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해줘 고마워요

필립 로스를 기리며

 

 

정홍수 鄭弘樹

문학평론가. 평론집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 『소설의 고독』 등이 있음.

myosu02@hanmail.net

 

 

1. 상상이라는 일, 일꾼의 상상력

 

2012년 필립 로스(Philip Roth)1는 소설을 그만 쓰겠다고 말한다. 1933년생이니 79세 때이다. 첫 소설집 『굿바이, 콜럼버스』를 낸 게 1959년(첫 단편 발표는 1954년)으로 반세기가 넘는 작가생활인데, 마지막 소설로 남게 된 『네메시스』(2010)까지 모두 스물아홉권의 소설을 써낸 터였다. 당시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소회가 인상적이다. “나는 내 평생을 소설에 바쳤고, 소설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읽고, 쓰기까지 했어요. 글쓰기를 위한 몸부림은 이제 더이상 견디기가 힘들군요. 글을 쓴다는 것은 매일매일의 절망과 굴욕을 의미합니다.” 작가의 만년 대표작 『에브리맨』의 유명한 대목이 생각난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86면) 『에브리맨』이 ‘보통 사람’(everyman)의 죽음 이야기를 소설로 쓴 것이라면, 『아버지의 유산』은 작가가 실제 자신의 아버지가 죽어가는 시간을 지켜보며 쓴 에세이이자 기록인데, 여기에도 ‘일’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죽는 것은 일이었고 아버지는 일꾼이었다. 죽는 것은 무시무시했고 아버지는 죽고 있었다.”(278면)

『아버지의 유산』에 따르면 필립 로스의 할아버지 쎈더 로스(Sender Roth)는 1897년 폴란드령 갈리치아에서 랍비 공부를 하다 홀로 미국으로 건너왔고, 아내와 세 아들을 데려오려고 모자공장에 취직한 뒤 그곳에서 인생 대부분을 보냈다. 아버지 허먼 로스(Herman Roth)는 1901년 그렇게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고, 8학년의 최종 학력으로 온갖 장애물과 싸우며 미국 땅에 뿌리를 내렸다. 그는 하급 보험설계사에서 시작해 유대인 차별을 뚫고 지점의 관리 책임자로 은퇴했다. 작가의 출세작으로 알려진 『포트노이의 불평』에는 매일 아침 변비에 시달리며 보험을 팔러 단정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거리로 나서는 불굴의 아버지 캐릭터가 나온다. 그 외에도 미국 동부 뉴어크의 유대인 동네를 무대로 한 이민자 가족들의 강인한 생존의 이야기는 로스 소설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일터가 모자공장이든 보험을 팔기 위해 두드리는 거리의 열리지 않는 문이든 핵심은 일이고 노동인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가는 삶. 어머니들은 어땠을까. 로스는 자신의 어머니가 “미국의 가사를 위대한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그 헌신적인 유대인 이민자의 딸들 가운데 하나”라고 적으면서 특유의 유머를 입혀 부연하는 걸 잊지 않는다. “우리 가족 누구에게도 집안 청소 이야기는 하지도 마라—우리는 집안 청소의 최전성기를 본 사람들이다.”(39면) 여기서 일과 가족은 유대인 이민자들의 세계를 떠받치고 지탱하는 상호 결속된 강력한 두 축이라 할 만한데, 살아가는 이유와 살아야 할 이유가 모두 거기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목가』에서 뉴어크의 유대인 레보브 가문이 2대에 걸쳐 꾸려가는 장갑공장의 역사, 장갑 한켤레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낱낱의 공정에 대한 철저한 묘사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지만, 『울분』의 정육점, 『에브리맨』의 보석상 등이 그렇게 생생하고 정확한 기억과 언어의 창조적 재현을 통해 로스 소설의 중요한 밑그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세계가 곧 소설의 인물들뿐 아니라 작가 자신의 인간 이해가 형성된 지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그 세계에 이르면 인물들은 물론이고 거리와 집까지 펄펄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그렇다는 것은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일과 노동, 가족에 부여하는 가치 이상의 무언가가 이들의 세계에 있다는 말이며, 이는 좁게 잡아도 동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인 이민자들의 특별한 역사, 정체성과 분리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전반적으로 차갑기 그지없는 로스의 세계에서 이들 인물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만은 각별히 예외적이다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마냥 긍정적으로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차별과 배제, 험한 이산의 역사 속에서 더 공고해졌을 수도 있는 유대인 세계 내부의 억압의 내면화, 금기와 배타성의 강화, 강박적 가족주의 등을 예리하게 해부하기도 한다. 신경증자의 과장되고 뒤틀린 자기항변을 통해 유대인 사회의 온갖 성적·관습적 억압을 기발하게 폭로하고 풍자하는 『포트노이의 불평』은 그 대표적인 예일 테다. 유대인 사회 내의 계층적 차이, 내부에서 희생자를 찾는 배제와 추방의 공포, 유대인의 자기기만과 종교적 맹목의 양상 등이 미묘하게 포착되어 있는 첫 소설집 『굿바이, 콜럼버스』는 미국의 유대인 사회 일각으로부터 ‘자기혐오’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 모양이다. 이민 3세대라 할 수 있는 로스 세대의 경우, 미국으로의 동화, 미국인의 정체성 구축이 더 긴요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다가오기도 했으리라. 로스가 깊은 환멸 속에서 그려내게 될 ‘미국의 꿈’은 그 자신의 것일 수 있었다. 그의 성장기이기도 한 전후의 미국이 일종의 ‘황금시대’로 그려지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로스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폴란드계 유대인 이민자 자손으로 자라나는 가운데 형성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세상에 대한 특정한 태도와 관점이 소설의 목소리에 강하게 섞여 들려온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 태도와 관점을 단순하게 실체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거기에 완강한 현실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다. 현실주의에도 여러 갈래가 있겠지만 일차적으로는 말 그대로 환상 없는 실질의 세계에 대한 공고한 믿음 같은 것 말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다가갈 수 있고, 인간의 사고와 언어로 파악될 수 있는 세계와 상대하기. 세속주의와 현세주의의 단호한 결합. “딱 한 번만 우리가 우리의 것으로서 알게 되는 삶”(『아버지의 유산』 277면)에 대한 철저하고 강박적인 집착. 당연히 소설을 쓰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하나의 일일 수밖에 없다. 죽음에 맞선 숨 한번도 일이다. 그러니 언제든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가는 세상.

『에브리맨』의 주인공이 이혼한 부인과 화해하기를 바라는 딸에게 먼저 해주고, 나중에 장례식에서 딸이 죽음 저편의 아버지에게 되돌려주는 말이 있다. “현실을 다시 만들 수는 없어요.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13면) 여기서 ‘현실’은 일단 이미 일어나버린 것으로 아주 좁게 제한적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런 다음 『유령 퇴장』에 나오는 조셉 콘래드의 트리플렛(triplet)처럼 ‘세개 한 세트’로 되어 있는 율동하듯 이어지는 문장에서 받아들이라는 요청은 두번 반복된다. 그 반복을 통해 ‘그냥 오는 대로’와 ‘버티고 서서’의 숨은 대립이 이 트리플렛의 핵심으로 드러난다. 흡사 권투에서 가드를 내리고 일방적으로 퍼부어지는 상대의 공격 앞에 서 있는 모습이지만, ‘버티고 서서’는 이것이 전투의 포기가 아님을 말해준다. 여기에는 어떤 식으로든 ‘부정성’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치러지는 전투가 있는 한, 현실

  1. 필립 로스의 한국어 번역서는 현재 13종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어 있다. 『굿바이, 콜럼버스』(Goodbye, Columbus, 1959; 정영목 옮김, 2014), 『포트노이의 불평』(Portnoy’s Complaint, 1969; 정영목 옮김, 2014), 『사실들: 한 소설가의 자서전』(The Facts: A Novelist’s Autobiography, 1991; 민승남 옮김, 2018), 『아버지의 유산』(Patrimony, 1991; 정영목 옮김, 2017), 『미국의 목가』(American Pastoral, 1997; 정영목 옮김, 전2권, 2014),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I Married a Communist, 1998; 김한영 옮김, 2013), 『휴먼 스테인』(The Human Stain, 2000; 박범수 옮김, 전2권, 2009), 『죽어가는 짐승』(The Dying Animal, 2001; 정영목 옮김, 2015), 『에브리맨』(Everyman, 2006; 정영목 옮김, 2009), 『유령 퇴장』(Exit Ghost, 2007; 박범수 옮김, 2014), 『울분』(Indignation, 2008; 정영목 옮김, 2011), 『전락』(The Humbling, 2009; 박범수 옮김, 2014), 『네메시스』(Nemesis, 2010; 정영목 옮김,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