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송기숙 宋基淑

1935년 전남 장흥 출생. 『현대문학』에 1965년 문학평론, 66년 소설을 발표하며 등단. 장편 『자랏골의 비가』 『암태도』 『오월의 미소』 『녹두장군』 등이 있음. hoesan@hanmir.com

 

 

 

길 아래서

 

 

초록빛과 사랑; 이거

우주 奇蹟 아녀

─황지우 「발작」에서

 

 

아무리 고개를 내둘러도 작년까지 다니던 옛 도로가 보이지 않았다. 고속버스는 새로 난 사차선 고속도로를 날듯이 달리고, 김주호씨는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옛 이차선 길을 찾아 눈을 번득였다. 이따금 멀리 가까이 옛 도로가 한두 군데 보였지만, 그 도로가 일반도로로 이어졌는지 그냥 버려져 있는지 그런 걸 좀 보려 하면 금방 길이 높이 떠오르거나 가드레일이 시야를 가려버렸다. 해운사를 다니느라 일년에 두세 번씩 사십여년을 다닌 길이었다. 그 이차선 도로를 다니며 이 고속도로 공사하는 걸 볼 적에는 공사 지역이 거의가 험한 산악지대라, 저리 가면 높은 산이고 저기는 아득한 계곡인데 어쩌자고 저런 데를 허무는지 고개를 갸웃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보름 전에 처음으로 이 고속도로를 달려보니 굴을 지나고 계곡을 건너 곧게 뻗은 길이 여간 시원스런 게 아니었고, 이런 길이 아주 옛날부터 이렇게 예정되어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아 두루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렇게 오래 다니던 예전 도로가 보이지 않자, 어디 딴세상에서 허공이라도 날아가는 것처럼 좀 황당하달까, 여태 해운사에 갈 때마다 품고 다니던 직심을 버리고 껄렁하게 가는 것 같아 좀 머쓱한 기분이었다.

버스가 멈췄다. 이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지만 고속도로 군데군데 있는 간이정류장에 멈추는 일반고속이었다. 해운사 가는 완행버스 정류장은 고속도로 바로 아래 있었다.

김주호씨가 해마다 해운사에 다니며 하는 일은 두 가지였다. 한가지는 뒷간 치는 일, 말하자면 화장실 청소였고, 또 한가지는 제사 지내는 일이었다. 뒷간 일은 지난 가을에 해버렸고 오늘은 제사 지내러 가는 길이었다. 금년부터는 일이 한가지 더 생기기는 했다. 절 근처 묵정밭을 일궈 남새밭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버스가 왔다. 시골버스답게 천천히 와서 천천히 멈췄고 천천히 출발했다.

“나무관세음보살.”

의자에 등을 기대자 자기도 모르게 염불이 새어나왔다. 오십여년 전, 병사들을 가득 실은 군 트럭이 한밤중에 낭떠러지에서 개울로 굴러떨어진 사건이 떠올랐던 것이다. 쾅, 쾅, 쾅.

해운사에서 오랜만에 배불리 먹고 달게 자고 있는데 비상이 걸렸다. 그때 운전병이던 김씨는 소대장과 선임하사가 속삭이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거기서 십리쯤 되는 동네에 빨치들이 십여명이나 잠입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외삼촌이 두목인 그 지역 출신 빨치들일 게 뻔했다. 거기에는 자기 형님도 끼여 있었다. 어둠속에서 낮은 소리로 소대장의 지시가 다급하게 오갔다. 일개 소대 병력이 전부 출동할 모양이었다. 그들은 거의 몰살 당할 판이었다. 이 일을 어쩐다? 가다가 트럭을 어디다 처박아버릴까? 그래, 바로 그거다.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처박아버릴 맞춤한 장소까지 떠올랐다. 주먹을 사려쥐었다.

지금 멈춰 있는 출동지점에서 조금 가다가 비탈길을 십여 미터쯤 내려가면 길이 거의 직각으로 꺾이면서 그 아래는 서너 길이나 아득한 낭떠러지였고, 거기서 한참 더 내려가면 개울이 길 곁으로 바짝 가까워지며 바닥이 얕아진다. 거기다 처박을 참이었다. 그러면 병사들은 별로 다치지 않을 것이고 차는 제 혼자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사고원인은 운전 부주의일 것이고 운전 부주의는 과실죄일 뿐이다. 나는 운전교육도 속성이었고 운전경력도 겨우 이개월, 그나마 지프를 몰다가 트럭은 사흘 전에 이 부대로 전속 와서 처음이었다. 징역을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이를 악물었다. 운전석에 오르자 가슴이 뛰며 몸뚱이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바삐 날고 있는 먹구름 사이로 언뜻번뜻 스치는 달이 형님과 외삼촌 쪽으로 숨가쁘게 내닫고 있었다.

“출발!”

소대장과 선임하사가 조수석으로 뛰어오르며 소리를 질렀다. 기어를 넣고 액쎌을 밟았다. 부르릉, 차가 움직였다. 가슴속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비탈길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소대장이 어깨를 툭 쳤다. 예? 소스라치게 놀랐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쌔꺄, 조심하란 말이야. 예, 예. 큰 소리로 대답하며 다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브레이크가 듣지 않았다. 어라, 잘못 밟았나? 발을 옮겨 힘껏 밟았다. 부르릉, 차가 거세게 내달았다. 아이고매. 쌔꺄. 소대장과 선임하사의 고함소리가 찢어졌다. 있는 힘을 다해 다시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꺾었다. 그러나 트럭은 이미 허공에 떴고 핸들을 꺾었기 때문에 트럭 한쪽이 낭떠러지로 휘청 쏠리고 있었다. 쾅, 쾅, 쾅.

소대장과 선임하사를 비롯한 다섯명이 즉사하고, 반 이상이 중상이었다. 김씨는 정강이뼈가 부러졌으나 그런 건 부상 축에도 들지 않았다. 엄청난 사고였다. 병원은 수라장이었다. 찢어지는 고함소리, 기어들어가는 신음소리. 그때 비명 같은 고함소리와 함께 김씨 볼에서 불이 났다. 너도 죽어, 이 쌔꺄. 죽어, 죽어, 죽어. 김씨는 그 병사를 빤히 쳐다보며 얼굴을 그대로 맡기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엄청난 일을 저지르다니, 엔진이라도 멈추듯 숨이 딸각 멈춰버리고 몸뚱이는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렸으면 싶었다.

김씨는 부상자들을 피해 격리 수용되었다. 그날 저녁이었다. 계호하는 헌병들이 속삭이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동네에 빨치들이 들었다는 건 거짓정보였다는 것이다. 거짓정보? 그럼 그런 맹랑한 거짓정보에 이 많은 사람들이 이 꼴이 됐단 말인가? 아니, 그러니까 결국 내가 그런 거짓정보에 놀아나 이렇게 많이 죽이고 병신을 만든 게 아닌가? 차가 굴러떨어진 건 브레이크 탓이었지만 그것은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트럭을 개울에다 처박아버리겠다고 작정한 다음부터는 너무도 겁에 질려 군화끈을 맨다면서도 치렁치렁 끌고 운전석에 올랐고 곁에서 하는 소대장의 말소리도 알아듣지 못할 지경이었다. 브레이크가 듣지 않았던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전날 저녁 정비병이 정비를 한 다음 출동지점으로 이동할 때까지도 멀쩡했으며 그 뒤로는 움직인 적이 없었다. 겁에 질려 브레이크를 헛밟았던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찌됐든 내가 그렇게 당황하지만 않았더라면 낭떠러지로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대쪽 언덕에다 박아버릴 수가 있었다. 죽으라고 고함치던 병사의 악다구니가 살아왔다.

그랬다. 자살밖에는 길이 없었다. 생사람을 이렇게 많이 죽여놓고 브레이크가 어쩌고저쩌고 능청을 떨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수사관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어렸을 때 보았던 한겨울 논고랑의 꿩이 떠올랐다. 얼갈이해놓은 논고랑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꿩을 향해 느닷없이 돌팔매질을 하며 쫓아갔다. 꿩은 갑작스런 공격에 후닥탁 날개를 퍼덕이며 논고랑으로 도망치다가 사뭇 다급해지자 벼락덩이 밑에다 고개를 처박고 꼼짝도 않고 있었다. 좁은 고랑이라 날개가 양쪽 두둑에 부딪쳐 날아오르지 못하고 제깐에는 숨는답시고 그렇게 고개만 처박고 있었던 것이다.

자살 결심을 굳히자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바로 수사가 시작되었으나 자살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으므로 수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수사관은 꼬치꼬치 파고들었으나 브레이크가 듣지 않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정비병까지 졸경을 치를 텐데 어차피 죽기로 작정한 마당에 정비병까지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정비병이 정비를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실수였을 것이므로 그의 실수까지 안아버리고 싶었다.

치료가 어지간해지자 헌병대 영창으로 이송되었다. 노끈까지 준비해놓고 자살 기회를 노렸으나 쉽지 않았다. 영창 헌병들의 계호임무는 탈옥 다음으로는 자해와 자살 방지가 중요 임무였다. 목숨 끊는 것쯤 마음 하나 먹기에 달린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죽을 기회를 얻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날 무렵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욕구가 너무 절실했다. 죄값은 우선 징역으로 치르고, 살면서 두고두고 치르겠다고 작정했다. 징역은 이년이 선고되어 이년을 다소곳이 살고 불명예 제대를 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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