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려령 金呂玲

1971년 서울 출생. 2007년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샹들리에』, 장편소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가시고백』 『너를 봤어』 『트렁크』 『일주일』 등이 있음.

 

 

 

기술자들

 

 

1

 

최가 가게를 떠나기 보름 전이었다. 그의 관심은 온통 구인승 승합차에만 있었다. 인부는 더이상 태울 일이 없을 거였다. 그 때문에 뒷좌석들을 모두 없애고 생활공간으로 바꾸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바닥은 단열재와 합판을 판판하게 깐 뒤 마루무늬 장판을 덮어 마무리했다. 차창들에는 짙은 필름을 붙여 밖에서 안이 잘 보이지 않도록 했다. 창이 큰 뒤쪽에는 차량용 커튼도 달았는데, 그만하면 캠핑카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아늑하지 싶었다. 최는 간단한 가재도구와 연장통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 어디에서든 밥은 먹어야겠고, 연장통은 늘 함께한 일종의 반려공구였다. 그런데 막상 정리하다보니 챙길 것들이 제법 됐다. 쾌적하게 지내려면 공간 분배가 관건이었다. 그렇게 최가 승합차에 열중일 때 욕실 누수 문의가 들어왔다. 마지막 일일 것이었다. 최가 연락받은 빌라로 가서 확인해보니 세면대 아래 바닥으로 물이 고여 있었다. 벽을 타고 내려온 물이었다. 매립된 배관에 문제가 있었다. 최는 장비를 챙겨 오마 하고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공사에 필요한 장비들을 카트에 실었다. 이놈들이 노잣돈을 다 챙겨주네. 최가 카트를 끌고 가게 앞으로 나왔다. 그때 조가 다가왔다.

“혹시 사람 안 구하십니까?”

“그…… 뭐 할 줄 알아요?”

“잡일 보조는 이것저것 다 할 수 있습니다.”

그거참…… 행색을 보아하니 긴 시간 떠돈 것 같았다.

“일단 이것부터 짐칸에 깔아요.”

조가 최에게서 받은 군용담요를 승합차 짐칸에 깔았다. 최가 장판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장비를 실었다. 그러고는 함께 현장으로 갔다. 공사는 최가 도맡았다. 아직 조의 실력을 몰랐다. 그러나 조가 화장실 입구에 방진용 비닐 막을 칠 때부터 괜히 덤빈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기초적인 일에 능숙한 사람이 나머지 일도 잘했다. 대형 비닐을 각 잡고 펼쳐 말끔하게 설치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조는 혼자서도 잘했다. 장비를 준비하거나 거드는 일도 매끈하게 소화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신속한 보조였다. 어려운 공사는 아니었다. 누수 원인이 명확해 작업도 수월했다. 집주인이 세면대 옆으로 선반을 달기 위해 드릴로 박은 나사가 온수 배관을 뚫었다. 샤워기 쪽으로 난 노후 배관이었다.

“아니, 배관이 이쪽으로 났을 줄은 전혀 몰랐어요. 나 참……”

“집집마다 배관 위치가 조금씩 달라서 이런 사고가 종종 있습니다.”

성능 좋은 가정용 연장이 많아지면서 자가 설치나 시공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대개는 그럭저럭 잘하는데, 이 집처럼 잘못 손댔다가 낭패 보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곧 경험이니 그리 민망해할 일은 아니었다. 최가 벽을 뜯고 손상된 부위의 배관을 잘라낸 뒤 새 배관으로 연결했다. 시멘트를 바르고 타일을 붙여 마무리하기까지 순조로웠다. 뜯어낸 김에 배관 청소까지 했는데도 얼마 안 걸린 느낌이었다. 못내 서운한 공사였다. 정리하자고. 예. 최는 가게로 돌아와 조와 함께 삼겹살을 구웠다. 조의 일당도 여느 인부처럼 챙겼다.

“저는 한 것도 별로 없는데……”

“그게 한 거야. 많이 먹어.”

 

 

2

 

배관공. 최가 어릴 적에 큰아버지가 용돈벌이나 하라고 넣어준 현장이었다. 얼굴명함 덕에 귀염도 받았고, 일당 받는 맛에 여러 현장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평생 직업으로 여기지는 않았으므로 때때로 현장을 빠져나오기도 했었다. 젊기에 즐기기도 했고 더 나아 보이는 일에 눈을 돌리기도 했다. 그랬음에도 결국 돌아오는 곳은 현장이었다. 첫발의 무서움이었다. 경험이 경험을 연장시키고 확대시켰다. 배관은 시작이었다. 현장에서는 배관뿐 아니라 다른 일도 해야 했다. 더 잘하는 건 둘째 치고 못하는 것은 없어야 하는 곳이 현장이었다. 흙밥 십년이면 웬만한 집 한채는 혼자서도 지을 수 있는 까닭이었다. 어느덧 종합설비공이 되어 있는 것이다. 최 역시 그러했다. 좋으니 싫으니 하는 동안 현장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남의 흙밥 먹는 것이 슬슬 질려가는 때이기도 했다. 그러던 최에게 마침 기회가 왔다. 일을 배울 때부터 인연 깊은 옛 팀장 박이 제 가게를 최에게 넘기고자 했다. 간단한 설치나 수리로 버티는 영세한 배관설비 가게였다. 최는 오랜만에 박과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가게에 인삼 달인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인삼 냄새는 오묘했다. 젊은이에게서 나면 건강함이 부각되고, 노인에게서 나면 노쇠함이 더 부각됐다. 최는 몇년 전 박의 호출로 제법 규모있는 공사를 함께하고 그뒤로는 연락만 하고 지냈었다. 이년쯤 된 것 같은데 그동안 몰라보게 쇠약해져 있었다. 이젠 가게도 힘에 부친 모양이었다.

“손끝이 죽었어. 안 돼 이제……”

최에게 맞춤한 가게이기도 했다. 인부가 필요하면 그때그때 연락할 인맥이 있었고, 보통 때는 직원 하나 두고 차분히 꾸릴 수 있을 거였다. 최도 마침 제 가게를 갖고 싶었으니 서로 운때가 맞기도 했다. 박은 명목상에 지나지 않는, 최가 감당할 수준의 금액으로 가게를 넘겼다.

“삼년은 빚이다 생각하고 버티게.”

“예. 집에만 계시지 말고 종종 나오세요.”

박은 다음 해에 죽었다. 예상했지만 너무 빨리 무심하게 떠났다.

 

삼년은 빚이고 그뒤부터가 진짜라고 했다. 최도 그쯤은 알고 있었다. 굵직한 건설사의 협력사나 하청업체가 아니면 일을 따내기도 어려운 구조였다. 그랬기에 동네 일이나 빼앗기지 않으면서 밥값이나 벌면서 살 요량이었다. 배포가 작다면 작고 현실적이라면 또 현실적이었다. 그래도 초기에는 개업 운이든 인맥 덕이든 어지간한 공사가 제법 이어졌었다. 삼년고개 따위 가뿐하게 넘을 줄 알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계량기 하나를 교체하더라도 우선 검색부터 하는, 이른바 검색의 시대였다. 인터넷으로 검색된 내에서도 눈에 띄어야 선택됐다. 우리 동네 기술자라는 소개만으로는 힘들었다. 최에게는 다른 업체에서 내건 최첨단 장비와 특허공법, 자격증, 설비면허등록업체 등등의 문구가 없었다. 물론 꼭 그런 문제만은 아니었겠으나, 여하튼 삼년고개 겨우 넘었더니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하나 있는 직원 김마저 내보내야 할 실정이었다. 최는 살고 있는 집 보증금을 빼서 그의 밀린 임금 지불에 사용했다. 살림은 가게 창고로 옮겼다. 가게에는 박의 인삼 냄새 대신 최의 김치찌개 냄새가 배었다. 최는 늘 돼지고기를 잔뜩 넣은 김치찌개를 들통으로 끓였다. 그것으로 밥을 먹고 그것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얄궂은 세상이었다. 가게 하나 가졌을 뿐인데 돈은 점점 줄고 빚은 복리로 늘어났다. 최는 동네에 정붙이고 살면서 연장 든 할아버지로 늙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졸졸 새는 수도꼭지를 갈아주고, 물이 똑똑 떨어지는 천장 배관을 손봐주고, 누수 위치를 찾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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