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길 위의 소설, 소설의 길

성석제의 최근 소설들

 

진정석 陳正石

문학평론가, 성공회대 강사. 주요 평론으로 「민중적 주체성의 복원을 위한 도정―송기숙론」 「모더니즘의 재인식」 등이 있음. jjsssj@hanmail.net

 

 

1. ‘작은 이야기’를 찾아서

 

최근 한국소설의 가장 뚜렷한 개성적 성취 가운데 하나로 성석제(成碩濟)를 드는 데 주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른바 ‘성석제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특한 그만의 화법과 소설전략은 동료 작가들과 문학지망생들 사이에서 이미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그의 신작을 손꼽아 기다리는 상당수의 고정 독자층은 물론 일반독자의 호응도 점차 높아져가는 추세다. 비평계의 반응도 대체로 호의적인 편이어서, 그의 소설은 ‘자폐적 독백’과 ‘나르시시즘’의 늪에 빠져 있던 1990년대 한국문학의 어떤 난관을 유쾌하게 돌파해냈다는 상찬을 받아왔다. 전통과 현대의 문화적 단절을 원죄처럼 안고 있는 근대문학의 역사 속에서, 이 작가가 우리만의 고유한 서사적 전통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지적은 이제 더이상 단순한 가능성의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성석제 소설의 남다른 매력은 무엇보다도 그의 뛰어난 언어감각에서 온다. 시인 출신의 소설가라는 이력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의 문장은 시적인 함축과 산문의 개방성을 겸비하고 있으며, 고문(古文)의 유장한 호흡과 현대문의 발랄한 리듬을 자재하게 넘나든다. 범속한 일상의 표면에서 생의 비밀을 들춰내는 섬세한 관찰력, 날렵한 비유와 의뭉스런 유머, 빠르고 정확한 달변의 화술, 간혹 말 자체의 리듬에 들려 주제에 비해 수사가 과한 경우도 없진 않지만, 이 작가가 아주 매력적으로 생동하는 말의 향연을 주재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한 작가가 아무리 탁월한 언어능력을 자랑한다 해도, 자기만의 독자적인 문학적 전략이 동반되지 않아서는 별다른 의미를 갖기 어렵다. 그런데 성석제는 개성적인 스타일의 능변가에 머물지 않으며, 한국문학의 관행적인 인식틀에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전략가이기도 하다. 그의 ‘불순’하고 삐딱한 시선이 주로 겨냥하는 표적은 근대적 소설 개념, 구체적으로 말해 사실주의적 기율이며, 그중에서도 소설이 ‘진정한 가치 추구의 형식’이라는 루카치적 통념이다. 성석제에게 소설은 ‘근대의 서사시’가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랜 뿌리와 더 깊은 충동에 기원을 둔 ‘이야기’의 일종이며, 그것도 ‘작은 이야기’일 뿐이다. 여기서 소설은 ‘거짓말’이며, 거짓말은 일단 ‘재미’있고 봐야 한다는 이 작가 특유의 소설관이 나온다. 물론 소설이 ‘재미나는 거짓말’이라는 인식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소설이 허구의 일종이라는 생각은 소설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 한국문학에서 소설이 허구에 바탕을 둔 문학형식이라는 당연한 사실은 그다지 존중받지 못한 편이다. 우리에게 소설은 그럴듯한 거짓말(fiction)이기에 앞서 창조적인 작품(work)이고, 자유로운 즐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엄숙한 사업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한국의 작가들은 대체로 가공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보다는 묻힌 사실을 증언하는 데 주력했으며, 남의 이야기를 전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데 매력을 느껴왔다.1980년대에 정점에 이른 계몽적 엄숙주의,1990년대에 성행한 독백적 자아숭배라는, 상반된 지향성과 동일한 인식구조를 공유하는 쌍생아적 문학관은 그 정점이었다. 계몽의 방향이 혼돈에 빠지고 내면적 독백이 감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거짓말쟁이와 이야기꾼을 자처하는 성석제의 등장은 우리 문학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문제의식은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이 작가가 처음으로 제기한 것도 아니며, 그가 가장 예리하게 해부해 보인 것도 아닐지 모른다. 이런 질문은 근대적 서사양식으로서의 소설이 성립될 당시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꾸준히 제기되어왔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의 양식적 정체성은 처음부터 자명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입장들의 경합과 논쟁을 통해 잠정적으로 정착된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 질문이 이론가나 비평가가 아닌 작가에 의해 제기되었고, 그가 자신의 창작을 통해 이런 질문을 꾸준히 밀고 나갔다는 사실이다. 성석제를 통해 우리는 소설이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정처없는 유랑이고, 엄숙한 계몽의 형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즐김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성석제 소설의 진정한 개성과 새로움은 이처럼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처럼 보이는 문학적 관습(convention)의 작위성을 과감하게 드러냈다는 점에 있다.

성석제는 1994년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민음사)로 본격적인 산문을 쓰기 시작한 이래 단기간에 놀라운 생산력을 발휘하면서 지금까지 10여권에 이르는 단행본을 상재했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앞에서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문학적 응답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사실주의적 재현이 외면한 이야기의 즐거움, 탐색의 서사가 놓쳐버린 무용한 탕진의 욕망을 긁어모아 그의 소설적 에너지로 적극 활용한다. 여기에 동원되는 자원은 전형적인 모더니즘 수법에서 전(傳)이나 행장(行狀) 등 전통적 서사형식, 그리고 악한소설이나 무협지 같은 하위장르에 이르기까지 사뭇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소설의 오랜 장르적 규범과 정면으로 맞서, 오늘날 소설의 가능한 방식은 무엇인지 숙고하며, 소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성석제의 문학적 모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는 중이다. 이 글에서는 2000년대 들어 발표된 세 권의 소설 『순정』(문학동네 2000)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창작과비평사 2002) 『인간의 힘』(문학과지성사 2003)을 따라 읽으며 그 성과와 문제점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2. 『순정』: 공감의 언어와 진술의 언어

 

『순정』은 시골 소읍 ‘은척’을 배경으로 도둑 이치도의 성장과 편력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성석제 소설의 독자들에게 ‘은척’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