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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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명랑한 밤길』 『나는 죽지 않겠다』, 장편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등이 있음. hahan7@hanmail.net

 

 

 

장편연재 1

꽃 같은 시절

 

 

제1부

 

저승길을 못 가고

 

내 혼이 내 몸을 빠져나왔을 때는 바람이 소슬한 가을밤이었다. 내 혼에서 나오는 푸른빛이 내 집의 추녀를 막 벗어났을 때, 시집와서 육십년을 넘게 바라보며 살던 앞산 위로 달이 둥실 떠올랐다. 공기는 안온하고 구름 없는 맑은 밤에 흔히 그렇듯이 산빛은 티없이 검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밤이었다. 길 떠나기에 그만일 성싶게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마침맞은 밤이었다.

내 아들딸들과 그들의 식솔들이 내는 울음소리가 먼 이명처럼 들리는 속에, 달빛을 흠뻑 받은 나는 정작 편안한 마음으로 방금 혼이 벗어난 내 몸을 붙잡고 울음을 우는 아들과 딸과 며느리와 사위와 손주들에게 속삭였다.

“울다가 배 고프면 밥 묵고, 지치면 자다가 그러고들 너희들 집으로 돌아가거라이. 나는 갈란다, 잘 있어라이.”

이승에서 팔십년을 살았으니 살 만큼 살았다. 그리고 이제 내겐 저승으로 가는 여행길이 기다리고 있다. 마침, 은하수 건너 황천길 입구에서 남편이 나를 부른다. 남편은 이승 셈법으로 이십년 전에 저승으로 콩 팔러 가서는 콩을 다 못 팔아서 그랬던지 이승으로는 소식을 주지 않았다. 내 이제 남편이 콩을 얼마나 팔았는지 그것도 확인해볼 참으로,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오작교가 보일 쯤 해서는 좀 설레는 기분으로, 알았소, 이십년을 지다린 사람이 하루를 못 지다리요? 했더니 남편이, 이승에서 이십년이 여그서는 하룻길이라네. 내가 이승 이십년 동안 포도시 여그까지밖에 못 온 것을 보면 모르겄는가, 하고 껄껄 웃었다.

“그런디, 여가 저그하고 다른 것이 있다네. 이승에 태날 때 그랬드키 여그 올 때도 암것도 모르고 왔드마는 여그는 저그허고 온갖 것이 다 달러. 저그는 왔다가도 돌아갈 수 있고 갔다가도 올 수가 있지마는, 여그는 한번 발 떼버리면 돌이킬 수가 없다네.”

남편의 그 말 때문이었을까. 공기의 촉감과 달빛의 밝기가 길 떠나기에 그만인 성싶기는 하지만 내 혼이 막상 저승길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이. 내가 이제 가버리고 나면 우리 집이 너무 고적할 것 같아서, 그것이 마음 아파 나는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말하자면 오작교와 우리 집 지붕이 보이는 그 어디메쯤에서 짐짓 길을 잃은 듯, 문득 가던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내가 그러고 있는지도 모르고 내 자손들은 삼우제를 지내고 나서 집 안팎을 깨끗이 쓸고 닦은 뒤에 방문과 부엌문과 헛간문과 대문에 각각 빗장을 지르고서 저희들 사는 곳으로 떠났다. 남편이 이승을 뜨고 자손들이 집을 떠나고 난 뒤 나 혼자 남았던 집은 이제 저 혼자 남았다. 내가 아직 이승사람일 때, 나는 집이 심심하다고 한번씩 몸을 떨 때마다 텔레비전을 틀거나, 라디오를 틀거나, 옛이야기 한자리를 풀거나, 노래를 한가락 부르거나, 그도 아니면 일부러 이 빠진 사기접시를 깨거나 스뎅 그릇을 무쇠솥 위로 달팍 엎었다. 그러면 집이 잠잠해졌다. 집이 그런다고 했더니 막내딸이,

“엄마도 다른 엄마들처럼 교회를 다녀부러.”

저는 다니지도 않으면서 나보고는 교회를 다니라 했다. 일요일이면 교회 봉고차가 와서 동네 혼자 사는 할멈들을 죄다 싣고 갔다. 막내딸의 당부대로 그 속에 끼어 몇번 나가다 그만두었다. 목사님 설교할 때 잠이 쏟아지길래, 내 옆에 앉아 지성스럽게 손을 비비고 앉았는 밤실댁한테 자꾸 기댔더니, 밤실댁이 자기까지 우세스럽다고 나를 꼬집었다.

“왜 찝는가아?”

“교회서는 기도허는 것이 밥값이여어.”

밤실댁은 교회서 주는 점심밥값을 하기 위해 기도를 하는 모양이었다. 전도사가 밤실댁 기도하는 모양을 보고,

“할머니, 교회서는 손을 안 비벼도 됩니다, 그냥 가만히 모으고 기도하세요.”

그러나 밤실댁은 끝내 기도하는 법을 바꾸지 못하고는 나와 함께 교회나가기를 그만두면서 하는 말이,

“손을 비벼야 기도허는 맛이 나는디, 교회기도는 재미가 영 없드만.”

밤실댁이나 나나 아무래도 교회는 취미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교회를 그만두고는 부뚜막의 조앙신한테 마음놓고 손을 비볐다. 조앙신이나 성주신이 천당을 가게 해준다는 말은 못 들었고, 교회를 안 다니면 지옥에 간다는 말은 들었으니, 천당을 갈지 지옥을 갈지 마음에 좀 걸려서 은하수 건너 남편한테 물었다.

“어이, 자네가 이승서 넘 못헐 일을 한번이라도 했는가, 안했는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했더니,

“그러면 자네는 정해진 바가 없네.”

이승에서도 늘 나를 약올리며 즐거워하던 남편이 저승에서도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판단이 얼른 서지 않았다. 놀려먹기 좋은 나 오기만 기다리는 남편 있는 쪽으로 가지 말고 다른 곳으로 새버릴까, 해찰을 하는 동안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구름이 흐르고 해가 나고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달이 졌다. 적막한 빈집에서 빗장이 질러진 안방 시렁 위에 올라앉아 있던 대바구니가 방바닥으로 코콩, 하고 떨어져내린다. 집이 심심해 죽겠다고 한번 살짝 몸을 떨어서 생긴 일이다. 아이들은 시렁 위에 그 대바구니가 있는지 없는지도 눈치채지 못하고서 서둘러 떠났다. 알았어도 지금 세상에서는 쓸데없는 것이라 내버려뒀거나 아니면 내 옷가지를 그리했듯이 불살라버렸을지 모른다. 그러니 오히려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한 것이 잘된 일이다. 심심해서 몸을 떨어도 소리나는 것이 남아 있지 않으면 집은 심심함에 지쳐 금방 쓰러져버릴 것이므로.

가을 지나 겨울 초입에 아이들이 사십구재를 지낸답시고 내 육신이 묻힌 곳에 왔다가 심심해 죽을 지경인 집에 들렀다. 이장이 큰아들을 붙잡고 집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어이, 만택이, 누가 와서 이 집을 팔라고 허는 사람도 있고, 빈집으로 놔두면 암만 해도 집이 상헐 것인데, 팔 것인지 허물 것인지 결정을 허는 것이 좋을 것이네.”

아이들이 두세두세 집 문제를 두고 회의를 했다. 둘째아들 영택이가 자기는 모르겠다고 형이 알아서 하라고 하자 셋째아들 순택이도 고개를 끄덕였고 첫째딸 정순이도, 막내딸 미순이도 혹은 뾰루퉁하게, 혹은 무덤덤하게 큰오빠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러면 집은 팔지 않고 놔뒀다가 나중에 내가 와서 살어야겄다아.”

큰아들 만택이가 실은 자기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은 또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 윗집 한강쟁이댁네도 오류골댁네도, 살푸쟁이댁네도, 다아 나중에 아들들이 와서 살겠다고 하는 빈집이고 이제 우리 집이 그렇게 되었다. 맨 먼저 쓰러진 건 한강쟁이댁이다. 한강쟁이댁 집은 하도 심심해 몸을 떨어봤지만, 그 어떤 소리나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없어, 할 수 없이 제 몸을 바수었다. 바스락, 바스락, 불불불불, 치르르치르르, 한강쟁이댁네집은 제 몸 갉아먹는 재미로 이승 햇수로 삼년을 버티다 마지막에는 제 몸에서도 더이상 소리낼 것도, 움직일 것도 남아나지 않게 되어서 눈 많이 오던 어느 하룻밤을 택해 폭삭 땅으로 꺼져버렸다.

겨울 지나 봄이 되자, 앞집 사는 백세할멈이 아무도 없는 틈을 타 한번씩 내 집으로 왔다. 백세할멈은 팔십에 한번 깜빡 저승길 초입까지 왔다가 돌아가서는 반 귀신으로 산 지 이십년째다. 할멈은 거미줄이 걸리는 마당을 휘적휘적 기어와서 뚤방 위로 올라섰다. 그러곤 발을 탕탕 구르며,

“만태가아.”

서울 용산에서 식당을 하는 만택이가 대답을 할 리가 없다. 할멈은 다소 기가 죽었다.

“기셔어?”

철컥, 방문을 연다. 서늘한 냉기뿐이다. 아랑곳없이 할멈은 내 집 안방으로 쑥 들어왔다. 나는 어떻게든지 할멈을 맞아 뭐라도 입맛 다실 것을 내놓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육신이 없으므로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할멈이 방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내 혼도 할멈을 마주보고 앉았다.

“무수굴떠기, 어디 갔다가 인자 온가아?”

나는 흠칫 놀랐다.

“내가 봬요?”

“훤허게 봬제애.”

“나 세상 떠난지는 아요?”

“무수굴떠기가 언제 죽었등가?”

“나 초상친 날 떡도 맛나게 묵어놓고는 그러요?”

“우리 아들이 그러는디 내가 요새 노망이 들었다고 허데.”

말해놓고 할멈이 웃었다. 우리가 웃고 있는데, 밖에서 사람 발소리가 들렸다.

“어무니, 또 여가 와 기시요오?”

할멈의 아들이다.

“무수굴떠기가 맛난 것 내노면 그것 묵고 갈라고오.”

“무수굴 아짐 돌아가신 지가 언젠디 어느 세월에 맛난 것을 가져온다고 그려어.”

“말도 허고 웃기도 허는디야?”

“맛난 것은 집에 가서 묵기로 허고 빈집이서는 그만 나와요오.”

착한 아들이 마루에 앉아 어미를 기다린다.

“머 해줄라가디이?”

“어무니가 좋아허는 모든 거 다 해주지이.”

“그럼 그리여. 무수굴떠기 담에 또 보드라고오.”

“뭣을 또 본다고 혀어, 자꾸우.”

아들이 어미를 업는다. 어미가 아들 등 위에서 아기처럼 들썩들썩 춤을 춘다. 맛난 것 먹을 욕심에. 내가 백살까지 살았으면 우리 만택이도 저리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제 다시는 할멈의 아들처럼 할 수 없어 우리 만택이가 그리 슬피 울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해동되고서부터 부쩍 총기가 없어진 할멈이 며칠 오지 않아서인가. 내 집이 드디어 바스락바스락 제 몸 갉아먹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직은 이승사람이어도 반은 저승사람이라 집이 몸 떨어대는 소리를 할멈이 알아듣고 아들 내외가 다 일 나가고 없는 틈을 타 살금살금 내 집에 왔다.

“무수굴떠기 집이 바시라지네.”

집이 몸을 떨어대도 응답해줄 것이 남아나지 않아 결국 집이 절로 바스라지는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지난겨울 아무도 모르게 집에 들어왔다 나간 고물장수 탓이 컸다. 낮에 동네에 한번 왔다 간 고물장수는 아무도 모르게 밤에 다시 한번 왔다. 그래서는 만택이가 질러놓은 빗장이란 빗장은 모조리 열어젖히고 부뚜막에 걸쳐져 있던 솥단지며 찬장에 포개포개 올려진 스뎅 그릇이며 장독이며 화로에다 부젓가락까지 깡그리 실어내갔다. 그 통에 안방에 뒹굴던 살 빠진 대바구니가 고물장수 발길에 폭삭 찌그러졌다. 이제 우리 집은 바람과 햇빛과 달빛과 별빛만이 들고나는 집이 되었다.

“어이, 올라며는 안즉도 멀었는가?”

“집이 혼자 애달프요.”

“죽어 오지랖은 아무 쓸 데가 없어. 이승사람들이 귀신 씨나락 까묵는다고 숭봐.”

남편의 그 말에 귀신들이 와그작와그작 웃어젖혔다. 귀신들이 웃어젖히는 그 순간에 이승의 우리 집 마당 한귀퉁이에서는 복사꽃이 화들짝 피어났다. 꽃이 피어나도 꽃 피었다고 좋아라 해주는 사람 없어 더 외로웠던지, 집이 유난히 몸을 떨어대던 어느날 저녁 무렵,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트럭에서 내려 우리 집 언덕길을 자박자박 걸어들어왔다.

“복사꽃 환한 것 좀 봐, 꿈속 같애.”

백세할멈 말고는 사람 훈기를 맡을 수 없어서 몸을 바스스 떨어대던 집도 젊은 남녀가 들어서자마자 꿈꾸듯이 조용해졌다. 아, 혼자 남은 집 걱정은 안해도 되겠구나, 이제사 안심하고 황천길을 가자, 하고 막 돌아서서 몇걸음 떼지 않았는데, 젊은 아낙 울음소리가 들렸다. 저승에서 한발짝 몇걸음이 이승에서 달이 몇번을 떴다 지고 해가 몇번을 지고 뜨고 하는 동안임을 이승사람들이 알란가는 모르겠다. 그런 것은 몰라도 울음 우는 사람 속은 누가 알아줄란가, 애달픈 마음에 나는 아직 달 뜨면 달빛으로 해 뜨면 햇빛으로 내가 살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구천을 헤매는 중이다.

“인자 까묵을 씨나락도 동나겄네, 동나겄어.”

은하수 건너참에서 남편은 여전히 투덜거린다. 그 소리에 귀신들이 와그르르 웃는 속에, 속없는 귀신들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낙의 울음소리에 바짝 귀를 모두었다.

 

 

철수와 영희

 

동네가 재개발이 된다고 해서 속없이 좋아라 한 지 일년도 안돼 철수와 영희는 자신들의 생활터전이던 재개발구역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건물주인이 세입자들도 모르게 벌써 개발업자에게 건물을 팔아버렸다는 사실은 다 쫓겨나게 생겨서야 알았다.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가게가 철거되고, 개업할 때 물고 들어온 권리금과 시설투자금은 그대로 날리고 숱한 대거리질과 욕설과 싸움과 하소연 끝에 손에 받아쥔 보상금은 말 그대로 이사비용에 불과했다. 철수와 영희는 그렇게‘길바닥’에 나앉았다. 자신이 왜 재개발에 좋아라 박수를 쳤는지 기가 막혀서 철수는 수시로 자살충동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철수는 악을 썼다.

“내가 즈그들한테 뭣을 잘못했냐고오. 내가 뭣을 잘못했는데 나를 즈그들 맘대로 쫓아내냐고오.”

동생이 사고를 일으키거나 어이없게 죽는 일이 생길까 두려워 철수 누나가 서둘러 매형의 출퇴근용 트럭을 빌려줬다. 그렇게 해서 철수는 졸지에 대구탕집 사장에서 건어물 행상이 되었다. 문제는 살 집이 없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철수와 영희는 도시근교 시골동네를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마침 어디선가 요새 시골집들은 돈 안 주고도 살 수 있는 데가 있다더라는 말을 들은 참이었다. 아예 돈을 안 주고 살 마음은 없었지만, 돈을 안 주고 살 수 있는 집을 기대하는 마음 또한 없지 않았다. 그 마음으로 시골동네를 돌아다녀봤지만, 그러나, 돈을 안 주고 살 수 있는 집은 집이라기보다 거의 폐가에 가까운 것들이었고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은 세를 놓지 않거나 세를 놓더라도 자신들 형편으로는 부담이 됐다. 세간을 들여놓고 날 어두워지면 세 식구가 깃들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두려운 느낌에 부부는 문득문득 진저리를 쳤다. 종일 매운 봄바람을 맞으며 시골동네들을 돌아다니다가 그 집을 발견하던 때도 그렇게 진저리나는 나날 중의 어느 하루였다.

처음에 영희가 이 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은 순전히 꽃 때문이었다. 살 집을 찾아 헤매던 그 봄날의 저녁참에, 마을 앞을 지나가다가 언덕 위에 선 이 집에서 번져나오는 복사꽃의 분홍빛이 먼 데서도 자기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당신들도 살 집이 없어 외롭지요? 내가 사는 이 집도 외롭답니다. 나는 이렇게 어여쁜데 봐줄 사람 없어 외롭고, 나를 보고 행복해하는 사람 없어 외롭지요. 복사꽃의 분홍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영희는 그냥 가자는 철수를 기어코 이 집 쪽으로 돌려세웠다.

“꽃이 예쁘잖아. 근데 어쩐지 집이 외로워 보여.”

“하여튼지 외로운 것 디지게 좋아해.”

“무념무상한테 무슨 말을 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감정 중에 몇가지가 결핍된 것 같은 철수를 두고 영희는 좋을 때는 명경지수라 하고 좋지 않을 때는 무념무상이라 한다. 명경지수든 무념무상이든, 그래도 상황이 다급한지라 철수도 나름으로는 빈집이면 좋겠는데…… 빈집이면…… 하면서 들어오다가, 왈칵 끼치는 빈집 냄새에 반가워서 그만,

“빈집인가 보다.”

외치고 말았다.

“여보, 이 집은 입식을 안했나 봐. 아궁이도 있어.”

영희가 소곤거렸다.

가만가만 집 구석구석을 살피던 철수가 다가와서,

“솥은 사다 걸면 되겠다.”

“솥에다 물 데워 목욕하면 좋겠다. 그지이?”

영희가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어둠이 마당 가득 들어차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루에 걸터앉아 어둠이 차오르는 마당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모양새가 들일 끝내고 와서 오래 산 자기 집 마루에 노곤한 몸을 부리고 앉았는 사람들 영락없다.

“우리 집 같다, 흐흐.”

철수가 불량스럽게 웃었다.

“우리 집이면 좋겠다. 크크.”

영희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영희는 어지간히 지쳐 있었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쳤다. 시누이집에 맡겨놓은 아이가, 엄마 언제 우리 집 가? 할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여기서 살아버릴까?”

영희가 눈을 찡긋했다.

“주인이 있을 텐데?”

철수의 반문 같은 대답이다. 지치기는 철수라고 다르지 않았다. 둘은 생계용으로 쓰다 졸지에 이삿짐차가 돼버린 트럭 짐칸을 바라보았다. 당장에 비닐을 벗기고 짐을 내리고 싶었다. 날은 금방 어두워졌다.

“저 집에 가서 물어보자.”

둘은 반짝 하고 불이 들어오고 있는 앞집으로 갔다. 한데로 나 있는 아궁이 앞에서 거의 참선하는 표정으로 앉아서 스티로폼, 플라스틱 막걸리통, 비닐 같은 쓰레기를 태우던 집주인인 듯한 남자가, 꼭 아는 사람이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반색을 한다.

“뉘신지……”

“윗집이 좋아서 들어와본 사람입니다.”

“집은, 좋지요. 윗집 지을 때, 내가 열살이었는데, 똑똑히 기억납니다. 이 집 다 짓고 나서 가려는 목수를 내가 우리 집도 지어주고 가라고 붙잡고 통곡을 하는 통에 결국 우리 집도 마저 지어주고 갔지요.”

“아 예, 그러셨군요. 그러면 못해도 삼사십년은 되었겠네요?”

“내가 육십이니, 오십년이지.”

영희는 날은 어두워지고 몸도 힘든데 남자들의 한담이 길어질 조짐이 보이는 것에 마음이 조급해져서,

“사실은 저희가 윗집에 들어와 살고 싶어서……”

“살고 싶으면 사는 거지요, 뭐.”

기대도 안했는데, 너무나 선선해서 영희는 깜짝 놀랐다.

“아저씨가 주인이세요?”

“주인은 아니지만…… 잠깐 지다려봐요이. 내가 집주인 연결해줄 테니까는. 말이 안 있소이, 말만 잘하믄…… 자다가도 떡을 얻어묵는다는 이…… 이, 만택인가? 자네 집에 누가 왔어. 살겄다고. 보매는, 사람들이 점잖고, 좋아, 아조. 어쩔란가? 전화 바꿔줌세이.”

매콤한 쓰레기 연기가 저녁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며 부부는 바짝 긴장했다. 철수가 전화를 건네받았다.

“저, 사실은 내가 가서 살 집이기는 헌데…… 허어 참, 어떡해야 좋으까이. 꼭 우리 집에서 살고 싶어요?”

전화로 듣기에도 목소리가 선해서 우선 마음이 놓인다.

“예. 꽃은 예쁜데 집이 외로워 보인다고, 집사람이 자꾸……”

말을 해놓고 보니 아차, 실없는 소리를 했구나 하고 마음이 졸여졌다.

“꽃이라고요? 우리 집에 꽃이 있었던가앙? 하여간, 언제까지 살으실지는 몰라도 꽃이 이뿌다면은, 살으야지요 뭐.”

갑자기 눈물이 나올 뻔했다. 무슨 세상에 이런 집주인이 있나.

“집세는……”

“세는 무슨. 그쪽에서 세를 받으시야지.”

“저희가요?”

“집 지켜주잖애요.”

철수는 너무나 감격해서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대로 살게만 해준다면 아무 탈 없이 열심히 일하고 작은 행복에 만족해하면서 살 사람들을, 자기 이득을 위해 갖은 수를 동원해서 내쫓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 얼굴도 한번 안 보고, 자신의 집을 내주는 사람이. 꽃이 이쁘다면 살라고 하는 사람이.’

그렇게 해서 철수와 영희는 그들의 소망대로 이곳 진평리에 돈 안 주고도 살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게 되었다. 철수의 대구탕집이 철수하자,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머리띠를 두르고 모여앉아 있던 순대국집, 떡볶이집, 수예점, 빵집 들이,

“이름이 철수라 철수하는 거여, 뭐여어. 철수 가니 영희도 가는 거고이.”

하는데, 부부는 뒷덜미가 붉어져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 전날 누나가 와서,

“버텨봤자 소용없더라. 한푼이라도 더 준다고 할 때 빠져나오는 것이 그나마 현명하지.”

서울 살 때 두번이나 철거민이 되어본 경험이 있는 누나의 조언이 헛말은 아니다 싶어 다른 사람들보다 이사비용에 위로금 조로 몇백을 더 얹어준다고 할 때 빠져나오기로 결심했던 게 아무래도 잘한 일 같다고 생각하려 애쓰며, 철수는 난생처음 본 남의 빈집 마루에 누워 안도감에서 나오는지 속이 상해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지금은 빠져나오는 것만이 죽음과 죽임에의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대충 청소하고 이사 들어와서 솥단지 새로 사다 걸고, 꽃이 이쁘다면 살라고 한 주인이 살기 편리하게 고쳐쓰라는 허락을 해줘서, 부엌에 수도 가설해서 반 입식 부엌도 만들고 도배장판 하느라고 핀 꽃 지고 새잎 돋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봄 한철을 보내고 난 초여름 새벽에 부부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와그르르, 와그르르르, 다갈다갈다갈, 쿠웅쿵 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세살배기 아들 복주가 잠결에도 무쩌워 무쩌워 하며 영희 품을 파고들었다. 영희가 복주를 안은 채 벌떡 일어나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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