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문명전환의 세계감각과 문학
‘기후위기’가 문학에 던지는 물음
유희석 柳熙錫
문학평론가, 전남대 영어교육과 교수. 저서 『근대 극복의 이정표들』 『한국문학의 최전선과 세계문학』, 역서 『비평의 기능』 『지식의 불확실성』 『한 여인의 초상』(공역) 『근대화의 신기루』(공역), 공편서 『세계문학론』 등이 있음.
yoohuisok@yahoo.com
1. 머리말
쏟아지는 기사나 각종 영상 때문에 깜빡깜빡하지만 ‘스스로 그러한 것’〔自然〕에는 재난이 있을 수 없다. 당연히 기후에도 위기가 있을 리 없다. 기후위기는 인간이 만들어낸 특정한 현실의 문제이며 인간 자신의 위기일 따름이다. 그래서 해결을 도모해볼 수 있고 기후위기에 문학도, 철학도 따라 붙을 수 있다. 『창작과비평』도 이 위기에 직간접으로 연결되는 주제—에너지대전환을 필두로 ‘공동영역’(커먼즈), 돌봄, 탈식민, 탈성장,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에 이르는—와 결합하는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고 우리 평단 역시 논의를 개시했다.1 그런데 기후위기가 ‘기후 너머의 어떤 것’임을 좀더 명확히 인식하고 세상과 나를 동시에 바꾸는 데 일조하기 위해서라도 문학은 ‘녹색 질문들’을 시야에 두면서2 방편으로서의 해법보다 더 근원적인 것에 대한 물음을 견지해야 한다고 본다. 날씨, 계절, 기온 등의 급격한 변동이나 산불, 가뭄, 홍수 같은 재난이 위기의 증상이지 병근(病根)일 수는 없지 않나.
자고 일어나면 ‘뉴 노멀’이 무색해지는 상황에서 필자 스스로도 문득 그 병근을 제대로 성찰할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나 자문한다. 그 병근이란 결국 인류가 만들어낸, 나 자신의 골수에도 스민 모든 근대적 관념의 위기가 아닐까 하고. 아니, 기후위기에서도 이게 진짜 문제가 아닐까 되묻는다. 자본주의 근대를 사실상 견인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계를 만들어낸 추상(抽象)들, 즉 주체, 자유, 욕망, 행복 등이 철저하게 인간 편의적 개념임을 직시하고 해체해서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하지 않는 한3 기후위기에 대한 발본적 사유는커녕 임시적 해법도 요원하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기후위기의 해결책을 첨단 기술공학에서 구하려는 기후과학의 성패마저 궁극적으로 인간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사회를 어떻게 성찰하는가에 달려 있기 마련이라면,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지향하는 상상력과 지력이 최고도로 발현되는 문학을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탄소경제로 인해 지구온난화라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자각은 20세기 중후반—과학자들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최초로 관측한 해는 1958년이다—에 싹텄고, 인류 문명의 존망을 염려하기 시작한 것은 21세기에 들어서다. 사정이 이러하니 지난 세기에 기후위기를 주제로 삼은 작가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일견 자연스럽다. 천재지변은 문학에서도 줄곧 다뤄졌지만 그 인과(因果)를 인간의 사상이나 행위와 직접 연결하거나 크게 의식하는 일이 당시엔 어려웠기 때문이다.4 그러나 자본주의 근대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세계임을 직시하고 대안을 찾아 나선 작가들이 엄연히 존재했을뿐더러, 인과의 차원에서조차 이제는 모든 것이 변했다. 시간 배경을 가까운 미래로 설정하고 인간의 생산·소비 활동이 초래한 극한 기후로 인한 종말 사태를 그려낸 작품들이 기후소설(cli-fi, climate fiction)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오늘날 문학의 존재 의의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은 소설의 상상적 상황마저 능가하는 기후현실이다.5
기후소설로 분류되는 작품들을 찾아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라도 암담한 기분을 떨치기 힘들 것이다. 내 경우는 암울한 기분을 억누르고 안팎에서 전개되는 기후위기 담론을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검토하면서 일독한 영미 기후소설들 가운데 주로 존 페퍼(John Feffer)의 최근 연작에 관한 독후감을 논문 형식으로 피력했다.6 하지만 기후위기와 연관하여 기후소설이나 생태문학으로 국한할 수 없는, 자본주의 근대 너머의 삶을 탐사한 문학에 대한 심층적인 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은 집필 당시에도 절감했다. 지금도 채비는 멀었다. 다만, 기후위기와 문학의 관계를 심도있게 고민한 아미타브 고시(Amitav Ghosh)의 비평을 참고하고 ‘기후소설’ 한편을 읽으면서 생각의 길을 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2. ‘부르주아적 삶의 규칙성’과 근대소설
인도 콜카타 출신인 고시는 대홍수를 피해 비하르(Bihar) 지역 갠지스강둑에 터 잡은 조상을 소설의 무대로 불러내면서 작금의 생태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해온 작가이다. 기후문학 비평에 해당하는 『대혼란의 시대』7에도 그같은 면모가 잘 드러난다. 기후위기 시대의 문제를 도덕이나 윤리로 환원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를 조목조목 짚는 데 기꺼이 동의할 수 있었다. 이어서 손에 잡은 그의 장편소설 『굶주린 조수』(The Hungry Tide, 2004)도 인상적이었다. 기후 문제를 탈식민투쟁과 인간해방의 지평에서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딱딱 떨어지는 교차서술의 진행 속에서 서사의 긴장이 느슨해지고 생태주의의 대의에 대한 자의식도 때로 지나친 탓에 기후소설로서 아주 흔쾌하지는 않았지만 오늘날 탈식민문학이 민중의 구체적인 생활과 역사 현장에 깊게 뿌리 내린 사례로 평가할 만했다.
기후위기와 근대소설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논한 『대혼란』의 핵심 주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기후위기는 문화의 위기이며, 따라서 상상력의 위기이기도 하다”는(GD 9면; 『대혼란』 19면) 단언이 될 듯하다. 고시가 일반론에 자족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위기는 자본주의 문화의 위기이고 그 문화에 함몰된 상상력이 문제임을 구체적으로 논하기 때문이다. 가령 제국의 식민주의자들이 바다 풍광을 ‘소유’하기 위해 세계 해안가에 호화로운 저택과 거주시설을 생각 없이 건설해온 역사를 길게 서술하는 대목도 그중 하나다. 바다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선조의 지혜로운 경고는 그들에게 한낱 미신이었던 것이다. 고시는 “집착적이고 편집광적인, 거의 미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만이 스스로를 뿌리째 뽑아서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쓴다(GD 54면; 『대혼란』 76면).
그가 영민한 독자라는 점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온 기후변화에 관한 빠리협정문(2015.12.12)과 프란치스꼬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 2015.5.24)의 문체를 비교·대조하면서 권력자 및 기후사업가들의 무책임을 신랄하게 드러내는 데서도 확인된다(GD 150~62면; 『대혼란』 196~211면). 고시의 비평은 기후재난이 서구 제국들, 특히 미국의 군사주의·식민주의 수탈의 맥락에서 고탄소 생활양식이 초래한 것임을 밝히고 그 역사적 책임을 낱낱이 심문할 때 가장 통렬하며, 최근에는 한층 본격적인 분석을 책으로 펴낸 바 있다.[8. Amitav Ghosh, The Nutmeg’s Curse:
- 최근 사례만 제시하자면 다음과 같다. 『창작과비평』 2022년 봄호 특집에 실린 백영경 「돌봄과 탈식민은 탈성장과 어떻게 만나는가」 및 이현정 「기후정의의 정치적 주체 되기」; 『문학인』 2021년 겨울호 특집 ‘기후위기 시대와 문학적 대응’; 김보경 「기후위기 시대에 문학하기」, 『문장 웹진』 2021년 8월호; 전영규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을 위한 지구 생존 가이드」, 『문학동네』 2021년 겨울호; 김기창 소설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민음사 2021. ↩
- 탈성장, 채식주의, 지구 절반 야생화 기획 등에 관한 녹색 질문들은 특히 Lola Seaton, “Green Questions,” New Left Review 115 (2019년 1/2월), 105~29면 참조. ↩
- 한마디 토를 달면 문학과 기후위기라는 논제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우리 평단은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는 일에 골몰하는 인상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체하는가에 못지않게 해체 이후에는 어찌해야 하는가가 아닐까 싶다. 인간이 만물의 지배자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는 순간에도 인간만이 떠맡을 수 있는 ‘새로운 세계의 창조’라는 과제는 엄연하기 때문이다. ↩
- 한편 인과의 기계적 사슬에 국한하지 않는다면 서양의 철학도 오늘날 기후위기를 성찰하고 해결하는 데 풍요로운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함직하다. 필자가 흥미롭게 참조한 사례는 Ruth Irwin, Heidegger, Politics and Climate Change: Risking It All, Continuum 2008. ↩
- 그런 맥락에서 동양의 ‘자연사상’은 말할 것도 없이 오늘날의 생태의식에 비견할 만한 자연친화적 감수성과 인간중심주의 비판을 ‘작품’으로 축적해온 서구문학 나름의 면면도 더 공부가 필요하다. 그 필요성은 결론에서 소로우(H. D. Thoreau)의 문장을 통해 간략하게나마 다시 언급하겠다. ↩
- 졸고 「기후위기와 기후소설」, 『현대영미소설』 28권 1호, 2021, 35~65면 참조. ↩
- The Great Derangement: Climate Change and the Unthinkabl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6 ; 한국어판 『대혼란의 시대』, 김홍옥 옮김, 에코리브르 2021. 이 저작은 졸문 「기후위기와 기후소설」에서 잠깐 언급했는데, 고시의 시카고대학에서의 강연(2015)을 정리하여 3부(이야기들·역사·정치)로 묶은 것이다. 이하 이 책에서의 인용은 괄호 안에 원서와 번역본을 각각 GD와 『대혼란』으로 약칭하고 면수를 병기한다. 번역본을 참조했지만 인용문은 필자 나름의 번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