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 김수영 시인 40주기에 부쳐

 

김수영 미발표 유고-일기

 

 

1954년

 

 

11월 22일

 

침착한 사람

소설을 뱃속에 내포하고 사상의 성장을 기다리는 듯이 보이면서

사무를 처리하고, 사리를 가리고 남하고 이야기하되 친절을 기대(基台)로 하고

그러나 그 친절이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치욕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충분한 조심성을 잃지 않고

시간을 기다리고 그 안에서 시간을 삭이어가면서

그는 어디까지 침착하려 하는가.

침착의 용사여.

시간과 소설이 그의 뱃속에 무지개와 같이 다리를 놓고 있다.

(유주현을 만나고)

 

 

11월 25일

 

(전략)1

 

‘프린스’라는 다방에 처음 들어가보았다. 지-아이들이 드나드는 것이 보이고 여자 손님들의 질도 그리 좋지 못하다.

그래도 비가 내리는 것을 핑계 삼고 오래 앉아서 책을 읽었다.

 

나의 머리 안의 많은 부분을 아직도 차지하고 있는 여자에의 관심을 나는 없애야 한다.

오직 문학을 위하여서만 내 몸은 응결(凝結)2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다.

사실 오랜 시간을 나는 허비하고만 온 것 같다.

그러한 생각은 나를 절망으로 이끈다.

나는 무엇을 따라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추궁하고 있는 것은 저 눈먼 당나귀 앞에 걸린 인삼 같은 것이 아닐까.

죽는 날까지 이것이 완전히 나의 것이 되는 날이 올는지 아니 올는지, 삭막하고도 고통스러운 이 인삼을 얻기 위하여 나는 결국 맴을 도는 불쌍한 당나귀가 아닌가?

 

오늘의 자랑이라면 ‘프린스’다방에서 오래 앉아 책을 읽었다는 것.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좀 오래 앉아 있을 만한 인내심이 생겨야 할 터인데.

이것은 강인한 정신이 필요하다.

오래 앉아 있자!

오래 앉아 있는 법을 배우자.

육체와 정신과 통일과 정신과 질서와 정신과 명석과 정신과 그리고 생활과 육체와 정신과 문학을 합치시키기 위하여 오래 앉아 있자!

 

 

11월 27일

 

(전략)3

 

집에서 나오는 길에 이모집에를 들렀다. 별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서글픔에 쫓기기 시작하는 나는 진정할 수 없는 마음을 쉬우기 위하여 갑자기 누구의 얼굴이라도 보아야만 할 것 같았다.

양식 도아를 열고 시어머니와 동네 여편네들과 앉아서 이모는 잡담을 하고 앉았었다.

“아주머니 왜 어머니는 자꾸 집에서 나가라구만 하우. 내가 그렇게 보기 싫은가?”

하고 속으로 지나친 말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응석 비스듬히 이런 말을 던져본다.

이 말을 들은 이모의 시어머니가 옆에 앉았다가 창을 는다.4

“아니 왜 장가는 아니 가는 거야? 나이 먹어 늙으면 어떻게 한담.”

야멸찬 어조다.

내가 무엇이라 여기 대항하기 위하여 말을 만들기도 전에 이모가 시어머니의 말을 받아

“정말 그러더라 요전에 어디 물어보러 간 데서도 그러던데. 너는 어머니하고 따로따로 살아야지 출세한다고!”

나는 이제 이러한 공격들에 정면으로 대항할 힘을 잃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무슨 말을 만들어볼까 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에 이모는 젖먹이를 끌어안으면서 이렇게 말을 한다.

“너 왜 어머니한테 붙어 있니? 집식구들을 벌어 먹이려고 있니?”

“아 그럼 돈으로 벌어야 꼭 버는 거요. 정신으로도 버는 수가 있지.”

하는 나의 말은 사소한 효력도 발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모욕, 아니 이것보다 더 큰 모욕에라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공연히 마음이 뒤숭숭하여진다.

“그렇다고 나는 반드시 어머니를 부려먹기 위하여 집에 붙어 있는 것일까? 나의 이익만을 위하여 어머니 밑에서 갖은 싫은 소리를 들으면서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인가?”

하고 나는 이모의 집을 나와 거리를 걸으면서 홀로 생각하여보았다.

길가에 늘어선 오동나무는 잎을 다 잃고 노랗게 마른 땅 위에 그림자도 없이 서 있다.

뿌옇게 색을 잃은 초겨울 하늘을 힘없이 우러러보는 나의 머리는 한없이 답답하기만 하였고 어떻게 하면 금방 눈물이라도 흘러나올 것같이 마음이 엷어지기만 한다.

동경? 출가? ……그러나 어저께 이 길을 걸어나갈 때에 나는 극히 무심하게 살자고 결심한 일이 있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느끼기도 싫은 내 마음에 사람들은 아예 돌을 던져주지 말았으면 하고 나는 가슴 위에 두 손을 모아서 기도라도 하고 싶어졌다.

쓰라린 아침이었다.

 

어머니!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나를 그냥 내버려두세요.

나의 목숨은 저 풀 끝에 붙은 이슬방울보다도 더 가벼운 것입니다.

나에게 제발 생명의 위협이 되는 말을 하지 마세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아도 나는 돈을 벌어야 할 줄 알고

나의 살림이 어머니와는 떨어져서 독립을 해야겠다는 것도 알고

나의 길을 씩씩하게 세워야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나에게

더이상 괴로움을 주지 마세요.

 

어머니가 무엇이라 나에게 괴로운 말씀을 하여도 아예 바보같이 화내지 않기로 마음먹은 나에게

제발 모른 척하고 있어주세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상태를 비참하다고도 보지 마시고

걱정도 하지 마시고 간섭도 하지 마시고 그냥 두세요.

애정이라 해도 그것이 괴로운 나는 지금 내가 얼마큼 타락하였는지 그 깊이를 나도 모를 만큼

한정 없이 가로 앉아버렸습니다.

 

(하략)5

 

 

11월 28일

 

김수영27면(누끼)

 

중국인 소학교 운동장에 있는 ‘이런 운동기구’에 매어달리어서 아이들이 째째거리며 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우윳빛 황혼 유리창 문 앞을 스쳐가고 이 초겨울 메마른 운동장에는 어느덧 아이들의 자체가 없어지고 만다. 운동장 저편에는 서울의 유수한 빌딩들이 두부조각같이 서 있고 그 아래 고기점같이 깔려 있는 벽돌집에는 전기불이 금가락지 같은 테를 두르고 비치고 있다.

식은 이 한점 전깃불을 보려고 시선을 모은다. 그러나 그가 두번째 생각하던 고개를 고쳐서 들어볼 때 그 불은 꺼져버리고, 소학교 마당에는 다시 아이들의 검은 그림자가 어정댄다. 어느 놈은 연회색 시멘트 층계 위에 드러누워 있는 놈도 있고 어느 놈은 층계를 올라서서 학교 교사 안으로 들어간다. 모두 열닷6을 넘지 못한 어린아이들이로구나 생각하며, 식은 눈에 짚이는 대로 그의 나이를 점쳐본다.

암만 보고 있어도 이 평범한 풍경이 싫지가 않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신의 생각도 저 풍경들과 같이 특색이 없으며 구스한7 것뿐이다.

‘어디 시골 학교에 교원 노릇이나 하러 갈까?’

이렇게 자문하여보았으나 이런 장래에의 계획도 오래 계속되지 못한다.

열흘이고 한달이고 이렇게 한정 없이 앉아서 저 풍경 속에 빨려 들어가보고 싶은 의욕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이라든가, 그들의 움직임이라든가. 그들의 주고받는 말 같은 것도 그러하였다.

식은 그냥 그것을 보고 듣고만 있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그 안에서 무한한 향기가 풍겨나오는 것 같다고 그는 느끼는 것이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11월 30일

 

결론은 적극적인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설움과 고뇌와 노여움과 증오를 넘어서 적극적인 정신을 가짐으로 (차라리 획득함으로) 봉사가 가능하고, 창조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 전체가 봉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에서 비로소 생활이 발견되고 사랑이 완성된다.

비록 초 끝에 묻어나오는 그을음같이 연약한 것일지라도 이것을 잡는 자만이 천국을 바라볼 수 있는 것같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마음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비치는 것이다.

 

비참과 오욕과 눈물을 밟고 가는 길이지만, 나는 오늘이야말로 똑바로 세상을 보고 걸어갈 수 있다는 자부심을 의식하게 되었다. 말론 쉽고 평범한 것이지만 여기까

  1. 이날 일기의 앞부분은 전집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누락된 뒷부분만 소개한다. 『김수영 전집』 2-산문(개정판), 민음사 2003, 482~83면.
  2. 원문에는 ‘의결’로 되어 있으나 한자 ‘凝結’은 ‘응결’로 읽어야 한다. 김수영의 오기이다.
  3. 이날 일기의 앞부분 역시 전집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누락된 뒷부분만 소개한다. 같은 책 483~84면.
  4. ‘창을 는다’는 아마도‘창을 넣는다’의 구어로‘참견을 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5. 이 부분부터는 독립적인 시로 간주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하여, 「꽃」이라는 가제를 붙여 새로 발견된 시편들에 포함시켰다.
  6. 열다섯살.
  7. ‘구스한’으로 되어 있는데 의미 파악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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