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천운영 千雲寧

1971년 서울 출생.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바늘』 『명랑』 『그녀의 눈물 사용법』 『엄마도 아시다시피』,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생강』 등이 있음.

hangomm@hanmail.net

 

 

 

금연캠프

 

 

첫번째 날—모두 매우 그러한 밤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은 문서연이었다.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두시간이나 서둘러 왔지만, 운영자들의 준비가 끝나지 않아 입구에 서서 기다려야 했다. 그녀는 왼편 창가 자리를 선택했다. 채광과 환기, 온풍기와 텔레비전의 위치 등을 고려한 결과였다. 옆자리 침대를 살짝 이동시켜 자리를 확보하고, 모자란 옷걸이는 다른 캐비닛에서 보충해 짐정리를 마쳤다. 그러는 동안 의료진이 들어와 혈압과 체온, 체내 일산화탄소 등을 측정하고 나갔다. 입구에서 받은 셔츠로 갈아입고 명찰까지 목에 걸고 준비를 마쳤을 때 다음 지원자들이 도착했다.

이금순은 이정희와 함께 왔다. 두 사람은 은평구의 한 찜질방에서 종종 마주치던 사이로, 자수정방에 누워 있다 캠프에 관한 정보를 접했다. 마침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였고, 세부사항들이 무척 매력적이었으므로, 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뛰쳐나와 전화를 걸었다. 여성 참가자 일정은 아직 확정된 바가 없어 일단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그로부터 꼭 두달 뒤 일정이 잡혔는데, 그들은 그동안 연락을 주고받으며 정보를 공유했다.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지하철역에서 만났을 때, 벌거벗지 않은 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인지라 서로 알아보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문서연은 본능적으로 두 사람을 가깝게 두어야겠다고 판단했다. 자리선점 다음에는 주변구축. 문서연이 이금순의 가방을 받아 들며 자연스레 옆자리로 인도하자 이정희는 저절로 따라왔다. 먼저 도착한 사람답게 캐비닛 사용법 등을 안내해주고 앞자리에서 가져온 옷걸이로 선심도 썼다.

연이어 다음 지원자들이 도착했다. 안녕들 하십니까, 오명잡니다. 우렁찬 목소리였다. 오명자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침대에 가방을 던지며 손을 흔들었다. 유세에 나선 정치인 같았다. 염색하지 않은 백발은 숱이 많고 부드러웠다. 부리부리한 눈매 때문인지 그녀에게는 뭔가 압도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뒤따라 들어온 김숙희와 서희주는 오른편 가운데 침대를 선택했다. 김숙희는 짐을 한쪽에 밀쳐둔 채 그대로 침대에 올라가 누워버렸는데, 거기까지 오는 데 모든 체력을 다 쓴 사람처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서희주는 바닥에 캐리어를 펼쳐놓고 짐부터 정리했다. 이민가방으로 쓸 만한 큼직한 가방에서 일인용 온열매트가 나왔다. 이미 4월하고도 중순이었다. 그녀는 침대 매트리스 커버를 벗긴 다음 온열매트를 올리고 다시 커버를 덮는 과정을 신속하게 처리했다. 김숙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잠이 들었다. 낮게 코 고는 소리가 났다. 어머나, 이분 정말 잠드셨나봐, 피곤하셨나보다. 서희주는 진심으로 감명받은 듯했다.

정확히 열두시 반이 되었을 때 오현주가 들어왔다. 그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허둥대다 암센터로 들어갈 뻔했다. 남은 자리는 둘. 문가에 하나, 창가에 하나. 그녀는 주위를 한번 쓱 둘러본 후 입구 자리에 짐을 풀었다.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않으면서, 나름 방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최선의 자리라 여겼다. 뒤따라온 스태프가 기초 측정부터 서둘렀다. 저혈압에 체온은 정상, 체내 일산화탄소 수치는 11. 수치의 의미는 알 수 없었다. 시간에 정확히 도착했는데도 어쩐지 부산했고 무언가 소외당한 기분이 들었다.

저기 언니야, 셔츠 갈아입고 명찰 달아야 한대. 명찰. 그거 손에 든 거, 목에 걸라고.

오현주를 주목하고 있던 문서연이 명찰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현주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문서연은 한번 더 얘기를 하려다가 마침 병실에 들어온 스태프를 붙들어 세웠다. 여기 와이파이 안 돼요? 표시는 뜨는데 이건 왜 이렇게 빙빙 돌기만 해? 이것 좀 봐줘봐요. 아, 게임은 잘 안 되실 거예요. 파일 다운로드도 어렵고, 여기가 병원이라 보안상 막아놓은 게 많아요, 그냥 데이터로 사용하시는 편이. 아니, 고스톱에 무슨 보안이 필요해? 풀어줘봐요. 내가 일부러 아이패드 챙겨온 건데? 그건 저희 영역이 아니라서요. 아 진짜 짱나게, 4박 5일 동안 고스톱도 없이 어떻게 버텨요? 안 그래요? 문서연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지만 다들 각자 일을 처리하느라 반응이 없었다.

오현주는 고개를 숙인 채 입구에서 받아온 물품들을 살폈다. 흰색 폴로셔츠 두개, 휴대용 물병과 탁상용 달력, 그밖에 안내책자들. 안내문에 따르면 단체복 착용은 권고사항이었다. 권고는 의무가 아니었다. 가방에서 흰색 반팔 티셔츠를 꺼낸 다음 커튼을 쳤다. ㄴ자 연결로 이루어지는 병원 칸막이의 구조상, 옆자리 도움 없이는 완벽한 차단이 불가능했다. 옆 침대의 서희주는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건너 침대의 김숙희는 아예 이불까지 덮어썼다. 잠을 자기 위해 온 사람 같았다.

실내에 쿰쿰한 오징어 냄새가 퍼졌다. 마른오징어를 꺼낸 사람은 오명자였다. 시작은 이정희의 사과였고, 문서연의 당근과 인삼이 따라 나왔고, 결국 오명자가 마른오징어를 꺼낸 것이었다. 그보다 먼저 새벽부터 일어나 밑반찬을 해왔으나 입구에서 뺏기고 말았다는 이금순의 넋두리가 발단이었다. 더덕도 무치고 장조림도 하고 멸치도 새로 볶았는데, 어머나 맛있었겠다, 그 말 들으니 배고프네, 그럼 사과 드릴까요? 그건 어떻게 가져왔대? 왜 안 돼요? 음식물은 안 된다더만, 반입금지, 저도 당근 있어요. 그리하여 배에서 말렸다는 진짜 맛있는 오징어에 도달했고, 오명자가 손으로 짝짝 찢어 다리와 몸통을 적당히 섞어 분배하자, 이정희도 깎은 사과를 들고 한바퀴 돌았고, 그렇게 오징어나 사과를 한쪽씩 나눠 먹고 있을 때, 스태프 둘이 뛰어 들어왔다.

선생님, 음식물 반입은 안 됩니다, 이미 공지해드렸을 텐데요. 이것만 먹고 치워버릴게. 저희한테 주시면 보관했다가 끝나는 날 돌려드리겠습니다. 뭘 그때까지 두고 말고 해, 그냥 지금 먹어버리고 말지. 오징어는 특히나요, 제가 어떻게 알고 왔겠습니까, 복도 끝까지 냄새가, 다른 음식물들도 다 주세요. 사과는 괜찮지 않아요? 아침에 사과가 약이야, 저녁엔 독이고. 안 됩니다, 병실에는 냉장고가 없지 않습니까, 여기가 병원이라 아무래도 위생에 민감해서. 인삼은 하루에 한뿌리씩 먹어야 돼, 내 담당 의사가 그러라고 그랬어. 그럼 가져가서 아침식사 때마다 갖다드릴게요. 아니 의사가 먹으랬다니까? 드시지 말라는 게 아니라, 보관을 해드리겠다는 겁니다.

오징어에서 당근으로 인삼으로 다시 오징어로, 입씨름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왕 입에 넣은 오징어를 씹으면서 딴청을 피우고, 또 누군가는 사과 보따리와 당근 통을 품에 안고 안간힘을 쓰는 사이, 그 병실의 마지막 참가자 윤다영이 도착했다. 공지된 모임시간보다 이십분 늦은 시각이었다. 서두르는 기색은 없었다.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느릿느릿 걸어 마지막 남은 창가 자리로 이동했다. 그녀의 등장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입구에 있던 오현주만큼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징어를 압도할 만큼 독한 냄새 때문이었다. 피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담배 연기 입자, 거기에 아주 오랫동안 깊숙이 밴 담뱃진 내까지. 조금 과장하자면, 흡연구역의 재떨이 냄새와 비슷했다. 그녀 자신도 종종 찾는 곳이지만 결코 오래 머물고 싶지는 않은, 익숙하면서도 불쾌한 바로 그 냄새.

윤다영은 창밖을 내다보다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 햇살 때문인 것도 같고 어떤 통증 때문인 것도 같았다. 오현주는 윤다영이 낯설지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윤다영에게서 풍겨온 냄새를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였을까? 별관 입구에서 걸음을 돌려 병원 밖으로 나갔다 되돌아오길 반복했을까? 그때마다 구석으로 숨어들어가 담배를 피웠을까? 빈 담뱃갑을 쓰레기통에 던졌을까? 아니면 그녀처럼 마지막까지 품고 있다가 결국 데스크 위에 놓인 아크릴 통에 넣었을까. 명찰과 셔츠를 받아 안고 카드키로만 개폐되는 문을 통과했을 때, 등 뒤로 삐리릭 문 잠기는 소리가 들렸을 때, 비로소 현실을 받아들였을까? 어쨌거나 이제부터 4박 5일은 그것 없이 지내야 한다는 것을. 오현주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그들은 자발적으로 이곳에 와 갇혔다. 4박 5일 동안의 자발적 감금상태. 중증 흡연자들을 위한 전문 금연캠프. 중증 흡연자들이란 이십년 이상 흡연을 했거나, 5회 이상 금연에 실패한 사람들을 지칭했다. 흡연은 질병.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표에 명시된 질병. 담배흡연에 의한 정신 및 행동장애. 급성 중독, 정신병적 장애, 기억상실증후군, 금단상태, 만성폐쇄성폐질환 등 무수한 세부질병을 포함한 질병 중의 질병. 타인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범죄 중의 범죄. 악의 근원.

출입구는 잠겼고 서약서는 제출되었다.

금연캠프에 제공되는 진료, 상담, 교육에 성실히 임할 것을 서약합니다. 금연캠프 입소지침을 준수하겠습니다. 담배를 소지하거나 흡연을 할 경우, 타 입소자에게 선동을 하거나 사기저하를 유발할 경우, 금연캠프 수칙을 위반하였을 경우 강제 퇴소당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프로그램 이수를 하지 못할 경우 보증금은 환급되지 않으며, 추가 발생된 진료비 및 약물치료비 등은 추가로 부가됨을 인지하였습니다. 제공하는 모든 건강정보는 치료 및 연구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허락합니다.

전문치료형 금연캠프 7기 참가자는 모두 스물일곱명이었다. 여자가 1실에 여덟명, 남자가 3실에 열아홉명. 상주하는 간호사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혈압과 체온, 체내 일산화탄소, 혈당 등을 체크하면서 입소자들의 건강상태를 관리한다. 신경정신과, 가정의학과, 내과, 검진과 상담을 비롯해 여섯개 기관의 전문교육이 포함되어 있다. 여섯명의 스태프들은 잡다한 모든 일들을 처리하며, 이동 시 응급상자를 들고 앞뒤좌우에서 가이드 역할을 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간혹 금단증상이나 혈당저하로 위급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므로 응급대처훈련을 받은 자들이다.

오징어와 인삼의 쟁탈전은 스태프 둘이 더 들어와 반강제로 수거한 후에야 끝이 났다. 괜히 사과를 꺼내서, 오징어만 아니었으면, 괜히 오징어는 받아 들어가지고. 궁싯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내 잦아들었다. 마침 작성해야 할 각종 서류들이 도착했으므로, 그들은 모두 각자의 침대에 올라앉아 간이 테이블을 내리고 조용히 볼펜을 들었다. 참가신청서, 서약서, 주의사항 확인서, 그리고 열 페이지가 넘는 심리평가 설문지까지.

 

‘매우 그렇다’에서 ‘매우 그렇지 않다’까지 모두 7단계. 당신의 상태를 체크하시오.

나는 지금 당장 담배를 피우고 싶다.

지금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가능하다면 지금 담배를 피울 것이다.

내가 지금 담배를 피울 수 있다면 지금 일들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담배이다.

나는 지금 담배를 너무 피우고 싶다.

지금 담배를 피우면 담배 맛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지금 담배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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