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창훈 韓昌勳

1963년 전남 여수 출생. 199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가던 새 본다』 『청춘가를 불러요』, 장편 『홍합』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등이 있음. kkunha@naver.com

 

 

 

나는 여기가 좋다

 

 

저쪽에는 좀 남았구나 싶던 붉은 기운이 순간 사라지자 사방은 분간이 어려운 칠흑 같은 어둠이다. 섬에서 일직선으로 달려온 배는, 그사이 옅은 노을이 지고 어두워졌기에, 어둠을 목표로 항해를 한 듯하다. 멀고 가까운 가늠이 사라져버린 곳에 밤의 혼령이 함뿍 쏟아져내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질감이 들어찬다. 바다나 허공이나 하늘이나 온통 한 색깔로 뒤섞이자 이번에는 마치 세상이 뒤집혀 바닷물이 하늘을 향해 쏟아진 것 같다. 바닷물이 허공을 적시고 구름과 별을 물들인 것이다.

터져 부서지고 말 것처럼 달아오른 엔진 소음 때문에 배는 공동묘지 가운데를 울면서 뛰어가는 아이처럼 급하기 짝이 없다. 그 탓에 뱃부리는 편할 틈이 없다. 끊임없이 치솟아올라 허공과 멈칫, 부딪친 다음 급한 원을 그리며 떨어지다가 부르르 떨면서 다시 솟구쳐오른다. 거기에서 날아온 물방울이 조타실 창문에 총알처럼 부딪친다. 배가 운다.

GPS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내의 얼굴은 푸른빛이 옮아와 혼령의 그것처럼 변한다. 해저 수심이 50에서 60, 70, 급하게 꺾여간다.

“멀미 난가?”

사내는 조타실 구석을 바라보며 묻는다. 아내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인다. 그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항해등을 켠다. 어둠속에 숨어 있던 갑판이 달려들듯 확 밝아지고 갑판이 밝아지자 배를 중심으로 빛의 우산이 만들어진다. 퍽, 튀어오른 물방울이 한순간 반짝 빛난다. 우산 속으로 은빛 비가 내린다.

뱃전에서 부서지는 물보라도 빛을 받아 몸통은 바다 깊은 곳에 숨기고 긴 혀만 날름거리는 괴물의 그것처럼 변했다. 항해등 불빛은 아내의 머리칼에도 찾아왔다. 끝이 흰색으로 변해 마치 머리카락부터 늙는 병에 걸린 듯 보인다.

머리칼뿐만이 아니다. 크림 바른 곳이 빛나기는 하지만 주름과 거친 피부를 애써 감추려는 표시 같아 처량맞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녀는 그와 떨어져 문에 몸을 기대고 있는데 바닷물이 창을 덮칠 때마다 움찔거린다. 늙었다. 하긴 곧 쉰이다. 눈자위는 처지고 손에 근육도 생겼다. 사내한테 시집와 자식 낳고 이십오년을 살았다. 그 시간이면 팔팔한 처녀가 염색약 사러 다니는 아줌마로 변하는 데 충분하다. 가슴속에서 울컥 치솟는 열정 식혀 반듯하게 누이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런데 그 시간을 다 보내고 나서야 아내는 떠나겠단다. 영영 가겠단다. 왜, 어디로.

“이제 다 왔으니 조금만 참소.”

하긴 어둠을 도착항으로 삼았으니, 어두워졌다는 것은 도착할 때가 됐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아내 입에는 불만이 들어 있다.

“파도가 너무 치요. 그냥 돌아갑시다. 사람 죽겠구만.”

“주의보 내린 것도 아닌디 이 정도 파도에.”

GPS에 도착지점 표시가 나타난다. 엔진을 다운시키자 거친 폭발음이 사라진다. 곤두박질과 솟구치기를 되풀이하며 거칠게 돌진하던 배는 순간 어쩔 줄 몰라 한다. 남아 있는 관성과 파도의 저항이 뒤엉켜 갈피를 못 잡고 좌우로 급하게 요동을 친다. 휘청, 아내는 선반 모서리를 붙잡고 쓰러지는 것을 간신히 모면한다.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납치되어 끌려온 모습이다. 하긴 싫다는 것을 억지로 끌고 왔기는 했다.

사내는 고개를 뽑아 주변을 살핀다. 보이는 것이라곤 제가 밝혀놓은 등불뿐이다. 먹물 한점 떨어져 무색의 수면에 검은 방울 만들듯, 바다 위의 불빛은 어디로 가지도 못하고 여전히 주변 서너 발 정도만 비추고 있다. 그 빛은, 당장 눈앞은 밝았지만 결국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보이는 것은 없다. 빛의 장막 너머 파도 일렁이는, 무한대의 바다만 있을 뿐이다. 근처를 떠도는 혼령이 본다면 감히 사람의 눈으로 어둠의 깊이를 측정하고 있다고 타박할 것이다. 하지만 배를 멈추면 좌우를 살피는 것이 그의, 어부의, 오랜 습관이다.

이 자리는 그가 살고 있는 섬과 제주도 중간쯤으로 갈치어장이 형성되는 곳이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어장이 죽어버린데다 그나마 철이 지나 아무도 없다. 망망한 밤바다 한가운데 불빛 하나 정지하고, 한 시간 넘게 맹렬하게 달려온 배는 비로소 숨을 몰아쉰다.

배는 이년 어장을 다니다 삼년 내리 선착장에 묶여 있었다. 어장이 죽고 나자 선원들 인건비와 기름값이 안 빠졌다. 놀면 손해가, 움직이면 손해가 되었다가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손해로 바뀌었다. 그는 끝내 배를 내놓았다. 그 기간 동안 욕심 부려 큰 배를 장만한 걸 후회하기도 했다. 말리는 아내 말을 들을걸, 했다.

이 행보는 혼자 작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 제주도 사람이 와서 배를 보고 갔다. 팔리기 전에, 이제 내 배를 가지고 어장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기에, 마지막으로 낚시 한번 가보자, 했던 것이다. 철은 지났지만 그래도 식구들 한동안 먹을 것은 낚아놓을 수 있겠지, 싶었다.

배는 결국 어제 팔렸다. 이틀 뒤 잔금 들고 와서 가지고 가겠다고 했으니 그게 내일이다. 오늘이 지나면 그는 선주도, 선장도 아니다. 그냥 섬사람인 것이다. 선장을 처음 맡았던 스무살 이래, 몇년간의 상선(商船) 선원 생활을 빼고는, 선장 명함을 내놓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선장으로서 첫 행보 때 동중국해 거친 파도 뚫고 나가 배 가라앉을 정도로 민어와 농어를 잡아 만선(滿船)으로 돌아오던 그 기억은 이제 배 잃은 섬 중년의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 그는 몸에서 피가 빠져나간 것 같았다. 배가 팔렸다고 하자 아내가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소. 하소. 난 이제 섬을 떠날 거요. 가서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요.

아침에 일어나 수협으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갚을 돈을 헤아려보았다. 뱃값을 모두 주어도, 잔금에 연체이자 더해 한 척은 더 팔아야 하는 액수가 남아 있었다.

친구가 하는 양식장에 들러 시간 보내다가 들어오자 아내는 방 청소를, 분명하게 말해보면 짐을 싸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건가? 떠난다니, 택도읎는 소리지. 난 진심이요, 오래오래 생각한 것이니 흘려듣지 마시오.

아내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는 아내가 정말 간다는 것을 눈빛 보고 알았다. 눈을 만났을 때 그 속에는 수평선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고 애원도, 원망도 없었다.

세상 일이 어디 맘대로 돼집디여.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다보믄 분명 좋은 날이 있을 것이요. 그러니께, 영화 아부지, 속상하다고 성질내지 말고, 안 있소, 어쨌든 가족 울타리 안에서는 화목해야 안되겠소. 이렇게 애원하던 눈빛은 딸아이의 것을 닮았었다. 그런 눈빛을 할 때면 찌개를 끓이고 숟가락을 가지런히 놓았다.

원망과 분노의 눈빛도 있었다. 그것은 그를 노려보던 아들의 눈빛과 같았다. 아부지가 어장도 안되고 빚만 자꾸 늘어나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래부렀다, 미안하다. 만약에 한번만 더 그러면 아부지가 물에 빠져 죽어불란다, 하면 어쩔 수 없이 순해지던 눈빛까지도. 모두 그가 상심에 지쳐 취해버린 그 다음날이었다.

그동안 수평선 같은 눈빛은 한번도 본 적 없었다.

나는 내일 섬을 뜰 것이요. 자꾸 뭔 소리여. 영화랑 살 거요, 영식이 제대하믄 영화는 졸업하니께. 무슨 수로 살어? 뭔 일을 해서든 아그들 굶기지는 않을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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