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신자유주의, 바로 알고 대안 찾기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시장만능주의인가

 

 

김기원 金基元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저서 『경제학 포털』 『재벌개혁은 끝났는가』 『미군정기의 경제구조』 등이 있음. kwkim@knou.ac.kr

 

 

1.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한 엇갈린 평가

 

IMF사태를 맞은 지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은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의 새로운 틀을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바닥이 보이던 외환보유고가 2,500억달러 정도로 늘어나 세계 5위가 되었고, 한때 9%에 육박했던 실업률도 3%대로 하락했으며, 기업회계나 금융감독 등과 관련해 선진적인 제도도 다소 갖추어졌다. 게다가 불법 대선자금의 공개로 정경유착도 상당히 완화되었다.

그러나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1987년 이후 개선되던 분배상태가 다시 악화되고 고용구조도 열악해졌다. 이러한 양극화 사태의 심각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 문제다. 또한 한미FTA에서 보듯이 범위와 속도를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은 급속한 개방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게 전개되었다. 신용불량자의 대량발생이나 부동산가격의 폭등 등 서민대중의 삶과 직결된 문제도 터져나왔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반영해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한편으로 보수언론, 한나라당, 보수지식인들은 김대중정권을 관치경제의 부활, 남미식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 등으로 비판하더니 노무현정권에는 노골적으로 반시장적 좌파라고 낙인찍었다. 그런가 하면 이와 정반대로 진보언론, 민주노동당, 진보지식인들은 두 정권에 신자유주의라는 딱지를 붙이길 좋아한다.1 이때 비판하는 측들은 왜 자신들과 정반대의 비판이 다른 편에서 제기되는지 따져보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비판들은 특정 정책을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정권의 성격을 총체적으로 규정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은 이처럼 좌우에서 협공당하는 쌘드위치 신세다. 마치 모자이크 작품처럼 평자가 보는 각도, 즉 이데올로기에 따라 정부정책의 모양과 색깔이 달라지는 셈이다. 세계 선진국들을 늘어놓고 그 스펙트럼 상에서 보면 두 정권은 중도우파다. 하지만 중도우파 정권도 극우파가 보기에는 자신의 왼쪽에 위치하며, 좌파가 보기에는 자신의 오른쪽에 위치하기 마련이다. 또 사람들은 정권의 정책 중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만 보는 경향이 있다. 나아가 정권의 성격을 극단으로 규정함으로써 자기 지지세력을 넓히려는 정략적 판단도 작용한다.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정책에 대한 평가의 엇갈림은 평자들의 이데올로기나 정략적 고려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두 정권이 처한 역사적 상황 자체가 바로 복잡한 평가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박정희시대의 개발독재에서 선진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놓여 있는데, 바로 이것이 극단적 논란의 기본배경이다.

1987년 6·10항쟁과 6·29선언을 통해 박정희 개발독재체제 중 정치적‘독재’체제가 허물어지고, 1997년 IMF사태를 통해 경제적‘개발’체제가 허물어져갔다. 그런데 개발독재체제가 이렇게 두 단계를 거쳐 허물어지고는 있지만 일거에 깔끔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개발독재의 요소가 뿌리깊게 잔존하며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이를 처리해가는 과도기 정권인 셈이다.

이런 과도기에는 변화가 격심하며 그에 대한 저항도 치열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과도기를 거쳐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사회는 단 하나의 모범답안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여러 유형이 경쟁하고 있다. 흔히 구분하는 영미형과 북유럽형은 서로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둘 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전자가 시장·효율성·경쟁을 상대적으로 더 중시하는 입장이라면, 후자는 민주주의·공정성·연대를 더 중시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이 과도기는 이런 다양한 선진사회 중 어느 쪽으로 나아갈지 또는 선진사회들의 어떤 조합을 우리 스스로 창출할지를 둘러싸고 각 세력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시기다. 각 정권에 대한 극단적 평가들도 이런 투쟁의 한 표현이다. 여기에다 우리의 특수한 분단상황 탓에 통일한국을 만들어가는 방식에 대한 갈등도 추가된다.

 

 

2. 시장과 시장만능주의의 분별

 

진보세력 일각에서는‘선진사회’라는 방향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한다. 보수세력이 이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고, 또 그들이 양적 성장을 강조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북한이‘동무’란 말을 사용한다고 남한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는 선진사회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선진사회냐이다. 그리고 선진화의 개념이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민주화나 산업화에 비해 선진화는 다소 허술한 개념이다.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화와 산업화의 수준이 세계 일류급에 도달하는 것을 선진화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민주화가 단순히 정치적 민주화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민주화까지 포괄함은 당연하다. 문화수준의 고양도 선진화에 들어가야 할 내용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이런 선진화를 향한 과정에서 과거의‘개발’체제를 지양해 시장경제를 정상화하고 발전시키는 과제를 부여받았다. 시장경제 자체를 부정하는 극단적 좌파도 있겠지만, 적어도 현재의 역사발전 단계에서 경쟁에 의한 효율성을 가져다주는 시장의 긍정성을 전면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는 것과 시장에 대한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 사이에는 칼로 두부모 자르듯 분명한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을 발전시킨다는 것이 과도하게 추진(overshooting)되어 시장만능주의로 나아갈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시장만능주의자의 주장과 달리 시장은 불완전하고 폭력적이기도 하다. 독점이나 분배악화, 경기불황 같은 문제가 그런 경우다. 따라서 시장경제의 발전에는 이를 시정하는 조치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발전이다. 외환위기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공황에 직면한 우리 상황에서는 미국의 뉴딜정책처럼 시장을 규제하고 복지를 강화하는 등 시장의 폐해를 완화하는 조치의 도입이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시장경제에 대한 이런 민주주의의 개입이 시장만능주의자에게는 시장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조치로 비치기 쉽다.

돌이켜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시장경제의 발전도, 시장의 폐해를 바로잡는 민주주의의 발전도 기대만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시장과 시장만능주의를 잘 구별하지 못했던 게 그 하나의 요인이다. 마찬가지로 정권 비판세력 역시 양자를 잘 구별하지 못했다. 보수세력은 정권이 시장만능주의에 빠지지 않으려 하면 좌파로 몰아붙이고, 진보세력은 정권이 시장질서를 바로잡으려 하는 경우에도 시장만능주의

  1. 필자는 적어도 대중적 글쓰기에서는‘신자유주의’대신‘시장만능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대중이(심지어 많은 경제학자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둘째‘신’이나‘자유’같은 좋은 어감의 말로써 나쁜 대상을 표현하는 건 부적절하며, 셋째 후술하는 시장과 시장만능주의의 구별도 신자유주의라는 말에선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