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명랑한 밤길』 『나는 죽지 않겠다』, 장편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등이 있음. hahan7@hanmail.net
장편연재 2
꽃 같은 시절
화전놀이
다시 또 이승에는 봄이 왔나보다. 내내 보이지 않던 백세할멈이 우리집으로 들어선다.
“누가 소리허먼 같이 가잘깨비 즈그들끼리 가부렀어.”
궁시렁거리며 뚤방에 주저앉는다. 언제나 봄이면 그렇듯이 우리 집은 사방이 꽃천지다. 저를 누가 보아주든 말든 꽃들은 절로 피어나서 저희들끼리 소곤소곤, 속닥속닥, 조단조단 놀다가 누가 보든 말든 옷을 갈아입었다.
“어이, 무수굴떠기.”
유채밭에서 날아오른 나비를 보고 백세할멈, 해징이댁이 나를 부른다. 나비 훨훨 날아 살포시 해징이댁 발밑에서 날개를 접는다.
“어이 무수굴떠기, 이승 떠난게 재미가 존가?”
나비가 깜박깜박 날개를 파닥인다.
“호랭이가 물어가던갑다. 클클클.”
해징이댁 서슬에 놀라 나비가 훌쩍 날아올라 산수유나무 가지 위로 폴딱 올라앉아버린다.
“어이, 무수굴떠기, 암도 몰래 우리 오늘 자네 집에서 화전놀이나 험세. 조낸냄이가 영판 심심허네.”
육신을 빠져나오고 나서 바람에 떠돌고 햇빛에 바래고 달빛에 젖은 내 혼은 이제 반귀신인 해징이댁, 조난남에게도 목소리를 들려줄 수 없고 형상을 보여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나는 하염없이 가벼워지고 하염없이 말개졌다. 가볍고 말개져서 티끌과 같아질 때, 나는 저승사람이 될 수 있을까. 허나 아직 나는 티끌이 되지 못해 저승과 이승 언저리를 헤매는 중이다.
“어이, 오매기, 왜 아무 말이 없는가. 한번 저승 가불면 그것으로 끝이란 말이여?”
나, 이오목이가 시집을 온답시고 보따리 하나 싸들고 산을 넘어왔을 때, 집은 굴속 같았다. 머슴 김춘복이는 장가를 들기 위해 눈속임으로 마당에 짚벼늘(짚가리)과 사내끼(새끼)다발을 쌓아두었다. 중신을 선 방물장수가 짚벼늘과 사내끼가 마당에 그득하더라고 하니, 어머니는 그 집에 가면 밥은 굶을 리 없겠다고 내 등을 떠밀었다. 조실부모하고 조선 천지에 의지가지 하나 없는 외톨배기라고 울음을 우는 김춘복이가 가여워 나는 친정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김춘복이한테 있으나 친정으로 가나 굶기는 매한가지, 나는 산 넘어온 지 사흘 만에 친정집에서부터 가지고 온 베틀에 앉았다. 굴속 같기는 우리 집이나 마찬가지인 앞집 사는 해징이댁이 시엄씨 몰래 감자를 싸들고 왔다. 무수굴에서부터 나를 따라온 것이 틀림없는 저승새가 휘이익휘이익 새되게 울어대던 밤,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던 밤, 해징이댁이 가져다준 감자에 나는 목이 메었다.
“그것이 그렁게애……”
나는 해징이댁이 그것이 그렁게애, 뒤에는 노래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날도 그랬던 것이다. 감자를 먹으며 목이 멘 풋각시 등을 다독거려주며 해징이댁, 조난남이가 뜬금없이 그것이 그렁게애 하면서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미영(목화)씨 기름불 가늘게 타오르던 그 밤에.
“아이고오 불쌍한 울오머니 왜 나럴 낳으셨나요오 못 묵고 못 입힐라면서 왜 나를 낳아설랑 그리 설워하시나요오 불쌍한 울오머니 나럴 난 게 죄가 아닝게로 우지를 마소 산해진미는 아니라도 오색채상에다는 아니라도 유과 석짝은 아니라도 사우가 잡은 꿩괴기를 고아설랑 오지함지에 이고지고 산 넘어 무수굴로 울오머니 찾아가세애, 어이 인자부터는 나럴 성이라고 부르소이?”
그때부터 해징이댁은 성이 되었다. 누가 머슴출신들 아니랄까봐 비만 오면 둘이서 골방에 들어앉아 봉초담배 피워가며 사내끼를 꼬던 무수굴양반 김춘복이와 해징이양반 양도출이 그렇게 꼰 사내끼 몇다발과 새로 깎은 지게를 팔러 장에 간 날, 난남이성하고 나는 마당에 불을 피우고 베를 날았다. 돌배기를 등에 매달고 일을 하다 하다 불이 무서워 마당 한쪽 감나무에 비끌어 매놓은 애기가 뙤약뙤약 울어젖혔다.
“난남이성, 애기가 젖 주라고 우요.”
내 말을 못 들은 척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왔다갔다 하며 삼베에 치잣물만 먹이던 난남이성이 부아가 잔뜩 난 목소리로,
“내가 조낸냄이가 아녀어, 조낸냄이는 조낸냄이여어.”
“조낸냄이는 조낸냄이가 아니고 조낸냄이는 조낸냄인 것은 차후에 따지기로 허고 우선에 애기 젖……”
애기는 곧 숨이 넘어간다.
“그것이 그렁개애…… 넘의야 인사는 당꼬쓰봉 하이카라 펜대를 잡는디이 베잠뱅이 또출이는 배나무거리 도라무깡통 각시를 안고 돈다네 천불이 나네 천불이 나네 이녀러 오목가심에 천불이 나네 니 에미가 죽었냐 니 애비가 죽었냐 뭣이 어쩐다고 처울어쌌냐아.”
하고는 애기 앞에 푹 엎어졌다. 젖을 물렸지만 보타진 젖이 잘 나오지 않아, 애기는 젖을 빨다 화가 나서 다시 또 끼역끼역 울었다. 그날, 먹을 것은 없고 장에 간 신랑은 오지를 않고 애기는 울어싸니 조낸냄이는 조낸냄이가 아니고 조낸냄이는 조낸냄이라는 엉뚱한 말로 사는 일의 설움과 혼자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밑도끝도없는 부아를 깡통 우그러뜨리듯 우그러뜨리던 아직 새각시 시절의 난남이성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이, 오매기동생, 어디서 술 한통개만 받아오소. 화전놀이를 헐라며는 술이 있어야 혀어.”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송홧가루 노랗게 달리던 그 봄에 우리는 군서기 몰래, 면서기 몰래, 순경 몰래, 담근 술을 이고 지고 화전놀이를 갔었다. 한강쟁이댁, 시앙골댁, 살푸쟁이댁, 밤실댁, 오릿골댁, 해징이댁, 용수막댁, 무수굴댁이 장구 둘러메고 솥뚜껑 거꾸로 들고 산에 올라갔다. 우리는 이쁜 치마저고리를 입고 산에 올라 술을 먹고 꽃전을 지져먹고 장구를 치고 놀았다. 새끼들이 울건 말건, 서방들이야 굶건 말건, 시부모들이야 눈을 흘기건 말건 우리가 그만 놀고 싶을 때까지 지치도록 놀았다.
“어이, 오매기 자네 어디 갔는가, 이리 와서 나랑 화전놀이 허잔께애. 아이고 내 정신 좀 보소 노망이 왔다 허등마는 내가 헌 말도 잊어부네, 술 받아갖고 얼릉 오소이. 그런디 장구는 누가 갖고 올랑가아? 김채서니가 각고 올랑가아, 양불라니가 각고 올랑가. 양불라니, 김채서니, 오맹수니, 이수님이는 언제나 올랑가아.”
장구는 살푸쟁이댁 김채선이가 잘 쳤다. 장구를 치는 김채선이는 참말로 이뻤다. 이쁘다는 말로는 한참이 부족하게 이뻤다. 김채선이가 탱탱하게 약이 오른 장구를 토옹 하고 건드려보고 나서 가는 어깨와 허리에 장구끈을 질끈 동여매고 빙글, 나서면 그 어여쁨에 나는 포옥, 눈물이 나왔다. 초록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고 곱게 낭자를 한 김채선이가 하얀 버선코 사뿐사뿐 들어올리며 드디어 당글당글당글당글 장구를 치기 시작하면 내 마음이 통개통개통개통개 뛰기 시작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먼저, 술에 안 취했어도, 김채선의 장구소리에 취해 내 몸이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던 것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꽃지짐이 냄새가 고소하게 퍼지기 시작하고 술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며 조난남이의 노랫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이다.
영자야 호박 쌀마라 채선이 젖통 같은 호박을 쌀마라 호박조청을 댈이다가 양은솥에 구먹을 내라 구먹 낸 솥단지는 시엄씨 몰래 엿바까묵고 호박조청은 암도 몰래 너하고 나하고 묵어불자 시엄씨 몰래 묵어불고 시압씨 몰래 묵어불고 서방 몰래 묵어불고 새끼들 몰래 묵어불자 입 싹 딲고 보리밭 매러 가세나 보리밭 매러 가서 산신령을 꼬셔다가 갓두루매기는 떡 사묵어불고 꽤를 홀랑 뱃겨서는 신방을 채리자 시엄씨 몰래 채리고 시압씨 몰래 채리고 서방 몰래 채리고 새끼들 몰래 채리자 입 싹 딲아불고…… 어이 인자 어디를 가까아?
우리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데굴데굴 굴렀다. 먼데 산에 불이 붙었다. 진달래가 불꽃처럼 팡팡거리며 터져나왔다.
오동통통 발동기야 울지만 말고 돌아라 니가 돌아야 쌀을 사서 밤봇짐을 싼단다
우리는 웃다가 울었다. 검은골댁 한연순이는 쌍둥이를 낳았다. 하필이면 아들, 딸이었다. 젖을 물릴 때면 시엄씨, 시압씨가 지켜보다가 딸한테 먼저 물리면 며느리를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렸다. 시부모야 그렇다 쳐도 검은골양반 박두봉이가 말은 안해도 연순이 눈치 살살보면서 아들아이만 안아줄 때면 딸한테 미안해졌다. 쌍둥이는 돌 무렵에 홍역을 않았다. 아들은 살고 딸은 끝내 숨이 넘어갔다. 두봉이가 금간 오지 속에 딸을 넣어 지게를 지고 산골짝으로 가서 묻었다. 연순이는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까지 아들을 내리 셋을 낳고 밤봇짐을 쌌다. 그놈의 아들들한테 뉘가 나서 속이 울렁거렸다. 봇짐을 들고 갈 곳이 없어 딸이 묻힌 애기무덤에 갔다. 거기서 하룻밤을 자고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굴려도 갈 곳이 없어 집으로 돌아왔더니 두봉이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두들겨팼다. 그리고 그것은 습이 되었다. 두봉이는 틈만 나면 연순이를 팼다. 두들겨맞아가면서 연순이는 삼식이 밑에 사채, 오채, 육채까지를 낳았다. 발동기가 울지도 않고 돌아버렸다고 주막거리에서 두봉이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자랑질을 했다. 딸딸딸딸, 하지도 않고 바로 아들을 낳았단 뜻이다. 화전놀이에서 연순이는 운다. 죽은 딸 생각이 나서 운다. 딸아 딸아 내 딸아 꿈속에서나 보는 내 딸아 내 품안에 있을 적에 햇님같이 웃던 딸아 너는 이제 내 맘속에 달님같이 되었구나 너는 이제 내 맘속에 별님같이 되었구나.
검은골댁 한연순이가 서럽게 우는 한 옆에서 큰골댁 양막녀가 울었다. 막녀는 꽃을 좋아했다. 누가 꽃 안 보고 배부르게 먹을래, 꽃 보고 배 곯을래, 하면 다른 사람은 다 꽃 안보고 배부른 쪽으로 가는데 막녀 혼자 배곯고 꽃 보는 쪽으로 갔다. 막녀는 그런다고 큰골양반 장석조한테 시도때도없이 쥐어박혔다. 콩밭을 매는데 매서 없애버려야 할 비름꽃, 달개비꽃이 이쁘다고 넋을 놓고 있는 참인데 뒤에서 푸푸거리고 달려온 석조한테 직신 얻어맞은 막녀는 얼굴에 멍 가라앉힌다고 종종 호박범벅을 붙이고 다녔다. 호박범벅을 붙이고 사는 와중에 막녀는 딸만 다섯을 낳았다. 원래 일곱을 낳았는데 둘은 돌 되기 전에 날려버렸다. 막녀네 콩밭이 우리 고구마밭 바로 옆에 있었다. 뙤약볕이 내리 쏟아지는데 사방은 적막했다. 한낮의 산밭은 적막해도 수선스럽다. 밭을 매다가 막녀가 낄낄거리며, 닝꽁닝꽁닝꽁니잉, 했다.
“뭣이여?”
“무수굴성님, 칡낭구 가지 새로 내려오는 거무가 닝꽁닝꽁닝꽁니잉, 안허요이?”
“자네집 밭에 거무는 닝꽁닝꽁닝꽁니잉 헌가? 우리 집 밭에 거무는 지꾸지꾸지꾸지잉 허그만.”
그 옆에서 깨밭을 매던 살푸쟁이댁 김채선이가,
“아이고 성님들도 차암, 소리 안 내는 것이 소리는 더 많다고 안 그럽디여?”
“자네 말이 옳네. 소리 내는 거시는 띠룽띠룽띠룽, 띠루룽 한가지 소리지마는 소리 안 내는 것들이 뭔 소리를 가졌는지 우리가 얼매나 알겄는가이?”
우리는 적막한 속에서 소리 없는 것들의 온갖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없다고 해서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닌 것들의 소리다. 그래서 가슴 한쪽이 먹먹해져왔다. 꼭 우리들 같아서. 우리도 소리를 안 내고 살 뿐이지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닌데도 세상은 땅 파먹고 사는 아낙들은 소리가 아예 없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무슨 소리라도 낼라치면 무식한 아낙네가 뭣을 아느냐는 투였다. 그래도 우리는 울지 않았다. 우리 울음 알아주는 데도 아닌 데서 울면 우리만 설워지니 울지 않았다. 어쩌다 울 때도 놀 때나 울지, 일할 때는 힘이 들어 울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울면, 닝꽁닝꽁닝꽁, 지꾸지꾸지지잉, 띠룽띠룽띠루룽, 하는 것들이 우리 울음에 묻힐까봐 울지 않았다.
“어이, 무수굴떠기, 어디 갔다 인자 온가아?”
나비를 좇다가 지쳐 잠이 든 해징이댁이 부스스 깨어나 나를 찾는다. 나비가 해징이댁 앞에서 너울너울 춤을 춘다.
“아이고, 술은 받아왔는가아?”
나비가 이제 방금 벙글기 시작한 모과꽃술에 이마를 부빈다.
“나를 놔두고 살째기들 가부렀네애. 화전놀이를 가부렀어. 즈그들끼리 가부렀어. 암도 모르게 우리도 화전놀이를 허세나. 무수굴떠기 이리와서 술 한잔을 처보소. 채선이가 장구 치고 불라니가 적 부치고 우리는 춤이나 추세나그려어.”
하는데, 우리 집 가득 봄꽃들이 폭죽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벌들이 윙윙거리고 나비가 공공거리고 명새도 찌찌거렸다. 적막강산이 한량없이 수선스러운 봄날의 대낮, 해징이댁 혼자 화전놀이를 하는 한낮, 나도 한소리를 보탰다. 닝꽁닝꽁닝꽁니잉, 지꾸지꾸지꾸지잉…… 해징이댁은 신이 나서 저고리를 벗어던지고 치마끈을 훌러덩 풀어버렸다. 이승사람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이승하고 짠 듯이 저승도 오늘따라 적막하였다. 때는 이때다 하고, 나 또한 내 혼을 감싼 허물 하나를 벗고 한층 가벼워진 혼을 때마침 날아온 나비 날개에 싣고 공중으로 훨훨 날아올랐다. 해징이댁은 여전히 나비보다 어여쁘게 춤을 추고 있었다.
물 같고 풀 같은
후배 형미하고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온 날, 자신을 노려보며 석현이 한 말이 해정의 폐부에 와서 박혔다.
“글을 몸으로 써야지 머리로 쓰려니, 그렇잖아도 나쁜 머리에서 글이 나오냐 나오길.” 꽝 방문을 닫는데, 해정은 머릿속이 꽝 터지는 줄 알았다. 시인 김수영이 그와 비슷한 말을 한 것도 같지만, 새삼스레, 그렇다는 사실을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는 아픈 자각이 가슴을 친 게 아니라 머리를 쳤던 것이다. 아무래도 자신은 글쓰기 재주가 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해정의 하소연에 형미는 환경을 바꿔보는 것도 좋을 거라는 조언을 줬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술김에 우기다가, 그러면 문제의 근본 원인을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왜 바쁜 기자를 나오라고 해서 술을 퍼먹이고 하소연을 하느냐고 또 술에 취해서 씨부렁거리는 형미를, 헤어지네 마네 하는 와중인 형미 애인한테 애걸복걸하다시피 아주 굴욕적인 포즈로 인계하고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으로 들어온 참이었다. 해정은 소설을 쓰자고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두고 취재중에 안면을 튼 출판사와 덜컥 계약부터 해버렸다. 출판사 사장이 해정의 기사가 단순한 기사가 아니라 거의 작품이라 극찬하면서 그런 건조한 기사문체로 소설을 쓰면 아주 독특하고 매력적인 작품이 될 거라고 적극적으로 추어올린 탓이 크다. 출판사 사장이 검증 안된 사람에게 덜컥 계약금을 안기는 만용을 부릴 수 있었던 근거는 해정이 신춘문예에 예의 그 기사문체로 쓴 단편소설을 투고해서 최종심까지 올라간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인간에게 받은 상처를 자연에서 치유받는 사람의 어느 하루에 관한 이야기인데, 출판사 사장은 그것을 장편화시키자고 했다. 그런데 해정은 소설을 쓰는 동안의 생활비와 취재며 뭐며 소설 구상에 들어갈 제반 비용으로 써야 할 계약금을 그만 결혼비용으로 쓰고 말았다. 술 먹으면 말 많다는 이유로 실연을 당하고 돌아서던 그 쓸쓸한 거리에 술 먹으면 더 예뻐보인다고 말하는 석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뒤사 어떻게 될 값에, 실연의 아픔 뒤에 다가온 녹작지근한 아스피린 같은 사랑을 거부할 용기가 해정은 없었다. 어찌됐든 간에 그 아스피린과 이왕지사 결혼까지 했으니, 과거의 남자는 숨겨도 빚진 사실은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결혼하자마자 종족보존의 욕망에 끓어오르는 열기를 주체 못하는 석현을 겨우겨우 진정시켜놓고 책상에 앉았으나, 도무지 머릿속에는 하얀 등과 까만 등만이 명멸할 뿐이었다. 인생사가 천연색이니 소설도 그러해야 할진데 흑백티브이만이 깜박이니, 형미 말대로 환경을 바꾸든지, 석현이 말대로 어디 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삶의 현장’에라도 나가든지, 무슨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출판사와 약속한 기한은 일년이었다. 앞으로 일년 안에 해정은 장편소설 하나를 완성해야 한다. 바로 그때, 연락을 해온 경희가 하나의 나침반이 되었다.
“야, 해정아, 아파트에서 뭔 글이 나오겄냐. 자고로 글은 산천경개 수려한 곳에서 청풍명월을 벗 삼아야 나오는 법이란다.”
고향이 전라도 순양인 경희는 대학에서 만났다. 자기 고향 동네에서 여자가 대학에 입학한 게 동네 유사 이래로 처음이라고 떠벌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여간, 이래도 안 나오고 저래도 안 나오는 글일 바에야, 우선 형미 말대로 환경이라도 바꿔보자, 하고서 지난겨울 산천경개 수려하고 청풍명월 벗 삼을 만한 경희네 비어 있는 친정집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이 집에서 혼자 살던 경희네 엄마가 경희 여동생 아이 바라지를 위해 서울에서 일년 정도 살기로 했다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도 경희 엄마가 살던 곳이어서 냉장고에는 경희 엄마가 해놓고 다 못 먹은 반찬이 가득했고, 해정은 보일러에 기름만 채우면 되었다. 남향집이라 햇빛이 방안 깊숙이 들어와서 낮에는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그리 춥지 않아 기름도 그다지 많이 넣을 필요가 없었다. 집 뒤로는 산죽나무가 바스락거려서 귀가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았고, 집 앞으로는 산을 휘돌아 냇물이 흘러 눈이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배산임수, 금환낙지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 수려한 경치에 홀려서 시간 가는 줄을 일부러 잊어버리고, 청풍명월 벗 삼는다는 핑계로 또 몇날 며칠을 흘려보내고 나니 ‘환경 바꾼 지’벌써 한계절이 지났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 것이다. 문득 정신이 들어 떨리는 마음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자아, 이제부터 쓰는 일만 남았다, 하고서 막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려는 순간, 햇빛 자글거리는 어느 봄날에, 낯선 여인이 해정을 찾아왔다.
누군가 찾아오면, 해정은 먼저 손사래부터 쳤다. 자신을 찾아올 사람은 석현이나 경희 말고 아무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인사를 트기 위해 찾아온 이장한테도 저기요, 저는 살러 온 사람이 아니고 그저 글 쓰러 온 사람이니 그리 신경 쓰지 마시라고, 조용히 들었다가 조용히 나가겠노라고, 그러니 너무 서운케 생각 마시라고 신신당부를 했더니, 이장이 정색을 하고,
“배운 분 앞에서 제가 주제넘는 소리를 허는지는 몰라도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사람 사는 동네에 사람이 들어왔으니 인사 정도는 터야 사람 사는 동네라 헐 수 있지 않겠느냐, 허는 것이지요.”
“이장님 말씀은 백번 지당하신 말씀이오나…… 제 생각은…… 그게 그러니까…… 근데요, 아저씨, 저 정말 조용히 있으면서 글만 쓰다가 조용히 나갈라고 들어온 사람이거든요. 그러니 제발…… 네? 아저씨.”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물론 글을 쓰실라먼 조용헌 환경이 제일차적으로 최적의 조건이 되겠지요. 허지마는 동네에 누군가 들어왔는데애 이장으로서 모른 척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점을 이해 바랍니다, 그러고 글 쓰시는 데 혹여라도 필요헌 것이 있으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니 언제라도 허심탄회허게 말씀해주십시오. 글 쓰시는 데 방해를 끼쳐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허심탄회하게 말을 안했는데도 ‘심’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물’적인 지원이 바로 되었다. 마을 노인들이 자박자박 와서는 비닐이나 신문지에 싼 먹을거리들을 마루에 슬쩍 놓고 가곤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놀라서 튀어나가, 왜 이런 걸 저한테 주고 가시냐고, 괜히 모르는 사람한테 잘못 놓고 가시는 거라고, 설명을 하고 해명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누구먼 어쩌가디.”
방안에 들어와 ‘누구먼 어쩌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