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백민석 白旻石

1971년 서울 출생. 1995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장편 『헤이, 우리 소풍 간다』 『목화밭 엽기전』, 소설집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등이 있음. stoncold@hitel.net

 

 

 

기원(起源), 작은 절골

 

 

글쎄 그게 벌써 삼십년도 더 전 일이다. 나는 포대기에 싸여 있었다. 흔들이 요람 같은 건 없었다. 방밖 아궁이에선 갈치를 굽고 있었다. 부엌에선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큰 발들이 주위에서 쿵쾅 소리를 냈다. 나는 눈을 떴다. 창밖으로 황혼이 지고 있었다. 앞집 슬레이트 처마의 하늘색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창밖 먼빛으론 아까시나무가 보였다. 창틀을 찢어놓을 듯이 키가 컸다. 오월 초입이었을 텐데, 꽃송이들을 다 털린 헐벗은 모습이었다. 우듬지엔 봉발처럼 헝클어진 새 둥지가 커다랗게 올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구름기둥 같은 것이, 꺼멓게 하늘로 솟고 있었다. 창틀은 붉었다. 끓이고 지지고 볶을 때의 그 냄새들, 부딪고 깨지고 쿵쾅거릴 때의 그 요란함, 눈을 씻고 봐도 푸른빛 한점 없는 헐벗은 창밖 풍경들이 포대기만큼이나 단단히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게 세상이었다.

나는 그게 싫었다. 그래서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이따금 유령거미가 빤히 날 지켜보곤 하는 장롱 밑으로 자꾸 기어들어가려고 했다.

“창틀을 왜 저렇게 칠했어요?”

“뭐 어때서? 수도는 안 놓을 거야?”

“놓을 거예요. 하지만 들키면 벌금이 클 텐데.”

“지들이 안 놔준대서 우리가 놓는 건데 어쩔 거야. 병원에 갔다온 건 어떻게 됐냐? 간이 어찌됐다냐?”

나는 곧 포대기를 떨쳐버리고 일어나 앉았다. 장롱 밑으로 사라지기엔 덩치가 좀 불어 있었다. 길 수 있게 되자 나는 창문 아래에 바싹 가 붙어앉았다. 창밖 풍경은 변함이 없었다. 앞집 처마의 거미줄이 약간 자리를 옮긴 정도였다. 걸음마를 배우게 되었어도, 아까시나무는 헐벗은 모습 그대로였다. 가지들은 새까맸다. 꽃은 단 한송이도 달리지 않았다.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구름기둥이 시야 저 멀리에서 솟았다. 그것은 곧게 솟아오르다가 하늘에 닿으면 문득 흩어져 창밖 풍경을 물들였다. 집안살림에 흥미가 생기기도 했다. 비로소 매끼니마다 갈치가 불에 올려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궁이에선 항상 다른 악취가 났다. 방바닥을 울리는 큰 발소리도 항상 같은 게 아니었다. 그것은 때론 여섯 개가 내는 소리였다가 네 개가 내는 소리이기도 했고, 단 두 개뿐일 때도 있었고 이따금은 셀 수 없을 만치 늘어나기도 했다.

“왜 오늘은 약 안 챙겨갔어요?”

“시끄러.”

“그게 무슨 소리냐, 지 건강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네 낯빛을 봐.”

“가게 앞에 지하철이란 게 놓인대요.”

“그건 또 무슨 뚱딴지냐?”

잉꼬 새장이 처마 물받이에 달려 있었다. 걸음마를 떼고 마루에 나갔을 때 알게 된 사실이다. 어째서 저놈들은 지금껏 울지 않았을까. 잉꼬들은 화병에 꺾어놓은 개나리꽃처럼 결코 울지 않았다. 곧 내 몫의 신발이 생겼고 마당에 두 발을 내려 걷게 되었다. 마당엔 장롱 밑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살고 있었다. 귀뚜라미와 지렁이는 너무 많아 지루할 정도였다. 호랑거미는 누구라도 좋아할 현란한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흐리거나 비올 때는 달팽이들과 놀았다.

나는 방으로 돌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설 수 있게 되자 나는 등을 꼿꼿이 펴고 창문을 연 다음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붉은 창틀은 이제 내 시야를 가리지 못했다. 아까시나무는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비바람이 흔들건, 뙤약볕이 쬐건, 눈이 쌓이건, 아까시나무는 단색의 헐벗은 자태로 시야 한켠에 비스듬히 버티고 서 있었다. 구름기둥 역시 빠짐없이 아침과 저녁의 하늘을 물들였다.

“병원엔 가봤냐?”

“네. 의사 선생님이, 아파서 성을 내는 거니 대꾸하지 말고 잘해주라네요.”

“다른 말씀은 없으시고?”

“준비하고 있으래요.”

한차례 셀 수 없을 만치 많은 큰 발들이 다녀간 후로 집안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큰 발소리는 네 개가 내는 소음으로 줄어들었고, 아궁이에서 끼니마다 피어오르던 악취의 양과 종류도 줄었다. 반길 만한 변화였다. 나는 이제 사람들이 하는 말소리를 알아듣게 되었다. 실은 전부터 그랬는데 귀찮은 일에 휘말릴까봐 모른 척했을 뿐이다. 내 몫의 바지와 셔츠가 생기자 바깥문 출입을 시작했다. 포대기에 싸여 있었을 때부터 꿈에 그리던 일이었다. 망설임은 없었다. 나는 곧장 아까시나무로 달려갔다. 윗집을 거쳐 약간의 오르막길을 오르면 되었다. 아까시나무는 산비탈을 깎아 만든 축대 위 공터에 있었다.

아까시나무는 역시 실망스러웠다. 굵기는 내 몸통만했고 키는 감히 올려다볼 수 없을 만치 높았지만, 잎 하나 달려 있지 않았다. 불에 그슬린 것도 아닌데 온통 새카맸고 긁으면 껍질이 바스라지며 떨어졌다. 산 가지는 밑동께에서 새로 뻗기 시작한 퍼런 것 하나뿐이었다. 그나마 누가 밟아 짓이겨져 있었다. 내 머리 높이쯤에 도끼자국이 나 있었다. 팬 것은 아니고, 교활하게도 수피를 빙 돌아가며 도려낸 자국이었다. 사망의 원인이요, 살해의 증거였다. 황혼이 다시 지고 있었다. 축대 위에는 항상 황혼이 졌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

“어쩌기는요.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그게 무슨 말이냐? 몇달이나 지났다고.”

“어머니, 저를 놓아주세요.”

나는 창밖을 내다보는 대신 축대에 올라가곤 했다. 거기는 비할 수 없게 시야가 넓었다. 창틀 따윈 없었다. 시야를 턱하니 가로막는 앞집 슬레이트 처마 같은 것도 없었다. 축대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꽤 높은 곳에 집을 짓고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네가 모두 내 발 아래에 있었다. 산 중턱까지 옹기종기 달라붙어 올라앉은 집들이 다 내 발 아래였다. 내 위로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산뿐이었다. 군데군데 누렇게 뜨고 헐벗긴 했지만 숲이라고 할 만한 것도 있었다. 구름기둥이 어디서 솟는지도 알게 되었다. 굴뚝 두 개가 시가지 쪽에 우뚝 서 있었다. 아까시나무의 몇배는 될 듯한 높이였다. 시가지 쪽엔 그렇게 높은 것들이 많았다. 구름기둥은 그 굴뚝들에서 솟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 있게 되었다. 욕을 할 줄 알게 되자 친구도 생겼다.

“어머니, 갈게요.”

“그래라.”

“좋은 사람이에요.”

“아무렴.”

다시 큰 발 두 개가 더 사라졌다. 남은 건 내 두 발 소리와, 다른 큰 발소리 두 개뿐이었다. 울지 않는 잉꼬 새장도 함께 사라졌다. 어차피 울지 않는 잉꼬들이었지만, 그래도 집안이 좀 조용해진 듯했고 한결 살 만해진 듯싶었다. 아궁이 악취도 눈에 띄게 줄었다. 나는 안방을 거의 혼자 썼다. 이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자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굴뚝들도 더는 기괴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굴뚝 아래 달린 간판을 분명히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홍제목욕탕’이 그 굴뚝들의 정체였다. 세상의 다른 많은 것들도 즉시 정체를 드러내었다.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동네로 진출했다. 욕지거리는 더 화려해졌지만 간간이 점잖은 단어와 긴 문장도 섞어 썼다. 그만큼 사는 게 복잡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주로 꾀죄한 행색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동네를 소란스럽게 했다. 내가 가장 꾀죄했다. 손등은 트고 갈라져서 피가 날 지경이었고, 옷에선 오래 빨지 않아 간장냄새가 났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악취가 나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리고 시끄럽기도 남 못지않았다. 한무리로 엉겨 다니는데 누군가 우리를 불러세웠다.

“얘들아.”

“예?”

“우리 애가 새로 이사왔는데, 친구가 없단다. 우리집에 가서 같이 놀아주지 않겠니?”

맛난 것을 준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우리는 맛난 것의 냄새를 따라, 긴 정원로를 걸었다. 정원로의 끝에서 웬 허약한 아이가 우리를 맞았다. 덩굴장미가 온통 빨갛게 수놓고 있는 잿빛 담장 앞에서였다. 덩굴장미집 아이가 말했다. 안녕. 작은 절골에 가지 않을래? 어찌나 하얗고 가냘픈지 부러진 장미 꽃대 끝에 달린 수액 한방울 같았다. 우리는 길을 알고 있는 개장수집 아이를 따라 작은 절골로 갔다.

 

작은 절골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누나에서 동생으로, 형에서 동생으로, 한 아이에서 다른 아이로. 내가 작은 절골에 처음 올라가본 것도 다른 아이들을 따라서였다. 달리고 뛸 수 있을 만치 뼈가 굵어지고 근육이 붙으니 자연히 같이 가자는 소리가 나왔다. 아이들이 잠자리의 날개를 접어 손가락 새에 끼워 나타나곤 했을 때 어린 나는 한없이 부러웠다. 이젠 나도 잠자리를 잡아 날개를 떼어내고 목을 비틀고 동글동글 말아 죽일 수 있게 되었다.

작은 절골은 우리 동네가 올라앉은 산의 골짜기였다. 작은 절골이 있다면 큰 절골도 있다는 얘긴데 내가 가보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축복받은 곳에서 유년을 보냈다. 그저 생의 첫눈을 떠보니 그 동네였던 거지만, 거기서 논다는 건 축복이었다. 동네의 모식도(模式圖)는 이랬다. 독립문과 이어지는 무악재의 끝에서 시작된다. 굴뚝 두 개가 솟은 목욕탕이 있고 재래시장과 소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다. 주차장을 따라 비탈길을 오른다. 닥작닥작 붙은 삭은 기와지붕들과 축대들이 산 중턱까지 올라붙어 있다. 모식도는 산에까지 이어진다. 연탄재가 굴러다니는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면 어느새 일차 철거를 마치고 조경사업이 시작된 비탈이 나타난다. 묘목들이 나날이 말라죽어가는 그 폐허를 지나면 숲이었고, 그 너머 좀더 깊은 곳에 작은 절골이 있었다. 개울과, 텃밭에 쓰이는 작은 저수지와, 집채만한 바위와, 샘 들이 계절마다 낯빛을 달리하며 우리의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모식도의 대미, 산꼭대기는 군부대가 장식한다.

적송숲에 둘러싸인 공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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