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근대를 다시 본다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

 

 

미야지마 히로시 宮嶋博史

일본 쿄오또(京都)대학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토오꾜오도립(東京都立)대학, 토오꾜오(東京)대학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로 재직한 후 2002년 5월부터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 저서로 『朝鮮土地調査事業史の硏究』 『양반』 등이 있음. 이 글의 원제는 「近代再考–東アジア史の立場から」임. miyajima@hanmir.com

ⓒ 宮嶋博史 2003/한국어판 ⓒ 창작과비평사 2003

 

 

머리말

 

21세기에 들어 세계는 점점 더 혼미해져가고 있다.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공격이 상징하듯이 국제분쟁을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질수록 무력행사와 테러가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다. 미국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거침없는 행동을 결의하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둘러싼 움직임도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채로 여전히 동아시아 지역 최대의 불안정 요인이 되고 있다.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생겨난 국민국가체제와 그것을 단위로 한 국제질서의 형성이 두 번의 세계대전과 동서냉전을 경험하면서도 현재까지 그 기본구조를 지속하고 있으며,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상(世界像)은 불투명한 상태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세계질서로는 민족·종교·환경 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가 계속 분출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싯점에서 역사를 되돌아볼 때,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많다고 여겨지지만, 근대에 생겨났다고 하는 국민국가와 그것을 단위로 한 국제질서의 존재상태를 재검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될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라는 지역에 사는 사람으로서 근대 문제, 국민국가 문제는 절실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19세기 이후의 동아시아야말로 국민국가 문제를 둘러싸고 세계에서도 가장 격심한 변화를 거쳐온 지역이며, 현재도 그러한 고뇌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라는 거대국가가 정말 국민국가라는 틀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대만과 중국의 관계, 한반도의 남북문제와 통일문제는 국민국가의 형성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질 것인가 등등의 문제가 여전히 21세기에 남겨진 커다란 의문이다. 동아시아가 끌어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대 혹은 국민국가라는 틀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동아시아의 지적(知的) 세계에서 이러한 재검토를 시도하는 것은 아직 시작단계에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재검토를 본격적으로 수행할 준비작업으로서, 동아시아 근대사, 근대사상(近代史像)에 대하여 종래의 일반적인 인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최근에 경제사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동아시아사의 재조명 움직임을 소개함과 더불어 그러한 새로운 동향이 가지는 문제점을 지적하기로 한다.

 

 

1. 동아시아의 역사소외

 

동아시아 근대 역사상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예로서, 우선 한일 양국의 역사교과서에 나타나는 근대사 인식을 보기로 하자. 한일 역사교과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몇번의 논의가 있었는데, 그 중심적 논점은 한일관계사에 관한 기술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교과서에 나타나는 근대사 인식의 문제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한일 양국 모두 역사교과서의 내용은 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르고 있어 제도적으로 역사연구의 성과를 자유롭게 반영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교과서에는 양국 연구자의 일반적인 역사파악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과서에 보이는 근대사 인식은 양국 역사학계의 평균적인 이해가 반영되어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한일 양국 모두 고등학교 역사교육은 자국사와 세계사로 나누어져 있다. 이러한 사실도 중요한 문제라고 여겨지는데, 우선 일본 교과서부터 보기로 하자. 일본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의 기준이 되는 ‘교육지도요령’을 보면, 전체적으로 크게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 (1) 세계사 입문, (2) 여러 지역세계의 형성, (3) 여러 지역세계의 교류와 재편, (4) 여러 지역세계의 결합과 변용, (5) 지구세계의 형성이라는 5부 구성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근대’에 해당하는 것은 (4)부분인데, 그것은 다시 다음과 같은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 ① 아시아 여러 지역세계의 번영과 변용, ② 유럽의 확대와 대서양세계, ③ 유럽·아메리카의 변혁과 국민 형성, ④ 세계시장의 형성과 아시아, ⑤ 제국주의와 세계의 변용. 각 교과서는 기본적으로 이 ‘지도요령’에 따라 집필하도록 되어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시대를 어디서 기술하는가는 교과서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현재 일본의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로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Y출판사 교과서의 아메리카를 포함한 유럽(이하, 유럽으로만 기술함)과 동아시아 부분을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는 생략함). 우선 유럽을 다룬 부분을 보면, ‘1장 고대문명의 성립’의 ‘2절 지중해문명’(18면), ‘4장 유럽세계의 형성과 발전’(29면), ‘5장 근대 유럽의 형성’(32면), ‘6장 18세기까지 세계문명의 교류’의 ‘2절 유럽문명의 확대’(3면), ‘7장 19세기의 유럽과 아메리카’(42면), ‘8장 아시아의 변혁과 제국주의’의 ‘3절 제국주의의 성립과 열강의 정세’(6면)로, 전체 130면이 할당되어 있다. 한편 동아시아에 대해서는 1장의 ‘5절 중국의 고대문명’(8면), ‘2장 동아시아 세계의 형성과 발전’(33면), 8장의 ‘1절 유럽제국의 아시아 진출’의 동아시아 관련 부분(8면), 같은 장의 ‘4절 아시아 여러 국가의 변혁’ 가운데 동아시아 관련 부분(6면)으로 모두 55면 분량이다.

이렇듯 세계사 교과서는 유럽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를 제외하고 유럽·아메리카에 관한 기술은 130면에 이르는 데에 반해, 동아시아 관련 기술은 그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55면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럽중심주의는 근대 부분뿐만 아니라 고대에도 마찬가지여서, 지중해문명(그리스·헬레니즘·로마 문명)이 18면에 걸쳐 서술되어 있는 데 반해, 중국 고대문명은 8면뿐이다. 이상과 같은 구성은 이 교과서가 세계사 수업에서 유럽 근대의 의미를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하는 인식에 기초하여 작성되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준다. 유럽 중세, 나아가 고대 지중해문명에 대해서도 그것이 근대 유럽문명을 배태한 원천이기 때문에 상세히 기술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Y출판사 교과서에는 2장의 ‘동아시아 세계의 형성과 발전’에서 중국사의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청(淸)대의 아편전쟁 이전까지 천년 이상에 걸친 시기를 일괄해서 다루고 있다. 이런 구성이라면 보기에 따라서는 이 기간 동안 동아시아 사회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던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교과서 구성상, 교육지도요령에서는 (4)의 근대부분에 들어가야 하는 ‘아시아 여러 지역세계의 번영과 변용’도 이 부분에서 서술하고 있으므로 특히 그러한 인상을 준다. 또 동아시아를 다루는 부분에 한해서 본다면 그 대부분이 중국에 관한 기술이며, 주지하듯이 한국사에 관한 기술은 극히 적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