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김진석 金鎭奭

인하대 철학과 교수.

 

* 이 글은 1998년도 인하대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이루어졌다.

 

 

그리기의 틀과 탈. 닮음의 환상

 

 

재현의 형이상학과 역사주의

 

솔거(率居)가 그린 소나무 그림에 새 한 마리 앉았다고 한다. 아니 앉으려다 미끄러졌다고 한다. 그럴 정도로 나무 그림은 정말 나무를 빼닮았다고 한다. 그럴 정도로 나무 그림은 유사(類似)와 재현(再現)의 원칙을 완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정말 그랬던 것일까? 새는 그 그림이 정말 나무인 줄 착각하고 거기에 앉으려다 미끄러진 것일까? 유사와 재현의 원칙은 충족되면 될수록 함정으로 돌변하는데, 새까지 거기에 걸려든 것일까? 새조차도 유사와 재현의 신화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리스시대부터 전해오는 다른 예도 있다. 나무에 달린 열매 그림이 너무 사실 같아서 새가 쪼아먹으려 했다는 이야기.

새들이 애초에 그 함정에 걸려들지 않았다면? 아마도 인간만이, 인간의 사유만이 그 함정에 갇혀 있었던 것이라면? 실제로 화가들은 이 점을 확인해준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야말로 저 소나무 그림에 앉으려는 우스운 동물이 아니었을까. 아예 처음부터 새는 그 나무를 실제 나무의 재현이라고 여기지 않았는데, 인간의 사유가 비로소 그 이야기를 지어낸 후에 바로 그 이야기 속 나무에 걸터앉으려 했던 것은 아닌가. 그럴 것이다. 인간 사유는 유사와 재현의 신화를 만들어내고는 새를 미끄러지게 했지만, 우습게도 실제로 미끄러진 것은 인간인 듯하다. 새가 걸터앉으려고 애썼다거나 쪼아먹으려고 했다지만, 실제로 걸터앉으려고 혹은 쪼아먹으려고 기를 쓴 것은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천 몇백년 후, 20세기초 추상화에 이르러서야 인간은 그 유사와 재현의 신화를 극복한 듯이 보인다. 나무 모양은 거의 또는 완전히 사라진 듯했다. 또는 기껏해야 아이들처럼 ‘유치하게’ 선을 삐죽삐죽 그려놓은 모양, 생선뼈를 뒤집어놓은 모양이 다였다. 이제 새는 비로소 재현된 나무에 걸터앉으려 하지도 나무 열매를 쪼아먹으려 하지도 않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 나무 그림을 실제 나무라고 착각하고 미끄러졌다는 새, 열매를 쪼아먹으려는 실수를 했다는 새는 가볍게 잘 날아다니고 있지만, 인간 사유는 여전히 재현의 나무에 걸터앉으려 하거나 자꾸 미끄러진다고 안달하는 듯하다. 인간 사유는 추상화로 그려진 나무에도, 또는 추상화 속에서 겨우 확인되는 나무에도 걸터앉으려고 하는 듯하고, 혹은 거기에서 미끄러질 염려가 있다고 전전긍긍하거나 노심초사하는 듯하다. 아무리 나무 모양을 지우고 지워도, 실제 나무를 재현한다는 나무 모양을 지우고 또 지워도, 나무와 닮은 나무의 기호를 세상에서 모조리 추방하고 배제하지는 못했다. 화폭 밖으로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세상의 나무 모양은 천연덕스러웠다. 시침 뚝 떼고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추상화가는 오히려 재현의 원칙이 말할 수 없이 끈질기고 지독한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사실주의’에의 강박이 그처럼 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추상화가 극단화할수록 추상화가에게 재현의 연대는 더욱 수상스럽고도 질긴 것으로 보였을 터이다. 그 연대가 그렇게 질기기에 바로 추상화가 그것을 깨고 부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또는 비슷한 이유로, 추상화가 구상화를 완전히 극복했다거나 이겼다거나 완성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 있을 듯하다. 만일 어떤 추상화가가 나무의 구상과 구체성이 재현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그것을 이기거나 극복하려고 또는 심지어 완성하려고 나무의 추상에 매달렸다면, 그것이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일 것이다. 그가 그렇게 추상의 강박에 시달린다는 것은 그가 구상의 강박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음을 반증할 터이니까. 역설은 정작 그의 뒤통수를 치는데, 그 자신만 그것을 몰랐을 것이다.

추상화는 구상과의 싸움에서 실패했다고 말해야 옳은 것일까. 사태를 그렇게 몰고갈 필요도 없는 듯하다. 우리는 여기서 미술사를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기둥 하나를 움켜잡고 있다. 잘하면 뒤흔들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초 서양 현대미술에서 시작된 추상화의 가장 중요한 성과가 유사나 재현의 신화를 극복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하나의 편견이거나 우화였는지 모른다. 정말 나무를 빼닮은 나무 그림에서 새가 미끄러졌다는 이야기 자체가 우화였듯이.

물론 추상화가 유사 및 재현의 전제를 어느정도 흔들어놓고 부순 것은 사실이다. 그것조차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조심해야 할 점이 있을 뿐이다. 구상으로 그린다는 것이 꼭 재현의 전제에 의존하거나 거기에 종속되어 있다는 말일까? 사물을 드러나게 하고 사물에 모양을 주는 일이 굳이 세계의 재현이라는 형이상학적 전제에 따른 것일까? 유사 및 재현의 원칙이 20세기에 들어와 크게 깨어진 것도 사실일 터이나, 실제로 정말 그때까지 전혀 깨어지지 않았던 순수한 어떤 원칙이 갑자기 깨진 것일까? 그 깨어짐은 오히려 현대 미술이나 비평이 연출해낸 사건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크게 깨어질 것이 없는 게 아닐까? 정말 유사와 재현의 원칙은 아무런 틈과 분열도 없이 지켜진 엄격한 명령이고 원칙이었을까? 또 추상화 이전의 회화가 구상화였다고 해서, 그림들이 모두 유사와 재현에 근거한 것이었을까?

추상화는 20세기초에 일어난 추상화를 통해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 것도 아니다. 흔히 ‘원시미술’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많은 부분 나름대로 추상화의 기법을 실행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구상화이기도 하였다. 삐까쏘미술관이나 다른 현대미술관에 아프리카의 미술품이나 다른 ‘원시’미술품이 전시되어 있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20세기 추상화 이전의 모든 구상화가 순진하게 유사와 재현의 믿음에 봉사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현대미술사에 내재된 독단이나 자만심이 아니었을까? 아울러 미학의 편견이 아니었을까? 20세기 미술이 유사 및 재현의 원칙을 화형시켰다면 그 사건은 아마도 인형이나 허수아비 불태우기 같은 의미가 아니었을까?

유사와 재현의 원칙이 미술사(전체로서든 또는 몇세기 동안이든)를 철두철미 지배했다고 믿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유사의 원칙을 너무도 형이상학적이고도 교조적으로 만든 데 커다란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잘 알려져 있듯이 플라톤(Platon)은 이데아에서 두 단계 떨어진 것으로 모방을 이해했다. 목수가 이데아를 모방해 나무로 책상을 만들고, 화가는 바로 그 모방된 책상을 다시 모방한다는 것이다.1 하지만 엄격하게 따지고 보면 그런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그려진 그림은 없을 듯하다. 원이나 삼각형이 그려진 추상화라 해도 완벽한 형상으로서의 원이나 삼각형을 모방하기 위한 것은 아닐 터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무슨 말을 한 것일까? 그림에 대해 가장 몰지각한 발언을 한 것인가? 근본적으로 그림의 존재가치를 폄하한 것일까? 아니면 거꾸로 그림을 폄하하는 관점만 빼면, 그래도 역시 그림에 관한 중요한 통찰을 담은 말을 한 것일까? 나아가 예술 전반에 관한 어떤 통찰을?

그림을 그리는 자는 존재하거나 생성하는 것을 아무렇게나 보거나 즐기지는 않을 것이다. 모방하고 복사하고자 한다. 이때 그는 사물의 올바른 인식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의도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또는 거꾸로 그 인식에 이미 두 단계나 떨어져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기껏해야 모방이나 하는’ 환장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 둘의 방향은 다르지만 플라톤이 생각하는 그림의 자리는 그 두 전제에 의해 설정되는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게도 모방은 지적인 인식과 뗄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그는 그림을 보고 무엇이 그려졌는지 확인할 수 있고 그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 때, 그림이 무엇을 모방한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거꾸로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나 한번도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무엇이 모방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려진 대상이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이라면, 그림은 대상에 대한 모방으로서 쾌감을 준다기보다는 기껏해야 색을 칠하는 방식이나 다른 비슷한 방식으로 그러할 것이다.2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전제는 재현과 유사에 관한 철학적·미학적인 전제를 제공했을 것이다. 그 전제는 더 나아가 역사적인 구성물로 존재한다. 역사 속에서 지배적이었는데, 어느 한 순간 비판되고 뒤집히고 부정되었으며 역사적 효력을 잃었다고 해석되기에.  

그 전제는 형이상학적 측면뿐 아니라 역사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첫째 형이상학적 측면에서. 그 전제에 따른다면, 애초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지적 호기심에 예속된 일에 지나지 않았을 터이다. 어떤 대상의 이미지에 대해 지식이나 정보를 주는 그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의도나 목적이 그림 그리는 일에서 언제나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소한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화가가 사물과 정말 닮은 대상을 그릴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도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사물 자체를 재현하기 위하여 그것에 가까이 가는 과정은 아닐 것이다. 그는 말 그대로 ‘모방’하고 ‘복사’하고자 하지만, 그때 모방과 복사는 사물 자체를 이상주의적 맥락에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닮는 것일 터이다. 더 나아가, 닮았으면서도 닮지 않은 데 놓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닮았으면서도 닮은 것만은 아님’에 주의를 기울이는 대신, 자꾸 모방과 복사라는 말에만 존재론적인 재현의 의미를 부여한다. 예술행위를 그처럼 철저히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평가하는 일은 예술에 대한 형이상학적 편견이자 강박이었던 듯하다.

마찬가지로 그 전제가 그림의 역사를 지배했고 또 20세기 추상미술에 의해 전복되었다는 해석은 역사주의적인 편견이자 강박이다. 모든 역사주의적인 전복의 테제가 그렇듯이 이 전제도 일면(一面)의 진리를 갖기는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그

  1. 『국가』 10권, 595a~598c.
  2. 『시학』, 4장 1448b 13~19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