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김훈 소설이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
김영찬 金永贊
문학평론가. 저서로 『비평극장의 유령들』 『근대의 불안과 모더니즘』, 역서로 『성관계는 없다』(공역) 『근대성과 페미니즘』(공역)이 있음. youngmarx@naver.com
1. 책임은 그에게 있다
김훈(金薰)의 소설은 문제적이다. 그 근거로 우리는 무엇보다 한국소설의 위기가 풍문으로 떠도는 이 시점에서 그의 소설이 유독 그 풍문에 아랑곳 않고 폭넓은 독자층의 지지를 보란 듯이 끌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환기해볼 수 있겠다. 그것은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 그리고 최근의 『남한산성』에 이르기까지 김훈의 역사장편소설이 이른바‘본격소설’로서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 큰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과 관련된 것이다.1 그리고 특별히 지적해두어야 하는 것은, 김훈의 소설이 거둔 성공이 흔히 잘못 진단하기 쉬운 것처럼 역사(물)에 대한 최근의 대중적 관심과 트렌드에 힙입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김훈의 소설은 일면 그런 독서시장의 흐름에 얹혀 있으면서도, 중요한 지점에서 여타 역사소설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김훈의 역사소설이 거둔 성공의 원천은 단순히 역사소설이라는 장르적 외양과 소재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고 통어하는 나름의 독특하고 확고한 문학적 자기세계로써 지금 이곳의 대중에게 육박해 발휘하는 흡인력에 있다.
그러나 짐작하겠지만, 비단 그것만이 김훈 소설 고유의 차별적인 문제성을 증명하는 것이라 보긴 힘들다. 예컨대 대중적 지지로만 치자면 맥락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황석영, 은희경, 신경숙, 정이현, 박민규 등의 소설이 또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따라서 핵심은, 짐작대로다. 즉 그들 작가의 문학과 구별되는 김훈 문학의 문제성은 유달리 그의 소설이 각기 서로 다른 문학적 관점과 취향, 이데올로기가 투사되거나 그것을 반사하는 거울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같은 대상을 놓고 왠지 모를 거부감과 열렬한 찬사가 첨예하게 공존하는 현상이 그것을 방증하는 것이며, (탐미주의자, 문체주의자, 리얼리스트, 허무주의자, 개인주의자, 보수주의자, 남근주의자, 파시스트 등과 같이) 평자의 입장에 따라 각기 달리 작가 김훈을 규정하는 저 엇갈리는 다양한 명명들의 난립이 또한 그렇다.2 그러니 정작 김훈의 소설은, 어쩌면 다양한 입장과 취향에 따라 갈리는 저 수다한 규정들에 제 몸을 내맡겨 그 입장과 취향이 교차하고 논란하며 경합하는 격전지로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일종의 공백의 기표(empty signifier)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김훈의 소설을 놓고 대개 그리하듯 어느 쪽이 옳은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미안하지만 맥을 잘못 짚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그 모든 것이, 나아가 그 모든 반응들의 엇갈림 자체가 바로 김훈의 소설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김훈 소설의 문제성이고, 김훈 소설의 간단치 않음이다. 그러니 여기서 잠깐, 뜬금없겠지만 『현의 노래』의 한 대목을 떠올려보자. “야로는 세상의 단순성과 세상의 복잡성 사이에서 어지러웠고 피곤했다.”(『현의 노래』 104~5면) 김훈의 소설이 바로 저 야로의‘세상’과 방불하다. 말하자면 그의 소설은 사뭇, 단순하고도 복잡하다.
물론 야로가 그러했듯 그런 김훈의 소설 앞에서 어지러워 피곤해하는 것이 우리가 할 바는 아니다. 그보다 우리는 이같은 김훈 소설의 특출한 문제성이 앞서 지적한 폭넓은 대중적 지지와 맞닿는 지점을, 그렇게 맞닿음으로써 발생하는 효과를 각별히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 김훈 소설의 저 문제성은, 얼핏 그리 대중적이라곤 할 수 없을 듯한 그의 고집스런 문학세계에 대한 다소 의외라 할 정도의 대중적 응답과 호응의 뒷면에 숨은 모종의 원인과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점은, 우리 시대에서는 드물게도 문학과 현실과 정치가 보이게 보이지 않게 서로 얽혀 간섭하고 대면하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그 지점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가?
미리 조금 발설하자면, 거기에는 포스트-IMF시대 대중의 현실감각에 뒷받침된 정치적 무의식이 있고, 문학적으로는 김훈의 소설세계가 지금 2000년대 젊은 문학의 흐름에 저도 몰래 동참하게 되는 사연이 있으며, 나아가 그와 결부해 지금 2000년대 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짐작하고 궁리해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이것은 물론 이 모든 것을 의도했을 리 없는, 그와 무관하게 고수되어온 김훈 소설의 고유한 문학세계가 자기도 모르는 새 만들어내는 사회문화적 현상이다. 그러니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그의 문학세계가 갖는 특별한 개성에 있다. 하나씩 살펴본다.
2. 불가피(不可避)의 미학
김훈의 세편의 장편소설은 모두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임진왜란(『칼의 노래』), 신라의 가야 정벌(『현의 노래』), 병자호란(『남한산성』)이 각각 그것이다. 그의 소설에 살점이 찢기고 곤죽이 되거나 모가지가 잘려나가는 죽음의 풍경이 수다하고 처절한 살육의 광기와 피냄새가 자욱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전쟁인가. 그것은 김훈의 소설을 하나같이 관통하는 의도나 자기의식의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를테면 김훈의 소설에서, 전쟁이란 그가 생각하는 세상의 됨됨이를 축약해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알레고리다. 그 세상이란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적의와 맞서 무의미하고 불가능한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곳이고(『칼의 노래』), 살아남기 위해 견딜 수 없는 치욕을 견디거나(『남한산성』) 제 발로 엎드려 기어들어가야 하는 지옥과 같은 곳3이다(『현의 노래』). 그것은 “쇠붙이의 세상”(『현의 노래』 39면)이다. 『남한산성』의 최명길은 이 세상의 이치를 이렇게 말한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하여 못할 짓이 없는 것이옵니다.”(339면)
김훈의 소설은 그 참혹한 세상에 무력하게 홀로 맞선 자의 우울한 독백이다. 따라서 그의 소설은 역사소설이라는 외양을 하곤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역사의 옷을 빌려 (작가가 생각하는) 세상의 이치와 자아의 자리를 되새기는 자의식적 소설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소설은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독백적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여기에는 인물들 각자의 성격화나 운명의 굴곡, 극적인 서사성 따위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가령 인물들의 내면은 그가 누구이든 (여성과 백성, 군졸은 제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