과 제안을 참조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11월 히로시마의 UNITAR(United Nations Institute for Training and Research, 유엔훈련연구원) 아시아사무소 창립총회에서 강연한 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원제는 “Notes From Ground Zero: Power, Equity and Postwar Reconstruction in Two Eras”이며 원문은 Japan Focus에 올라 있다. ms44@cornell.edu

ⓒ Mark Selden 2004 / 한국어판 ⓒ (주)창비

 

 

죠지 W. 부시 대통령은 일본에 대한 미국의 점령통치를 이라크 민주화를 위한 모델로 거듭 제시해왔다. 그런데 일본에 대한 점령통치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현재 전쟁으로 찢긴 사회들을 재건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있는가? 몇몇 유사점들이 두드러지기는 한다. 예컨대, 반세기 전 일본에서처럼 미국은 민주화된 이라크에 ‘주권’을 넘겨주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민주적인 이행을 보장할 의사가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중동과 중앙아시아 두 지역에서 미국 군대가 확고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유사점 너머에는 심각한 차이들이 있다. 미국이 ‘재건’하고자 하는 국가와 민족들, 그리고 두 지역과 두 시기에서 맞닥뜨린 문제들뿐만 아니라 미국의 전략·목표·참여방식에 있어서도 차이가 분명한 것이다.

2004년 6월 16일까지 이라크 내 미군과 연합군의 전사자는 1000명에 급속히 육박해가고 있었다. 전사자 952명은 미군 836명, 영국군 59명, 여타 다국적군 12명 등이다. 그중 694명의 전사는 부시가 이라크전 승리를 선언한 2003년 5월 1일 이후에 발생했으며 최대 희생은 2004년 4월, 그리고 138명의 미군이 전사한 2004년 5월에 발생했다. 2003년 5월 1일 이래 5134명의 미군이 전투중 부상당했으며 비전투중의 부상을 포함하면 부상자는 총 1만6000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 수치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계속되는 미군과 연합군 사상자의 규모나 군사충돌 범위와 깊이를 전혀 전달해주지 못하는데, 이런 상황은 개혁·재건·발전을 저해할 정도로 미국이 군사활동에 몰입하는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2001년 이래 독일의 란데슈툴 지역군쎈터(Landestuhl Regional Military Center)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하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1만1754명의 군인을 치료했으며 그중 1000명 이상은 정신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이 수치에는 수많은 ‘비전투’ 부상자들이 빠져 있다. 이라크전 시작 이래 미군에 의해 죽은 이라크인 수는 훨씬 더 많지만, 베트남 식의 반발을 두려워해 미 점령당국은 아무런 숫자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핵전쟁 방지와 사회적 책임을 위한 의사모임’ 영국지부(MEDACT)의 2003년 11월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3월 이래 사망한 이라크인은 2만명에서 5만5000명 사이로 추정된다. 이라크 바디 카운트(Iraq Body Count)는 2004년 6월 16일까지 죽은 이라크인을 9436명에서 1만1317명 사이로 어림잡았다. 정보에 근거한 모든 관측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사망자의 다수가 어린이라는 점이다. 이런 추정치 중 어떤 것에도 전쟁 전후의 급양·의료 체계의 붕괴 같은 현실적인 원인들로 죽은 더 많은 수의 이라크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전투와 관련된 사망자 수는 2004년 봄에 미국이 팔루자와 모술 및 그밖의 도시들을 공격하면서 급상승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임명한 하미드 카르자이(Hamid Karzai) 정권은 수도 카불을 넘어선 지역에서는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군벌들이 그 나라의 대부분을 통제하는 가운데, 미국 및 파키스탄 군대는 부활하는 탈레반과 국내의 무장집단들에 맞서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라크에서와는 대조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국의 권위가 주로 군사적인 영역에 국한되어 있고, 유엔과 세계은행 및 기타 다양한 비정부기구(NGO)들이 재건을 시도하고는 있으나 자원은 빈약하고 비전은 옹색하기 이를 데 없다.

일본의 경우는 이와 뚜렷하게 대조된다. 6년의 점령기간(1945~51년)에 단 한명의 점령군도 전사하지 않았으며 안보문제는 일본 경찰에 신속히 이양되어 점령당국은 정치적·사회적 개혁, 경제적 구조조정과 재건 그리고 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미국의 공격으로 희생된 일본인도 없었다.

우리는 안보의 언어를 또다른 종류의 핵심쟁점들로 번역해볼 수 있다. 예컨대 부시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테러와의 전쟁’의 최전선으로 본다.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과 이슬람세계의 갈등을 가리는 중심적인 구호이다. 이 갈등은 세계의 가장 비옥한 유전지대에서 미국의 군사적 통제를 확고히 하고 이스라엘의 지위를 높이려는 시도들과 일치하며, 또한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모든 갈등지역에서처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두 지역의 반미감정을 격앙시키는 요인들과 일치한다. 일본에 대한 점령통치와 재건 또한 지역적 갈등을 유발하기는 했으나 그 갈등은 외부 즉 한국과 베트남에서 현실화되었고 그런 상황은 일본의 재건과 개혁의제를 손상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2차대전, 탈식민주의, 냉전: 전후재건의 역사적 기원들

 

그라운드 제로는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에 막을 내리게 한 핵폭격이 지나간 뒤의 폐허 세계를 가리키는 강력한 메타포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끼는 마이클 셰리(Michael Sherry)의 말대로 주요 강대국이 공유한 ‘기술적인 광신주의’의 산물인 저 광대한 살육의 성격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 광신주의는 히로시마로 치달아 도시민들을 파괴목표로 삼은 전략적 폭격의 승리로 2차대전에서 새로운 절정에 이르렀다. 독일과 영국의 뒤를 이은 미국은 2차대전의 마지막 해에 공중폭격을 동원해 독일과 일본의 수십개 도시를 체계적으로 파괴하여 수십만명에 이르는 민간인을 죽였다. 이 전략은 커티스 르메이(Curtis Lemay)의 명령 아래 일본의 64개 도시를 불사른 후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의 절멸에서 완결되었다. 그 살육의 규모, 그리고 차후 미국의 군사입안자들이 한국·베트남·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 적용한 전략이 남긴 교훈은 그라운드 제로의 메타포가 모든 국가에 해당되는 얘기라는 것이다.

2차대전은 민간인을 계획적인 공격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테러폭격(terror bombing)이라고 해야 마땅한 것을 신성하고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테러폭격은 하나의 독트린이 되어 미국에 의해 다른 영토에 확장·적용되었으니, 북한에서의 댐과 제방의 파괴, 베트남에서의 오렌지제(Agent Orange) 같은 고엽제의 사용, 그리고 걸프전에서의 열화우라늄무기와 집속탄 같은 새로운 무기의 사용이 그러한 경우

  1.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는 폭탄이나 핵무기의 낙하지점 또는 피폭 중심지를 의미하는 용어로 ‘지상원점’ 또는 ‘폭발중심지점’을 의미함―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