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기후변화의 지정학과 한국사회

 

 

이필렬 李必烈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과학사·화학. 저서로 『에너지 대안을 찾아서』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찾아서』 등이 있음. prlee@energyvision.org

 

 

1. 인류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른 기후변화

 

기후변화는 세계 최대의 핵심어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기후변화를 둘러싸고 수많은 말들이 만들어지고, 수많은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국제연합 창설 이래로 세계 각국에서 수천이 넘는 사람들이 십수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한곳으로 모여 말을 주고받게 만든 것은 기후변화밖에 없다.1 핵전쟁의 공포가 전세계를 뒤덮었을 때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이지는 않았다. 기후변화는 핵전쟁보다 더 큰 핵심어적 지위를 지닌 것이다.

무엇 때문에 기후변화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기후변화의 결과가 다른 무엇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기후변화와 마찬가지로 전지구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것이라 여겨졌던 환경문제들도 없지 않았다. 오존구멍, 산성비, 핵폐기물, 환경호르몬 등은 그동안 인류사회를 몇차례 뒤흔들어놓았다. 그러나 이것들은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멀어져갔다.

기후변화는 그 원인이나 결과를 놓고 볼 때 산성비나 오존구멍보다 불분명한 점이 훨씬 더 많았고, 아직도 많다. 20년 전까지도 그것이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1995년이 되어서야 인간에 의해 지구의 기온이 상승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는 판정이 이루어졌고, 2000년에도 그 가능성은 66% 정도(likely)로 여겨졌다. 거의 확실히(very likely, 90% 이상) 인간에 의해 일어났다는 판정은 겨우 일년 전에 내려졌을 뿐이다.2 그런데도 그간 기후변화 담론은 지속적으로 자기 자리를 넓혀왔고, 그 논의기구인‘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위원회’(IPCC)가 노벨상까지 수상함으로써 20년 가까운 전세계적 논쟁 끝에 확고하게 인류의 핵심적 관심거리가 되었다.

지구적 문제, 특히 지구생태계의 미래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서는 반응이 아주 느린 한국에서도 이제 기후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기후변화를 의심하거나 그 결과의 심각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말은 거의 사라졌다. 언론, 정치인, 지식인 그리고 보통 사람들까지도 스스로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3 주류 언론에서도 2007년 IPCC보고서가 나온 후로는, 그전과 달리 적어도 드러내놓고 롬보르(Bjoern Lomborg) 같은 기후변화 회의론자를 찬양하거나 남태평양 섬나라들이 바다 속에 잠긴다는 환경론자들의 경고를 코미디라고 폄하하지 않는다. 이윤 추구에만 몰두해서 사회적 염치에는 무관심한 기업들조차 기후변화 이야기에는 고개 숙이는 분위기가 퍼져가고 있다.

 

 

2. 기후변화 억제-불가능한 기획

 

기후변화가 거의 확실하게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합의가 이루어지고 인류의 최대 핵심어가 된 시점을 전후해, 역설적이게도 이제부터 힘을 모아 파국을 막자는 소리보다 이미 때는 늦었다는 소리들이 더 커져갔다. 늦었다는 주장의 주된 내용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금 당장 절반 이하로 줄인다면 모를까 그러지 않으면 파국을 막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가장 급진적인 대변자 중 하나는 제임스 러블록(James Lovelock)이다. 그는 기후변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tipping point)을 넘어섰으며, 이제 인류에게 주어진 과제는 섭씨 8도 올라간 “기후의 지옥”(hell of a climate)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궁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지 않으면 금세기가 가기 전에 수십억이 사망하고 기후조건이 가장 좋아질 지금의 극지방에서 수백만명 정도만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는지 전일적인(holistic)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답지 않게 가끔 환원론적인 기술적 처방을 내놓는다.4 그 처방은 20년 안에 수천개의 핵발전소를 건설하거나 심해수를 바다 표면으로 끌어올려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도록 한 후 다시 바다 밑으로 돌려보냄으로써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이다.

러블록만큼이나 이름이 알려져 있고 기후연구자 중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제임스 핸슨(James Hansen)도 비관론자에 속한다. 그는 나사(NASA) 소속 고다드(Goddard)연구소의 책임자이지만, 종종 공개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해 경고하고 미 행정부를 비판한다. 핸슨은 지금과 같은 속도로 대기중의 온실가스가 증가하면 2015년경에 지구 기후는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통과할 것이고,5 해수면은 5미터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는 러블록과 달리 특별한 처방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구 기온이 2000년을 기준으로 섭씨 1도 이상 올라가도록 해서는 안되며, 그러려면 대기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300~350ppm으로 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6 그런데 2007년에 이산화탄소 농도는 이미 380ppm을 넘어섰다. 그의 주장이 맞을 경우, 대단히 획기적인 대책이 없으면 지구 기후는 곧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핸슨은 대다수의 기후연구자들이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을 뿐 자신과 견해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7 그러나 그의 연구는 IPCC보고서 중 가장 심각한 내용이 담겼다고 하는 4차보고서에도 별로 반영되지 않았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70%가량 줄어드는 것을 전제로 한 IPCC의 최선의 씨나리오에서 제시된 이산화탄소 농도는 핸슨의 목표값의 최대치인 350ppm보다 50ppm이나 더 높은 400ppm이고, 현재 상태가 연장된 최악의 씨나리오에서는 그 값이 440ppm이나 더 많은 790ppm이다. 해수면은 최악의 씨나리오에서조차 최대 59cm밖에 상승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보고서는 여전히 기후변화의 억제가 가능하다고 보고 억제를 위한 각종 처방들을 제시하고 있다.8 그런데도 또는 그래서인지 2007년 발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회의의 주요 의제 중 하나는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adaptation)이었다.

갑자기 적응이 주요 의제로 떠오른 이유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점점 큰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물론 회의에서는 아무도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2013년부터 적용될 새로운 기후변화 감축틀을 만들고 이 틀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나가자는 총론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각론을 만들기 위해 아주 많은 회의가 열리고 말들이 오갔다.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2013년부터라면 아무리 훌륭한 틀을 적용한다고 해도 핸슨의 목표 350ppm은 물론이고, 기온상승 섭씨 2도라는 목표도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섭씨 2도는 기후변화 억제 담론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숫자이다. 그것은 기후변화로 인한 파국을 막아줄 수 있는 상한선으로 여겨지고 있다. 2100년경에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산업화 전과 비교해서 섭씨 2도를 넘기면 기후파탄이 도래한다는 데 기후연구자들이 대부분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파탄을 막으려면 지구 평균기온이 섭씨 2도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기온상승을 섭씨 2도 안으로 억제한다고 해도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섭씨 0.7도 정도 상승한 지금도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은 전세계에서 피부로 느낄 만큼 강하다. 그런데도 섭

  1. 기후변화회의(The United Nations Climate Change Conference of Parties)는 1995년 베를린에서 제1차 회의가 열린 후 매년 개최되고 있다. 발리 회의는 제13차 회의였고, 참가자 수는 정부 대표와 민간단체 대표를 합해 모두 1만명에 달했다. 쿄오또협약의 내용은 1997년 일본 쿄오또에서 열린 제3차 회의에서 통과된 것이다.
  2. IPCC 『기후변화 보고서』(2000, 2007). 1990년의 첫 보고서에서는 자연적인 기후변화 원인에 대한 논의가 더 많았다. 2000년에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쿄오또협약을 비준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제시한 근거 중 하나도 바로 기후변화가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3. 2007년 환경부 조사에서는 국민의 90% 이상이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결과가 나왔다.
  4. 한국에는 러블록이 가이아 이론을 폐기했다는 소문이 돌지만, 필자는 어디에서도 이를 확인하지 못했다. 러블록은 2006년 『가이아의 복수』(Revenge of Gaia)라는 책을 썼고, 여기서도 가이아 이론에 입각해서 기후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통과했다고 주장했다.
  5. 빌 매키븐 「지구온난화의 파국은 얼마나 가까이에?」, 『창작과비평』 2006년 겨울호 381면 참조.
  6. 2000년 기준 섭씨 1도는 산업화 이전을 기준으로 하면 약 섭씨 1.6도이다.
  7. James Hansen, “Huge Sea Level Rises Are Coming-Unless We Act Now,” NewScientist.com News Service, 25 July, 2007.
  8. 더 심각한 내용은 미국과 중국의 반대로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