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그분은 저 위에 계셨다

부시 방문 이후의 팔레스타인 일지

 

오수연 吳受姸

소설가. 소설집으로 『빈집』 『부엌』 『황금 지붕』 등이 있음.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해외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알까딴 문화재단’(Al Qattan foundation)의 초청을 받아 팔레스타인에 체류중임. sohoj@hanmail.net

 

  • 이 글은 지난 1월 10일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을 방문해 자치정부의 압바스 수반과 회담한 때를 전후하여 기록한 작가의 현장일지다. 부시는 급진 이슬람 저항운동세력 하마스의 영향력하에 있는 가자지구에는 방문하지 않았다-편집자.

 

 

2008년 1월 10일

정오 무렵,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청사가 있는 라말라의 도심 알마나라 광장 주변에는 행인보다 자치정부의 보안대원들이 더 많았다. 소속기관이 다양하여 제복도 다채로웠다. 군청색 경찰복, 검은색 전투복, 초록 베레모를 곁들인 쑥색 군복. 하늘색 제복의 교통경찰만 빼고 다들 총을 어깨에 메고 몽둥이를 등에 꽂고 있었다. 그들의 통제로 주변 모든 상점의 문이 닫혔고, 자치정부 청사 쪽으로 가는 길엔 차는 물론 사람까지 통행이 금지되어 휑했으며, 청사를 중심으로 반경 1킬로미터 이내의 높은 건물에는 저격수가 배치되어 있다고 했다.

길모퉁이에서 스무명 남짓이‘팔레스타인을 팔아먹지 말라’‘정착촌 먼저 철거하라’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조용히 시위를 했다. 대개 외국인들이었다. 역시 대개 외국인인 카메라맨들과 기자들이 그들을 찍고 취재했다. 1시간쯤 지나 시위대가 피켓을 어깨에 메고 흩어진 후, 빨간 베레모를 쓴 보안대원들이 한 트럭 새로 실려 왔다. 잠시 뒤에 얼룩무늬 제복에 방탄모를 쓰고 무슨 안테나 줄까지 늘어뜨린 보안대원들도 고급스러운 밴을 타고 왔다. 내 옆에서 구경하던 팔레스타인 사람도 그 최신 보안대는 오늘 처음 본다고 했다.

 

서안지구의 라말라에서 시위대를 진압하는 팔레스타인 보안대

서안지구의 라말라에서 시위대를 진압하는 팔레스타인 보안대

 

오렌지 한봉지 사서 집으로 오다가, 나는 진짜 시위대를 보았다. 알마나라보다는 작은 알싸아 광장 부근 언덕배기에서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팔레스타인 국기가 휘날리며 함성소리도 났다. 보안대원들과 카메라맨들이 우르르 그쪽으로 뛰어갔고 사방에서 싸이렌을 울리며 경찰차도 몰려왔다. 나도 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나 내가 몇걸음 더 걷기도 전에 이미 시위는 신속히 제압되어 주동자들이 차례차례 끌려 내려왔다. 새파란 팔레스타인 젊은이들. 한명은 코가 깨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중에 듣기를, 다른 한명은 보안대원한테 맞아 어깨가 부러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보안대에 끌려가 죽도록 맞고 풀려나든지, 아니면 죽도록 맞고 장기징역을 살게 될 거라고 했다.

시위현장에는 여자들 열댓명이 남아 바닥에 주저앉아 박수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대개 외국인들이었다. 경찰은 팔레스타인 사람이 시위에 낀 듯하면 다짜고짜 끌고 갔다. 하지만 굳은 얼굴로 길가에 서 있거나, 웃으며 친구와 환담하거나, 누구보다 먼저 달려온 노점상에게 차를 사서 마시고 있거나, 아까 지나갔는데 또 지나가는 그 많은 이들이 시위에 낀 건지 안 낀 건지는 매우 모호했다. 한 청년은 경찰이 자신을 붙잡자 경멸하는 표정으로 품에서 외국 시민증을 꺼내 경찰 눈앞에 들이댔다. 경찰은 그를 놓아주었다.

흰 헬리콥터 두 대가 차례로 날아와 머리 위에서 빙빙 돌다 간 다음, 마침내 성조기가 선명하게 찍힌 검은 헬기가 똑바로 하늘을 가로질렀다. 순간 땅에서는 많은 손들이 일제히 그 헬기를 향해 솟구쳤는데, 죄다 손바닥을 위로 하여 다른 손가락은 다 접히고 가운뎃손가락만 쳐들려 있었다.

그분은 저 위에 계셨다.

이 또한 나중에 듣기를, 오늘 그분 때문에 불쾌할 줄이야 팔레스타인 사람들 모두가 예상하고 각오한 바였으나 실제로는 훨씬 더 불쾌했다고 한다. 그분의 경호를 위해 라말라 시내에 풀린 4천명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안대원들 때문이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대열도 잘 안 맞게 서서 담배 피우고 빵 사먹는 보안대원들이지만 필요하다면 자기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걸. 그들은 작년 11월 아나폴리스 평화회담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발포하여 한명을 죽인 전력이 있다. 그분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팔레스타인을 방문한 오늘, 하루종일 라말라 시내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체포되어 끌려갔다. 그분은 마흐무드 압바스(Mahmoud Abbas) 수반의 안내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청사에 들어가서 말했다. 압바스 수반 휘하의 보안대를 현대화하는 일을 이스라엘이 도와줘야지 방해해선 안된다고. 서안(West Bank)지구의 자치정부 보안대가 강화되어 가자(Gaza)지구의 하마스(Hamas)를 억눌러야 한다는 뜻이었겠으나, 그들이 억누를 대상은 하마스만이 아니었다.

 

 

1월 15일

나블루스 외곽 알발라타 난민촌은 그새 많이 바뀌고 길도 더 복잡해진 듯했다. 2003년에 나는 국제연대운동(International Solidarity Movement)의 회원으로 자살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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