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김종엽 『타오르는 시간』, 창비 2022

어느 사회학자의 낭만적인 성찰

 

 

김항 金杭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kimha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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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눈앞에 있는 『타오르는 시간: 여행자의 인문학』은 글쓰기를 “내키지 않는 사역에 동원된 듯이 수행”하면서 그 예민함으로 인해 아내를 불편하게 만든 저자가 쓴 것이다. 그 부채감을 얼마라도 덜어내고 싶었던 것일까? 저자 김종엽은 “아내에게 헌정하는” 이 책을 통해 “글쓰기를 나는 선물로 바꾸어 아내에게 보내고 싶었다”(7면)고 고백한다. 부부가 함께한 스페인 여행은 절호의 기회였음에 틀림없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을 공유하고, 그 소중한 체험-기억을 글-선물로 바꾸어 아내에게 보낸다는 더없이 낭만적인 기획.

하지만 책은 기대와 상상을 보기 좋게 비껴갔다. 스페인 거리 곳곳의 풍경, 지중해의 깊고 푸른 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행의 리듬으로 주조한 달콤한 연가(戀歌)는 그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채운 건 바르뜨와 하이데거의 여행기, 시공간 감각과 권태 경험의 근대적 변천, 그랜드투어와 근대 유럽의 관광/여행, 걷기의 해석학, 항공기의 문화정치학, 그리고 집의 현상학과 환대의 윤리학이었다. 여행기와 세레나데를 기대한 마음이 어느새 형광펜을 집어 들고 고민하는 머리로 대체됐고, 글쓰기를 쫓아가다보니 이 글을 쓰면서도 저자의 예민함과 아내의 불편함이 재연되진 않았을지 하는 ‘사특(邪慝)’한 추측도 고개를 들었다. 물론 내용은 더할 나위 없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시기와 질투와 존경이 폭포처럼 엄습했다. 저자의 오랜 팬으로서 ‘성덕’이 된 느낌이었달까? 그럼에도 하나의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 ‘선물’은 과연 무엇을 주는 것일까?

마르셀 모스(Marcel Mauss)의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선물에는 삼중의 의무가 작동한다. 줄 의무, 받을 의무, 갚을 의무가 그것이다. 중요한 점은 선물을 주고받는 이가 의무를 의식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즉 선물의 의무는 행위와 의식 외부에서 구속력을 행사한다. 사회적 사실을 선물의 교환 행위 속에서 포착한 모스의 이 정의에 따르면 이 책이 단순히 부채감을 덜어내기 위한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그런 의식적인(또한 감각적이고 생활적인) 채무관계를 청산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저자(증여자)도 아내(수여자)도 감지하지 못하는 객관적인 구속력 아래에서 이루어진 행위, 사회적 사실의 결과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책은 낭만적 연가라기보다는 『천일야화』의 설정과 가깝다. 주지하다시피 『천일야화』의 세계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설정 위에서 전개된다. 하지만 이를 커뮤니케이션의 근원적 조건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어보면 어떨까?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내는 풍전등화의 상황에 있다. 왕이 하품이라도 하면 목숨을 잃는 처절한 조건 위에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것은 청자의 흥미를 얻지 못하면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없음을, 그리하여 화자는 화자로서 성립하지 못함을 암시하고 있다. 즉 커뮤니케이션이란 화자와 청자를 전제하면서 이루어지는 안정적 대화라기보다는, 그 성립과 지속이 아무런 보증도 없이 허공에 내던져진 위태로움 자체인 것이다. 화자와 청자가 항상 새롭게 마주하는 일, 마주함이 이어질 거란 보장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 이것이 『천일야화』가 보여주는 커뮤니케이션의 극한적 알레고리이다.

저자의 선물은 『천일야화』의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는 듯하다. 뒤르껨(E. Durkheim)의 종교적 열광, 슈미트(C. Schmitt)의 예외상태, 그리고 바흐찐(M. Bakhtin)의 민중축제까지, 인간관계의 규칙과 질서의 존립이 확인되는 것은 언제나 예외적 열광이자 도취였다. 그것은 일상에서 반복되지만 의식되는 일이 없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때 인간관계의 규칙과 질서는 가시화된다.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벗어남이다. 여행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몸과 마음에 자리 잡은 온갖 힘들을 감지하고 성찰한다. 저자의 여행기가 스페인의 풍경과 역사와 문화와 사건 대신 깊은 인문학적 성찰로 점철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저 일상에서 벗어나 이국의 문화체험을 들려주는 대신, 저자는 일상의 안정적이고 안전한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사물, 그리고 인간 대 자연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탈구축하여 인간의 의식과 행위를 조건 짓고 규정하는 힘을 더할 나위 없는 깊이로 파고드는 셈이다.

책은 시작부터 의미의 해석과 행위 준칙을 둘러싼 현대사회의 온갖 조건과 패턴을 하나하나 되짚는다. 하이데거, 바르뜨, 벤야민, 데리다, 레비나스 등 기라성 같은 사상가와 역사가, 윌리엄 터너, 자꼬메띠, 르꼬르뷔지에 등의 예술가, 『천일야화』와 『주역(周易)』 등이 소환된다. 하지만 그간 다방면의 읽기와 탐구에 능했던 저자의 내공과 성실은 현학을 물리치기에 충분하다. 이 이름들, 회화와 책들은 모두 잘 지휘된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롭고 기능적으로 배치되어 작동한다. 그리하여 들리는 교향곡은 여행이라는 예외적 시공간 체험을 통해 정상, 일상, 규칙, 질서를 되묻는 섬세하고도 입체적인 선율로 울려 퍼진다. 가령 이런 대목이다. 데리다의 이론을 통해 ‘환대’의 의미에 대해 성찰한 저자는 이내 ‘환대를 해체한 환대산업’, 즉 자본주의적 숙박업과 호텔산업에 대해 논하고, 그 상징적 장면으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호텔방」에서 드러난 고독을 꼽는다(343~91면). 시공간, 풍경, 자본, 기술, 집 등이 안전적 의미망을 벗어나 낯설어짐을 넘어서 뒤흔들리기 시작한다. 여행은 이제 일상의 위태로움을 드러내는 급진적 성찰의 행위로 경험되는 것이다.

이 책이 선물이라면 이런 맥락에서이다. 오히려 이 선물은 부부를 포함한 인간관계 일반을 존속시키는 근원적 힘의 정체를 엿보게 한다. 저자는 마치 『천일야화』 속 아내의 상황에 스스로를 내던진 듯하다. 이 이야기가 재미없다면(책을 선물로 받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무시당할 수 있다는) 상황 속으로 말이다. 아마도 아내가 시큰둥하다면 저자는 또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사랑의 원형이 아닐까? 오래된 팬으로서 저자가 이토록 성찰적으로 낭만적이었다는 사실에 이상한 ‘배신감’을 느꼈다는 고백을 사족으로 덧붙인다. 그러나 그 낭만 덕분에 우리는 일상을 뒤흔드는 ‘위험한 성찰’이라 할 만한 책을 얻었다. 낭만적 성찰을 희구하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