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재은 李在恩

1996년 출생. 2020년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며 등단.

jaenini@naver.com

 

 

 

기르는 사람들

 

 

도마뱀을 먼저 발견한 건 의주였다.

일을 마치고 역으로 마중 나온 의주와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의주는 조금 상기되어 있었는데 얼마 전 마음먹고 산 터치형 선풍기 두대 중 한대의 조작부가 완전히 고장 나버렸기 때문이었다. 마트에서는 곧장 서비스센터의 번호를 알려주었고 상담원은 터치패드 고장은 고객의 과실이므로 유상 수리가 원칙이라고 했다. 구만구천원짜리 선풍기를 고치는 데 삼만오천원이 들었다. 무더위에 선풍기를 이고 걸어갈 자신은 없어서 택시비까지 더하면 남는 게 없었다.

그냥 새로 살 거야.

의주가 말했다. 나는 그런 의주가 며칠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선풍기를 고치러 가자며 나를 흔들어 깨울 것을 알고 있었다. 맞장구를 치는 대신 의주의 등에 달라붙은 티셔츠를 집어 올려 슴슴 바람이 통하게 해주었다.

의주는 함께 걷다가 음, 하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는 저녁 메뉴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했는데 그래서 한 박자 늦게 그것을 알아챘다. 의주는 내가 따라잡지도 못하게 성큼성큼 앞서가더니 인도와 도로 사이에 설치된 배수구 앞에 풀썩 쭈그려 앉았다. 짧은 티셔츠가 말려 올라가면서 등이 훤히 드러났다. 마침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었고 사람들이 그런 의주를 흘끔 보면서 건너왔다.

뭐야?

방금 여기서 뭔가 움직였어.

나는 의주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뜬 채 배수구를 내려다보았다. 격자무늬 쇠살대 아래의 낙엽과 담배꽁초 탓에 의주가 가리키는 것이 잘 안 보였다. 부러진 나뭇가지로 마른 낙엽 더미를 헤집자 틈새를 비집고 삐져나온 세모난 머리통 하나가 눈에 띄었다. 파충류의 머리였다.

도마뱀인가봐.

이렇게 생겼었나.

나도 모르게 미심쩍은 투로 말했다. 위로 올라오려는 중이었는지 사람들을 피해 숨어 있던 건지 미동조차 없어서 어쩌면 죽은 게 아닐까 싶던 찰나 도마뱀이 몸통을 수축시키며 호흡했다. 빌딩과 상가 건물로 둘러싸인 역 주변까지 어떻게 흘러왔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만 가자.

나는 의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의주는 조금만, 하고선 한참을 더 말 없는 도마뱀과 씨름했다. 신호가 한번 더 바뀌고 차들이 정지선에 멈춰 섰을 때, 의주는 무언가 결심한 듯 말했다.

데려갈까?

데려가서 어쩌려고.

내가 키우고 싶어.

함부로 주워가면 안 돼. 죽을 수도 있어.

그냥 여기 둬도 어차피 죽을 텐데.

거의 죽은 걸지도 모르지, 의주가 덧붙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곤 말릴 새도 없이 잠깐만 있어봐, 하더니 바로 옆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갔다. 몇분 뒤 2리터짜리 생수 한병과 가위를 들고 나온 의주가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나는 한발 물러나 볼라드에 걸터앉은 뒤 의주가 배수구 옆 도로에 물을 콸콸 버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의주는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도마뱀이 들어갈 자리와 덮개를 만들었다. 그다음엔 아주 조금 남은 물을 도마뱀이 있는 쪽으로 흘려보냈다. 그러는 동안 나도 어느새 의주의 곁에 서 있었다. 도마뱀은 고개를 삐죽 들고 동태만 살필 뿐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는데 기다려보라는 의주의 말대로 잠깐 기다리자 조금씩 지상을 향해 기어 올라왔다. 생각보다 움직임이 굼떠서 보니 몸통 아래에 있어야 할 긴 꼬리가 보이지 않았다. 다 태우고 남은 향처럼 절단부가 까맣게 오그라들어 있었다.

그래서 여기 숨어 있었나봐.

의주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도로 위로 올라온 도마뱀은 마른 나뭇잎의 표면에 맺힌 물방울을 핥아 먹었다. 아래턱이 위아래로 들썩였다. 배를 불린 도마뱀이 두 인간과 헤어지려는 듯 몸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로 가면 차도였다. 곧 신호도 바뀔 것이다. 내가 주저하는 동안 의주는 단번에 몸통 아래쪽을 잡아채 준비해둔 페트병 안에 집어넣고 입구를 막았다.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의주가 말했다.

이름은 핀이라고 지을까?

핀?

선풍기 얘기하다 본 거니까.

팬은 좀 이상하지 그러니까 핀으로. 나는 그것참 실없는 이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쁘지 않아서 핀, 하고 작게 불러보았다. 핀이 그새 기운을 차렸는지 자꾸만 페트병 옆면을 타고 올라오려고 했다. 의주는 불안한지 페트병을 감싸 안았다. 그 모습이 꼭 여름날 곤충채집통을 품에 안고 거리를 쏘다니는 아이들 같아서 사진을 몇장 찍어두었다.

버스를 타고 다섯 정거장을 지나 시장 앞에서 내렸다. 에어컨 바람을 쐬다 나와서인지 바깥 공기가 더 습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사는 황제맨션은 시장 끄트머리에 있었다. 시장 초입에 들어서자 잊고 있던 저녁 생각이 났다.

뭐 먹지?

배고파?

아니.

그래도 먹어야지.

그럼, 밥을 같이 먹어야 식구지.

나는 의주가 자주 하는 농담을 따라 하고선 작게 웃었다.

그럼 떡이나 사 갈까, 그러자 하며 자주 가는 떡방앗간 앞에 다다랐는데 마침 기름을 짜는지 사방에서 고소한 냄새가 났다. 가판대를 유심히 보고 있자 안에서 주인 할머니가 나왔다. 세 팩에 오천원. 인절미와 절편, 그리고 약밥을 차곡차곡 쌓아 건네는 통에 얼결에 받아 들었다. 옆에 있던 의주가 참기름이 든 초록색 유리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얼마예요? 구천원. 이만원을 내고 거스름돈을 챙겨 나오려는데 할머니가 의주에게 들고 있는 것이 뭐냐고 물었다.

도마뱀이에요.

도마뱀?

할머니는 목에 걸고 있던 돋보기안경을 쓰더니 페트병 안을 유심히 살폈다. 색색의 큐빅이 박힌 안경 줄이 흔들거리며 반짝였다. 의주가 괜히 내 눈치를 보았다.

생긴 게 영 도마뱀이 아닌데.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그럼 뭔데요?

나야 모르지.

할머니는 무심히 대꾸했다.

얼른 놔줘. 밖에 사는 건 집에 들이는 게 아니야.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면서 물러났다. 의주가 무어라 대꾸하려 해서 내가 대신 그래야죠, 하며 말을 잘랐다. 할머니는 대뜸 자기 얘기를 꺼냈다.

우리 삼촌은 밀렵꾼이었는데 어릴 때 삼촌 집에 놀러 가면 다른 건 몰라도 냉동창고 문만큼은 절대로 못 열게 했어.

왜요?

나중에 몰래 열고 들어갔는데 죽은 꿩이 수십마리는 족히 널브러져 있었거든.

살아 있는 핀을 두고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았으나 흘러내리는 카디건을 고쳐 입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구렁이 잡아다가 술도 담가. 동네 아저씨들이 매양 모여서 저거 언제 딸까 그것만 기다리는 거야. 키우던 것도 때 되면 잡아먹어.

왜들 그랬을까요.

오래오래 살겠다고.

그분들 지금 다 살아 계세요?

다 죽어서 거름 됐지.

그 말에 의주가 긴장이 풀렸는지 와하하 웃었다. 그러곤 서비스로 받은 참깨 한봉지를 들고 나오면서 꾸벅 인사했다.

할머니는 오래오래 사세요.

그래. 걘 꼭 놔주고.

그럴게요.

이번엔 나보다 의주가 먼저 대답했다.

 

이것저것 산 것들을 양손 가득 들고 시장을 벗어났다. 붉은 벽돌로 지은 구옥들이 조밀하게 늘어서 있었다. 집마다 내놓은 잡동사니에서 수산코너의 환한 조명 아래 놓인 생물들과는 또다른 고요한 생기가 느껴졌다. 한풀 꺾인 의주가 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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