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김동춘 『시험능력주의』, 창비 2022

한국 능력주의 담론의 진화를 위한 총론

 

 

곽영신 郭泳信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 kys01@se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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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능력주의 담론이 진화하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영미권에서는 1958년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한국어판 이매진 2020) 출간 이후 능력주의 비판 담론이 꾸준히 이어져왔지만, 한국에서 능력주의라는 용어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소수의 비판적 지식인 사이에서 제한적으로 논의돼 왔고,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한국어판 와이즈베리 2020)이 유행한 이후에야 언론과 대중에게 회자되는 보편적 용어가 되었다. 따라서 이제까지 능력주의에 대한 논의는 대체 능력주의라는 게 무엇인지, 이 개념이 어떻게 한국사회의 집단 무의식에 깊숙이 자리 잡았고 기득권층의 지배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는지, 교육·노동·정치 등 각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어 발현되고 있는지 등을 설명하는 데 치중돼왔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시험능력주의』는 ‘한국형 능력주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분석 모델을 만들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데까지 나아갔다는 점에서 능력주의 담론의 진화라 할 만하다.

한국 특유의 능력주의라 할 수 있는 ‘시험능력주의’는 ‘순위를 매기는 시험’이 학력이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라고 본다(23면). 이러한 사고에 따른 한국사회의 공정(정의)관은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명문대 시험 합격〓학력·학벌→능력→사회적 지위, 차별화된 보상→공정(〓정의)’. 이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시험’은 단순히 교육 영역에서 평가와 선발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물질과 지위의 배분, 권력 재생산의 핵심 수단이 되고 나아가 현재 사회구조를 정의롭고 공정해 보이도록 지탱하는 힘이 된다. 그러므로 한국 고등학생들의 80퍼센트가 학교를 배움이나 사귐의 장소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자원을 뺏고 빼앗기는 ‘전쟁터’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 교육현장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더 가슴이 아프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험능력주의가 지배적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힘의 작용을 파악하는 유용한 모델을 고안해냈다. 제한된 ‘좋은 자리’와 그 자리가 가져다주는 특권 혹은 지위 독점은 사람들에게 상승의 열망을 갖도록 끌어당기는 힘이다. 중하층 ‘낮은 자리’에서 겪는 일터나 일상에서의 차별과 고통은 그곳에서 벗어나라고 밀어올리는 힘이다. 그리고 이 두 차원의 힘이 동시에 작용하는 공간이 바로 시험, 즉 선별 과정이라는 통로이며, 이곳의 병목현상 때문에 가해지는 거대한 힘이 바로 한국사회의 시험지옥을 만든다. 이 통로가 좁거나 하나밖에 없으면 양측 힘의 압력 때문에 공간이 터지고 마는데, 그게 청소년 자살이나 폭력, 학벌에 따른 차별과 혐오 등의 병리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현실에 정확하게 들어맞아 보인다. 현 대통령은 그가 정말 지도자로서 신뢰할 만한 인성과 역량, 비전을 가졌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검증은 생략된 채, ‘서울대 법대’ ‘사법고시 출신’이라는 시험능력주의의 ‘마패’에 따라 무소불위 검찰조직에서 엄청난 특권과 지위 독점을 누리다 그것을 기반으로 최고 권력을 차지했다. 반면, 조선소의 한 하청노동자는 불합리하게 삭감된 임금을 원상복귀 해달라고 외치며 1세제곱미터의 ‘철제 감옥’에 한달이 넘도록 자신을 가둔 채 농성을 벌여도 끝내 그 숙원을 이루지 못했고 오히려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금을 요구받았다. 이 둘의 차이, 즉 승자의 과잉 보상과 패자의 과잉 처벌을 가르는 게 시험능력주의라면 누가 거기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기에 이미 예비 기득권자의 정체성을 지닌 명문대 학생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사건처럼 시험을 통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 ‘조국사태’에서처럼 일부 변칙을 사용하는 사람이 자신의 무리에 들어오려 하는 절차적 불공정은 격렬히 거부하지만, 권력자와 대기업이 결탁해 저지르는 부정부패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 등과 같은 거대한 불공정과 부정의에는 침묵하곤 한다. 물론 이 역시 상당 부분 사회적 압력에 따른 것이고 지배언론이 그려낸 모습이기도 하지만, 이런 현상들에 대중은 더욱 시험과 경쟁에 굴복하고 거기에 몰두하게 될 수밖에 없으며, 지배체제와 권력 역시 이를 통해 더 손쉽게 대중을 장악하고 그들의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시험능력주의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저자는 초반에 제시한 커다란 힘의 작용 모델로 다시 돌아간다. 즉 높은 자리의 끌어당기는 힘과 낮은 자리의 밀어올리는 힘을 적절히 조절하고, 그 사이의 통로를 넓히거나 여러개로 만드는 일이다. 먼저 의사·변호사·고위관료 등의 규모를 확대하고 권력과 부를 동시에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시키는 등 전문직의 특권과 독점을 해소하면 그에 대한 열망과 경쟁을 완화할 수 있다. 다음으로 공정경쟁 확립을 통해 노동자들의 저임금, 고용불안, 산업재해의 위험을 해소하고 나아가 노동숙련도 축적에 따른 경제적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열악한 노동의 세계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몸부림을 없앨 수 있다. 끝으로 통로의 병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 서열을 완화하고 여러개의 좋은 대학을 만드는 개혁 작업이 필요하다. 즉 서울·수도권 대학의 학부 정원을 줄이고, 지역 거점국립대를 서울 상위권대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시키며, 비수도권 사립대 일부를 자율화해 대학의 수평적 다양화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능력주의가 적용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구분하고 다원화하는 것이다. 기업과 경제활동에서는 실적에 대한 응분의 보상 곧 능력주의의 원칙을 적용하되, 이때도 사회적 합의와 연대를 통해 성과와 노력에 대한 차등적 대우가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와 법을 비롯한 다른 사회적 장에서는 공정과 효율을 강조하는 능력주의 원칙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정의와 형평의 원칙을 우선적으로 적용하는 일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기획을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성과 기득권의 저항을 이겨낼 만한 강력한 정치적 의지와 연대가 있어야 하며, 예상되는 반작용까지 고려하는 섬세한 세부 계획이 요구된다.

이 책의 미덕은 한국의 시험능력주의와 교육 문제를 노동·계급·정치·문화 등 전체 ‘사회’문제와 연결해 지배질서와 보상체계의 구조적 불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총체적 분석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다만 조금 아쉬운 부분은 그 때문에 어느 한가지 영역에 대한 세밀한 대안을 제시하기 어려웠다는 점인데, 저자가 보다 강조하고 싶은 한두가지 영역에서라도 좀더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제시했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 듯하다. 그러나 하나의 책에서 모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으므로, 이를 위해서는 후속 연구자들이 각 분야마다 또다른 여러권의 책을 써야 할 만큼의 고민과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은 그같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전체적인 방향과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능력주의 극복을 위한 담론의 총론으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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