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사과

김사과

1984년 서울 출생. 2005년 제8회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미나』가 있음. dryeyed@gmail.com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나와 b는 쌍둥이다. 아니 진짜 쌍둥이는 아니다. 근데 맨날 붙어 다녔더니 진짜 쌍둥이가 되었다. 우리는 노래도 지었다. 우리는용감한쌍둥이형제엄마배를가르고나온우리엄마는배가찢어져서죽었다네 우리는 어디서나 그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나는 미미 b는 슈슈를 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들의 노래를 싫어했다. 사람들은 우리들을 싫어했다. 그러나 괜찮았다. 우리는 아주 명랑했다. 우리는 아주 건방졌다. 우리는 꿈이 있었다. 우리는 온 세상을 다 차지하고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다 죽일 생각이었다. 옛날이야기다.

 

*

 

난 네가 없으면 죽을지도 몰라. b가 내게 말했다. 첫사랑도 나한테 똑같이 말했어. 내가 말했다. 근데 결국 안 죽었어. 지금도 멀쩡히 살아 있다니까. 아냐 죽을 거야. b가 말했다. 내가 죽일 거야. 어쨌든 나는 그 뒤로 내 첫사랑을 못 봤다.

 

*

 

어떤 날 나와 b는 아주 사이가 좋다. 우리는 같은 냄새를 풍긴다. 식당에 가면 같은 것을 시킨다. 같은 빨대를 핥아먹는다.

 

*

 

이제 나와 b는 더이상 어린이가 아니다. 어른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다. 아빠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거지도 아니며 부자도 아니고 천사를 본 적도 없고 전쟁을 겪은 적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루하다. 매우 몹시 지루하다. 지루하다. b가 가스등에 돌을 던지면서 말했다. 불이 꺼지고 검은 밤 속에서 불꽃과 연기가 피어났다. 심심하다. 나는 자판기를 부쉈다. 나는 바퀴벌레가 가득 든 커피와 설탕을 바닥에 뿌리고 그 위에 물을 섞어 커다란 커피 웅덩이를 만들었다. 웅덩이는 아주 달았다. 그 위로 택시가 지나갔다. 택시 바퀴가 커피를 밟고 커피를 마시며 달려갔다. 그날 밤 어디에서나 커피 냄새가 났다. b가 재채기를 하더니 나를 때렸다. 힘이 세지고 싶다. 나는 생각했다. 남자애들처럼 힘이 세지고 싶다. 그렇게 말했다. 권투를 배우자. 그래 배우자. 힘이 쎄지자. 하지만 돈이 없는데. b의 눈썹이 가라앉았다. 네 눈썹은 엄청 이쁘다.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권투선수를 꼬시는 거야. 그러니까 내 이쁜 눈썹으로? 응, 어때? 자신있지. 일주일 뒤 우리는 만났다. b는 전직 유도선수의 뺨을 핥고 있었다. 나는 권투 도장에 다니는 깡패랑 팔짱을 끼고 줄담배를 피우며 길바닥에 침을 뱉고 있었다. 안녕. 안녕. 우리는 인사했다. 전직 유도선수는 머리에 필승이라고 씌어진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깡패는 반짝이는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미안, 권투도장이 너무 멀어서 집 근처의 유도학원에 가봤어. b가 말했다. 아냐, 괜찮아. 내가 대신 해냈어. 내가 말했다. 아냐, 걔는 깡패잖아. b는 냉정했다. 그래서 나는 울었다. 권투할 줄 아세요? b가 깡패에게 물었다. 조금이요. 깡패가 대답했다. 보여주세요. 깡패가 소매를 걷었다. 그러자 그의 팔에 가득 새겨진 멋진 문신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깡패는 강아지처럼 가볍게 튀어올라 멋진 잽과 훅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모두 박수를 쳤다. 전직 유도선수도 브라보를 보냈다. 그럼 이제 당신 차례예요. b가 전직 유도선수에게 말했다. 전직 유도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했다. 뜨거운 기술을 보여주세요. 버터처럼 부드러운 걸로요. 아아. 당신의 기합소리를 내 귀에다가 속삭여주세요.

 

*

 

어떤 날 나와 b는 사이가 나빠졌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나빴다. 그래서 나는 깡패와 놀기 시작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깡패와 놀았다. 깡패의 몸은 튼튼했고 문신은 반짝거렸다. 나는 깡패가 좋아졌다. 어느날 깡패가 나에게 본드 부는 법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옷을 다 벗고 나란히 손을 잡고 누워 비닐봉지를 뒤집어썼다. 비닐봉지는 흰색이고 롯데마트라고 씌어 있었다. 우리는 온 얼굴에 본드가 범벅이 되어 이천원짜리 천국으로 갔다. 천국은 티타늄화이트였다. 나는 천국에서 b를 만났다. b는 초콜릿 상자 속에 들어 있었다. 나는 상자를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다리를 벌렸다. 깡패가 페니스를 내 몸 속에 밀어넣었다. b가 녹아서 사라졌다. 우리는 동시에 끙, 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모두가 대만족이었다. 이천원짜리 천국은 두시간 후 온 얼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작은 문제였다. 깡패가 본드를 또 하고 싶다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

 

어느날 깡패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는 기뻤다. 나도 사랑해요 당신을요. 우리는 체리소주를 마셨다. 깡패가 말했다. 나 때문에 당신과 b의 사이가 더 나빠지는 것 같아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너무 미안해요. 괜찮아요,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아니에요, 정말 미안해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깡패는 너무 미안했다. 정말 미안했다. 미안해요. 너무 미안해진 깡패는 너무 미안해서 나를 때렸다. 나는 코가 부러졌다. 나는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면서 도망쳤다. 그리고 다음날 마스크를 쓰고 b를 찾아갔다. 안녕. 안녕. b는 나를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다. 나는 재빨리 마스크를 벗었다.

 

*

 

우리는 화해했다. 나는 깡패와 헤어졌다.

 

*

 

b는 샤넬에서 일했다. 그것은 술집의 이름이다. b는 구찌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커피숍의 이름이었다. 샤넬 옆에는 커다란 공원이 있었다. 공원 꼭대기에서는 서쪽 바다가 내려다 보였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거지와 미친 사람들이 있었다. 할아버지들은 공원 입구에 박정희의 사진을 걸어놓고 절을 했다. 할머니들은 집 뒷마당에다 양귀비를 키웠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샤넬의 화장실에서 쎅스를 했다. 거지들은 맨홀 뚜껑을 훔쳐다 팔았다. 미친 사람들은 맨홀 속에 빠졌다. 어느날 맨홀 속에서 미친 사람이 굶어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불쌍한 미친 사람은 너무 배가 고파 소매 끝을 갉아먹었다. 미친 사람들은 언제나 웃으면서 화를 내고 신발을 잃어버리고 잠바를 세개씩 입었다. 피부병에 걸린 개가 매일 밤 벚꽃나무 밑에 누워 울었다. 매일 밤 나는 공원 입구 벤치에 앉아 b를 기다리며 이 모든 것을 보았다.

 

*

 

공원 입구 벤치에 앉아 있으면 할아버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언제나 지루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내 아들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너는 어느 대학에 다니느냐. 내가 대답했다. 나는 대학에 다니지 않습니다. 내 딸은 연대 경영학과에 다니고 씨티은행에서 인턴을 한다. 너는 뭘 하느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내 손자는 하바드와 스탠포드에 동시에 합격하는 것이 꿈이다. 너는 꿈이 뭐냐. 나는 아무런 꿈도 없습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실망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나는 조금 쓸쓸해졌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 그 개새끼가 미웠다. 언젠가 그 개새끼한테 복수할 거라고 굳게 결심하였다.

 

*

 

샤넬의 사장님은 서울에서 왔다. 서울 이야기를 하도 많이 해서 우리는 그를 서울아저씨라고 불렀다. 서울아저씨는 한달에 한번씩 서울에 갔다. 내가 이번에 서울에 가서는 말이다. 프랑스인과 같은 식탁에서 싱가포르 쌘드위치와 타이거 맥주를 마셨다. 그럴 때 나는 봉주르 꼬망딸레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