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윤영

김윤영 金倫永

1971년 서울 출생. 1998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소설집 『루이뷔똥』 『타잔』이 있음. yoon2828@paran.com

 

 

 

그린 핑거

 

 

우리집 정원에는 뭔가가 부족해 보였다.

토론토에서 이 정도로 잘 가꾼 정원은 드물다고들 하지만, 또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원더풀 가든이라며 감탄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뭔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꽃이나 나무가 모자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은 솎아내야 할 형편이었다. 전에 살던 부부가 심어놓고 간 늠름한 호두나무, 개암나무, 서향나무, 벚나무 등은 무럭무럭 자라나 여름이면 풍성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고, 내가 이사와 심은 라일락이며 스노우드롭 등 온갖 꽃나무나 구근식물도 다 잘 자라주었다. 현관 계단 옆 쎄이지나 로즈마리, 라벤더, 타임 등 허브들은 유독 진한 향기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그저 바닥에 대충 꽃씨를 뿌리기만 한 블루데이지나 백일홍 등도 너무 잘 피어나 빈 땅이 안 보일 정도였다. 남편은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며 내게 여유를 가지라고 말하곤 했다.

남편은 자기 일에 만족해했고 나도 한가롭게 홈스테이를 하며 사는 이 생활에 만족한다. 우린 둘다 건강하고 우리 부부에겐 정말 아무 문제가 없다. 심지어 삼십 평생 불만이었던 내 얼굴에조차 요새는 별 불만을 못 느끼며 살고 있다.

 

남편이 출근하고 2층 학생들의 아침을 챙겨주고 나니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햇볕이 꽤 따갑다. 이런 날은 조심해야 한다. 모자도 안 쓰고 잡초를 뽑거나 다른 정원일을 하다 쓰러진 적이 몇번 있었기 때문이다. 꼭 일사병이라곤 할 수 없지만 나는 햇볕에 그리 강한 체질이 아닌데다가 정원에 나오면 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남편이 사다준 챙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거울 앞에 서보았다. 여기 오기 전에는 코밑에 분이라도 톡톡 찍어 바르지 않으면 절대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았는데 지금은 로션조차 잊고 산다. 오늘따라 밋밋한 인중이 꽤 탄력있게 보이고 윗입술의 선도 가지런해 보인다. 콧방울의 좌우대칭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목장갑을 끼고 현관 계단을 내려오는데 길 건너 브라운 부인이 날 보고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뭐라고 얘기하는 듯하지만 알 수가 없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브라운 부인은 흰 곱슬머리를 나풀거리며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우리집까지 올 것이다. 그리고 새로 핀 프리지어나 튤립을 보고, 오, 어메이징, 러블리, 판터스틱, 언빌리버블…… 하며 감탄사를 마구 남발할 것이다. 그녀가 늘 쓰는 말이다. 아니면 그 옆 텃밭의 파슬리나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에 눈독 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도 칭찬을 해대길래 한번 쎄이지와 샤프란을 듬뿍 꺾어 갓 딴 컬리플라워 한 바구니와 함께 안겨주었더니 그 뒤로 이 여자는 톡톡히 재미를 붙인 듯했다. 틈만 나면 한가한 부인네들을 떼로 이끌고 우리집 정원을 구경한다며 놀러왔고, 차 한잔씩 마시고 가는 그들에게 나는 새로 딴 피망이나 차즈기, 양상추 등을 쌜러드 해먹으라고 한 바구니씩 들려 주었다. 때로는 직접 딴 버찌로 만든 잼이나 오이피클, 양파피클, 그리고 모처럼 만들어본 애플파이나 루바브파이 등을 나눠주기도 했는데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얼굴들이었다.

내가 이런 할 일 없는 백인 할머니들과 호호거리며 어울리게 되리라곤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이런 기특한 정원을 내 손으로 가꾸게 될 줄도 상상해본 적이 없긴 마찬가지다. 내가 가지치기한 호두나무를 보고서, 20년간 정원사 일을 했다는 단골 그로써리 주인은 어떻게 안 배우고도 이런 모양을 낼 수 있냐며 신기해했다. 야채밭에 고랑을 낸 모양을 보곤 이런 좋은 손재주를 물려준 부모님께 감사드리라고 했다.

내 손끝이 야무지다는 소리는, 아주 어릴 적 코흘리개 시절부터 듣던 말이었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면 단칸방에 혼자 앉아 찬밥을 간장에 비벼먹으면서 종이인형을 만들어 놀곤 했다. 책받침에 있는 캔디나 꽃천사 루루를 본떠 그리는 건 처음엔 너무 어려웠지만 점점 솜씨가 늘었다. 크레파스와 색연필로 드레스를 수놓고 깃털 달린 모자나 모피코트를 그리다보면 어느새 와이셔츠 상자 하나 가뜩 종이인형과 옷 들이 쌓여갔다. 나와 놀아주지 않던 동네 여자아이들은 내가 만든 인형을 보고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집에 있기 너무 답답해 와이셔츠 상자를 들고 나와 햇볕을 쬐고 있던 어느날이었다. 아이들은 슬금슬금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와 진짜 같다, 이거 그냥 팔아도 되겠다. 캔디랑 정말 똑같다. 그중엔 나만 보면 입술을 까뒤집으며 내 흉내를 내고 놀리던 세탁소집 딸이 있었다. 아이들 뒤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그 아이가 꽃천사 루루를 집어들더니 목을 톡 분질러버렸다. “미안해서 어떡하냐? 누구처럼 병신이 돼버렸네.” 바닥에 루루의 머리와 몸뚱이가 따로따로 흩어졌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루루가. 엄마와 내가 그 동네를 떠나 서울로 이사갈 때쯤 그 세탁소엔 불이 났다. 세탁소집 딸은 다리에 큰 화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나는 조금도 안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영등포시장 한구석으로 이사를 온 후 엄마는 작은 가게를 열었다. 순대국과 감자탕을 함께 파는 엄마의 가게는 다행히 꽤 인기가 있었다. 서울 아이들은 훨씬 냉랭했고 여전히 자기들끼리 놀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내 인생에서 친구란 단어는 이미 빛이 바랜 지 오래였다.

그때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감자탕 오백그릇을 팔면 입천장수술을 시켜주고 또 오백그릇을 팔면 턱수술을 해주겠다고. 나는 서울에 온 지 2년 뒤 대학에 합격했지만 등록을 포기했다. 내가 지원한 신촌의 그 대학에 다니는 여대생들은 너무 화려해서 딴세상 사람들 같았다. 등록기간 마지막 날까지 엄마는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한다며 나를 설득했지만 내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도 난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엑스큐즈 미 하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터번을 두른 인도인 택시기사가 이민가방을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아 유 써니? 롸잇? 그의 뒤엔 호리호리한 젊은 여자와 계집아이 한명이 서 있었다. 예스, 예스 하며 나는 얼른 울타리의 문을 따주고 여자의 가방 하나를 들었다.

“저, ……문집사님이 전화로 말씀드렸다고 들었어요. 열흘쯤 묵겠다고……”

젊은 여자가 따라 들어오며 떠듬떠듬 얘기했다.

“아 맞아요. 어제 집사님이 전화로 말씀하신 분 맞죠? 제일 좋은 방 하나 치워달라고 하셨죠. 어머 꼬마 아가씨도 있네?”

장시간 비행을 해서인지 시든 오이처럼 축 처진 엄마와 달리 아이는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네살은 돼 보이는 통통한 아이의 뺨이 매킨토시 사과처럼 윤이 나고 발그레했다. 빨간 모자가 달린 케이프까지 둘러서 마치 핼러윈데이에 사탕을 얻으러 온 동네 아이처럼 보였다.

2층에는 어학연수 온 학생 세명이 묵고 있었는데 낮에는 거의 없었다. 여름 성수기가 아니라 방은 넉넉했고, 나는 그중 남향으로 창이 난 환한 방으로 그 모녀를 안내했다.

“엄마 엄마 저거 봐. 강아지야!”

가끔씩 정원에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들어오곤 하는데 마침 아이가 그걸 봤나보다.

“저건 강아지가 아니야. 너구리란다.”

아이는 너구리를 보고 꺅꺅 소리를 질러댔다. 그림책에 나오는 너구리를 처음 봤다고 난리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새 두마리가 포르르 날아와 창가 바로 앞 사향나무 가지에 앉아 지저귀기 시작했다. 아이의 관심은 새들에게 옮겨갔다.

“아줌마, 저 새 이름이 뭐예요?”

“응, 저건 위스키 잭이라고 해. 꽁지가 참 이쁘지?”

새 이름이 맞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아이와 엄마와 나는 2층 창가에 쪼르르 앉아 한참동안 새를 바라보았다. 바람결에 풍겨온 사향나무 향기가 매우 진했다. 봄꽃 중 가장 향기가 달콤해서 문을 열고 자면 꿈까지 달콤하게 취하게 할 정도였다. 방 안을 가득 채운 그 향에 아이 엄마는 푹 빠진 듯했고 아이는 여전히 상기되어 있었다. 새삼, 이런 집의 안주인이라는 사실이 뿌듯했다.

 

아이의 이름은 희주였다. 여자는 자기를 그냥 희주 엄마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내게 전화를 한 집사님은 처지가 딱한 여자니 잘 대해주라고 당부했다.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지만 한동네 사는 그 집사님에게 종종 신세를 진 터라 자주 연락하고 지냈다.

희주 엄마는, 나이는 어려 보이는데 산전수전 다 겪은 것처럼 걸걸한 목소리에 내숭 따윈 모른다는 듯한 표정을 늘 짓고 있었다. 꼼꼼히 뜯어보면 오목조목하니 꽤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인중 역시 야무지게 생겼다. 나는 아직도 사람을 볼 때마다 제일 먼저 인중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습관은 고치기 힘든 법이다.

“희주야, 그러면 안돼! 아저씨 옷이 다 젖잖니……”

희주 엄마가 거실 밖을 쳐다보며 외쳤다. 정원에서 남편과 희주가 함께 꽃에 물을 주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남편과 인사를 하자마자 희주는 그날부터 남편이 오기만 하면 찰싹 붙어 떠나질 않았다. 워낙 구김살 없이 하는 짓이 예뻐서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그 토실토실한 뺨을 꼬집어주고 싶어지는 아이가 희주였다. 아이도 자기가 그렇게 귀여움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한번도 저래 본 적이 없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까르르 웃으며 남편에게 무동을 태워달라고 조르는 계집아이의 얼굴에 내 어린 시절이 잠시 겹쳐 보였다.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아파도 약을 지어먹고 계속 일을 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언청이로 태어났다고,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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