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조명

 

약한 존재를 향한 감수성들의 연대

 

 

이정숙 李貞淑

군산대 기초교양학부 초빙교수, 현대문학 연구자. 공저서 『혁명과 웃음』 『르네상스인 김승옥』, 문학평론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 세계를 알게 된다면: 최근 동물 르뽀에 대한 단상」 등이 있음.

punky5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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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1978, 이하 ‘난쏘공’)을 읽어내려는 연구자들이 아직도 풀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다. 혹자는 북한 사투리라고 추정하고 혹자는 옛날 한국영화에서 성우의 더빙으로 듣는 서울 사투리를 연상하기도 하는데, 영호와 영희를 포함해 율사의 자식들인 십대 아이들이 질문에 대답할 때 서술어미를 ‘~야요’로 끝맺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냐다. 1970년대 소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표현이 아니어서 읽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소소하게 논쟁거리가 되지만 정작 작품을 해명하는 주요 부분은 아닌 것으로 여겨져 논의가 미뤄져왔다. 그런데 재작년에 작고하신 박태순 선생이 쓴 문건에서 해답을 발견한 듯도 하다. 선생에 따르면 난쏘공은 초중고생들의 ‘사춘기언어 세상 읽기’를 주목한 작품으로, ‘빈민층언어’나 ‘노동자언어’의 세상을 알지 못하는 새 세대의 문학을 위해 초중고생 언어로 형상화된 것이라고 한다.1

 

주로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창작해온 김중미의 신작 장편 『곁에 있다는 것』(창비 2021)이 난쏘공을 잇고 있음을 깨닫고 문득 간직해두었던 문건을 다시 열어보았다. 난쏘공에서 우리는 그동안 ‘문학적 효용’을 묻느라 ‘사랑’을 믿는 사회적 체감에 주목한 논의를 충분히 이어오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다양한 계급의 계층군을 대비시키는 것이 특징인 난쏘공에는 십대 청소년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수학교사가 등장하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선생의 말을 듣고 있는 내포독자로서 ‘학생제군’이 십대인 점을 포함해 ‘은강’의 영호와 영희 같은 노동자들, 『노동수첩』을 읽고 십대 노동자의 생활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윤호와 은희, 그리고 은강그룹의 아이로 등장하는 경애 등이 빈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을 감당해낸다. 이들은 세계의 구조적 모순을 보여줄 수 있는 주체로서, 즉 ‘성장’에 갇힌 피계몽적 주체의 한계에서 훌쩍 자유로운 인물들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는데, 『곁에 있다는 것』의 고3 수험생인 지우, 강이, 여울과 주변 청년들도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다. 김중미의 작법에서 그 비결은 주인공들이 ‘삶’의 주체로서 존재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이 점은 작가가 가장 아끼는 동화라고 밝힌 『내 동생 아영이』(창작과비평사 2002)나 단편 「조커와 나」(『조커와 나』, 창비 2013)의 주인공들도 공유하는 지점이다.

십대 유소년의 언어세계가 ‘노동자언어’와 ‘빈민층언어’로 새겨질 때 그 슬픔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괭이부리말 아이들』(창작과비평사 2000)에서 느껴본 경험으로 이번 신작에서 청년들의 언어가 돌파하는 힘을 가늠해보고 싶었다. 작가 김중미가 인천 만석동에서 공부방을 운영해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회’로 일찌감치 진입해야 할 청년들의 처지 앞에 가로놓인 장벽들의 실상도 좀더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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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 계신다면서요?” 도착하기까지의 고단함을 안부 대신 묻는 형식으로 작가가 먼저 물었다. 자신은 거주 중인 강화도에서 인터뷰 장소 근처까지 오는 직행버스가 있다고 했다. 초면인데 소개보다 장소 이야기를 먼저 나눈다. 『곁에 있다는 것』에서 군산은 적산가옥이 남아 있는 구도심의 근대 문화유산을 ‘시간여행지’로 개발하는 사례로, 때로는 ‘가난팔이’를 하는 장소로 언급된다. 작품 속에서 ‘은강’의 현재가 소비되는 방식과 닮은 점이 있는 도시가 군산이나 부산 혹은 목포인 셈이다. ‘쪽방체험관’ 건립 반대 서명을 받느라 한울과 영민이 은강부두 근처 동네를 거닐며 나누는 대화 중에는 은강에서 꽤 큰 공장이었던 판유리 공장이 초등학교 3학년 때 군산으로 옮겨 갔다는 얘기가 나온다. 마침 난쏘공 연작 중 「기계 도시」에도 “특히 판유리는 한국 최고의 존재로 교과서에 나와 있다”(이성과힘 2000)라고 소개되어 있다.

 

큰 차들이 유리를 마분지 같은 걸로 싸서 싣고 다니는 거 보신 적 있죠? 판유리 공장은 굉장히 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했던 큰 회사였어요. 예전에 큰 회사에는 비정규직이나 계약직, 외주 같은 건 없었죠. 사람들한테 판유리 다닌다고 하면, 아, 그 집 괜찮아, 그렇게 인식됐는데 그게 2000년대 초반에 군산으로 갔어요. 지금은 그 자리에 크고 작은 다른 공장들이 있고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죠.

 

그러고 보니 『곁에 있다는 것』에는 난쏘공 연작 12편 중 유독 「기계 도시」가 인용출전에 올라 있다. 첫 장인 ‘지우 이야기’의 프롤로그로 「기계 도시」에서 묘사된 은강의 역사가 펼쳐진 것이다. 「기계 도시」는 인쇄된 분량으로 7면이 채 안 되는, 연작 중 가장 짧은 소설이지만, ‘기계도시 = 은강’이 고유한 은유로 기억될 만큼 명명의 힘이 센 작품이다. 여기서 ‘난장이’는 이미 죽고 그의 아들딸들이 은강에서 최저 수준의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은강은 “버려진 도시”로 나온다. 작가에게 ‘은강’을 소환하게 된 계기부터 물었다.

 

저희 동네에 장애를 가진 분들이 많이 사세요. 소설 속 은강동·은화동이죠. 어느 날 저희 공부방 청년들이 꾸린 공간에 갔다가 초등학생 아이들이랑 걸어오는데, 그사이 몇번을 장애인분들과 마주치게 됐어요. 그때 왠지 난쏘공이 떠올랐어요. 당시 『곁에 있다는 것』을 쓰다 말다 할 즈음인데, 『한겨레21』에 기획 연재 ‘가난의 경로’를 쓴 이문영 기자가 이후 ‘죽음의 경로’를 추적하다가 은강의 무대가 된 이쪽 지역에 무연고 죽음들이 유독 많다는 걸 알고 저희 동네까지 오게 된 거예요. 그분도 그때 은강 이야기를 하셨어요. 난쏘공에 수많은 죽음이 나오잖아요. 근데 지금은 더 심하거든요. 죽음이 너무 흔한 풍경이 돼버렸어요. 은강을 불러내야겠다는 생각을 확실히 하게 됐죠.

 

『곁에 있다는 것』의 은강동 주민들은 낡고 좁은 집이지만 가족 단위로 살아가는 생활문화를 지니고 있다. 이 점을 외면한 구(區)에서 자신들을 일방적으로 ‘쪽방’ 주민으로 규정하면서 한쪽은 허물어 아파트로 재개발하고 한쪽에는 ‘쪽방체험관’을 만들어 관광 상품화하려는 속물적 발상을 내놓자 주민들은 분노한다. 이것은 실화이기도 한데, 작가가 공동체 식구들과 만든 인터넷 언론 『만석신문』에 그 과정이 소상히 나와 있다. 놓치면 안 될 것은 『곁에 있다는 것』에서 은강동 주민들은 자기네 주거지가 ‘쪽방’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자신들이 체감하는 불편을 우선으로 고려한 유지·보수를 통해 마을 공동체가 유지될 때만이 근처 쪽방촌 사람들도 더는 밀려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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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이모가 그런 말을 했어. 재개발 사업이 꼭 노조 와해 공작 같다고. 공영 재개발은 도시 빈민 지역을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바꿀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생태계를 완전히 짓밟는 거라고.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의 끈끈한 유대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그 생태계가 망가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278면)

 

여기서 이모는 지우 엄마인 경순의 이모, 즉 지우의 이모할머니를 말한다. 이 작품에서 하나의 주제어를 고르라면 단연 선택했을 말이 이모할머니가 공동체를 지칭하면서 사용한 ‘가난한 사람들의 생태계’다. 이 용어는 예사롭지 않게 들렸는데, 우리 사회가 ‘발전’을 내세우고 ‘마을’이나 ‘공동체’를 지워버리면서 사라져간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은강동은 무엇보다 이 관계가 남아 있는 장소다. 인물들의 정서가 이 장소성에서 비롯되고 그로부터의 정체성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이곳의 로컬적 특징도 잘 드러난다. “은강동 골목 구석구석에는 그곳에서 태어나고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 쉬고 있다. 세월의 더께도 쌓여 있고 시간의 흐름도 새겨져 있다.”(370면) “지우는 그곳에서 빈곤의 냄새가 아니라 나눔과 조화로움이 주는 향기를 맡는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노동이든, 공간이든, 무엇이든 나누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은강동이다.”(371면) 이러한 ‘관계’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면서 감수성을 유지해나가는 것은 『곁에 있다는 것』이 지닌 주제의 중요한 한 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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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다는 것』에는 가난한 이들의 생태계가 속속들이 보인다. 당장 지우네가 사는 4층짜리 빌라 속 여덟 가구의 이웃들만 봐도 그렇다. 용접공인 아들이 광양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뒤 혼자 사는 팔순 할머니,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이 기초생활수급권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아저씨, 다섯살·두살 배기 남매를 둔 베트남 엄마와 그녀의 여동생 란, 보육원에 살다가 보호 종료로 세상 밖에 나온 영민·정민 남매, 원룸에 사는 중국인 부부, 방글라데시에서 온 노동자 셋, 또다른 중국인 노동자들. 지우네 사정도 팍팍하다. 꿈을 축소하고 사는 대학생 언니 연우, 생계비를 겨우 벌면서 시민운동을 하는 아버지와 엄마 경순. 지우네 빌라를 벗어나도 비슷하다. 고시원 생활을 하고, 부당해고와 산업재해를 겪고, 라이더 배달이나 기간제 등 임시직으로 일하는 이들. 지우의 친구인 강이는 공공근로를 다니는 외할머니와 함께 산다. 이년 전 기초생활수급권이 박탈된 뒤 ‘송파 세 모녀’처럼 자신도 고립되어 죽은 채 발견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속에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꾸려간다. 심지어 은강을 벗어나고 싶어 안달인 여울이네 사정도 크게 다를 것 없다. 여울이 엄마는 원룸에서 재기를 꿈꾸는 중이고, 오빠 한울은 알바를 여러개 하면서 버텼지만 버젓한 대학생활을 누리는 동기들 사이에서 적응하기 어려워 학교를 그만두었다.

과거 ‘난장이’ 가족의 고난이 다른 모습으로 상존하고 있음을 이들의 삶이 증명하는 듯하다. 인천이라는 실제 공간을 다루면서 은강을 소환한 것이 주제의식을 잇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으로 읽힌다. 그런 작가는 난쏘공을 언제 처음 읽었는지 궁금해졌다.

 

학창 시절 동두천에서 인천으로 막 이사 왔을 때였어요. 공장지대라는 걸 동두천에선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제가 이사한 곳이 공장 안에 있는 사택이었기 때문에 정말 다 잿빛이라고 느꼈어요. 학교를 가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전학 간 학교는 인천의 목재공단과 주안공단 가까이에 있었어요. 학교 벽은 보통 하얀색이나 레몬색으로 칠하는데, 저희 학교는 페인트칠을 자주 안 하려고 그랬는지 아랫부분이 회색이었어요. 그런 모습이 문화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 집이 있는 목재공단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서민 아파트들이 있고, 정말 ‘산동네’도 펼쳐졌어요. 동두천에도 개울가 옆으로 판잣집들이 있었지만 그렇게 ‘수직’으로 느껴지는 가난은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 시기에 난쏘공을 접한 거죠. 문예지에서 연작을 몇편 읽고 단행본이 나오자마자 바로 사서 읽었어요. 난쏘공을 통해서 집단화된 가난의 현실이 확 다가왔던 것 같아요. 내 눈에 지금 보이는 가난은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 아니라, 잘못되었다고 얘기해야 할 문제라는 사실요.

 

『곁에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빛나는 소설인데, 이야기가 끝난 뒤 펼쳐지는 ‘작가의 말’에서도 정말 놀라운 장면을 선사한다. 1997년 만석동 공부방 다락으로 불쑥 올라온 흰머리의 사나이가 조세희였다는 사실. 조세희 선생에 대한 오마주가 새겨진 남다른 에피소드를 오래 간직하고 살아온 셈이다.

 

한 십여년 전인가, 그때만 해도 집회에서 사진기를 들고 계신 모습을 항상 볼 수 있었어요. 그때도 몸이 안 좋다고 하셨는데…… 사실 전에는 난쏘공의 은강이 인천인 줄 몰랐어요. 87년 6월항쟁 때 명동성당에서였는데요, 저는 상계동 철거민 때문에 들어갔다가 못 나오고 있었고 거기에 양평동 철거민도 몇분 계셨거든요. 그중 주민 출신 활동가 한분이 난쏘공 배경이 양평이라 하셔서 그런 줄 알고 있었죠. 그런데 만석동 다락방에서 조세희 선생님을 만났을 때, ‘여기가 은강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경험이 저한테 항상 남아 있었어요.

 

인천이 아니라 ‘은강’으로 작품을 풀어낸 것이 문학사에서 특별한 의미망을 생산하는데, 그 설정을 어떻게 가져왔는지 과정이 궁금했다.

 

그 부분이 제일 걱정스러웠죠. 편집부에 초고를 보내면서 선생님께 꼭 허락을 받아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부탁드렸어요. 안 되면 다시 써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그렇게라도 연결을 하고 싶었죠. 직접 뵐 생각은 못했어요. 당연히 작가 김중미를 모르실 텐데요.(웃음)

 

작가는 선생의 『침묵의 뿌리』(1985)를 본 후 그 배경인 사북과 고한을 혼자 방문했었다고 한다. 이후 1994년 두번째로 가보았을 때는 탄광산업이 쇠락하며 당시와는 또 달라진 풍경이었다고 했다.

 

기차를 타고 다녀왔는데, 산을 넘어 넘어서 만석동과 사북, 정선이 연결되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때만 해도 쓰러져가던 탄광촌에서 뭐든 하려는 청년들이 있었어요. 그때 세워진 ‘흑빛공부방’이 아직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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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가의 감수성이 움직이는 뿌리에 로컬의 영향력이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았다. 한 장소의 고유성이 자연, 사람, 역사 속에서 엮이는 것을 로컬리티라고 할 때, 작가에게 만석동으로 이어지는 연원은 어린 시절을 보낸 동두천이다. 동두천은 작가에게 무엇보다 ‘평화’에 대한 감수성을 심어준 곳이다.

 

제가 성장했던 곳이 기지촌이라는 특수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모순들이 잘 보였던 것 같아요. 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아메리칸드림이나, ‘양색시’라는 폄하의 언어에 얽힌 차별·편견, 그리고 ‘혼혈’ 친구들의 존재 같은 것들요. 정말 도토리 키 재기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편을 가르고, 힘이 좀 있다고 해서 약한 사람들 무시하는 모습이 저는 내 일처럼 느껴졌어요. 또 한편으로는 저희 부모님 세대가 전쟁을 직접 겪고, 불과 20년도 안 돼서 사회에 정착한 분들이라 어려서부터 전쟁 때 이야기를 엄청 많이 들었어요. 친가가 1·4후퇴 때 피난 오신 분들이고 외할머니는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직장에서 좌익이라는 오해를 받으셨다고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평화라는 것이 광의로든 협의로든 저한테 중요한 문제로 다가온 것 같아요. 저는 노동자, 도시빈민,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없어지는 것이 평화라고 생각하거든요. 불평등으로 인해 생기는 모든 차별이 폭력이라고 생각하고요. 지금도 동두천에 가면 오래 살았던 것 같고, 거기서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동두천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저를 계속 두드리는 듯한 느낌이에요.

 

작가는 강연집 『존재, 감』(창비 2018)에서도 평화에 대한 소신을 밝힌 바 있다. “평화는 좀 시끄럽고 불편한 것이라 생각해요. (…) 같이 나눠 먹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야 하고 굶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평화롭게 살려면 시끄럽고 소란스러워야 하죠.”(16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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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난쏘공의 확장된 의미에서의 연작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지우, 강이, 여울 세 학생의 외할머니들로부터 어머니들로 이어지는 우애는 이 작품만의 특성이자 다른 작품에서 보기 드문 감동적인 지점이다. 지우가 소설 습작 노트에 써둔 할머니들의 역사에는 산업체 학교였던 은강여고의 학생이 은강방직의 여공이 된다는 사실을 비롯해 여러 내력이 그려져 있는데, 이들이 겪은 생활상에는 연구자 입장에서도 가슴 뛰게 흥미로운 면이 있다. 이들은 가정폭력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이웃 여성이 당하는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굴을 까는 부업으로 함께 생활을 지탱하고 보듬으며 연대해온 여성들의 일상사가 계급적 대비 못지않은 건강한 총체성을 작품에 부여하고 있다. 특히 이모할머니인 옥자로 수렴되는 여성 노동자의 삶은 눈부시다. 지우는 이모할머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이모할머니 은강방직 해고 노동자잖아. 124명이 해고됐는데 그중 반이 넘게 지금까지 복직 투쟁을 해. 다는 아니지만 이긴 소송도 있대. 민주화 운동 인정도 받고. 그렇게 보상받은 돈을 다른 회사에서 해고된 후배 노동자들한테 나눠 주셨어. 우리 이모할머니는 언젠가는 자신들이 꼭 이길 거라고 믿어. (…) 우리가 약자인 건 맞지만 그 약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더 많은 손을 맞잡으면 달라지지 않을까?”(358면)

이모할머니를 통해 동일방직 ‘똥물사건’과 원풍모방까지 이어지는 70년대 여성 노동자의 삶을 소환하는 이야기에는 실제 모델이 있지 싶었다.

 

저희 공부방 엄마들은 대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동일방직하고 연결되어 있어요. 동일방직이 IMF 때 직원 해고하고 비정규직으로 다시 뽑고 했던 과정도 엄마들을 통해서 계속 들어온 일이라 언젠가는 그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원래는 동일방직 노조지부장이었던 이총각 선배 이야기를 가져와야겠다 하던 차에 동일방직 투쟁의 큰 축이었던 산선(인천도시산업선교회) 쪽 선배한테 김용자라는 분을 소개받았어요. 용자선배는 동일방직 복직투쟁을 가장 오랫동안 해오고 지금도 계속하고 계신 분이에요. 제가 소설을 쓴다고 하니까 용자선배가 밖으로 공개된 적 없는 영상들을 보여주셨어요. 소설에 많은 분량을 쓰지는 않았지만 정말 큰 힘이 됐어요. 똥물사건이 있었던 그 장소는 선배에게는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하잖아요. 근데 저랑 인터뷰하고 나서 저희 청년을 데리고 다니면서 하나하나 알려주셨다더라고요. 지금 서른인 그 친구는 동일방직이 뭔지도 몰랐다가 실제 싸움을 했던, 엄마보다도 많은 나이의 용자선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활동하는 이곳의 역사성에 대해 좀더 깨닫게 됐죠. 그런 과정들이 책 속에 녹아 있어요. 사람들을 만나고 같이 거닐면서 저는 한줄이라도, 낱말 하나라도 조금 더 다르게 쓰게 됐고요. 『동일방직 노동조합 운동』(돌베개 1985)이라는 책이 있어요. 거기에도 선배들의 이야기가 있지만 지금은 절판되기도 했고 다 흩어져버린 느낌이 있어서 그걸 짧게나마 복원하고 싶기도 했죠. 이제 곧 재개발이 될 곳이기도 하니 활자로라도 그곳을 남기고 싶었어요.

 

이 연대를 지우, 강이, 여울이 건강하게 이어가는 모습이 밝고 활기찬데, 거기에는 작가가 ‘공동체’라고 부르는, 활동가들의 자녀들과 지역의 공부방 아이들이 실제로 만들어온 연대의 모습이 투영된 듯도 하다. 작가의 공동체 얘기도 듣고 싶었다. 그러자 뜻하지 않게, 그러나 듣고 나니 으레 있을 법한 일이구나 싶어 고개가 끄덕여지는 아이들의 솔직한 일화를 들을 수 있었다.

 

공동체의 아이들은 공부방 아이들과 같은 동네의 판잣집에 살며 공부방에도 같이 다녔어요. 그런데 사실 가정의 환경은 다르잖아요. 엄마 아빠는 지식인이고 튼튼한 직업을 가졌고, 가정에서 나누는 언어 자체도 다르죠. 공동체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공부방 아이들과 모든 걸 같이하며 자라도록 ‘선택’했지만, 그 선택 바깥에 엄연히 다른 환경이 존재해요. 그러기에 저는 저대로 더욱,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공부방 아이들도 사랑해야 하고 공평해야 한다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사춘기를 지나고 성인이 되어가는 공동체 아이들이 ‘반란’을 일으켰어요. 공부방 아이들은 작은 것에도 칭찬받고 지지받고 인정받는데 자기들은 그러지 못했다고요. 그 와중에 저도 물론 힘들었지만, 우선 공부방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을까부터 걱정하니까 애들이 더 파르르 했죠.(웃음) 그런데 희한한 건, 아이들이 결국엔 자기들끼리 이해하고 이해받으며 뭉치더라고요. 공부방 아이들은 ‘우리가 너희 엄마 아빠의 애정을 빼앗은 거잖아. 우리가 보통 속을 썩였어야지’ 하기도 하고요. 외로운 시기를 자기들끼리 뭉쳐 그렇게 넘어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 싸움을 통해 남은 것이 결국은 사랑인 거예요. 우리 공동체의 엄마 아빠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처럼 아이들끼리도 사랑과 존중을 배운 거죠. 혼자보다 함께인 것이 낫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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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다는 것』 속 청년들은 지우, 강이, 여울과 함께 ‘쪽방체험관’ 반대 서명운동을 하면서 자신들의 공동체가 정서적 안식처로서 기능하는 것을 경험한다. 은강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은강을 자신의 로컬리티로 받아들이지 못하던 보육원 출신 영민이 “은강동이 기름진 땅은 아니더라도 함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싶었다”(344~45면)라고 피력하는 부분은 연대의 경험이 공동체의 기능을 회복하게 만드는 것을 보여준 중요한 장면으로 읽혔다. 이 경험은 다시 세월호사건에 대한 추모와 촛불집회로 확장되는바, 은강부두가 세월호가 출발한 장소라는 점도 『곁에 있다는 것』의 주제에서 중요한 포석이라고 느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2년이 되던 날 강이가 기억해낸 장면이 진실 규명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덮여 있던 사실이라는 점은 되새길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강이는 침몰 당시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익사한 여성 승무원이 할머니와의 여행길에서 만났던 승무원 언니임을 깨닫고 그가 건넸던 말을 떠올린다. “이 배 승객들은 거의 서민들이야. 화물 기사, 기술자 들도 많고. 서로 비슷한 처지라서 그런지 나는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아. 이렇게 작은 선물을 주고받는 감동이 있거든.”(364면)

 

내친김에 ‘자발적 가난’에 대해 질문했다. 조심성 부족한 어느 공무원이 작가의 공부방 활동을 폄훼하는 발언으로 상처를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무엇보다 공부방 학생들과 공동체 식구들을 위해서 쓸 수밖에 없었다는 에세이집 『꽃은 많을수록 좋다』(창비 2016) 속 문장은 유난히 날이 서 있다. 삶을 노출하는 데 부담을 느낀다면서도, 공부방을 열고 꾸려나간 나날이 소상하게 그려져 있다. 이 책에는 ‘자발적 가난’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한 분량으로 여러 각도에서 언급된다. 설명하기 복잡한 문제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작가의 말은 의외로 간명했다.

 

자발적인 가난이라 하면 사람들이 뭔가 거창하거나 부담스럽게 생각하죠. 저는 가톨릭 신앙에서 받은 영향이 컸어요. 이십대에 해방신학을 접했으니까요. 수도자들이 자기소유 하나 없이 가난하다고 해도 사실 그분들에겐 수도회와 교회라는 보호막이 있잖아요. 근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죠. 빈민지역에 들어가서 이미 살아가는 선배들이 그랬고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저는 그냥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선택한 자발적인 가난은 굶고 남루한 옷을 입는 게 아니라 힘없는 사람들끼리 함께 살 수 있는 삶이었어요. 그래서 만석동에 살게 됐어요.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할지도 모르는데, 공부방은 24시간 누구든 와서 문을 두드릴 수도 있는 곳이어야 하잖아요. 거주지를 따로 두고 출퇴근하게 되면 나는 고유하게 다른 삶을 꾸려가고, 내 아이도 공부방 아이들과는 다른 상황에서 성장하게 되는 거죠. 자발적인 가난은 매순간 내가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거예요. 예전에는 정말 밥을 굶기도 했고요. 지금은 그렇게 가난하지만은 않지만 여전히 선택을 하고 있어요. 재물을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쓸지 고민하면서 전만큼은 아니더라도 가난하게 지내는 거죠. 『모두 깜언』(창비 2015) 낼 때 통장에 정말 2원 있었거든요. 마이너스 통장으로 돈 빌려 쓰면서도 몇십만원 나가는 다른 현장에 대한 후원금은 안 끊었어요. 저희 공동체 후배들도 똑같아요. 활동가들끼리도 개인 상황이나 직업에 따라 빈부 격차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공동체의 자산으로 내어놓는 것들을 달리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평평하게 하려고, 골을 메우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건 의논해서 하기도 하지만, 각자의 선택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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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자발적 가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문하고 고민한 결과, ‘곁에 있다는 것’이 그 답임을 알겠노라고 말을 건넸다. 문장을 끝맺기도 전에 작가가 말을 덮었다. “네, 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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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가난문학’의 향방을 질문했다. 대답이 불가능한 막연한 질문을 던진 셈인데, 나대로는 문학적 방법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다. 70년대 문학에서 가난은 비록 달걀로 바위 치는 격일지라도, 연민이 가득한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 문학적 효용을 발생시킨 지점이 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 또한 분명 그런 감동이 있는데 『곁에 있다는 것』은 결이 조금 달라 보인다. 연대가 이루어내는 성취가 성공으로 귀결되어 가뿐한 기분을 안겨주면서도, 질문자의 불안감이 결말의 함의에 자꾸만 도전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현실은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1975)에서처럼 개인의 일탈이 ‘가난’을 모욕하는 차원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가치의 위력이 제도에서 감정을 지우면서 육박해오기 때문이다. 에세이에서 읽었던, 작가가 만난 공부방 아이들의 핍진한 일화가 눈물과 감동의 영역이었던 것도 이러한 힘센 제도 앞에서 여린 주체들이 보듬고 연대하면서 버티는 마음들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곁에 있다는 것』이 어떤 현재적 질문에서 시작됐는지 듣고 싶었다.

 

원고를 다 써서 보내놓고도 자신이 없었어요. 책이 나올 무렵에 뭔가 불안하고 걱정될 때가 있는데 이번엔 그게 더 심했어요. 출간됐다니까 좋기도 하면서 겁도 났어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가난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걸 직면하고 싶어하지 않잖아요. 많은 불안요소가 우리를 위협하는 현실에서 다시 굳이 가난을 얘기한다는 게…… 저는 이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옛날 타령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올해 정치상황도 그렇고 특히 팬데믹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자신이 가난하다고 더 많이 느끼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중산층의 70퍼센트 이상이 스스로 그렇게 여긴다니까…… 이제 더이상 감춰질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은 맞잖아요. 가난이 철 지난 게 아니라, 오히려 다시 정면으로 맞서고 분석해야 할 문제가 된 것 같아요. 사회가 그걸 지우려고 해왔지만 지울 수 없음이 드러난 게 아닐까 싶어요. 가난에 대해 이제까지와는 다른 초점을 가지고 논의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난한 사람들, 서민들은 애초에 고려대상이 아니잖아요. 정치인들도 이들을 대변하지 않고요. 그래도 소수의 기자들은 탐사보도라는 이름으로 계속 주목하고 있어요. 글을 쓰는 사람 누군가는, 학자든 작가든 계속 가난의 문제를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질문에 다다랐다. 작가 자신은 그동안의 작품세계에서 『곁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매김하는지 듣고 싶었다. 즉시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제가 만나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청년층이 많아지는데, 책을 안 읽는 경우가 여전히 많아요. 같이 얘기를 더 나누고 싶은 독자의 세대가 청년으로 확장됐다고 느껴요. 고등학생에서 청년까지, 대학생인 우리 애들도 보면 좋겠다, 자신들의 가난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었어요.

 

사실 작품의 주인공이 어떤 연령대인가를 기준으로 작가의 작품세계를 가르고 변화를 손쉽게 가늠하려 드는 것이 큰 잘못이라는 점을 김중미의 동화를 읽어본 독자라면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작가의 언어운용은 에세이나 소설이나 동화나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관련 이슈에 대한 조사가 치밀하고 현실적·제도적 결함을 경험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해서 내놓는 문장은 밀도가 단단하며 작품마다 고르다. 그 점이 인터뷰하는 동안 말풍선으로 모이는 문장들에서도 느껴진다. 작가의 내공이 탄탄하다는 신뢰가 함께 따라온다.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호부조의 협동정신이 세계 평화를 이룰 것이라고 믿었던 카가와 토요히꼬(賀川豊彦)를 종종 떠올렸다. 1936년 뉴욕의 한 출판사에서 펴낸 『우애의 경제학』(Brotherhood Economics, 홍순명 옮김, 그물코 2009)에는 경제가 인간의 의식에서 독립해 단지 과학으로 다루어지는 데서 유물론적 경제관의 무력함이 발생한다고 적혀 있다. 기독교적 ‘사랑’의 힘을 평생 믿었던 카가와는 스물두살이던 1909년, 빈민가로 들어가서 중노동을 하면서 글을 쓰고 그가 정의한 가난한 사람의 세 부류인 육체적 약자, 정신적 약자, 도덕적 약자들을 도우려고 애썼다. 가끔은 카가와가 이루려고 했던 것이 초기 사회주의자들이 시도한 ‘어쏘시에이션’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려운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고 즉각 옷을 벗어주고 잠자리를 내어주는 행위의 동기를 떠올릴 때마다 멈칫 연민이나 동정과는 다른 깊이를 지닌 ‘사랑’에 대해 가늠해보게 되곤 했다. 이 점이 김중미의 저작과 활동을 두루 살펴보면서 느꼈던 ‘존재’에 대한 거리낌 없는 태도를 환기시켰다. 돌보아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사유로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잊지 못하는 면모라든지 버려진 생명을 식구로 선뜻 받아들이고 남달리 깊이 교감하는 면모가 ‘존재’에 대한 존중으로밖에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약속한 시간이 지나고, 꽃씨와 길고양이들에게 줄 간식, 그리고 청년들이 만든 ‘군산메이드’ 화첩과 엽서를 전달했다. 군산에서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애독자가 준비했다는 시골식 미숫가루는 미처 가져오지 못했노라고 말로만 전하면서도 그분에게 전달할 싸인을 부탁했다.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들의 어깨동무를 꿈꿉니다. 2021.4.19. 김중미.” 목소리만큼 큼직하고 거침없이 동글동글 획이 분명한 예쁜 글씨체다.

 

 

  1. 박태순 「새로운 도시와 새로운 시민의 합창: ‘광주대단지사건’의 역사탐방의 가이드라인을 위하여」, ‘성남의 역사 ‘광주대단지 사건’을 조명한다’ 정책토론회(2017.12.22 국회의원회관) 발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