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김정남·한인섭 대담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 창비 2020

날이 밝아 지나가는 이들이 모두 네 형제로 보일 때

 

 

김명환 金明煥

서울대 영문과 교수 km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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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선생은 1970년대 김지하 구명운동과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진상 폭로 등의 배후에 있었던 핵심인물로서 군사독재 시절의 얼굴 없는 투사였다. 잘 모르는 사람은 영화 「1987」(2017)에서 배우 설경구가 연기한 인물의 실제 모델이라고 하면 쉽게 알아들을 것이다. 그는 『진실, 광장에 서다』(창비 2005)에서 자신이 겪은 민주화운동을 정리한 적이 있고, 『이 사람을 보라』(전2권, 두레 2012, 개정판 2016)라는 두툼한 저서에서 민주화를 음양으로 도운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의 대담집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 민주화운동 40년 김정남의 진실 역정』의 출간은 그동안 미처 말하지 못했거나 말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개인의 생생한 육성으로 담겨 있어 각별하다.

한인섭 교수는 민주화운동의 역사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온 형법학자로서 이제까지 쌓은 연구의 내공을 바탕으로 적절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상대방으로부터 소중한 증언을 이끌어낸다. 스스로 발문에서 밝히듯이 『인권변론 한 시대: 홍성우 변호사의 증언』(경인문화사 2011), 『이 땅에 정의를: 함세웅 신부의 시대 증언』(창비 2018)을 잇는 세번째 대담집을 냄으로써 한교수는 ‘인권’ ‘정의’ ‘진실’이라는 키워드에 각각 초점을 맞춘 대담집 3부작을 완성했다고 자부할 만하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모순과 갈등 앞에 고민이 많은 젊은 독자에게 과연 이 책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혹시 이미 기성세대, 더 심하게 말해 기득권층이 된 50대 이상에게나 호소력을 지닐 추억을 박제한 것에 불과하지는 않을까? 가혹한 사회적 억압과 착취 속에 힘겹게 이 사회를 떠받쳐온 민중의 삶과는 동떨어진 일부 지식인, 종교인, 학생 중심의 ‘재야운동’이라는 한계에 갇힌 회고담은 아닐까?

결코 그렇지 않다. 김정남 선생은 이미 『진실, 광장에 서다』의 첫머리에서 2000년대 초반 그가 목격한 민주화운동 세력의 한계를 질타했다. “민주화투쟁의 과정은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첨예한 투쟁이었지만, 민주화 이후의 과제는 ‘더 큰 나’를 지향해나가는 일”(11면)이라며 초심을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교수 역시 『이 땅에 정의를』에서 함세웅 신부와 대화하는 가운데 70년대 민청학련의 주역들이 후배 세대의 역사의식 부족을 개탄하는 발언을 들으며 다소 자기중심적인 태도에 대해 느낀 불편함을 살짝 비치기도 했다.(83~84면)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 일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처한 사회적 모순의 해법을 찾는 성찰일 수밖에 없으며, 두 사람의 대담은 그러한 성찰에 도움이 될 귀중한 내용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김정남 선생의 뛰어난 친화력과 사람됨은 감옥 생활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1964년 첫 옥살이를 할 때는 사형수들로부터 갇혀 사는 생활을 잘 버틸 지혜를 많이 배웠고 그중 하나가 새벽 냉수마찰이었다. 1970년에 다시 투옥되었을 때는 그 많던 사형수들이 다 처형되어 배울 사람이 없었다는 것인데, 여기에서도 살벌해져만 가는 박정희정권의 모습이 역연하다. 과거에 배운 대로 새벽 냉수마찰을 시작하니 담당 교도관이 나타나 규칙위반이라고 꾸짖을 정도로 감옥 분위기도 각박하게 바뀌어 있었지만, 이 습관이 교도관들 사이에 신기하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친분이 생겨 선생이 그들의 처우 문제를 상의해주기도 한다. 결국 전병용 교도관 등과 감옥 밖 인연으로까지 이어져 나중에 민주화운동에 결정적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130~36면) 선생은 겸손한 회고로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넘어가지만, 곰곰이 반추해보면 사실 놀라운 일화다.

대담집의 책갈피마다 어떤 명예나 보상도 바라지 않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이들의 기록이 넘쳐난다. 김정남 선생은 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여성의 존재를 늘 강조한다. ‘노동자의 어머니’로 부르는 이소선 여사는 널리 알려진 분이지만, 그는 “이소선 여사가 있어서 전태일이 ‘살았다’고 생각”(329면)할 정도로 그 역할을 누구 못지않게 높이 평가한다. 또 구속자가족협의회의 주축이었던 공덕귀(윤보선 전 대통령 부인), 딸 김윤의 구속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김한림을 비롯해 정금성(시인 김지하의 어머니), 이옥경(조영래 변호사 부인), 인재근(김근태 전 의원 부인), 조무하(전태일재단 전 이사장 장기표 부인), 국제가톨릭형제회(AFI)의 외국인 수녀들, 이름을 밝히지 않지만 김선생 자신의 아내이자 해직언론인 신홍범의 여동생 등 여러분이 나온다. 주로 남편이나 아들을 도우며 활동했다는 점에서 시대적 한계가 엄연하겠지만, 이 여성들의 수난과 공로를 기억하는 선생의 시선은 남다르다. 저항하는 여성을 짓누르는 수단으로 파렴치한 성폭력이 빈번했던 시대였지만, 그는 정치권력이 이들에게 가한 추악한 폭력 중 두가지 사례를 든다. 하나는 1974년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 방한 때 미 대사관 앞에서 울며 농성 중인 구속자가족협의회 여성들 앞에서 젊은 전투경찰들이 방뇨를 하도록 시킨 짓이며, 중앙정보부가 저지른 다른 하나의 사례는 언급하기조차 흉측하다.(326~27면)

영화 「1987」에서도 묘사되듯이 민주화운동을 남몰래 도운 교도관들도 나오지만, 교도소에서 천대받기 일쑤인 ‘소지’(배식 등의 허드렛일을 하는 기결수)였던 전원용씨가 김지하의 양심선언문 반출을 도운 일화와 후일담도 독자를 잠시 숙연하게 한다.(204~206면) 또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인쇄물 제작의 위험을 도맡았다가 감옥까지 간 세진인쇄소 강은기 사장은 김정남 선생도 2002년 작고한 후에야 그의 존재를 알 정도였다니(397~99면) 무슨 일이든 촘촘한 감시를 피해 은밀히 해야 했던 시절에 아무 흔적 없이 희생한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역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의인 박윤배 선생을 회고할 때 김정남 선생의 어조에는 남다른 애정과 존경이 배어 있다(161~71면). 박선생은 탄광 노동도 하고 사업도 벌이면서 번 돈마다 아낌없이 민주화운동을 위해 썼고, 경기고 동기였던 김우중 대우 회장을 찾아가 몰래 거액을 뜯어내기도 했다. 출판사 창작과비평사에 자기 회사의 어음을 빌려줘 경영을 돕기도 했고, 백낙청 선생이 세운 것으로 알려진 창제인쇄소 초기 자금도 그가 남몰래 마련해 건넸던 것이다.(『백낙청 회화록 7』, 창비 2017, 347~48면, 365~67면)

당대의 의협이었던 그가 1988년에 일찍 세상을 뜬 것이 악명 높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당한 후유증 때문이라는 대목에서 나는 똑같은 자에게 고문을 당한 김근태를 떠올린다. 야당 열풍이 불었던 1985년 총선을 코앞에 두고 어떤 모임에서 김근태를 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누가 공부를 더 잘하느냐 하는 점수 경쟁과 흡사하게 노선 다툼이 심한 운동권 풍토를 비판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은 종교적 표현을 빌리면 ‘자기구원’의 노력이지 섣부른 ‘ 중생제도(衆生濟度)’가 아님을 역설했다.

김정남 선생도 가톨릭 신자로서 영성(靈性)의 절실함을 언급하지만, 거짓과 아집, 편가르기가 판치는 오늘의 현실 앞에서 종교적 심성과 마음수련의 중요성은 종교가 없는 나로서도 점점 절박해진다. 그래서 인도의 한 성자가 제자들에게 새날을 식별하는 방법을 묻는 일화(269~70면)가 가슴에 와닿는다. 날이 밝아 지나가는 이들이 모두 우리의 형제로 보일 때가 바로 새날인 것이다. 김정남 선생은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가 등을 돌린 이들에 대해서도 단죄나 적개심 아닌 안타까움을 앞세우며 모두가 형제라는 열린 경지를 보여준다. 선생이 늘 건강하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