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꽃의 뿌리를 향한 행려의 기록

박영근 추모평론

 

 

나희덕 羅喜德

시인,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서 오는가』 등이 있음. rhd66@hanmail.net

 

 

아, 사람들은 쉽게 모든 걸 참는구나. 사람들은 여전히 젊고 건강하기만 하다.

—케테 콜비츠의 ‘전쟁일기’중에서

 

박영근(朴永根) 시인을 떠올릴 때마다 그는 나에게 황량하고 어두운 거리를 터벅터벅 걷고 있는 모습으로 현상된다. 한밤중 술취한 목소리로 아직 살아 있다고, 또는 살고 싶다고 타전해올 때에도 그의 한숨과 침묵 사이로 끼어들던 것은 밤거리를 질주하는 차 소리였다. 빗물을 으깨는 차들의 굉음 속에서 위태롭게 들리던 목소리는 늘 젖어 있었지만, 길 위에서 느꼈을 통증이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 실감한 것은 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난 뒤였다.

 

이제 내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가끔씩 찾아오는 통증뿐인가. 그 통증이 시시때때로 나를 텅 빈 공장 마당에 세워놓고 끝도 없이 기계를 돌리게 하고, 지쳐 녹슬어가는 사유의 뼈대 위에 톱밥 따위를 날려줄 것인가. 이제 나의 글쓰기 곁에는 서성거리는 그림자조차 없지 않은가. 고통만이 구원이라면 참으로 지나친 것이 아닐 수 없다. (박영근 「오늘 살자, 모든 것은 지나간다」,『실천문학』 2000년 봄호, 53면)

 

지나간 연대에 대한 어떤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시인들에게 ‘길’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현재형의 은유일 수밖에 없다. 신경림의 『길』, 백무산의 『길은 광야의 것이다』, 최두석의 『꽃에게 길을 묻다』 등에서 ‘길’이 인생론적 범주를 넘어 한 시대를 건너는 일을 의미했듯이, 박영근이 줄곧 길 위에서 보여준 행려의 자취는 단순한 부랑이 아니라 속화된 세계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일종의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행려(行旅)’의 의미는 ‘여행(旅行)’과 대비시켜보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여행’이 떠나온 곳과 돌아갈 곳이 비교적 분명한 이가 잠시 일상을 벗어난 상태라면, ‘행려’는 정해진 거처나 돌아갈 곳이 없는 이가 근원에 대한 갈망을 지니면서도 자신을 묶고 있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귀환을 전제로 떠돎의 자유를 누리는 ‘여행’과는 달리 ‘행려’는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음을 고유한 존재방식으로 수납한 자의 떠돎이다. ‘행려’라는 말에서 방외인의 고독이나 남루하고 병적인 이미지가 읽히는 것은 그래서이다.

‘행려’는 귀향과 해탈을 유보하거나 반납하고 길 위의 삶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불귀(不歸)’의 정신과도 통한다. 임우기는 「미당 시에 대하여」(『그늘에 대하여』, 강 1996)에서 미당의 시에는 세속적 삶의 고투 속에서 얻어진 ‘그늘’이 없다고 비판하면서 그 원인으로 타성화된 영원회귀를 들었다. 그러고는 ‘회귀’의 반대편에 ‘불귀’를 놓고, 나그네 정신의 연원을 소월에게서 찾았다. “어제도 하룻밤/나그네 집에/까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웠소”로 시작되는 소월의 「길」은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는 불귀의 운명을 노래하고 있다. 돌아갈 수 없음의 비애는 김지하의 「不歸」에서 다시 빛나는 표현을 얻기도 하는데, 박영근의 행려의식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끝없는 행려의 길로 박영근을 이끌었던 것은 쉽게 정착하지 못하는 기질과 출분의 욕구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길’은 제도화되지 않은 공간, 또는 자본주의적 질서에 포섭되지 않고 버텨내기 위한 마지막 참호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고독과 절망이 너무 컸던지 박영근의 시적 여정은 ‘길’위에서 시작되어 ‘길’위에서 문득 멈추어버렸다. 봄비 속에서 누군가 그에게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힘든 네 몸을 내려놓아라”속삭였던 것처럼, 아아, “냉동의 시간들, 그 감옥 한 채”(「봄비」) 벗어두고 그는 영영 가버린 것인가.

 

 

취업 공고판 앞에서

 

취업 공고판 앞에 막막하게 서 있는 한 청년이 보인다. 제대를 하고 “갈 곳이 없”는 그는 모집공고 위에 내리치는 눈발을 보며 차라리 이력서도 구겨버리고 “내려앉고 싶”(「취업 공고판 앞에서」)다고 말한다. 노동자계층에도 속하지 못한 채 도시변두리를 떠도는 화자에게 각성된 계급의식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이처럼 박영근의 첫시집 『취업 공고판 앞에서』(청사 1984)는 노동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거나 해방의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지상에 뿌리내리고 싶지만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자의 실존적 슬픔과 절망을 보여준다.

 

안양천. 비로소 떠날 곳조차 없는 이곳에서

흐를수록 목마름은 차오르고

어지러워라 헛발 디뎌 일당마저 빠뜨리고

돌아보면 성장이라는것이어찌쉽게손안에쥐어지랴

때때로가슴쥐어뜯고진흙밭에나뒹굴어도

소, 리, 내, 지, 마, 라

고개숙이고눈물씻고다시천천히걸어야한다

사소하게사소하게말이다 검은 물빛

상처 속엔 듯 깊어지고

—「비로소 떠나갈 곳조차 없는 이곳에서」 부분

 

도시변두리 철거민이나 공장노동자의 일상적 공간을 상징하는 ‘안양천’은 원형적 공간인 ‘고향(백제)’과 역사적 공간인 ‘수유리’와 함께 이 시집의 핵심적인 공간 중 하나다. “비로소 떠날 곳조차 없는 이곳에서”살아가는 그들의 고통은 검은 물빛처럼 깊어져간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