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인숙 金仁淑

1963년 서울 출생.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칼날과 사랑』 『유리 구두』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장편소설 『먼길』 『우연』 등이 있음. sunis63@yahoo.co.kr

 

 

 

그 여자의 자서전

 

 

고양이를 좋아해요?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나는 긴장한 채 그의 말을 들었다. 그것이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그쪽에서 먼저 나를 파악하고자 하는 의도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불쾌해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 관계에 있어서 파악되고 탐색되어야 할 쪽은 그쪽이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그 역시 나를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냐니, 이것은 심리테스트의 첫번째 문항을 연상시킨다. 예스와 노에 따라서, 다음 문항으로 넘어가는 화살표의 진행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

아내가 고양이를 좋아해요. 뜻밖에도 그는 내 대답을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아비시니안 종의 회색 고양이죠. 본 적 있어요? 아니, 라는 대답이 이번에는 좀 쉽게 나왔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아내가 그걸 일본에서 사가지고 오기 전까지는 한번도 본 적이 없었죠. 아내는 그걸 일본에서 사가지고 왔어요. 외국에서 고양이를 사가지고 오는 여자라니, 참 기가 막히죠. 짜식이 근사하기는 합디다. 남의 집 고양이라면, 나도 한번쯤은 등을 쓰다듬어주고 싶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게 내 집에 사는 고양이라…… 아내가 싫으면 이혼이라도 하겠지만, 이게 고양이니 어쩝니까. 고양이 없이 편하게 있고 싶을 때, 가끔 이 호텔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전에 같이 일하던 사람하고는 자연스럽게 이 호텔룸에서 작업을 하게 됐지요.

화살표의 진행방향이 엉뚱한 쪽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하긴 고양이에 관한 질문에서 심리테스트 따위를 연상하다니, 내 긴장이 지나친 것일 터였다. 그와 나는 소개팅을 하러 나온 이십대 청춘도 아니고, 인생상담 때문에 만난 정신과 의사와 환자 사이도 아닌 것이다. 52세, 이호갑. 현재 내가 그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그의 나이나 이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를 만나기 전 미리 건네받은 자료를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에 관한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그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그런 정보들은 가변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와 호텔룸에서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말을, 고양이를 좋아하냐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 52세 이호갑을 나는 다시 한번 신중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이보다 젊다거나 지나치게 정력적으로 보인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비만은 아니었고 머리가 벗겨지지도 않았다. 외모에서 전해져오는 혐오감이 없다는 것은 일단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객실까지 올라가는 동안, 엘리베이터 안에는 그와 나뿐이었다. 기묘한 느낌이 부드러운 카펫 위에 놓인 내 발바닥을 간질인다. 내가 관계했던 어떤 남자도 ‘나와의 관계’를 위해 이처럼 비싼 투숙비를 지불한 적은 없었다. 이 사람과 일 때문에 만난 게 아니라 관계를 위해 만난 거라면, 지금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올라가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그러나 나는 곧 홀로 머리를 저었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정계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한 돈많은 남자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일이지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하는 일은 아닌 것이다. 23층.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리자 오후의 햇살이 부드럽게 머물고 있는, 브라운색 카펫의 복도가 정적 속에 길게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그의 자서전 대필을 결심한 이유는 겉으로 어떤 이유를 둘러댄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돈 때문이었다. 이미 그의 자서전 작업을 반 넘어 진행한 선배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 일을 중도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선배는 자신이 받은 선금을 내게 지급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자신이 해온 일체의 작업결과를 내게 넘기겠다고 했다.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자서전 대필’ 운운할 때는 ‘이 사람이 날 어떻게 보고 이러나’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통화를 끝낼 즈음에는 ‘한번 생각해보겠다’고 승낙이나 다름없는 대꾸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화를 끊은 뒤, 곧바로 찾아온 것은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이었다. 자서전 대필이라니…… 한 2, 3년 혹은 한 1년만이라도 돈걱정 없이 쓰고 싶은 것만 쓸 수 있기를 바란 건, 이미 10년도 전부터의 일이었다. 그런데 쓰고 싶은 것을 쓰기 위한 매문이라니…… 그런 모멸감에도 불구하고, 자서전 대필로 내가 받게 될 목돈이 지난 10년 동안 내가 벌어들였던 어떤 돈보다도 크다는 사실을 무시할 방법이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여느날이나 다름없이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책상 반대편에 놓아둔 텔레비전에서는 홈쇼핑 광고가 끝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누군가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 책상 위에 묻은 먼지 하나도 견딜 수가 없고, 시곗바늘 돌아가는 소리조차 견딜 수가 없다지만 나는 오히려 정적을 참지 못하는 편이었다. 한동안은 클래식씨디를 틀어놓고 일을 했고, 또 한동안은 라디오 음악프로를 틀어놓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티브이를 틀었다. 등뒤에서 울려오는 홈쇼핑 광고처럼 내게 더이상 안온한 소음은 없었다. 나는 노트북의 자판을 두들기거나, 책을 읽다 말고 마치 뭣에 잡아채인 듯이 등을 돌려 정신없이 수화기를 집어들곤 했다. 내가 전화기의 버튼을 누르는 순간에도, 침구세트며, 건강보조기구, 신소재 가정용품의 현장판매 숫자가 숨막히게 올라갔다. 걸려라, 걸려. 정해진 차수의 착신자에게는 보너스 사은품까지 지급된다는 광고를 초조하게 바라보면서, 나는 잭폿을 바라기나 하는 것처럼 소리내어 외치기까지 했다. 걸려라, 걸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았다. 눈앞에 현실화된 목돈이 느닷없이 내게서 그런 자질구레한 구매충동을 사라지게 하기라도 한 것일까.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고, 한 페이지의 책도 읽지 못하고, 10장들이 란제리세트를 구매하는 정확하게 오십번째의 고객이 되기 위해 수화기 쪽으로 몸을 던지지도 않은 채, 그 밤이 그냥 그렇게 깊었다.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선배가 내게 넘겨준 자료에 특별히 밑줄표시가 되어 있는 글귀였다. 그 소제목 밑으로, 그의 가족관계와 성장배경, 업적(!) 등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부농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부친이 가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소년기를 참담한 가난 속에서 보낸다–전형적이로군! 그는 쌀집 배달부로 청춘을 시작하는데 그의 뚝심과 성실성을 인정한 쌀집 주인의 후원으로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검정고시로 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 몫의 가게를 낼 수 있게까지 된다–이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얘기잖아. 쌀장사로 치부의 기반을 마련한 그에게 다가온 첫번째 행운은 누구한테 거저 가져가라고 해도 거들떠보지 않던 고향땅의 값이 상승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부동산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이것은 그가 엄청난 재산증식을 하게 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선배는 이 부분에 또다른 색깔의 밑줄을 그어놓았다. 적어도, 겉으로 내세울 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얘기다. 뒤늦은 나이에 그는 대학에 입학하는데 그가 선택한 전공은 사회사업학과, 왜냐하면 자신이 증식한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었기 때문에–이쯤 되면 더이상 토를 달 말도 없다! 그후 복지재단과 장학재단의 설립 등등.

선배의 노트는 정리가 어찌나 잘되어 있던지 오래 읽어가면서 곱씹을 필요도 없었다. 선배의 노트를 뒤적이면서 내가 곱씹은 것은 그의 경력들이 아니라, 오히려 선배가 밑줄을 그어놓은 소제목 ‘전형적인 자수성가형’이라는 글귀였다. 선배는 아마도 자신이 써나가게 될 자서전의 방향을 그런 식으로 잡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우리 사회에 깔고 앉은 땅의 값이 폭등해 치부의 밑바탕이 되고 인생의 소중한 교훈이 되어, 내친김에 부동산투자에 전념, 졸부가 되는 케이스처럼 ‘전형적인’ 것이 어디 있겠는가. 고작 쌀집 배달부였을 뿐인 청년이, 쌀부대에서 떨어진 낟알들을 한알 한알 모아 마침내 자신의 쌀부대를 다 채우고도 남아 복지재단과 장학재단까지 설립했을 뿐만 아니라 거액의 돈을 들여 자서전을 대필시킬 정도로 부자가 됐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확실히 비전형적인 일일 것임에 틀림없다.

 

얼마 동안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갑자기 복권에라도 당첨된 것인지 거의 다된 일을 내게 넘기면서 했던 선배의 말처럼, 정말이지 어려울 것은 없어 보였다. 그에 관한 자료들은 이미 전부 녹취되어 있었고,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별도표시들도 일목요연했다. 오십대 남자의 자서전을 여자작가가 대필하는 일이 의뢰인에게 만족스러운 일이겠는가 싶었으나, 오히려 여자작가를 원한 것은 그쪽이었던 모양이다. 52세 이호갑의 인생역정 중에 유일한 불행은–그 자신에게가 아니라 그의 자서전에 있어서 말이다–공식적으로만도 이혼을 두 번씩이나 한 경력이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다 그 세세한 사연들을 전부 밝히고 싶어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여성유권자들에게 야기될지도 모를 오해를 막기 위해 그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집필을 시작한 지 한달 만에 그에게 초고를 보여주었을 때, 그가 가장 만족스러워했던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사실 나는 몇명인지도 알 수 없는 그의 아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알고 있는 게 있다면, 외국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유명상표의 향수나 핸드백이 아니라 아비시니안 종의 회색 고양이를 사들고 왔다는, 현재의 아내에 대해서뿐이었다. 나는 최근의 추세를 감안하여 그녀를 동물애호가로, 그런만큼 사랑과 헌신이 풍부한 여자로 묘사했다.

그러나 아무리 일이 순조롭다고 해도, 넘기 힘든 부분은 있는 법이다. 자서전에서 그가 가장 잘 표현하기를 바라는 핵심적인 부분은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 자신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여’였다. 이 경멸스럽기 짝이 없는 조어는, 그 나름대로는 고심끝에 만들어낸 것인 모양이다. 그는 애석하게도(!) 감옥에 가본 적이 없고, 지난 세기의 그 어떤 정치적인 사건에도 연루된 바가 없는 사람이다. 더욱 애석하게도 그는 정치적으로 가장 엄혹한 시기에 그의 재산 대부분을 축적했다. 그는 세 번의 이혼을 감상적인 묘사로 슬쩍 넘기기를 바랐던 것과는 달리, 이 부분만은 어떤 방식으로든 명확하게 표현되기를 바랐다. 그러니까 그의 재단에서 지원을 한 단체 중에 재야단체가 있었다는 것, 그 재야단체의 유명한 누군가에게는 비밀리에 사적인 지원을 한 바도 있다는 것, 물론 극도로 엄혹했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